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2:1~70 귀향자 명단 2018. 2. 25

 

1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갔던 자들의 자손들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 도로 돌아와 각기 각자의 성읍으로 돌아간 자 2 곧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와 스라야와 르엘라야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발과 비그왜와 르훔과 바아나 등과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 64 온 회중의 합계가 사만 이천삼백육십 명이요 65 그 외에 남종과 여종이 칠천삼백삼십칠 명이요 노래하는 남녀가 이백 명이요 66 말이 칠백삼십육이요 노새가 이백사십오요 67 낙타가 사백삼십오요 나귀가 육천칠백이십 이었더라,

 

에스라 2장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자들 중에 놓임을 받아 예루살렘과 유다로 돌아온 자들의 명단입니다. 제일 먼저 등장하는 이름이 스룹바벨입니다. 유다 지역의 총독으로 임명받고 돌아오는 자들을 인솔하여 왔습니다. 예수아는 여호수아 제사장입니다. 느헤미야가 먼저 나옵니다. 에스라는 7장에 이름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이 명단은 포로에서 1차로 돌아온 자들입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족보들이 나오고 이렇게 세세한 명단들이 자주 나옵니다. 우리가 볼 때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많기에 지루해 보이지만 이 명단에 자기 이름이 있다면 어떻게 보이겠습니까?

 

2:3~35절은 일반백성들의 명단입니다. 제사장들보다 일반 백성의 명단이 먼저 나오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제사장은 제사장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구약의 역사를 보면 제사장들마저 타락함으로 형식적으로 제사를 드리며 자기들의 잇속을 챙깁니다. 이런 것을 고발해야 할 선지자들도 타락합니다. 그 결과 나라가 망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것입니다. 이러한 성경구절을 한 곳만 보겠습니다.

 

에스겔 22:26~31절입니다. “26 그 제사장들은 내 율법을 범하였으며 나의 성물을 더럽혔으며 거룩함과 속된 것을 구별하지 아니하였으며 부정함과 정한 것을 사람이 구별하게 하지 아니하였으며 그의 눈을 가리어 나의 안식일을 보지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힘을 받았느니라 27 그 가운데에 그 고관들은 음식물을 삼키는 이리 같아서 불의한 이익을 얻으려고 피를 흘려 영혼을 멸하거늘 28 그 선지자들이 그들을 위하여 회를 칠하고 스스로 허탄한 이상을 보며 거짓 복술을 행하며 여호와가 말하지 아니하였어도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하였으며 29 이 땅 백성은 포악하고 강탈을 일삼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압제하고 나그네를 부당하게 학대하였으므로 30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31 내가 내 분노를 그들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들 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에스겔서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상태에서 주어진 계시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백성의 지도자라고 하는 자들이 어떻게 타락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 결과 나라가 망한 것입니다. 이들이 타락함으로 피해를 입는 것은 백성과 가난한 자들과 나그네입니다. 그 결과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지만 이제 하나님의 자기 언약을 따라 돌이켜 주십니다. 그런데 가장 먼저 나오는 명단이 일반백성이라는 것은 명예를 좋아하는 유대인들의 정서가 아닙니다. 성경은 왕이든 제사장이든 선지자이든 간에 그들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세상의 역사는 권세 잡은 자를 미화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단순한 이스라엘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36~39절은 제사장의 명단입니다. 40~42절은 레위인과 찬양대원과 문지기의 명단입니다. 그런데 43~54절은 느디님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에스라 8:20절을 봅니다. 다윗과 방백들이 레위 사람들을 섬기라고 준 느디님 사람 중 성전 일꾼은 이백이십 명이었는데 그들은 모두 지명 받은 이들이었더라그러면 느디민 사람이라면 성전에서 레위인을 섬기라고 준 종들입니다. 본문 55~57절을 보면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58절에서 모든 느디님 사람과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이 392명이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다 종입니다. 그런데 이런 종들의 이름과 그 숫자들이 다 기록되었다는 것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사실의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제사장들이나 귀족들의 이름보다는 일반 백성들의 이름이 먼저 나올 뿐 아니라 성전의 레위인을 섬기는 종들의 이름과 명단까지 다 나옵니다. 이러한 성전의 종으로 삼은 자들은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할 때에 기브온 족속이 멀리 있는 족속이라고 속여서 화해를 요청한 것입니다. 이들이 속였지만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였기에 그들을 진멸하지 않고 성전에서 물을 긷고 나무를 패는 종으로 삼은 것입니다(9:23~27). 느디님 사람들이란 이들의 후손이든지 아니면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종이든지 간에 이러한 종들도 포로에서 돌아오는 자들의 명단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에서 포로생활 중에 유대인의 종으로 들어온 자들도 있습니다. 돌아온 자들의 이름 안에 유대인의 이름의 특징이 아니라 이방인의 이름의 특징이 있는 자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에도 잡족들이 따라 나왔습니다(12:38). 그러면 제 2의 출애굽이라는 바벨론에서 돌아올 때에도 다른 족속들이 함께 따라온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람을 부르실 때에 아브람의 종들도 함께 따라 나오는 것을 봅니다. 그런 종들도 아브라함의 언약에 참여하였기에 같이 할례를 행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실 때에도 종들도 포함이 되는 것은 이들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포로 귀향의 명단들은 이러한 내용을 함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59~63절입니다. “59 델멜라와 델하르사와 그룹과 앗단과 임멜에서 올라온 자가 있으나 그들의 조상의 가문과 선조가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 밝힐 수 없었더라 60 그들은 들라야 자손과 도비야 자손과 느고다 자손이라 모두 육백오십이 명이요 61 제사장 중에는 하바야 자손과 학고스 자손과 바르실래 자손이니 바르실래는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의 딸 중의 한 사람을 아내로 삼고 바르실래의 이름을 따른 자라 62 이 사람들은 계보 중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도 얻지 못하므로 그들을 부정하게 여겨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지 못하게 하고 63 방백이 그들에게 명령하여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성물을 먹지 말라 하였느니라

