느헤미야 4:1~23 방해자들 2018. 4. 29

 

1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들을 비웃으며 2 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 앞에서 일러 말하되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일을 마치려는가 불탄 돌을 흙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하고 3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있다가 이르되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하더라

 

지난주에 성문과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자들의 모습을 통하여 장차 완성될 그리스도의 몸 된 성전까지 보았습니다. 묵시적으로는 이미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 예루살렘성이 완성이 되었습니다. 그 새 예루살렘 성은 어린 양의 신부입니다. 그런데 이 역사 속에서는 아직도 지어져 가고 있습니다.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과 성전 재건에 방해세력이 있듯이 그리스도의 몸 된 성전을 세우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세력이 등장합니다.

 

본문 1~3절을 보면 성문과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누가 방해하는지 나옵니다. 방해자들의 대표는 산발랏입니다. 그가 유다인들이 성을 건축한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분노하고 비웃습니다.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하면서 조롱하기를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마치려고 하느냐면서 불탄 돌을 흙무더기에서 일으키려고 하느냐고 조롱합니다. 그러자 도비야는 여우가 올라가도 무너질 것이라고 합니다.

 

4~6절입니다. “4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하건대 그들이 욕하는 것을 자기들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5 주 앞에서 그들의 악을 덮어 두지 마시며 그들의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그들이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를 노하시게 하였음이니이다 하고 6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결되고 높이가 절반에 이르렀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일을 하였음이니라

 

방해자들의 조롱소리를 듣고 느헤미야는 기도합니다. 그들이 욕하는 것을 그들의 머리에 돌아가도록 기도합니다. 그래서 노략거리가 되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게 해 달라고 합니다. 그들의 죄를 도말하지 마시라고 기도합니다. 이런 기도를 어떻게 보십니까? 성벽이 무너진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 함으로 수치와 능욕을 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대로 용서를 받고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성벽을 재건함으로 능욕을 면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을 방해하는 자들은 그들이 능욕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신약으로 말하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지 못하게 방해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세워지는 것은 복음의 선포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는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라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고 하여도 저주를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지난주에 구약의 성전과 성벽과 성문의 건축은 그리스도의 몸 된 성전을 완성하는 일의 그림자입니다. 그러므로 방해자들을 심판해 달라고 기도 합니다. 이러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성벽이 전부 연결되고 높이가 절반에 이른 것은 백성들이 마음 들여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들였다는 것은 사람의 마음은 사람이 마음대로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7~12절입니다. 봉독 백성들이 마음 들여 공사를 하니 절반 정도로 완성이 되어갑니다. 그러니 대적들은 더욱 분하여 군사력으로 방해하려고 합니다. 느헤미야는 또 기도합니다. 그리고 파수꾼을 두어 방비를 합니다만 백성들도 힘이 빠집니다. 일 자체도 힘이 드는데 방해꾼들이 계속하여 방해를 합니다. 말로서도 할 것이고 군사력으로 시위도 합니다. 이런 방해를 열 번이나 한 것입니다. 열 번이나 했다는 것은 정확하게 열 번만 방해 했다기보다는 계속 방해 했다는 관용적인 표현입니다.

 

창세기 31:7,41절입니다. 그대들의 아버지가 나를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였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막으사 나를 해치지 못하게 하셨으며” “내가 외삼촌의 집에 있는 이 이십 년 동안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외삼촌의 양 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에게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셨으며

 

야곱 자신도 아버지와 형을 속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기 외삼촌이 열 번이나 품삯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계속하여 자신을 이용해 먹으려고 하였다는 말입니다. 참으로 세상은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합니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하나님은 자기 약속을 이루어내심으로 어느 누구의 의가 아닌 하나님이 자기 약속과 자기 이름으로 이루어 내시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오늘 오전에 본 것처럼 자랑할 것은 믿음으로 얻는 의입니다.

민수기 14:22절입니다.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광야 40년 동안 열 번이나 반역을 하였다는 것은 평균적으로 4년에 한 번 반역한 것이기에 많이 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만 화산이 폭발하는 것은 밑에서 계속 끓고 있다가 폭발하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열 번이 반역하였다는 말씀은 늘 반역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약속의 땅에 그 후손들이 들어가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신실함임을 보여줍니다.

 

욥기 19:3절입니다. 너희가 열 번이나 나를 학대하고도 부끄러워 아니하는구나여기서도 욥의 친구들이 돌아가면서 욥을 공격할 때에 열 번이 아니라 다섯 번째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열 번이나 하였다는 것은 계속 하였다는 관용적인 표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표현을 찾아보는 이유는 성벽재건에 방해하는 자들이 열 번이 했다는 것은 늘 방해세력이 있는 것이며 성도도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끝까지 방해세력이 나타난다는 말씀입니다.

 

본문 13~14절입니다. “13 내가 성벽 뒤의 낮고 넓은 곳에 백성이 그들의 종족을 따라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서 있게 하고 14 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느니라

 

방비가 취약한 곳에 무장한 자들로 지키게 하고서는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말합니다.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고 합니다. 성벽을 재건하는 중에 적들이 공격이 계속됩니다. 그러니 힘이 약해집니다. 이럴 때에 느헤미야는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지를 말합니다. 지극히 두려우신 주님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일을 방해하기 위하여 사탄은 두려움을 줍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0:28~30절입니다. “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 유대 사회에서 출회를 당합니다. 그러면 살아가기가 참으로 힘이 듭니다. 상인조합에 가입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쫓아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라고 합니다. 참으로 두려워할 분은 두려워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보십니다. 세상에서 버림을 받고 죽는 모습으로 보여도 하나님은 온전하게 구원하여 내십니다. 세상에서 어떤 환난과 핍박과 죽임을 당하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는 것이 복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져도 예수님 없으면 그것이 저주입니다.

 

본문 15~23절입니다. 봉독한 손으로는 일을 하고 한 손으로는 병기를 들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에 무너진 이 땅을 세운 어르신들이 지금 홀대를 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이 하는 말이 나는 한 손으로 총을 들고 한 손으로 망치를 들었다고 합니다. 적을 막으면서 경제도 살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전후의 2,3세대들은 이것을 아느냐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정말 열심히 성벽을 쌓았지만 사람의 공로를 말하지 않습니다. 군대의 오 분 대기조처럼 성벽을 쌓아갔지만 그들은 반드시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20절을 봅니다. 어디서든지 나팔 소리를 들으면 그리로 모여오라고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모습을 신앙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단거리가 아니라 마라톤입니다. 우리의 일평생에 방해세력들은 늘 등장할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주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는 그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선진들이 참으로 극심한 환난 속에 있을 때에 잠시잠간 하늘에 열림으로 그 완성을 보고서 견뎌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그 모든 계시가 완성된 성경이 있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믿음의 창시자시며 온전하게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12:1~3). 우리의 일평생에 닥쳐올 모든 방해세력을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