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27:26~34 이미 드려진 것 2019. 12. 29

 

26 오직 가축 중의 처음 난 것은 여호와께 드릴 첫 것이라 소나 양은 여호와의 것이니 누구든지 그것으로는 성별하여 드리지 못할 것이며 27 만일 부정한 짐승이면 네가 정한 값에 그 오분의 일을 더하여 무를 것이요 만일 무르지 아니하려면 네가 정한 값대로 팔지니라

 

지난주는 율법의 규례로 정하여 놓은 예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여 자원함으로 예물을 드리는 규례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그렇게 자원하여 감사함으로 예물을 드리지 못하는 항목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것은 처음부터 여호와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려진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따로 감사의 서원예물로 드리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씀 같은데 왜 이런 말씀까지 성경에 있는 것일까요? 지난주에 말씀드린 대로 인간은 밑돌 빼어 위엣 돌 고이는 일을 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이미 성별하게 드려진 것을 사람이 손대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처음 것, 바쳐진 것, 십분의 일입니다.

 

본문 26~27절의 처음 것에 대하여서는 자주 말씀을 드렸습니다. 맥추절이 초실절입니다(34:22). 처음 익은 열매를 여호와께 드리게 한 것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장자 만드시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출애굽기 4:22절입니다.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그런데 바로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음으로 열 가지 재앙이 쏟아지는데 마지막 재앙이 장자와 짐승의 처음 태어난 수컷이 죽임을 당합니다. 그러나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집은 죽지 않습니다. 어린 양의 피로 만들어진 나라가 이스라엘의 정체성입니다.

 

이 정체성을 위하여 장자만이 아니라 짐승이나 곡식의 처음 익은 모든 것을 여호와께 드려야 합니다. 그것은 처음 것의 희생으로 나머지가 거룩해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혈통 상 장자가 아니라 누가 희생하여 다른 사람을 살려내는가에 따라 장자가 됩니다. 그래서 야곱의 장자 르우벤이 아니라 요셉이 장자의 몫을 차지하여 두 지파를 이루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장자를 대신하여 레위지파를 선택하심으로 레위지파는 열두지파에서 빠지게 됩니다. 땅이 없는 레위지파는 여호와의 성전의 일을 함으로 백성들의 십분의 일을 받아서 그 중의 십분의 일은 다시 여호와께 제물을 드립니다. 이런 내용들은 처음 것의 희생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내용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맏아들(8:29.1:6)됨과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8:23)를 보여주는 역할입니다.

 

본문 28~29절입니다. “28 어떤 사람이 자기 소유 중에서 오직 여호와께 온전히 바친 모든 것은 사람이든지 가축이든지 기업의 밭이든지 팔지도 못하고 무르지도 못하나니 바친 것은 다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함이며 29 온전히 바쳐진 그 사람은 다시 무르지 못하나니 반드시 죽일지니라

 

26~27절의 처음 것은 당연히 주님께 드려진 것이기에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자기 소유 중에 여호와께 온전히 바친 모든 것은 사람이든지 가축이든지 밭이든지 무르지도 팔지도 못하는 것으로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한 것이라고 합니다. 온전히 바쳐진 그 사람은 다시 무르지 못하나니 반드시 죽이라고 합니다. 처음 것은 무르려면 무를 수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처음 태어난 짐승의 처음 것을 무르려면 값을 오분의 일을 더하면 됩니다. 그런데 온전히 바쳐진 것은 결코 무를 수가 없다고 합니다. 이 바쳐진 것이 무엇인지 성경에서 봅니다.

 

여호수아 6:16~18절입니다. “16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17 이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되 기생 라합과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모두 살려 주라 이는 우리가 보낸 사자들을 그가 숨겨 주었음이니라 18 너희는 온전히 바치고 그 바친 것 중에서 어떤 것이든지 취하여 너희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바치는 것이 되게 하여 고통을 당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오직 너희는 그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

 

오늘 본문의 바쳐진 것이라는 뜻과 같은 단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첫 성 여리고를 진멸하라고 합니다. 여리고 성 전체가 온전히 바쳐진 것입니다. 그런데 기생 라합과 그 집에 동거하는 모든 자는 살려줍니다. 라합이 정탐꾼을 숨겨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진멸되는 것은 죄악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15:16). 이제 때가 되어 진멸하는 중입니다. 그런데 그 바쳐진 것에 손을 댄 자가 있었습니다. 그 결과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하고 36명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제비뽑아보니 아간이 걸렸고 아간의 가족이 진멸당한 곳이 아골 골짜기입니다.

 

사무엘상 15:3절과 9절을 보면 사무엘이 사울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좋은 것은 남겨왔습니다. 아말렉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는 건넌 후에 제일 먼저 공격한 민족입니다. 그래서 이 민족을 진멸하라고 하였지만 사울이 아각 왕과 그 성의 좋은 것들을 남겨왔기에 오히려 사울 왕이 버림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진멸하라는 것은 온전히 바쳐진 것이라는 뜻과 같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전쟁이 이 진멸전쟁입니다. 그렇다면 진멸을 받아 마땅한 자들이 누구입니까?

