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9:1~10:44 말씀으로 떠는 자 2018. 4. 1

 

스룹바벨이 바벨론 포로에서 1차로 돌아와서 약 15년에 걸쳐 성전이 재건됩니다. 2차로 에스라가 인솔하여 바벨론에서 올라왔습니다. 성전이 재건되고 성전에 거주할 백성이 돌아왔습니다. 물론 1차로 돌아온 자들도 성전 재건의 구성원이 되지만 성전이 재건되어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돌아와서 채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내용을 보아도 건물로서의 의미보다는 사로잡혀갔다가 돌아온 자들이 성전의 구성원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 1~2절입니다. “봉독 북 이스라엘 백성들이 앗수르에 멸망하고 남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한 것은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먼저 멸망하였을 때에 앗수르는 통혼정책을 썼기에 사마리아는 피가 섞였다고 유다 백성들은 아주 멸시하였습니다. 북 이스라엘이 이렇게 망하는 것을 보고서도 남 유다는 교훈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역사를 보고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게 없습니다. 남 유다도 결국 바벨론에 멸망하였지만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긍휼을 입어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사로잡혀갔다가 돌아와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가나안 원주민들과 결혼을 한 것입니다. 그 결과 거룩한 자손이 그 지방 사람들과 서로 섞이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죽다가 겨우 살아서 돌아와도 스스로 고칠 수 없는 자들임을 보여줍니다.

 

신명기 7:1~4절입니다. “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들이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센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넘겨 네게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3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4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라고 한 이유는 그들은 이미 죄악이 가득하여 망하는 자들입니다. 온갖 우상숭배라는 죄가 가득하기에 그들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진멸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과 어떤 언약도 맺지 말고 불쌍히 여기지도 말라고 하면서 그들과 혼인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들과 결혼하면 그들이 유혹하여 여호와를 떠나게 하여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여호와께서 진노하심으로 너희를 멸할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어김으로 나라가 망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긍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같은 일을 또 합니다. 이런 내용을 보면 인간은 죽다가 살아나도 인간이 되지 않는 모습입니다. 에스라가 어떻게 합니까?

 

3~4절입니다. 봉독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아있습니다. 참으로 극한의 슬픔을 표현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에스라에게 모여오는 자가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떠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떠는 에스라 앞에 하나님의 말씀에 떠는 자들이 다가옵니다. 이들이 회개운동에 앞장섭니다(10:1~4).

 

5~10절입니다. “봉독에스라의 처절한 회개기도입니다. 에스라는 자신이 율법을 어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회개를 하는 것은 자기 백성들의 죄를 자기의 죄로 인식하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왕들과 우리 조상들이 죄를 지어 이렇게 나라가 망하게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잠시동안 은혜를 베푸셔서 조금 남겨주셨는데 또 이렇게 되었다고 탄식하면서 기도합니다. 죄를 지어 망하였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돌아왔지만 다시 같은 죄를 지었다고 할 말이 없다고 합니다.

 

11~15절입니다. “봉독 전에 주께서 주의 종 선지자들에게 명령하신 일이란 신명기 7장에서 찾아본 내용입니다. 이런 말씀을 한 두 번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선지자들이 경고를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함으로 나라가 망하였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보다 형벌을 가볍게 하셔서 이만큼 남겨주셨다고 합니다. 주께서 죄를 살피시면 누가 서겠습니까? 그래서 요만큼 남았는데 이들이 다시 피를 섞는 이방인과 결혼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감히 한 사람도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하겠다고 기도합니다. 더 이상 용서하여 달라고 기도할 면목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망연자실하게 앉아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죄악을 인하여 심판받는 중에라도 조금 남겨주셨다는 말씀과 여호와의 말씀에 떠는 자에 대하여 보겠습니다.

 

이사야 1:1~9절입니다. “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1)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 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2)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5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7 너희의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고 8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9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이사야 선지자가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전한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나 나귀보다 못하다고 합니다. 아무리 때려도 돌아올 줄 모른다고 합니다. 그대로 두셨다면 이미 소돔과 고모라처럼 멸망하였을 것인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조금 남겨두셨다고 합니다. 이미 선지자들의 시대에도 이러하였습니다. 그런데 나라가 망하여 바벨론 포로에서 겨우 조금 하나님의 은혜로 돌아왔는데도 다시 옛날 그 죄의 습성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옷을 찢고 머리카락과 수염을 뜯으며 회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떠는 자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역시 여호와의 말씀으로 떠는 자들이 다가옵니다.

