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을 아끼라 (5:15-21)

(5:15-21)15.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사실 오늘 설교 제목의 부제는 구원 후에 이거든요오늘 말씀은 구원 받은 우리가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입니다.여러분! 구원은 이미 완료 되었다 하잖아요, 그렇다면 앞으로 내 행위에 대한 보상이나 상급도 없을 것이고 열심히 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게 되는데요. 여기서부터 자칫 성도는 허무주의 그리고 자유방임주의에 빠지게 되어 있는 겁니다.그런데 오늘 '에베소서,는 우리 구원 받은 성도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그 지향성을 말씀해 주고 있는 중요한 바울 서신인 거죠.에베소서 1장은 하나님이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 즉 교회를 예정 하셨다고 했어요.왜죠, 그 은혜를 찬송케 하시려고 우리 언약 안에 있는 백성들을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속량 하시고 그분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는 거 아닙니까? 이는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기 위해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여러분! 이 얼마나 더 감사하고 영광스러운 일입니까?그런데 갑자기 4장에서 그런 자들이 총명이 어두워지고 마음이 굳어지고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한다고 하십니다.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다 말씀하시면서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여러분 우리는 이미 성도가 되었고 새 사람을 입었으며 그리스도와 함께 천국에 앉아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앉히시니"라는 단어는과거시제 입니다. 지금 묵시 안에서 믿는 자들은 하늘에서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보좌에 앉아 있다는 거잖아요.그런데 또 다시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즉 성도가 구원 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를 말씀하고 있는 의미심장한 대목인데요.그러면서 5장 후반부에 뜬금없이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거룩함을 입고 새사람이 되라는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열쇠(key)가 되는 단어인데요.오늘 '세월을 아끼라, 는 말씀이 의미하고 있는 내용 속에서 우리 자신을 점검하고 은혜를 회복하는 귀한 시간 되었으면 합니다.누가복음 15장에 탕자의 비유로 잘 알려진 두 아들의 이야기가가 나옵니다. 그는 세상 욕망에 굴복당해 자기에게 올 분깃(유산)을 미리 챙겨 먼 나라에 가서 다 탕진하고 결국 돼지 쥐엄 열매로 연명하는 신세가 되어서야 내가 하늘과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나이다라며 회개하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는 탕자의 귀향이 감동적으로 그려지고 있죠.

그러나 문제는 집안에 눌러 앉아 있었던 첫째 맏아들이었습니다. 동생이 재산을 다 허랑방탕하게 탕진하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노합니다.

노하여 이르기를 나는 여러해 아버지를 섬겼고 명을 어긴 사실이 없는 데 그런 나에겐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데 아버지 살림을 창기와 함께 탕진해 버린 이아들을 위해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아버지의 맘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첫째입니다.

지금 큰 아들 여전히 보상심리에 사로잡힌 율법적인 열심을 내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내가 한 일에 대한 보상이 아닌데 말입니다.

