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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우목사
2011.01.05 22:57

이런 질문은 교회 다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민하는 내용일 것입니다.

저도 이런 고민을 많이 하였고 지금도 늘 나오고 있습니다.

말씀을 기준으로 답변을 해 달라고 하시는데 성경을 인용하면서 답변을 하려면 책 한권의 분량이 될 것입니다.

전체적인 답변만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녁 동영상 설교를 참고바랍니다.

귀하의 질문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있습니다.

 

이런 질문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겠습니까?

나를 위한 질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고민하는 내용들,

죄가 되느냐 안 되느냐는 질문과 그 기준에 대한 답을 원하는 것이 다 죄입니다.

관심이 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어느 인간이 이런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구원이란 인간이 이런 판단이나 믿는다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사이의 언약에 따른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언약을 이루신 내용을 성령을 통하여 선물로 받게 되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망을 받게 됩니다.

요한복음 16: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이 말씀의 해석을 십자가 마을의 박윤진씨 글로 대신합니다.

요한복음 16장은 예수님께서 친히 성령의 역할에 대해서 설명하고 계신 내용입니다. 과연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하고 계실까요?

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위 본문에서 두 가지 의문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의 "오심"을 자신의 "떠남"과 연결하고 계신다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 떠나가지 아니하시면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지 않습니다. 마치 널뛰기를 하는 것처럼 예수님의 떠남과 성령의 오심은 상호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은 예수님의 떠남과 분명히 관련된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는 그 예수님의 떠남으로 인하여 성령님께서 오시는 것이 제자들에게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본인은 떠나시면서 보내시겠다고 한, 대타(代打)로 오실 분이 제자들에게 더 쓸모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은 대체 어떤 일을 하시길래, 예수님은 반드시 떠나셔야 하며, 제자들에게는 왜 그것이 더 유익할까요?

성령은 예수님의 떠나심과 유익함을 어떻게 연결 하실까요? 예수님의 설명은 아래와 같습니다.

8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의에 대하여,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예수님의 떠남과 유익함을 연결하는 성령의 역할은 "보충"이 아니라 오히려 "책망"입니다. 성령에 관한 가장 오래되고 단단한 오해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즉, 성령님을 예수님께서 마저 다 하시지 못한 부족분을 보충하시는 분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담임교사가 아파서 학교를 떠났는데 그 후임으로 오신 선생님이 강의를 잘 해서 학생들을 훌륭하게 만든다는 이야기쯤으로 성령을 이해합니다. 그래서 성령을 통해 능력받으면 못할 일이 없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판을 깔아 놓으셨고 그 위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성령이 오시는 것이 유익하다고 하셨다고 짜맞춥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성령의 하실 일은 보충이 아니라 "책망"입니다. 다짜고짜 혼내는 것입니다. 안그래도 그동안 눈에 보이고 부르면 대답하셨던 예수님이 떠나셔서 근심이 가득한데, 그 분이 우리의 유익을 위해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신 그래서 그 이름도 보혜사이신 성령이 하시는 일이 위로하시고 능력주시는 것이 아니라 혼내는 것입니다.

왜 입니까? 성령은 왜 책망하셔만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성령의 책망을 왜 유익하다고 하셨을까요?

예수님의 떠남은 그냥 여행가시는 것이 아닙니다. 원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지심으로 세상으로부터, 제자들로부터, 인간으로부터 떠밀려 죽기로 작정하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본래 떠남을 내장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자기 백성으로부터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방법으로 말입니다. 십자가로 떠남으로 말미암아 비로서 죄가 세상에 그 정체를 드러내고 의가 무엇인지 분명해지면서 심판이 세상에 도래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부분,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성령께서 책망하시는 이유는 이제 예수님의 떠남으로 인하여, 십자가 사건으로 말미암아, 죄와 의와 심판이 확정되었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면, 십자가 사건으로 말미암아 인간들이 그동안 추구해왔던 죄와 의와 심판의 개념이 모두 거짓이었음이 들통나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서 그동안 우리가 진짜라고 우겨왔던 그 의와 죄와 심판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원흉이었음이 드디어 탄로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은 책망을 하십니다. 바로 너희가 고집했던 그 죄와 의와 심판이 진짜 죄와 의와 심판을 몰고오신 그 예수님의 떠남을 조장했다고 말입니다.