 

명단에 포함이 되기는 하였지만 그들의 족보가 상실되었는지 밝힐 수가 없는 자들이 있습니다. 제사장 중에도 그런 자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림과 둠밈의 판결을 받기 전에는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지 못하게 하고 그 음식도 먹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올 때에 명단을 작성하면서 얼마나 신중하게 기록하였는지를 볼 수가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런 명단에 들어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셨고 그 감동으로 고레스 왕이 조서를 내린 것입니다. 그 조서를 보고 마음에 감동을 받은 자들이 올라온 것입니다. 에스라 느헤미야에서는 이러한 명단들이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64~67절입니다. “64 온 회중의 합계가 사만 이천삼백육십 명이요 65 그 외에 남종과 여종이 칠천삼백삼십칠 명이요 노래하는 남녀가 이백 명이요 66 말이 칠백삼십육이요 노새가 이백사십오요 67 낙타가 사백삼십오요 나귀가 육천칠백이십이었더라전체 명단의 숫자를 다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반 백성들과 함께 남 녀 종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심지어 말과 노새와 낙타와 나귀의 숫자까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돌아오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것을 때가 되어 신실하게 이루어내셨다는 언약의 성취이기에 세밀하게 기록됩니다.

 

본문 68~70절입니다. “68 어떤 족장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 터에 이르러 하나님의 전을 그 곳에 다시 건축하려고 예물을 기쁘게 드리되 69 힘자라는 대로 공사하는 금고에 들이니 금이 육만 천 다릭이요 은이 오천 마네요 제사장의 옷이 백 벌이었더라 70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백성 몇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이 각자의 성읍에 살았고 이스라엘 무리도 각자의 성읍에 살았더라

 

무너진 성전 터에 돌아와 그 곳을 다시 건축하려고 예물을 기쁘게 드렸다고 합니다. 바벨론에서 돌아올 때에 주변의 사람들이 여러 가지 보물을 유대인들에게 주었다는 것을 1장에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러한 예물들의 목록까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돌아온 자들이 각자의 성읍에서 살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돌아온 사람들의 명단만이 아니라 종들과 짐승과 예물 드린 것까지 기록을 함으로 하나님의 자기 말씀의 성취가 얼마나 빈틈없이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명단들의 숫자를 다 포함하면 29,818명입니다. 그런데 42,360명이라고 합니다. 이런 차이가 왜 날까요? 여러 견해가 있습니다만 느헤미야 7장에도 동일한 명단이 나오는데 그곳에서도 같은 숫자가 나옵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가장 받아들일만한 해석은 이렇습니다. 구체적으로 기록이 된 숫자는 성인 남자를 중심으로 기록한 것이며 합계에는 여자와 아이들도 포함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일반적으로 숫자를 기록할 때는 성인 남성을 중심으로 기록하지만 포로에서 돌아온 합계에서는 여자와 아이가 포함이 된 것으로 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자들은 이런 명단들이 얼마나 귀하게 여겨지겠습니까!

