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16~17 이신칭의     2018. 11. 4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종교개혁 기념일이 1031일입니다. 15171031일 마르틴 루터가 95개 논제를 공포한 날을 기념하는 하는 날입니다. 95개 논제의 원제목은 면죄부(免罪符)의 능력과 효용성에 관한토론입니다. 오늘 이 강의를 하는 것은 에스더를 끝내고 다음 성경을 레위기를 하려고 합니다. 처음 시작하는 시간이 필요해서 오늘 특강을 하고 다음 주는 1남전도회 외부 강사 초청시간이라서 레위기를 11월 셋째 주부터 시작하려고 특강을 합니다. 한 시간 안에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하나님의 약속을 다 이루시고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심으로 신약의 교회가 본격적으로 시작이 됩니다. 성령이 임한 사도들이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예수를 하나님이 다시 살리시고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선포합니다. 구약에서 그리스도가 오시는 날이 종말의 날이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다 이루심으로 성령이 임하자 모든 사도들이 다 종말론적인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복음은 역사의 발전을 말하거나 기독교의 문명을 이루자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초대교회 때에 전한 복음의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이 복음은 유대인들도 이방인들도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한 사도들이 유대인들이었습니다만 유대인들이 받을 수 없는 내용이 십자가의 복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핍박 속에서도 복음은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증거가 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시고 성령이 임하면 예수님의 증인이 되게 하시겠다는 예수님의 의지이기 때문입니다(1:8). 이 복음을 듣고 믿는 자들이 유대인 가운데서도 나오고 이방인 가운데서도 나오는 것을 사도행전에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은 바울을 통하여 복음이 유럽으로 전파가 됩니다. 내년 달력을 성경지도가 있는 달력으로 택하였습니다. 자녀들과 함께 지도를 보면서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바울의 선교 여행 지도도 있습니다.

 

복음이 증거 됨으로 복음을 믿는 자들이 각 지역에서 일어납니다. 이 시대는 로마제국 시대입니다. 이미 다니엘서에 나온 대로 이 역사는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꾸고 잊어버린 것을 다니엘이 알고 해석하여 줍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꾼 그 신상을 다니엘이 장차 일어날 제국에 대하여 말하였고 그 말한 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시대에 사람의 손의 의하지 않은 작은 돌에 의하며 그 신상은 무너지고 그 돌은 태산을 이룬다는 그 예언대로 로마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고 모퉁이 돌이 되셔서 그 몸을 세워 가시는 것입니다(2).

 

로마가 로마 제국에 헬라어로 통일해 놓았고 또 길을 예비해 놓았기에 복음이 헬라어로 로마의 길로 전파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의 황제를 주로 섬기고 있는 제국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믿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핍박이 따릅니다. 바울이라는 영화를 보면 성도를 죽여 기름을 부어 횃불로도 사용합니다. 로마의 경기장에 짐승의 밥이 됩니다. 이런 핍박 속에서도 복음은 계속 확산이 됩니다. 그런데 큰 전환이 일어납니다. 기독교에 대한 핍박이 사라지고 종교의 자유가 주어집니다. 심지어 로마의 국교로 기독교를 삼게 됩니다.

 

[313,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밀라노 칙령으로 로마에 크리스트교가 공인되었다. 고대 지중해 세계는 여러 신을 섬기는 다신교적 전통이 강하였는데, 1세기 중엽 유일신 신앙인 크리스트교가 전파되어 다신교와 갈등을 빚었다. 수도를 비잔티움(콘스탄티노폴리스)으로 천도하고 개혁을 실시했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크리스트교를 공인하였다. 이후 4세기 말 392년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다른 종교를 금지하고 크리스트교를 사실상 국교로 확정지었고 이후 서유럽에서는 로마 교회, 동유럽에서는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가 신앙을 주도해 나갔다. 로마 교회와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는 각각 서유럽의 게르만족과 동유럽, 러시아 슬라브족에게 전파되어 유럽 문화 형성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기독교가 핍박을 받았을 때와 핍박을 받지 않고 자유가 주어질 때에 어느 쪽이 순수하게 복음이 증거 되겠습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추방될 뿐 아니라 국가에서도 잡아 죽인다고 하면 누가 믿겠습니까? 그러나 복음이 증거 되면서 4세기까지 핍박이 있을 때에는 다른 복음이 들어설 자리가 별로 없습니다. 물론 이 시기에도 이단들이 나오지만 기독교 자체가 타락의 길로 들어서는 때가 기독교가 국교가 되기 시작한 4세기부터입니다. 로마의 지배아래 있는 나라들은 겉으로는 기독교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결과 4세기부터 온갖 기적들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사도이후 속 사도들과 교부들의 시대에는 표적과 기적과 같은 내용들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4세기부터 표적과 기적이라는 것들이 나타나면서 중세에는 온갖 기적과 형상숭배가 나타납니다. 이것은 각 민족의 미신적인 내용들이 기독교 이름으로 들어오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종교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기독교를 국교로 하였기에 황제의 권력과 교황의 권력이 서로 힘겨루기를 하는 것입니다. 황제의 서품(敍品) 권을 교황이 가지게 됨으로 황제가 교황의 말을 듣지 않으면 파문(破門)을 해 버리면 백성들이 황제의 말을 듣지 않게 됩니다. 이런 문제는 카노사의 굴욕이라는 사건으로도 잘 알려진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힘을 가지려면 교인들이 헌금을 많이 해야 합니다. 온갖 명목으로 헌금을 하라고 하면서 결국 베드로 대 성당을 지으면서 면죄부를 판 것입니다. 헌금하는 양에 따라 조상의 죄까지도 용서 받아 천국 간다고 한 것입니다.