여러분 재물과 시간을 허비 했지만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아버지 품으로 돌아온 자와 모든 재물과 시간을 그리고 섬김과 순종마저도 자기 옳음을 증명하는데 쓴 장남 중 누가 더 시간을 허비한 자이며 세월을 아낀 자입니까?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오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오늘 에베소서의 모든 권면의 말씀이 바로 성도는 현재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은혜로 구원 받은 성도의 새생활 즉,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는 것인데요.여러분 성도는 구원 후 어떻게 살아야 마땅한 삶입니까?오늘 에베소서는 이 부분을 다루고 있는 귀한 말씀입니다.(구원 이후...)어떻게 살 것인가? 이것이 제대로 정립이 안 되면 우리의 신앙은 계속 혼돈에 빠지게 되어 있거든요. 우리의 최대의 관심사는 과연 구원 받은 이후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합당한 삶인지에 대한 관심이 아주 많습니다.왜냐하면 성도는 어떻게 구원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는 이미 해결되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성경에도 구원 후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여러분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 무슨 노력을 할 필요가 있습니까? 아무 것도 없잖아요,열심히 구원을 받아 보겠다고 힘쓰고 애쓴다면 그거야 말로 헛된 노력이 되겠죠, 그건 이미 성도에게 해결된 문제이니까요?그러나 이것이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우리가 구원을 거저 선물로 얻은 반면 그만큼 우리에겐 구원 후에 삶이 매우 낯설다는 것인데요, 왜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거든요, 이런 이유 때문에 저도 처음 구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수년 동안 구원론에 심취하여 씨름한 적이 있었습니다,그런데 어느 날 너무 허무 하게도,구원은 선물이래요. 거저 받은 거래요. 여러분 이 때의 심정이 어떠했겠어요.열심히 일해서 하루 일당 10만원을 받기 위하여 아침 6시부터 저녁 5시까지 땀 흘려 일 헀는데, 450분에 들어와 10분일한 사람에게도 10만원을 주는 것을 본 그 사람의 심정은 어땠겠습니까? 아마도 그 기분 같았을 겁니다. 아니 일 안한 자도 다 오라고 해서 거저 10만원을 준다면 아마 열심히 일한 사람은 고마워하는 것이 아니라 일한 것이 억울할 수 있겠죠,그런데 내가 어느 날 갑자기 구원을 선물로 받은 자로 성도가 돼 있는 거예요.

이것이 처음엔 기뻐야 되는데 찜찜한 건 왜죠? 내가 할 일이 없어 졌잖아요.난 아무 것도 안 했는데 이미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있데요.내가 죽을 죄인이란 생각도 못 했는데 그 죄가 다 사해졌데요.

여러분 이거 이해가 되시나요.. 기가 막힐 노릇이죠.(세상 논리 셈법하고는 안 맞아요)그런데 아무것도 안하고 받은 사람은 별 감흥도 없는 겁니다. 그러나 그 구원을 얻어 보려고 목숨 걸고 싸워 온 사람이 있다면 어떻겠어요?, 한편으로는 기쁘고 감사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허망하기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걸 무조건적인 선택이라 부르고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라고 하잖아요.여기에 우리가 기여할 여지가 털끝만큼도 없는 겁니다.그러니깐 무슨 이야기 입니까내가 구원을 위해 무얼 할 수 있나요?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 일도 하기 전에 홀로 구원을 베푸셨어요, 여기엔 다 이유가 있겠죠,

무튼 우리의 노력과 힘을 전혀 보태지 않고 구원을 이루신 겁니다. 넌 이미 구원 받았다. 그걸 믿어야 한다는 것인데요. 그러니깐 성도는 구원 받은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네가, 구원 받기 위해 힘쓰고 애쓴 것은 다 무의미 하다는 거에요.~그런데 여기서부터 성도의 딜렘마(Dilemma)가 시작되는 것입니다.여러분 요즘 말로 '이거 감당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감당이 안 되는 겁니다.그러면 당연히 초반에 나오게 되는 반응이 난 이 은혜를 어떻게 갚지 인데요,,,그러나 우리가 은혜를 깊이 알아 가면서 이 생각이 바뀌게 되어 있거든요, 아마 바뀌지 않게 되면 지금도 나의 행위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그 은혜를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잖아요, 그렇게 되면 구원은 선물이 아니라 내가 노력한 댓가 즉 삯이 되는 겁니다.여러분 우리는 구원을 내가 비용을 지불하고 사면 안 되는 이유가 뭐죠?