 

우리는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다 나오는 악한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잘 압니다. 품꾼이란 소작할 수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인데 세도 내지 않고 세를 받으려고 온 종들을 때리고 죽이고 마지막에서는 아들마저 죽여 버렸습니다. 이때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고 예수님께서 물으십니다. 그러자 진멸당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다고 하자 예수님은 건축자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다고 하신 말씀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손에 의하여 죽임 당한 그 예수님을 자신이 살해한 자로 인정하는 사람은 자신이 진멸의 대상임을 압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저주를 대신 받으신 것이 십자가임을 믿는 것은 사람에게서 나올 수가 없기에 오직 은혜로만 되기에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본문 30~34절입니다. “30 그리고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 31 또 만일 어떤 사람이 그의 십일조를 무르려면 그것에 오분의 일을 더할 것이요 32 모든 소나 양의 십일조는 목자의 지팡이 아래로 통과하는 것의 열 번째의 것마다 여호와의 성물이 되리라 33 그 우열을 가리거나 바꾸거나 하지 말라 바꾸면 둘 다 거룩하리니 무르지 못하리라 34 이것은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이니라

 

여호와께 자원하여 예물로 드리기로 원하는 자들이 여러 가지로 드릴 수 있지만 그 자원하여 드리고자 하는 목록 속에 포함할 수 없는 것이 처음 것과 온전히 바쳐진 것과 십분의 일입니다. 이런 것들은 이미 여호와께 온전히 드려진 것이어야 하기에 자기 마음대로 처분을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앞에서 본 대로 처음 것과 바쳐진 것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보았듯이 십분의 일이라는 것도 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입니다. 곡물의 십분의 일도 처음 것을 드리는 것이며 짐승의 초 태생도 당연히 드리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가축 중에 목자의 지팡이 아래로 통과하게 하여 열 번째 것을 여호와께 드리게 합니다. 그래서 우열을 바꾸지 말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시는 가장 중요한 뜻은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우리가 택함을 입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은 가장 먼저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의 축복을 받고 드렸습니다. 이것은 율법이 있기도 전에 행한 일입니다. 출애굽 이후에 장자 대신에 레위지파가 여호와께 드려져서 성전의 일을 돌보게 됩니다. 레위지파가 나머지 지파들의 십분의 일을 받아서 성막의 일을 하게 됩니다. 땅이 없이 살아가는 레위지파에게 십일조를 드림으로 레위지파가 먹고 살뿐 아니라 그들이 받은 것의 십분의 일을 여호와께 드림으로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으로 살아감을 보인 것입니다.

 

창세기 14:18, 20절입니다.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아브람이 조카 롯을 구하여 오면서 4개국 연합군을 이기고 돌아오는 중에 멜기세덱의 축복을 받습니다. 자기의 승리가 자신의 능력이 아님을 실감하는 중에 멜기세덱의 축복을 받고서 그에게 십일조를 바칩니다. 이것은 자신의 승리가 누구에게로부터 온 것임을 알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 멜기세덱이 누구입니까?

 

시편 110:1~4절입니다. “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2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1)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 3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시편 110:1절과 4절의 말씀을 신약이 많이 인용합니다. 1절은 예수님께서 친히 인용하시고 4절은 히브리서에서 많이 인용합니다. 그 내용들은 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내용입니다.

 

히브리서 5:6절입니다.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5:10~11절입니다. “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11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멜기세덱으로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6:20절입니다.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멜기세덱을 예수님의 영원한 제사장직으로 설명합니다.

 

히브리서 7:1,6,10,11,15,17절입니다.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약속을 받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라”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십일조를 통하여 무엇을 증거하고 있습니까? 십일조 하여 복을 받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전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고 하신 이후로 성경에 십일조를 하라는 말씀이 한 말씀도 없습니다. 십일조나 모든 구약의 율법과 규례들은 예수님은 십자가로 다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신약의 성도들은 우리의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며 주님의 모든 것이 우리의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16~23절입니다. “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2)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18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19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바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20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21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2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23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만물이 다 너희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만물의 주인이기에 우리가 주님의 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가지고 세상의 모든 힘과 권세를 가지려고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모습이 세상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우리가 성령이 임한 성전이라면 우리가 먹고 입고 살아가는 모든 것도 연보이며 이웃과 나누며 살아가는 모든 것도 연보가 됩니다. 내 것이 없는 주님의 것으로 살아가는 자가 처음 것과 바쳐진 것과 십일조로 드려진 예수님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이미 드려진 이것에 손대지 말라는 말씀을 신약에서 어떻게 증거하고 있습니까?

 

히브리서 10:28~29절입니다.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처음 것과 바쳐진 것과 십일조와 구약의 모든 율법과 규례와 날과 달과 절기와 안식일을 완성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 언약의 피,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지 않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날마다 송구영신(送舊迎新)을 하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