 

이사야 66:1~5절입니다. “ 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3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이 하고 어린 양으로 제사 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이 하며 드리는 1)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이 하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행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4 나 또한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듣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며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라 하시니라 5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들아 그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르시되 너희 형제가 너희를 미워하며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쫓아내며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영광을 나타내사 너희 기쁨을 우리에게 보이시기를 원하노라 하였으나 그들은 수치를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전을 짓고 제물을 바치는 자를 돌보시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에 떠는 자들을 돌보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5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떠는 자들을 너희 형제가 미워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성전을 지어 바치고 제물을 바치면서 여호와께 이만큼 해 드렸으니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에게서 미움을 받고 쫓겨남을 당하겠지만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렇게 당하는 자들을 돌보시고 그렇게 핍박하는 자들이 수치를 당할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떨림이 있는지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본문 10:1~4절입니다. “봉독 에스라가 성전 앞에서 엎드려 울며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크게 통곡하며 백성의 남녀와 큰 무리가 에스라 앞에 모여서 에스라에게 말하기를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맞이하여 아내를 맞이하였지만 아직 소망이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주의 말씀을 따르며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가르침을 따라 이방인 안내와 그들의 자녀들까지 내 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웠다고 합니다. 이 일을 당신이 주장하면 우리가 돕겠다고 합니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떠는 자들입니다.

 

5~14절입니다. “봉독 에스라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에게 맹세하게 합니다. 에스라는 물도 먹지 않는 금식을 하면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사로잡혔던 자들에게 삼일 안에 예루살렘에 보이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재산을 적몰하고 쫓아낼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모였으나 큰 비 때문에 떨고 있습니다. 이때 에스라가 그들의 죄를 고발하면서 죄를 자복하고 이방 여인을 끊어버리라고 합니다. 모든 회중에 큰 소리로 그렇게 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많은 백성과 큰 비로 인하여 하루 이틀에 할 수가 없으니 이방여인과 결혼한 자들을 전수조사를 하게 합니다. 그렇게 이방여인들을 내어 보냄으로 여호와의 진노를 떠나게 하자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일에도 꼭 반대하는 자들이 나옵니다. 15절을 봅니다. 오직 아사헬의 아들 요나단과 디과의 아들 야스야가 일어나 그 일을 반대하고 므술람과 레위 사람 삽브대가 그들을 돕더라반대자들의 명단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이들은 왜 반대하는 것입니까? 여호와의 말씀에 떨림이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떠는 자들은 에스라와 함께 회개하고 언약을 새롭게 하는데 이들은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말씀에 떠는 자들이 많아서 그대로 진행이 됩니다. 물론 이들이 어떻게 끝까지 반대했는지는 드러나지 않지만 이런 일에도 반대는 있습니다.

 

16~19절입니다. “봉독 에스라가 종족을 따라 조사할 사람을 선임하여 두 달에 걸쳐 조사를 마칩니다. 제사장 무리 중에도 이방 여인과 결혼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다 맹세하여 그들의 아내를 내 보내기로 하고 그 죄로 인하여 숫양 한 마리를 속건제로 드립니다. 이렇게 조사된 명단이 110명입니다. 그 중에는 자녀를 낳은 자도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이들을 내 보낸 것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새롭게 조성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의 사상이 섞이면 안 되기에 이렇게 조치를 한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이 본문의 말씀을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해야 합니까? 오늘날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한 성도가 성전입니다. 이러한 성전에는 무엇이 쫓겨나가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 외에 다른 것이 우리 안에 섞이는 것을 쫓아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안에 온갖 더러운 것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드러나야 합니다. 그것이 말씀의 빛이 우리 안에 비추어지는 것입니다. 말씀이 비추어지면 우리가 얼마나 더러운지를 알게 됩니다. 구약의 성전 안에 가득한 온갖 우상들이 우리 안에 가득함을 보게 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떠는 자들이 성전이며 이런 성전 된 자들은 더욱 주를 의지하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3:16~17절입니다. “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2)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성령이 임한 성도가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을 더럽힌다는 것은 우리를 피로 산 그리스도의 공로를 업신여기는 것이 성전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세상의 공적으로 치장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과 고린도전서의 말씀을 보면서 오늘날 결혼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7:10~17절입니다. “10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11 (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12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를 버리지 말며 13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14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2)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15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3)너희를 부르셨느니라 16 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17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이 본문을 앞뒤로 과부와 결혼하지 않은 자에 대한 내용들이 다 나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이방 여인과 결혼한 자들이 내어 보내는 본문이기에 믿지 않는 자와의 결혼에 대하여 어떻게 하는지만 보겠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한쪽이 믿지 않고 한 쪽은 믿습니다. 그런데 믿지 않는 자가 예수님을 믿어도 같이 살자고 하면 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갈라서자고 한다면 갈라서도 된다고 합니다. 이런 것에 구애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 부르셨기에 믿는 자가 화평가운데 처리함으로 그들을 구원하게 될지 모른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일들을 처리하면서 우리가 정말로 나의 만족과 유익을 위하여 결정하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결정하는지는 본인이 잘 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삶을 두렵고 떨림으로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살아가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