(감사가 안 나옵니다)거저 구원 받았지만 우리에게 성숙이 필요한 이유왜 우리에게 구원을 선물로 주셨다고요, 갚을 길 없는 은혜를 받고 평생 감사하며 살라고 주신 거잖아요. 이건 인간이 갚을 수가 없는 거구나??그래서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감사 밖에는 없는 거로구나...감히 갚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내가 교만이었네,,,,이렇게 깨달아 가는 것이 성숙해 지는 거에요. 그리스도인에게 이런 성숙도 필요 없다는 겁니까?(에베소서 413.14)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여기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었다 했죠. 그런데 무슨 믿음에 성장이 있고, 아는데 자라가는 것이 필요합니까?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네 맞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출처와 본질은 다르지 않습니다, 그 근원은 하나에요.그래서 김 집사, 이 집사, 박 장로 믿음이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 맞아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심으로 은혜로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은 다 같은 하나의 믿음 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그런데 각 사람의 그 믿음의 강도는 같지 않습니다. 다릅니다. 하나님 사랑의 넓이도 다르고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깊이도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이는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누리게 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성경에서도 많이 받은 사람에겐 많이 달라고 할 거란 이야기가 있죠.(에베소서 47)에 우리 각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는데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라고 되어 있고요.(에베소서 416)에는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아 서로 연결되어 역사하는데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무슨 말씀이죠? 하나님의 역사도 사람의 믿음의 분량대로 역사 하는 것입니다.마치 성도를 기계로 찍어내 듯 천편일률적인 사람들로 만드는 것이 교회가 아닙니다.

(이단 교회일수록 이런 모습이 보이거든요)교회는 거룩한 무질서란 말이 있죠. 무질서한 것 같지만 거기엔 거룩이 있고 다양성이 있고 조화가 있는 겁니다. 이것이 교회의 모습이거든요.~여러분은 이런 질문을 가끔 하시죠?왜 내가 이미 구원 받았고 천국 가는 것이 확실한데 무얼 더해야 하는 거지.  성숙이 필요하고 왜 장성해야 되는 거야, 아무 것도 안 해도 구원에 아무 지장 없는 거잖아,

하나님이 견인하시어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고 했잖아 하면서 말입니다.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믿음은 하나 맞아요, 그러나 사람마다 느끼는 믿음의 강도가 다르고 ,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깊이가 다르고 그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하는 정도에 따라 감사하는 마음이 다르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부인 못할 것입니다.바로 이런 면에서 성도의 성숙은 필요한 것입니다.여기에 시간이란 비밀이 있고요. 역사란 의미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그렇게 믿음도 시간 속에서 자라가게 하셨고 은혜도 시간 속에서 깊어지게 하셨고 사랑도 시간 속에서 더 강하게 하시는 과정을 거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이것이 바로 내가 왜 구원 받아야 할 죄인이라는 사실을 머리로만이 아니라 몸으로 날마다 체득하게 하시는지 알아야 하며 이걸 우리는 십자가 체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그러니깐 내가 세상을 살면서 티끌이요, 없음이요.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지 않음 생명이 아니라는 진리가 지금 현재 실체화 되지 못하면 그 믿음은 가짜일 수 있습니다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어떤 논리나 이론이나 신념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능력이 나타난다고 환상을 본다고 그것이 최고가 아닙니다. 거기엔 나를 지금도 십자가로 끌고 못 박게 하는 죄 성이 발견되어야 하고, 나는 십자가로 끌려가면서 주님을 간절히 부르는 소리 "주여 나를 도우소서!, 내가 육신의 지옥에서 신음하고 있나이다." 이런 통곡의 소리가 날마다 울려 퍼져야 합니다.그래서 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세상의 어리석고 간사한 유혹에 속지 말아 내가 네게 시간을 주었으니 딴 짓 하지 말고 세월을 아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가 자신을 시험하여 예수 믿고 있는 자임을 확증하라는 것입니다.이것이 예수 믿으라는 것입니다.(병 고침 받고, 부자 되고, 문제 해결 받고 이것 자체가 믿음이 아니라 이건 미끼예요. 예수에게 낚일 수 있는 도구거든요, 여러분 혹시 아직도 미끼만 따 먹고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런 자는 주님께 잡힌 물고기가 아닐 수 있거든요,)세월을 아끼라는 말씀은 무서운 경고인 동시에 축복의 말씀입니다.

