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22:1~27:34 다윗의 성전준비 2017. 5. 21

 

17 다윗이 또 이스라엘 모든 방백에게 명령하여 그의 아들 솔로몬을 도우라 하여 이르되 18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시느냐 사면으로 너희에게 평온함을 주지 아니하셨느냐 이 땅 주민을 내 손에 넘기사 이 땅으로 여호와와 그의 백성 앞에 복종하게 하셨나니 19 이제 너희는 마음과 뜻을 바쳐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라 그리고 일어나서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여호와의 언약궤와 하나님 성전의 기물을 가져다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성전에 들이게 하라 하였더라

 

지난주에 다윗이 인구조사를 통하여 전염병이 임하였을 때에 그 전염병을 막기 위하여 여호와께서 갓 선지자를 통하여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재단을 쌓으라고 합니다. 다윗은 오르난의 타작마당을 구입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자 여호와께서 천사에게 칼을 칼집에 꽂으라고 합니다. 그 오르난의 타작마당이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한 그 산입니다. 다윗은 그곳을 여호와의 성전이며 이스라엘의 번제단이라고 합니다. 그곳을 성전이라고 부른 후에 성전 지을 준비를 합니다.

 

22:2~5절은 다윗이 죽기 전에 성전을 위하여 많은 준비를 해 둡니다. 성전을 건축할 돌과 못과 철과 놋을 무게를 달 수 없을 만큼 많이 준비합니다. 여호와의 성전을 짓기 위하여 준비를 합니다.

 

22:6~16절은 다윗이 솔로몬을 불러서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신 내용을 솔로몬에 알려주면서 성전을 건축하게 합니다. 금이 십만 달란트 은이 백만 달란트 놋과 철이 그 무게를 달 수 없을 만큼 준비하였고 재목과 돌을 다 준비하였습니다.

 

22:17~19절은 이스라엘 모든 방백에게 명령하기를 그의 아들 솔로몬을 도와서 성전을 건축하라고 합니다. 성전을 건축하는 목적은 여호와의 언약궤와 하나님의 성전의 기물을 가져다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성전에 들여놓기 위한 것입니다. 역대기가 다윗 언약과 성전중심임을 이런 부분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 솔로몬에게 왕위를 이양하는 내용은 아주 간략하게 언급하고 성전 이야기를 아주 방대하고 상세하게 서술함으로 무엇이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3:1~32절은 레위지파를 불러 모읍니다. 30세 이상으로 삼만 팔천 명입니다. 이들의 임무는 성전의 일을 보살피는 자와 관원과 재판관과 문지기와 찬양대로 나누어집니다. 성전이 지어지기 전에는 성막을 이동할 때에 레위지파가 맡는 일이 있었지만 지금은 고정된 성전이기에 그 직분도 새롭게 재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26). 이렇게 고정된 성전으로 인하여 다윗 언약의 영원함도 보여줍니다(25).

 

24:1~31절은 아론 자손의 계열로서 제사장 직분을 맡는 자들입니다. 아론이나 모세가 레위지파입니다. 그런데 아론 계열로 제사장을 세웁니다. 이것은 모세가 정한 것이 아니라 이미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론 계열로 제사장을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의 증거는 아론의 싹 난 지팡이를 통하여 보여주셨습니다. 아론 자손들 가운데서 24반차를 만들어 제사장역할을 하게 합니다. 그런데 순서는 제비를 뽑아서 정합니다. 제비를 뽑아서 순서를 정함으로 제사장 안에서 우열을 나눌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다른 순서를 정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구약에서는 제비를 뽑는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25:1~31절은 성전의 찬양대도 24반차로 정합니다. 1절에서 보면 신령한 노래를 하게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각주를 보면 히브리어로 예언한다는 뜻입니다. 찬양하는 아삽(대하29:30)이나 헤만(대상25:5)이나 여두둔(대상35:15)과 같은 사람들은 선견자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찬양을 작사하거나 인도하는 것은 단지 노래실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지자로 말씀을 선포하는 자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미 선포된 말씀으로 찬양도 하지만 그들이 받은 말씀으로 찬양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이 그냥 노래가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따라 계시를 받은 것이기에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6:1~19절입니다. 고라 사람들의 문지기 반들입니다. 성전의 문지기로 있는 것은 제사장이나 찬양대보다 서열이 낮은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성전에서 봉사하는 것 자체가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이 아론과 모세를 향하여 너희만 제사장하느냐고 따졌을 때에 모세가 전한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회중에서 너희를 구별하여 자기에게 가까이 하게 하사 여호와의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시며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대신하여 섬기게 하심이 너희에게 작은 일이겠느냐(16:9)” 그러므로 직분의 우열이 아니라 기능상의 직분일 뿐입니다.

