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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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우목사
2013.08.05 16:00

십일조를 온전하게 드려서 복을 받는다는 말은 오히려 저주를 받게 합니다.

십일조는 구약의 율법입니다.

만약 율법으로 구원을 받거나 복을 받으려고 한다면 모든 율법을 항상 지켜 행하여야 합니다.

만약 모든 율법(하라 하지 말라는 법이 613가지)중 하나라도 항상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받게 됩니다.

아래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

그리고 그 밑의 글들은 십일조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오래 전에 답한 내용입니다.

 

갈라디아서 3:10~14절입니다.

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ㄷ)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신 27:26
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ㄹ)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합 2:4
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ㅁ)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레 18:5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ㅂ)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옛날 신앙상담란의 글을 옮깁니다. 그리고 밑에는 말라기 설교 첨부합니다.

>> 항상맑음 님이 쓰신 내용 <<
:
: 목사님 십일조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 십일조 내야만 복 받는건가요?
: 내지 아니하면 도둑 맞는건가요?
: 성경에서 십일조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 하시는지
: 궁금합니다..저에겐 정말 심각합니다.


종종 질문하시는 내용인데
귀하께서 십일조 내는 것이 돈의 문제인지 진리의 문제인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권하면서 성경의 십일조에 대하여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요5:39).
그러므로 십일조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물론 십일조만이 아니라 성전, 희생제사, 출애굽, 유월절 어린 양, 모든 절기, 구약 전체가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습니다. 신약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골로새서 2:16-17절을 보시면 먹고 마시는 것이나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합니다. 즉 구약이 그림자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그림자라는 것입니다.



전에 답변한 내용을 옮겨놓습니다. 다른 질문이 있으면 다시 해 주시기 바랍니다.

십일조는 맏물로 드려집니다. 맏물이 드려짐으로 나머지도 거룩하게 됩니다.
이런 십일조가 곡물이나 가축만이 아니라 사람에게도 적용이 됩니다. 유월절날 장자의 죽음에서 어린 양의 피로 살아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장자를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장자를 대신한 지파가 레위지파입니다. 레위지파가 십일조를 받아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으로 이스라엘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 복이란 제물의 대신 희생으로 용서를 받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레위지파가 대신 희생의 제사를 제대로 드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미 야곱이 예언한 대로 유다지파에서 한 분이 나오게 됩니다. 그분이 대신 희생하심으로 자기 백성들이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란 구약에서 복이 누구에게서 오는 것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침으로 자기의 능력으로 전쟁에서 이긴 것이 아니라 높으신 분의 축복임을 증거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허리에 속하였던 이스라엘이 이미 십일조를 통하여 높으신 분으로 복을 받아 사는 것임을 보여 준 것입니다(창세기 14장과 히브리서 7장을 참고).

그러므로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오셨습니다. 즉 십일조를 받는 예수님이 십일조가 되셔서 맏물의 희생으로 나머지가 거룩해지고 맏 아들의 희생으로 나머지 아들이 거룩해 지는 방식으로 자신을 맏물의 희생, 십일조의 희생으로 언약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도가 주님의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모든 혜택이 우리가 드리는 십일조가 아니라 십일조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공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십일조 입니다.


그러면 신약시대에 헌금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고린도후서 8장과 9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는 십일조가 아니라 우리의 전부가 다 주님의 것입니다.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개역한글판 고전 6장)

 

말라기 3:7-12 내개로 돌아오라 2007. 12. 5.

 

 

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9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12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7절에서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전체의 상태가 어떤지를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조상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하여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전체를 보아도 언제 제대로 하나님의 규례를 지켜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잠시잠깐 회개하고 돌이키고 하지만 그런 것은 언제나 잠깐이고 곧 거역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는 것입니까? 라고 질문합니다. 이 답변은 정말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돌아가기를 원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대답해온 것처럼 너희가 나를 멸시하였다고 하면, 우리가 언제 멸시하였습니까? 하는 식의 대답입니다. 이런 답변이 나오는 것은 자기들은 돌아와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고 나서 선지자들의 약속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사도 드리고 절기도 지키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영광은 나타나지 아니하고 계속하여 어려움만 가중되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는 형식화 되어버렸고 심지어 병든 것, 저는 것, 흠 있는 것들을 드리면서도 그들은 여호와를 멸시하는 것이 아니라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이런 자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돌아오라고 하시니 어떻게 하면 돌아가는 것이냐고 묻습니다.

 

8절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고 있으면서도 우리가 어떻게 도적질하였나이까? 라고 묻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지 않는 것이 곧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인데 온 나라가 다 이렇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은 십일조와 헌물을 온전하게 드림으로 하나님의 집의 창고를 채우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을 통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황충을 막아주시고 과일들이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고 그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열방이 복되다고 한답니다.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이 그런 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왜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이 드려져야 하는지, 십일조가 무엇인지 그 근원부터 찾아보아야 합니다.

 

창세기 14:17-20절입니다. “봉독” 소돔과 고모라 성의 왕이 그돌라오멜을 반역하였다가 그돌라오멜의 연합군이 쳐들어 와서 조카 롯까지 사로잡아 가게된 것을 아브람이 318명의 군사를 데리고 가서 대승을 거두고 사람과 재산을 다 되찾아오는 때에 멜기세덱의 축복을 받습니다.

 

멜기세덱이 아브람을 축복한 내용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대적을 아브람의 손에 붙여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합니다. 이때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드립니다. 아브람의 승리는 아브람의 실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붙여주심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통하여 무엇을 보여주는 것입니까? 자신의 승리가 하나님의 복을 받아서 일어난 것임을 고백하는 것이 십일조가 된 것입니다. 복을 받기 위한 십일조가 아니라 복을 받았기에 그 복의 통로가 하나님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십일조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나타나는 십일조는 야곱이 형을 피하여 도망가다가 들판에서 잠을 자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야곱에서 나타나셔서 언약을 주십니다. 야곱은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서 도망가는 신세인데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약속을 주십니다.