왜 성도에게 '세월을 아끼라, 했는지 이 말이 우리에게 책임이 따르는 엄청 무거운 경고의 말씀인 것을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 차라리 뭘 해서 구원에 이른다고 한다면야 열심이라도 내볼 텐데 말입니다. 이거 보다 더 떳떳하고 자신 있는 것은 없겠죠.그런데 거저 얻게 된 구원의 교리는 나의 열심을 봉쇄시켜 버립니다. 신앙생활이 너무 싱겁고. 무미건조할 수밖에 없다는 거지요. 그래서 달콤한 유혹, 무슨 증거 표징을 원하는 것인데요, 이렇게 하면 안 믿어지는 '구원의 확신이 온다 하는 거잖아요'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신비주의에 쉽게 빠지는 것입니다.여러분! 뭐 세대주의자들이 666표를 강조하고. 계시록의 비밀과  타작마당에서 매 타작까지 당하면서 그들이 원했던 것이 뭡니까? (뭔가 확인 받고자 하는 거 였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시지 확신으로 우릴 붙잡아 두시지 않는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예정 안에 있는 묵시를 믿는 자들이 제일 경계해야 하는 것이 바로 회의론입니다. 그리고 구원은 떼 놓은 당상이니 막 살아도 된다는 무 율법주의입니다.~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막살아도 된다. 이런 주장과 신앙행태가 요즘 난무하고 있죠,,오늘의 이 말씀은 이 문제에. 대한 아주 중요한 흰트를 주고 있습니다.여기서 사도 바울은 너희가.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는 말씀을 하다가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세월을 아끼라"는 말을 한 이유가 있다는 거에요. 그 이유를 벌써 깨닫고 계신 분이 있을 겁니다. (늘푸른 교회죠)이는 단순히 마지막 때 시간이 없기 때문에 시간을 쪼개서 기도하고 전도하고 충성 봉사 성도의 교제해야 한다는 그런 뜻이겠어요. 물론 일차적으로 그런 뜻을 갖고 있습니다.그러나 구원 받은 성도인데 무엇이 그리 긴급한 일이 있다고 때가 악하니 세월을 아끼라고 당부까지 하시면서 말씀하시겠습니까?.여기에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그 말씀의 의도를 파악해야 합니다.'세월이 약이겠지요,. 이런 노래도 있잖아요하나님이 성도에게 시간이란 역사를 주신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시간은 인간에게 중요한 깨달음을 줍니다.시간이 없다면 깨달음도 구원도 없겠죠. 물론 이는 시간 밖에 있는 묵시적 관점이 아니라

시 공안에 갇혀 있는 인간의 관점에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러나 성도는 이 세상에서 시간이란 것을 사용하여 하늘에 속한 귀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간은 치유의 능력입니다.그리고 시간은 과일을 영글게 하고, 사람을 철들게도 하고, 음식을 익게도 하고 숙성시켜 맛이 들게도 합니다. 그리고 아픈 상처가 아물게도 해 줍니다.이렇게 시간의 효용성을 우리가 안다면 우리는 결코 시간을 허투로 쓸 수 없을 것입니다.~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셨고, 이 시간이란 역사 속이서 그 생명을 풍성히 누리게 하시기 위하여 그리고 그 은혜의. 참 맛을 보도록 하시기 위하여 우리 신앙을 숙성시키고, 우리의 믿음을 단련시키는 기회로 삼고 있다면 우린 세월을 허비할 수 없겠죠.