 

그리고 5절을 보면 성전의 문지기로 오벧에돔이 나옵니다. 이 사람은 우리가 앞에서 봤습니다만 다윗이 언약궤를 모셔가려다가 일차로 실패하여 오벧에돔의 집에 보낸 것입니다. 오벧에돔은 가드 사람임을 앞에서 보았습니다(삼하6:10). 그런데 가드사람이 레위지파의 반열에 편입이 된 것입니다. 다윗이 언약궤 모시다가 죽어도 된다고 여긴 사람 오벧에돔인데 이제는 레위지파 반열에 속하여 성전 문지기가 되었습니다. 5절에서 하나님이 오벧에돔에게 복을 주셨다고 합니다. 그 복이 성전 문지기가 된 것입니다.

 

시편 84:10절입니다. “10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편 84편이 누구의 시로 되어 있습니까? 표제어를 보면 고라 자손의 시로 되어 있습니다. 문지기 역할을 하는 자들이 찬송하는 내용입니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음으로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 보다 내 하나님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로 누리는 천 날보다 여호와의 성전에서 문지기로 있는 하루가 더 좋다는 자들이 천국백성입니다. 이것이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의 복입니다.

 

26:20~28절은 성전의 곳간을 맡은 레위 인들입니다. 성전의 창고들은 성전의 제물을 보관할 뿐 아니라 전리품 중에 구별하여 드린 것들도 보관하는 곳입니다. 이미 사무엘로부터 구별하여 드린 것을 관리하는 자들이 성전의 곳간을 맡은 자들입니다.

 

26:29~27:34절은 성전 밖의 일들과 왕궁에 관한 관리를 하는 자들입니다. 성전의 관리와 비교하여 보면 너무 간단하게 왕궁의 관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왜 역대기가 성전 중심으로 기록이 되었는지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왕궁과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지키는 군인들이 한 부대에 이만 사천 명씩 12부대가 있습니다. 이렇게 레위인들로 제사장들과 찬양대와 성전 문지기와 곳간 지기와 군대를 정비하여 세웁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전의 기능이 계속되도록 한 것입니다.

 

성전의 기능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는 다윗을 통하여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땅을 다윗이 다 정복하게 됩니다. 이것은 다윗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승승장구하게 되자 간음도 하고 살인도 하게 되었습니다. 또 말년에 욕심이 생겼는데 인구를 조사해 보라고 합니다. 그로 인하여 7만 명의 백성이 죽임을 당합니다. 그제야 자신의 죄를 알고 회개할 때에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멈추어집니다. 이를 통하여 성전의 기능은 제사가 드려짐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멈추어짐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철저하게 성전이 유지되도록 조치를 한 것입니다.

 

