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1:1~9:44 포로귀환 후 돌아본 역사 2017. 4. 2

 

역대상 9:1~2절입니다. “1 온 이스라엘이 그 계보대로 계수되어 그들은 이스라엘 왕조실록에 기록되니라 유다가 범죄 함으로 말미암아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더니 2 그들의 땅 안에 있는 성읍에 처음으로 거주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느디님 사람들이라

 

열왕기상하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펴보았습니다. 열왕기서는 다윗 왕의 죽음과 솔로몬의 왕위계승을 시작으로 하여 남 북 왕조로 나뉘는 것과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당하고 남 유다는 바벨론에 멸망당하는 내용이 다 나옵니다. 이러한 멸망의 원인은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을 배반함으로 나라가 멸망하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신실하십니다. 그러므로 나라가 망하여도 하나님의 언약은 파기가 되지 않음을 이스라엘 역사를 통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오늘부터 볼 역대기는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와서 기록된 말씀입니다. 역대기는 1장부터 9장까지가 족보의 이야기입니다. 성경에서 여러 곳에 족보가 나오지만 가장 긴 족보가 소개됩니다. 북 이스라엘의 역사는 통째로 빠져있습니다. 다윗의 왕조와 성전에 대한 내용은 아주 상세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역대기는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 그들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언약이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기록한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는데 그 나라가 망했다는 것은 너무나 큰 충격이었습니다. 자기들의 불신앙과 언약 배반은 생각지도 않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배경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는 내용을 역대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그 중에 다윗 언약이 영원하리라고 하셨는데 그 다윗의 왕조가 멸망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파기될 수 없음을 다윗 언약을 중심으로 다시 기록이 됩니다.

 

열왕기하 25:27~30절입니다. “27 유다의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삼십칠 년 곧 바벨론의 왕 에윌므로닥이 즉위한 원년 십이월 그 달 이십칠일에 유다의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고 28 그에게 좋게 말하고 그의 지위를 바벨론에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왕의 지위보다 높이고 29 그 죄수의 의복을 벗게 하고 그의 일평생에 항상 왕의 앞에서 양식을 먹게 하였고 30 그가 쓸 것은 날마다 왕에게서 받는 양이 있어서 종신토록 끊이지 아니하였더라

 

열왕기하에서 이미 보았습니다만 여호야긴 왕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간지 37년 만에 머리를 들게 된 것이 열왕기하의 마지막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지만 하나님은 제국의 왕을 움직이셔서 포로로 잡혀간 왕의 머리를 들게 함으로 하나님의 언약의 끝이 난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포로로 잡혀가 있는 동안 약속의 땅은 안식을 하게 됩니다. 이제 그 안식의 때가 마치자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포로에서 돌아오게 됩니다.

 

역대하 36:22~23절입니다. “22 바사의 고레스 왕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여호와께서 바사의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23 바사 왕 고레스가 이같이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을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올라갈지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나라가 완전히 망하여 포로로 잡혀 간지 70년이 되었을 때에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런 경험을 하고 돌아온 사람들 중에 성령의 감동으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언약이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아담부터 다시 살펴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북 이스라엘의 역사는 빼 버리고 남 유다의 왕조를 중심으로 다윗 언약과 성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범죄 하여 나라가 멸망하였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심판도 있지만 심판보다 더 크신 긍휼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악한 므낫세 왕도 회개한 사건을 열왕기에는 없지만 역대기에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역대하 33:10~13절입니다. “10 여호와께서 므낫세와 그의 백성에게 이르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11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의 군대 지휘관들이 와서 치게 하시매 그들이 므낫세를 사로잡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간지라 12 그가 환난을 당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 13 기도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받으시며 그의 간구를 들으시사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앉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

 

므낫세의 범죄로 유다가 멸망합니다. 그런 므낫세가 쇠사슬로 포로로 잡혀갔을 때에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앉게 하신 내용이 역대기에만 나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므낫세는 그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던 것입니다. 여호와 곧 언약의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신 줄 알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므낫세의 경험을 온 유다백성들이 다 하게 되는 것이 바벨론 포로생활입니다. 그 포로생활을 통하여 완전히 망한 줄 알았는데 그 포로에서 돌이키게 되는 것은 므낫세의 내용과 야베스의 기도를 통하여 보여줍니다. 물론 다윗의 기도와 솔로몬의 기도와 여호사밧의 기도도 나옵니다.