성경이 말하는 성숙과 성화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우리는 성도의 완전 성화를 배격하잖아요.그러나 칭의에 성화를 더해야 한다는 성화론은 잘못된 것이지만 구원 받은 성도에게 구원의 기쁨과 감격과 구원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해 주시는 그 과정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을 성화의 과정이라 이해하고 있다면 잘못 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인간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고 말들 하지만 무언가 변화되는 것이 있기는 있단 말이죠.사람은 고쳐서 쓰는 거 아니야! 이런 말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가정은 서로 고쳐서 살려 하다가 낭패를 보는데요. 결국 고쳐서 쓰는 것이 아니라 맞춰서 사는 거로구나 이걸 깨달아야 하는 겁니다. 그렇게 인간의 본질은 고쳐 지지 않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뭔가 변하는 것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를 처음 믿을 때 하고 지금하고 하나님에 대한 은혜를 받아들이는 느낌과 감정이 그리고 복음에 대한 이해의 척도와 그 깊이는 분명 다를 것입니다.그리고 나의 무력감에 대하여 느끼는 감정과 그 무게 또한 분명 차이가 있을 겁니다. 이런 것을 굳이 성화적인 요소라고 한다면 우리가 왜 이런 것 마저 부정할 이유가 없는 겁니다. 성도에게 분명 이런 변화는 있음을 인정해야 하고요, 성경은 대부분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 가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그리고 우리가 받은 그 은혜를 더욱 풍성하게 체험한 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맛볼 수 있게 하신다는 말씀으로 기록되어 있거든요.여러분! 이런 것들은 시간 이란 것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결코 느끼거나 맛볼 수 없는 것입니다. 시간 속에서 반복적으로 경험하다 보니까 자꾸 말씀을 듣고 또 듣다 보니까, 나의 인지 능력을 통해서 조금씩 깨달아 지더라는 하는 건데요. 그러니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나 중요 하겠어요. 시간을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기회로 선용하는 자는 생명을 얻되 더 풍성해 질 것이라고 (10:10)"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되,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그렇지 않고 마귀에게 속아 어리석은 자가 되어 그 시간을 헛되이 사용하는 자들은 세월을 낭비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이것은 구원을 얻었느냐? 못 얻었느냐 와 별개의 문제입니다.구원을 얻은 자도 말씀에 집중하지 않고 성령에 충만을 받지 않으면 이렇게 세월을 허비할 수 있다는 거에요. 그런 자들은 어리석은 자가 되어 그 귀한 시간을 자신의 가능성만을 입증하기 위한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헛된 길에서 얼른 돌아서 세월을 아끼고 시간을 주신 그 이유를  분명 깨달아야 된다는 말씀입니다.그래서 지혜로운 성도는 그 귀한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도리어 내가 얼마나 불가능한 존재였는데,, 내가 얼마나 자격 없는 자였는데,, 하나님이 나 같은 무자격자를 구원해 주셨네, 참으로 감사합니다,,,이렇게 간다 말입니다.여러분 사람이 자기 죄를 알고 회개 한다는 것도 기적인데요,, 회개보다 더 위대한 것은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갖게 되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매일 감사와 감격은 없고 회개만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를 용서하시고 구원을 주신 하나님 얼마나 갑갑하시겠어요,) 나의 실력 없고 능력 없음이 내 인생 여정을 통하여 까발려 지는 기회로 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복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 같은 무자격자가 구원의 대열에 무상으로 편승하게 된 것은 오직 은혜 까닭이잖아요그런 사실을 알게 되면 될수록 우리는 더욱 감사 밖에는 나올 수 없는 겁니다. 아멘.그럼에도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며 살고 있나요. 그렇지 않거든요.여러분 이렇게 감사하지 못하는 나를 보면서 실망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하지만, 이 또한 인정하고 받아 들여야 합니다.하나님께 받은 무조건적인 은혜를 생각할 때, 범사에 감사해야 하지만 우리는 작은 일에 낙심하고 불평하며 감사하지 못하는 자라는 실상을 부인 할 수 없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현재도 십자가가 필요하다는 증거이거든요,,,)그러나 우리 육적인 자아는 나라는 주체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나의 무능과 무력한 자로 드러나는 것을 좋아할 인간은 없고요. 나의 무가치성이 폭로 되는 것을 탐탁해 할 인간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주어지면 나도 괜찮은 존재야,, 나도 그 정도면 인정받아야 되잖아,, 하면서 자기 존재 가치를 증명 하려고 애쓰게 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솔직한 모습이거든요.