다윗이 인구조사에 대하여 역대기 기자가 놓치지 않고 기록하여 두는 내용이 27:23~24절입니다. “23 이스라엘 사람의 이십 세 이하의 수효는 다윗이 조사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사람을 하늘의 별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음이라 24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조사하기를 시작하고 끝내지도 못해서 그 일로 말미암아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임한지라 그 수효를 다윗 왕의 역대지략에 기록하지 아니하였더라다윗도 성전을 통한 속죄가 없으면 언제든지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간음과 살인과 인구조사를 통하여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이러한 성전의 기능을 잊어버리고 이방의 신전들처럼 우상화되기 시작합니다. 성전이란 여호와를 모시는 곳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신다는 임재를 보여주는 곳입니다. 그 성전의 지성소에 언약궤 뚜껑위에서 여호와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곳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곳은 일 년에 대제사장이 한번만 들어가는 장소로서 언약궤에 피를 뿌립니다. 이러한 언약궤 위의 뚜껑이 속죄소입니다. 왜 이곳에서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속죄를 받지 않으면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5:17~22절입니다. “17 순금으로 5)속죄소를 만들되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18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19 한 그룹은 이 끝에, 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결할지며 20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5)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5)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21 5)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4)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5)속죄소 위 곧 6)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속죄소의 각주 5)를 보면 시은좌(施恩座)입니다. 은혜가 베풀어지는 자리라는 말입니다. 이 속죄소가 언약궤의 뚜껑이름입니다. 언약궤 안에는 언약의 돌 판과 만나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들어있습니다. 이 세 가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반역한 증거물들입니다. 이러한 반역들이 언약궤 뚜껑인 속죄소로 덮어짐으로 속죄를 받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곳에서 말씀하시는 이유는 속죄를 받지 않으면 여호와의 말씀을 듣는 것이 곧 심판이며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이렇게 철저하게 성전을 준비한 것은 왜 우리가 주의 용서를 받아야 하는지 알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죽고 솔로몬 왕 때부터 이미 이스라엘에 우상숭배가 가득하게 됩니다. 솔로몬 사후 나라가 남북으로 나누어지고 북 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은 사이비 성전을 두 곳에 만들고 금송아지를 세워놓고 여호와라고 합니다. 이러한 북 이스라엘은 남 유다보다 빨리 멸망합니다. 남 유다도 성전에 우상이 가득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언약 때문에 성전을 청결하게 하는 일들이 가끔 일어나지면 결국 이 성전도 바벨론에 의하여 무너집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성전이 재건되었지만 예수님은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무너진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로마에 의하여 무너진 성전은 지금 이슬람의 사원이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성전을 복원한다고 유대인들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 가운데도 이 일에 동참하자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과 성령이 임함으로 이제는 더 이상의 건물로서의 성전은 없습니다. 구약의 건물성전도 여호와의 임재를 보여주시는 것이며 여호와의 속죄의 기능을 보여주시는 성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구약에서도 하나님은 건물 안에 거하시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직접 성전을 지은 솔로몬도 사람의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않는다고 합니다(왕상 8). 다만 여호와께서 이곳을 향하여 보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 하면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들어주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성전을 도둑의 소굴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7). 이사야 선지자는 사람이 하나님의 전을 만들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66).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로는 더더욱 건물로의 성전은 없습니다. 출애굽기 15:17~18절입니다. “17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18 여호와께서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리시도다 하였더라성막도 만들어지기 전에 여호와의 처소가 무엇인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막이나 성전이란 다 그림자입니다.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주일 오전에 보는 말씀들을 통하여 이미 확인하였습니다. 건물 성전을 헐라고 하시면서 삼일 만에 일으키겠다고 하신 것은 그리스도의 몸이 성전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그 성령이 임한 자가 성전이 됩니다(고전 3:16, 6:19). 그러므로 처음부터 성전이란 여호와께서 거하시는 곳을 염두에 두신 것입니다. 그러면 성도가 여호와의 거처가 되기에 요한계시록의 새 예루살렘도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새 예루살렘의 성문과 기초석이 열두 지파와 열두 사도의 이름들로 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제사장들을 24반차로 만든 것이 우연하게 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에베소서 2:20~22절입니다.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출애굽기에서 어린 양의 피로 구속받아 홍해를 건넌 자들을 여호와의 처소로 삼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그 피로 구속한 백성들을 무엇으로 만드시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신부라고도 하고 그리스도의 몸이라고도 합니다. 에베소서는 그리스도가 기초가 되시고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라고 합니다. 이제 이 처소가 다 만들어져가고 있습니다.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되면 그제야 끝이 올 것입니다. 이렇게 성전으로 만드시기 위하여 우리를 교회로 모아두었습니다. 모퉁이 돌에 붙으려면 우리도 버림을 받고 깨어짐을 당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보이는 성전건물을 준비한 것은 그림자입니다. 그 준비를 보면 일 년 열두 달 하루도 빠짐없이 빈틈없이 성전의 기능이 유지되도록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그러한 성전의 준비가 건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도 성령의 감동으로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 것입니다. 그 주님께서 단번에 영원히 자신을 드리심으로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지금도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십니다. 그 일하심으로 인하여 오늘도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 된 성전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