 

역대상 1:1~4절입니다. “1 아담, , 에노스, 2 게난, 마할랄렐, 야렛, 3 에녹, 므두셀라, 라멕, 4 노아, , 함과 야벳은 조상들이라포로에서 돌아온 후에 자기들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아담까지 소급하여 올라갑니다. 이러한 역사를 통하여 자신들의 나라가 망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끊어지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의 역사로부터 아브라함의 역사를 중요하게 언급하면서 다윗 왕조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어떤 학자는 아담으로부터 노아까지 10세대, 셈으로부터 아브라함까지 10세대, 아브라함부터 요시야까지 30세대로 구별하여 봅니다. 아브라함부터 요시야까지 총 50세대인데 아브라함이 두 번 들어가기에 49세대입니다. 그러면 희년과 연결이 되는 한 사이클로 보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족보의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루한 족보가 아니라 엄청난 하나님의 언약을 따른 섭리를 보여주는 것이 역대기입니다. 오늘은 1장에서 9장까지 몇 사건만 봅니다.

 

역대상 3:17~20절입니다. “17 사로잡혀 간 여고냐의 아들들은 그의 아들 스알디엘과 18 말기람과 브다야와 세낫살과 여가먀와 호사마와 느다뱌요 19 브다야의 아들들은 스룹바벨과 시므이요 스룹바벨의 아들은 므술람과 하나냐와 그의 매제 슬로밋과 20 또 하수바와 오헬과 베레갸와 하사댜와 유삽헤셋 다섯 사람이요사로잡혀간 여고냐가 여호야긴입니다(24:1). 바벨론 왕 앞에서 고개가 들려진 왕입니다. 이 왕이 사로잡혀갔지만 그의 후손들은 계속되는 것입니다. 이들이 다윗과 솔로몬의 후손들입니다.

 

역대상 4:9~10절입니다. “9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역대기의 족보 속에 가장 유명하게 된 구절이 이 구절일 것입니다. 윌킨슨이라는 사람이 야베스의 축복이라는 책을 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야베스가 이렇게 기도하여 응답을 받았다고 하면서 지경을 넓혀주시도록 기도하고 근심을 없게 하여 달라고 하였더니 엄청난 부를 얻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책을 많이 사본 것은 나도 그런 복을 받고 싶다는 탐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지금 역대기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나라가 망하고 돌아와서 역사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멸망을 당한 그 고통 가운데 주의 긍휼로 돌아오게 된 것을 말하기 위하여 야베스의 기도도 나오는 것입니다.

 

야베스의 족보는 유다의 족보 끝에 나옵니다. 유다의 족보는 2장에서 나옵니다. 유다의 아들 에르 곧 엘과 오난과 셀라가 나오고 베레스와 헤스론을 중심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4장의 이 족보는 유다의 아들들이기는 한데 성경의 다른 족보에는 없는 유다의 후손들로 나옵니다. 그 후손들의 족보기록 끝에 야베스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야베스도 유다의 후손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야베스가 어느 시대인지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짧은 문맥을 통하여 보면 그의 형제 중에 귀중한 자라고 합니다. 나중에 귀중한 자가 되었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이 아들이 태어날 때에 그 어머니가 수고로이 않았다고 해서 야베스라고 이름을 짓습니다. 라헬이 자기 베냐민을 낳을 때에 죽어가면서 낳습니다. 그래서 슬픔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베노니라고 이름을 짓습니다만 그의 아버지 야곱이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뜻의 베냐민으로 바꿉니다. 이처럼 야베스의 어머니가 수고롭게 낳았기에 그의 이름을 수고의 뜻인 야베스라고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여기서 수고롭게 낳았다는 단어가 하와가 아이를 낳을 때에 수고하고 낳을 것이라는 단어와 연결됩니다.