그러나 아직도 '뭔가 내 노력이 내 의가 된다고, 믿고 있는 자는 이런 자신의 실체가 드러날 때, 그것을 인정 못하게 됩니다. 여러분! 이것이 예수 부인하는 거에요.여러분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성숙했다고 인간의 본성이 변하거나 인간의 성격이 변하는 그런 수준의 이야기를 지금 하는 거 아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절대 안 변합니다. 내가 변했다고 착갈 할 뿐이죠, 여러분 지상 최고의 깨달음은 뭔지 아세요?,"난 죽었다 깨어나도 변할 수 없는 인간이로 구나~" 요것을 알아먹는 것입니다. 그 반대로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시간을 주신 이유는 그 수많은 날들을 허락했지만 우리 인간은 자신만을 위해 살고 세상의 물질만을 위해 살더라는 것을 알아먹으라는 거에요.~( 수없는 날들이 나에게 주어 졌지만 이제와 돌아보니 모두 허무함뿐이라 ,, ,,,,,,,)참회록이럴 때 성도는 시간이란 경험이 도구가 되어 나의 한계를 다시 보게 하는 겁니다.이것을 체험이라 하고 이것을 고백하는 것이 진짜 간증이에요.그러므로 간증은 나의 못 남을 자랑하는 그런 무대인 것이죠.결코 내가 승리한 자로 성공한 자로 인간 승리를 자랑하는 것이 간증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세상에서 결코 승리자로 세우시지 않습니다. 만일 그가 이겼다면, 그리고 승리했다면 주님이 하신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시간을 주셔서 나의 죄가 들켜, 어둠이 폭로될 때마다, 나의 못남을 자랑하고 주님의 승리를 드높이게 하시려는데 내가 기여한 것이거든요.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필 그 못난 자리에 나를 쓰신 것에 대하여 시험에 드는 것이 아니라그 쓰임에 더욱 감사하시는 여러분이 정말 성숙한 자거든요. 아멘,,에베소513절에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책망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난다고 하였죠.죄가 어둠 속에 숨겨져 있을 땐, 그냥 어둠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폭로되어 밖으로 드러나게 되면 책망을 받게 되고 그 사람은 빛 가운데로 나오게 되어 있다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나의 어둔 실체를 빛 되신 주께서 다 드러내실 때, 난 바보처럼 슬프지 않고 기쁜 거예요,왜죠, 알고 보니 주께서 내 죄악을 담당해 주셨다는 겁니다나는 심판과 저주로부터 완전히 해방 되었음을 알기 때문에 기쁜 거에요그러나 나의 실존은 여전히 육신에 매여 있기에 날마다 실수합니다. 날마다 어둠의 현실이 빛에 의해 폭로되고 드러납니다. 그럴 때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도리어 감사해야 합니다. 이렇게 나의 죄인 된 실존이 주님 앞에 들키면서 나의 부족함을 고백하고 나의 연약함을 토로할 때, 그것이 구원의 현재성을 사는 것이며 나 지금도 십자가 없음 지옥이에요 나 여전히 주 예수가 필요한 사람이에요, 이것이 간증이요, 나의 찬송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하나님은 우리에게 완벽을 주시지 않고 결핍 가운데 성령 충만을 허락하신 이유? 주님의 우리의 삶 속에서 이런 고백을 받아 내시려고 시간을 주셨다는 것입니다.그렇다면 성도는 어떻게 시간을 잘 선용하고 세월을 아껴서 우리가 지혜롭게 살 수 있겠습니까? 바울은 술 취하지 말고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권면합니다.여러분 성령 충만이란 용어만큼 잘못 사용되고 있는 경우도 드문데요,우린 성령 충만한 상태만 생각하고 난 이렇게 능력 있는 자라고,,,난 이렇게 할 수 있는 자야, 이런 식으로 나의 가능성을 증명하는데. 쓰고 있는데요.여러분! 이것 보다는 우리가 이미 은혜로 구원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세상을 사는 동안 성령충만을 받지 않으면 안심이 안 되는 그런 연약한 존재라는 거에요. 아직도 하나님이 어린 아이처럼 전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 혼자 놔 둘 수 없는 그런 상태라는 겁니다.우리 모두가 내가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 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임을 시인하는데 주저하면서 인간의 자존감을 찾기에만 급급 한대요. 그건 인정하며 사람들은 쪼다가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린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무력한 자로서의 자아 인식이 진짜 자존감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이것은 우린 그 자체로 완벽하지 못하고 뭔가 부족하기 때문에 성령 충만으로 채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결핍의 존재라는 것을 잊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구원을 왜 거저 받게 된 것인데요. 그건 받을 능력도 자격도 없었기 때문이잖아요.구원을 누리면서 이것만은 알아먹으라는. 것인데요. 인간은 호시탐탐 내가 받을 능력이 있어 받은 것처럼 자신을 증명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고,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그래서 우리에게 성령이 지켜주고 보호하지 않으면 형편없는 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전제가 바로 성령 충만해야 한다는 진짜 의미거든요.