 

저의 출신교회 역사를 정리하면서 옛날 자료들을 보았습니다. 그 중에 교인들의 교적부를 정리한 책을 무릉교회 생명록이라고 기록해 두었습니다. 1922년에 정리한 책인데 1906년에서 학습 받은 자들의 명단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래서 교회의 설립을 이때로 잡으면 올해가 112년이 됩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이것이 아무른 의미가 없어보여도 여기에 이름이 있는 사람들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자들은 이런 명단을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할 겁니다.

 

미가 4:6~10절입니다. “6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 날에는 내가 저는 자를 모으며 쫓겨난 자와 내가 환난 받게 한 자를 모아 7 발을 저는 자는 남은 백성이 되게 하며 멀리 쫓겨났던 자들이 강한 나라가 되게 하고 나 여호와가 시온 산에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들을 다스리리라 하셨나니 8 너 양 떼의 망대요 딸 시온의 산이여 이전 권능 곧 딸 예루살렘의 나라가 네게로 돌아오리라 9 이제 네가 어찌하여 부르짖느냐 너희 중에 왕이 없어졌고 네 모사가 죽었으므로 네가 해산하는 여인처럼 고통함이냐 10 딸 시온이여 해산하는 여인처럼 힘들여 낳을지어다 이제 네가 성읍에서 나가서 들에 거주하며 또 바벨론까지 이르러 거기서 구원을 얻으리니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네 원수들의 손에서 속량하여 내시리라

 

유다가 멸망하는 것을 목격한 예레미야 선지자보다 약 100년 전에 활동한 미가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미가 선지자가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갈 것이지만 그러나 여호와께서 거기서 구원하여 내셔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모습은 저는 자, 환난 받은 자들입니다. 이들이 남은 백성이라는 말입니다.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가 남은 백성이 아니라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고 환난을 당하고 돌아오는 자들이 남은 백성입니다.

 

예레미야 31:8~14절입니다. “8 보라 나는 그들을 북쪽 땅에서 인도하며 땅 끝에서부터 모으리라 그들 중에는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과 잉태한 여인과 해산하는 여인이 함께 있으며 큰 무리를 이루어 이 곳으로 돌아오리라 9 그들이 울며 돌아오리니 나의 인도함을 받고 간구할 때에 내가 그들을 넘어지지 아니하고 물 있는 계곡의 곧은길로 가게 하리라 나는 이스라엘의 아버지요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니라 10 이방들이여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먼 섬에 전파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을 흩으신 자가 그를 모으시고 목자가 그 양 떼에게 행함 같이 그를 지키시리로다 11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원하시되 그들보다 강한 자의 손에서 속량하셨으니 12 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 여호와의 복 곧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어린 양의 떼와 소의 떼를 얻고 크게 기뻐하리라 그 심령은 물 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 할지어다 13 그 때에 처녀는 춤추며 즐거워하겠고 청년과 노인은 함께 즐거워하리니 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려서 즐겁게 하며 그들을 위로하여 그들의 근심으로부터 기쁨을 얻게 할 것임이라 14 내가 기름으로 제사장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며 내 복으로 내 백성을 만족하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미가 선지자가 죽고 약 백년이 지나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루살렘의 멸망을 목격하면서 새 언약을 말하는 내용이 예레미야 31장입니다. 여기서 미가 선지자가 말한 것처럼 남은 자가 돌아오는데 그들의 모습이 환난 당한 후에 돌아오는 모습이기에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과 잉태한 여인과 해산하는 여인이 함께 큰 무리를 이루어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들이 울면서 오는데 주께서 돌이켜 주심을 인하여 즐거움과 기쁨을 얻게 됩니다. 이것이 바벨론이라는 환난의 골짜기를 통과하여 주께로 돌아오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이런 자들이 구약의 남은 자들이며 새 언약의 백성입니다.

 

시편 126편입니다. “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3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표제어에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자들이 이런 기쁨의 찬양을 하면서 돌아오는 것입니다. 주께서 큰일을 행하셨다고 하는 자들이 모습이 미가서와 예레미야서의 모습입니다. 이들이 새 언약의 백성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애굽과 바벨론이라는 세상에 속하여 세상을 사랑한 사람이지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백성들이기에 이런 세상에서 환난을 주심으로 주께로 돌아오게 되는 자들이 귀향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주님께서 행하신 그 크신 일을 찬양합니다. 그 크신 일은 십자가로 이루신 내용입니다. 십자가는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고 우리를 자기의 몸으로 이끌어 들이시는 일을 지금도 하고 계십니다. 그 생명책에 있는 자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으시고 지금도 복음으로 불러내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돌아오는 자들은 울면서 또한 기뻐하면서 이 세상을 외국인과 나그네처럼 살아갑니다. 더 나은 본향을 향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