 

그러면 이 야베스의 출생도 수고롭게 되었고 삶도 수고로운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였습니다. 자신의 지역을 넓혀주시고 환난을 벗어나 근심을 없게 하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부동산 확장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땅은 사고팔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유대 사회 속에서 자신의 유업으로 받은 땅을 가난하여 경작권을 팔았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유업을 회복하여 달라는 것으로 봐야 성경의 토지법대로 기도한 것이 됩니다. 그렇지 않고 탐심으로 기도하였다면 기도 응답이 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여 환난을 벗어나고 근심이 없게 된 것은 그 유업을 돌려받음으로 먹고 살아갈 수가 있게 된 것으로 봐야 합니다. 이것을 역대기 전체에서 보면 유다가 범죄 함으로 땅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환난 중에 기도하여 약속의 땅으로 돌아온 것으로 봐야 합니다. 이렇게 성경을 성경으로 풀어내지 않으면 성경으로 자기 탐심을 위한 우상숭배를 하게 됩니다.

 

역대상 6:49~50절입니다. “49 아론과 그의 자손들은 번제단과 향단 위에 분향하며 제사를 드리며 지성소의 모든 일을 하여 하나님의 종 모세의 모든 명령대로 이스라엘을 위하여 속죄하니 50 아론의 자손들은 이러하니라 그의 아들은 엘르아살이요 그의 아들은 비느하스요 그의 아들은 아비수아요유다와 다윗의 족보 못지않게 중요하게 언급하는 족보가 레위족보입니다. 레위지파들과 제사장 계열의 족보를 기록하는 이유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성전의 재건이 중요함을 보여줍니다. 그 이유는 성전과 제사장의 기능이 죄를 속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죄가 용서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계속 봅니다.

역대상 9:1~9절입니다. “1 온 이스라엘이 그 계보대로 계수되어 그들은 이스라엘 왕조실록에 기록되니라 유다가 범죄 함으로 말미암아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더니 2 그들의 땅 안에 있는 성읍에 처음으로 거주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느디님 사람들이라 3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과 에브라임과 므낫세 자손 중에서 예루살렘에 거주한 자는 4 유다의 아들 베레스 자손 중에 우대이니 그는 암미훗의 아들이요 오므리의 손자요 이므리의 증손이요 바니의 현손이며 5 실로 사람 중에서는 맏아들 아사야와 그의 아들들이요 6 세라 자손 중에서는 여우엘과 그 형제 육백구십 명이요 7 베냐민 자손 중에서는 핫스누아의 증손 호다위아의 손자 므술람의 아들 살루요 8 여로함의 아들 이브느야와 미그리의 손자 웃시의 아들 엘라요 이브니야의 증손 르우엘의 손자 스바댜의 아들 무술람이요 9 또 그의 형제들이라 그들의 계보대로 계수하면 구백오십육 명이니 다 종족의 가문의 우두머리들이더라

 

함께 읽은 본문의 내용이 포함이 됩니다만 이어지는 유다의 족보 이후에 다시 레위지파와 제사장의 이름들이 언급이 됩니다. 그러므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것은 하나님의 심판보다 하나님의 용서가 크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중심에 성전이 자리 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대기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자신들의 모습을 돌아보니 성전의 제사를 온전하게 드리지 못한 것을 보게 됩니다. 성전 자체가 아예 우상숭배의 진원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파괴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돌아와서 성전을 제일 우선으로 재건하고 제사가 회복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모습을 학개서와 말라기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오전의 말씀도 연결이 됩니다만 십일조가 드려지지 않음으로 제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시대를 지나서 예수님 당시에는 겉으로는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고 성전제사를 드리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 성전이 도적의 소굴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그런 성전을 헐어버리시고 자신의 몸으로 세우실 성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역대기를 통하여 무엇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예루살렘 성전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로 파괴가 되고 나라도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망한 자리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셔서 성전을 재건해도 고쳐지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전이 되시는 길 외에는 달리 길이 없습니다. 역대기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왜 성전이 되셔야하시는지 분명히 보이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2:13~22절입니다. “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1)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