(스스로는 아무도 바로 설 수 없는 자들이라는 고백이 성령충만 해야 한다 이겁니다)(5::18)"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이 말씀은 성령 충만 받아도 되고 안 받아도 되고 가 아니라 성령 충만하지 못하면 술 취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잖아요. 그렇게 되면 우린 형편없는 자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그래서 성령은 우리가 사는 동안 왜 우리는 구원 받을 자격이 없는 자였는지 그리고 우리가 얻은 구원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이걸 우리에게 알려 주시기 위해 오신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받은 그 은혜 평생 갚아도 갚을 수 없는 것이기에 우린 그 은혜 갚을 생각 하지 말고 도리어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시기 위해 오셨다는 거 아닙니까?성령의 충만함의 정도만큼 우리는 내 안에서 죄인 된 괴수의 모습이 보여야 합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면 내 속에서 나의 거룩한 모습이 그리고 나의 의가 조금이라도 보일 줄 알았죠? 그거 본 사람은 환상을 본 것이고요.

(구약에 자기를 진짜 보았던 아사야는 제단 숯불로 나의 입을 지져 달라했던 거에요)

그래서 성령 받으면 나의 의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어둠뿐인 나, 여전히 예수의 피로  덮여 지지 않으면 죄 성이 튀어 나와 세상적인 육신의 욕망으로 살고 싶은 추하고 더러운 내 모습이 보여야 진짜입니다. 나의 밑바닥이 드러나 나의 처음자리가 보여야 해요. 성령이 와야만 이 사실이 입증되거든요. 왜냐하면 성령만이 하나님을 알게 하며 성령만이 나의 죄의 본질을 확실하게 밝히 드러내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 세상은 하나님 앞에 나의 죄가 들키는 골고다의 현장이요.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살해당하는 현장입니다.여러분 성령 충만 받았다고, 진리 좀 안다고 내가 뭐가 좀 된 줄로 아는 자는 가장 어리석은 자요, 스스로 속이는 자입니다. 지금도 예수 십자가 구속이 나를 위한 것임이 실감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십자가는 관념 일뿐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구원은 그냥 신념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고 찬송하는 삶이 중요하다는 한 것입니다.교회에 모이기를 게을리 하지 말고 계속 만남과 나눔으로 서로 간증하라는 것입니다.간증은 시간 속에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경배할 수 있는 나의 유일한  체험이거든요.나의 성공기가 아니라 실패담을 스스럼없이 나누게 될 때, 그런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드러내고 자랑하게 되는 것입니다.이렇게 될 때만이 우리는 자발적으로 속에서 우러나오는 찬송과 감사를 주께 드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감정은 고르지 못합니다.기복이 심하잖아요. 기분에 따라 그리고 형편과 처지에 따라 춤을 춥니다.그런데 성령 충만이란 것은 이런 나의 기질을 무시하고 나를 억지로 감금 하고 하여 힘으로 굴복 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연약한 인간의 육신이 갖고 있는 나약한 기질을  무시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내 감정이 상해 버리면 성령 충만이고 은혜이고 간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인간 못 된 것은 하나님도 어찌할 수 없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사정사정하시잖아요, 문 열어 달라고요,,,(320)성령이 나를 강압적으로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감정에 성령도 휘둘린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이 내 안에서 탄식한다고 했으며,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강압적이고 일방적으로 역사하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 나가신다면 이렇게 사정하시는 말씀을 하실 필요가 없겠죠, 만일 그렇게 하시면 인간은 뒤에서 딴 소리하게 되어 있거든요 "뭐 그거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거 아니잖아, 나 싫은데 억지로 한 거야, 마지못해 한 거란 말이야,,," 이렇게 말입니다.