성령은 그 진짜 죄와 가짜 죄, 진짜 의와 가짜 의, 진짜 심판과 가짜 심판 사이에서 예수님의 떠남을 앞장세워서 인간을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죄와 의와 심판이 인간들이 조작해온 죄와 의와 심판과 얼마나 다른지를 십자가를 통해서 혼쭐내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셨다는, 바로 진짜 죄와 의와 심판을 알아서 외우고 생활에 적용시키고 계속 노력하기만 하면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니까, 잘못된 우리의 죄와 의와 심판 개념을 십자가 앞에서 수정하고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쪽으로 성령의 책망내용을 정답삼아 이동하면 됩니다. 성령께서 책망하시는 내용을 살펴보는 것이 과연 그러한 이동을 도움이 될지 한번 보겠습니다.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위 구절들은 왜 인간이 성경을 해석할 수 없는가를 여지없이 보여줍니다. 아무리 읽고 또 읽어도 9절부터 11절까지 나온 성령의 책망내용은 그동안 우리가 알아왔던 죄와 의와 심판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오히려 위 구절들이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는 "야 오지말란 말이야. 애들을 가라!"입니다. 관계자외 출입금지라는 말을 길게 써 놓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책망을 통해서 죄와 의와 심판이라는 용어들을 인간들이 결코 소유할 수 없음을 통보하십니다. 즉, 인간들에게는 죄도 의도 심판도 알 길이 전혀 없음을 말씀하십니다. 죄와 의와 심판을 알고 계신 유일하신 분이 바로 "예수"라는 사실과 함께 그 예수가 지금 "없음"을 확인하시면서, 그 없음을 유발한 인간의 현주소를 못박는 것입니다. 죄와 의와 심판을 독점하고 계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은 그 분의 없음을 통해서만 확실히 드러나기 때문이지요.

핵심은 예수님의 십자가 지심을 제외한 채 죄와 의와 심판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죄와 의와 심판을 말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신데 지금 그 분이 지금 왜 없는가?라는 것입니다. 그 분이 왜 죽으셨는가? 그 분이 왜 떠나셨는가?를 지금 계속 발길질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입니다.

죄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이 떠나시는 것보다 도마가 했던 것처럼 창자국 못자국에 손을 넣을 수 있도록 함께 계시는 것이 믿는다는 것에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훌쩍 떠나갑니다. 왜요? 그 떠나감을 일으킨 장본인인 인간을 죄인으로 확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믿는다고 착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부재(否在)를 배경으로 깔아야 인간이 여전히 죄와 의와 심판을 조작하고 있다는 것이 공개됩니다. 죄와 의와 심판을 독점하고 계신 분을 알아볼 수 도 없고 오히려 그런 예수님을 죽여버릴 수 밖에 없는 악마의 자식임을 확인시키기 때문입니다.

"성령님, 죄가 무엇입니까?"

"너는 죄를 알 수 없다!"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면 가능합니다!"

"그래? 죄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다."

"아 이제 알았다. 저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할렐루야!"

"거짓말, 그 예수님을 네가 죽였잖아! 그래서 그 분이 떠나셨잖아! 그것 책망할려고 나를 보내셨다"

 

"성령님, 의가 무엇입니까?"

"너는 죄를 알 수 없다!"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면 가능합니다!"

"예수님만 의를 독점하고 계시지!"

"아, 그래요. 그럼 그 분은 지금 어디 계시지요?"

"그 예수님을 네가 죽였잖아! 지금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셨지. 너희가 다시는 의를 보지 못한다. 그것 책망할려고 나를 보내셨다"

 

"성령님, 심판이 무엇입니까?"

"세상 임금이 이미 심판받았다!"

"언제요?"

"네가 예수님을 죽일 때! 그 심판이 이미 확정되었음을 알려줄려고 나를 보내셨다"

성령은 이 세상에 죄와 의와 심판을 몰고오신 예수님을 증거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성령은 그 예수님이 지금 없다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떠남이 왜 발생했는지를 분명함으로써 인간이 죄와 의와 심판에 접근할 수 없고 오히려 그것을 나름 소유하고픈 본성때문에 예수님을 죽였다는 것이 우리가 지금 성령으로부터 책망받고 있는 이유입니다.

이 지점, 죄인의 자리가 우리에게 가장 유익합니다. 십자가 아래에서 성령으로부터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서 책망받으면서 예수님의 피,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를 온 몸으로 고백하는 그 자리가 인간에게 가장 유익한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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