 

창세기 28:10-22절입니다. “봉독” 하늘과 땅이 연결된 사닥다리가 보이고 그 사이로 천사가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하신 내용을 주시면서 야곱을 보호하여 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 약속을 받고 나서 야곱이 서원하면서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합니다. 역시 복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응답인 것입니다.

 

이러한 십일조가 모세를 통한 율법에서 어떻게 드러나는가 하면 출애굽 할 때에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을 기념하는 장치로서 십일조가 제정이 됩니다. 출애굽 한 이후 모든 짐승이나 사람이나 처음 난 것의 수컷을 거룩히 구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바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각 지파의 맏이를 대신하여 레위지파를 맏이로 대신하게 하십니다. 이때부터 각 지파는 모든 소산물의 십분의 일을 레위지파를 위하여 드리게 합니다.

 

레위지파의 특징은 그들의 땅이 없습니다. 그래서 십일조를 받아서 살지만 땅 없는 레위지파가 땅이 있는 다른 지파를 축복하는 장치가 된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 땅이 없는 고아 과부 나그네도 십일조의 혜택을 받게 합니다. 그리고 매 3년마다 십일조를 더 하여 이들을 위하여 사용하게 합니다.

 

그러면 레위지파는 십일조를 받아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고 또 그들이 생활합니다. 이들의 기능이란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화목을 이루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가 드려짐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신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을 믿고 살도록 하시는 장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레위지파가 제대로 된 제사를 드림을 통하여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언약을 말라기 2:5절에서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고 합니다. 생명과 평강이 레위와 세운 언약을 통하여 주어지는데 이 레위언약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파기한 것입니다.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지 않음으로 인하여 생명과 평강을 누릴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느헤미야서에도 나타납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 나서 레위지파를 제대로 정비하여 세우고 십일조를 드리게 하고서는 바벨론에 다녀오는 사이에 다시 십일조가 드려지지 않았기에 레위 사람들이 그 직무를 행하지 않고 각각 그 전리로 도망가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불러와서 정비하고서는 레위언약을 새롭게 하였으니 복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시간적인 순서로는 말라기보다 느헤미야가 먼저입니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하고 레위지파를 정비하고 십일조를 제대로 드리게 하였지만 다시 제대로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이 복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기에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하나님께 드려야 복을 받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일조를 온전하게 드림으로 복을 받았습니까? 아니면 온전하게 드리지 못하였기에 복을 받지 못하였습니까? 이 문제는 신약까지 가 보아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일조에 대하여 말씀하신 내용이 마태복음 23:23절입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유대인들이 말라기 선지자 이후로도 고생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런 고생을 하면서 왜 우리가 복을 받지 못할까를 연구한 것입니다. 구약 성경을 통하여 보니 십일조를 제대로 하지 못하여 복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철저하게 십일조를 하자는 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물론 십일조만이 아니라 모든 율법을 철저하게 지켜서 하나님을 복을 받자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로 철저하게 십일조를 하는 것입니까? 텃밭에 가꾸는 향신료조차 십일조를 계산하여 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을 빼 먹은 것입니까? 의와 인과 신은 버린 것입니다. 사실 이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십일조를 철저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의로움과 인자와 믿음을 버려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자가 없다는 결론이 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림으로 복을 받으려고 하는 자는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사람이 노력하여도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3:10절 말씀을 보시면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율법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데 한 가지 십일조 잘한다고 복을 받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더더구나 온전한 십일조란 더 중요한 의와 인과 신까지 갖추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는 저주를 예수님 자신이 온전한 십일조가 되셔서 대신 드리는 것입니다.

 

레위지파가 모든 이스라엘 지파의 맏아들의 희생을 대신하였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것이 레위와 맺은 언약입니다. 제사를 통하여 생명과 평강을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제사로는 온전한 생명과 평강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따른 레위지파와 다른 별다른 한 제사장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히브리서 7장에서 잘 증거하고 있습니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레위지파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레위지파가 태어나기도 전에, 즉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을 때에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친 것입니다. 폐일언하고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십일조란 십일조를 바침으로 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이미 복을 받았기에 십일조를 통하여 복을 주시는 분이 누구신지를 증거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 복을 주시는 분이 누구시라는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해서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십일조를 온전하게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복을 받고 사는 것입니다. 이 복이란 예수 그리스도 인한 영원한 생명과 평강을 복을 받는 것입니다. 레위와 세우신 언약의 내용이 생명과 평강의 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7:22-25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22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23 저희 제사장 된 자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을 인하여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24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는 이런 말씀을 들으면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그렇구나! 이제는 십일조를 안 해도 되겠구나! 그렇습니다. 이제는 십일조를 율법을 따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다 왕 같은 제사장이기에 레위지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율법을 따라 십일조를 드리는 자들이 아니라 아예 성도 자신이 거룩한 제물이 되는 삶인 것입니다(롬12:1).

 

그러므로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도 당연하고, 극심한 어려움가운데서도 형제를 위하여 힘에 지나치도록 헌금하는 일도 가능하고, 자원함과 감사함으로 주를 섬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헌금한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향기와 제물이 됩니다(빌4:18). 그러므로 무슨 말을 하거나 무슨 봉사를 하거나 간에 모든 것이 다 온전한 십일조가 되시는 예수님의 공로로 주어지는 것을 믿는 사람들은 주께로 돌아온 자들입니다.

 

이 은혜를 우리에게도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간 자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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