그러므로 하나님이 택하신 자를 구원시킬 때는 나의 의견이나 상태 자격 이런 거 묻지 않으시고 당신의 언약 안에서 무조건적인 선택으로 구원 하시지만 구원 후에 성도에게 세심하게 역사 하실 때는 우리의 자유의지를 최대한  침해 하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때로는 달래기도 하시고, 가끔은 어르기도 하시고, 또 간절하게 호소하기도 하시면서 그렇게 이끌어 가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걸 설복(설득시키고 이해시켜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만드는 것) 시킨다. 라고 표현하는 겁니다.이것이 묵시 안에서 이미 성도가 되었지만 우리에게 시간이란 것이 필요한 이유거든요.그렇게 해야 인간은 자발적으로 스스로의 체험을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하나님을 자진하여 찬송하며 경외하는 자가 될 수 있는 거에요. 이런 과정을 거쳐야만 우리는 하나님이 무섭고 두려워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격발케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에 감격하여 그리고 사랑과 자비를 체험케 하시는 은혜에 이끌리어 세세토록 찬송하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아멘, 그렇게 될 때, 우리 모두가 계시록 4장에서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경배하는 자들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410,11)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아멘사랑하는 여러분!이 역사 그리고 시간,(카이로스,크로노스) 그리고 세상(코스모스) 육신, 건강 부, 지식, 이거 다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다 우리가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가를 알게 하시는 도구 역할로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모든 재물과 시간을 사용하여 결국 내가 죄인이네요 내가 하늘과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으니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이리로 갔던 둘째 아들 탕자와 아버지 집에서 호의호식하고 장자권을 누리고 자기

의를 챙긴 맏아들은 결국 말하기를 나는 여태껏 아버지의 명을 어김이 없었는데 저 창기와 함께 재산을 탕진한 동생을 위해서는 살진 송아지를 잡다니요큰 아들은 아버지의 용서와 자비는 모릅니다. 난 아무 흠이 없다고 자부하며 모든 시간과 기회를 자기 의를 입증하는데 쓴 큰아들 중 누가 더 세월을 아낀 자이며 누가 시간을 허비한 자입니까? 너무 자명하죠?

여러분 더 이상 썩어질 세상 것에 시간을 허비하지 마시고 세월을 아끼시기 바랍니다.우리는 믿음과 충성 봉사 섬김과 헌신까지도 나의 됨을 입증하는데 사용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날에 주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반드시 물으실 것입니다.이런 것들을 넌 얼마나 잘 사용하여 나를 찬송하고 경배하며 감사로 영광을 돌렸는가?

여러분 주 앞에서 이런 질문 받기 전에, 오늘 이 물음 앞에 서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 각자에게 자문 하시기를 나는 실로 세월을 아낀 자인가? 아니면 세월을 허비한 자 인가아멘..기도 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