 

이런 때에 마르틴 루터는 신학교의 교수였습니다. 그는 의에 대한 문제로 고민을 많이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의로우신 분이신데 자신은 의롭지 않기에 고민을 한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읽었던 로마서의 말씀도 자신의 행위로 의에 이르러야 한다고 생각하였기에 의롭게 살기 위하여 온갖 애를 다 쓴 것입니다. 루터의 생애에 대한 책과 영화도 있습니다만 온갖 금욕과 고행으로도 의를 이룰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로마서의 말씀이 새롭게 보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것이 보인 것입니다. 전에는 같은 말씀인데도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다는 말이 이()()()()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이 복음을 깨닫고 나니 지금 중세교회가 하고 있는 일들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95개의 명제로 토론해 보자고 한 것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개혁한 자들이 많습니다. 루터보다 1세기 앞에 개혁을 외친 잔 후스와 같은 사람은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정죄 받고 화형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루터의 95개의 명제는 일반적으로 8개의 부분으로 나뉘는데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1)속죄에 대한 규정(1-4)

2)교황의 사죄권의 한계(5-7)

3)교회법이 부과한 속죄에 대해 언급하면서 연옥 영혼에 대한 구원문제를 취급(8 - 29)

4)면죄와 참회 그리고 사죄문제(30-40)

5)면죄부의 구입과 면죄시행의 남용(41-52)

6)면죄설교와 복음 설교의 가치비교, 교리의 보화, 면죄부 판매 설교의 과장 등(53-80)

7)면죄부 남용에 따른 평신도의 산발적 질문과 면죄시행에 대한 공박(81-91)

8)루터의 십자가 신학에 입각한 그리스도교인의 진정한 생활 언급(92-95).

 

루터 다음으로 알고 있는 개혁자는 누구입니까? 우리가 장로교라고 하면 사실 루터보다 칼뱅을 더 많이 말합니다. 칼뱅의 가장 유명한 저서는 기독교강요입니다. 그리고 많은 성경의 주석이 있습니다. 기독교강요는 로마교회의 타락을 말하면서 성경대로 하자는 내용입니다. 큰 제목만 말씀드리면 창조주 하나님에 관한 지식, 그리스도 안에 계신 구속자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 처음에는 율법으로 조상들에게, 그리고 다음에는 복음으로 우리에게 계시 되었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는 길,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공동체로 인도하시며 우리를 그 안에 있게 하시려는 외적인 은혜의 수단. 이러한 큰 제목으로 수많은 소제목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런 내용을 요약하면 칼빈주의 오대교리라는 말이 나옵니다. 전전타락, 무조건적인 선택, 제한적 속죄, 불가항력적 은혜, 성도의 견인입니다. 이러한 내용이 나오게 된 것은 중세 가톨릭교회의 타락으로 인하여 성경적인 원리를 찾으려고 한 결과로 나온 내용입니다. 그러면 중세교회가 왜 타락한 것입니까? 교회가 세상의 힘을 추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힘을 가지려고 은혜의 복음을 행위의 다른 복음으로 바꾼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의 이신 칭의나 칼뱅의 오대교리와 같은 내용들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개혁교회라고 하는 곳에서 이 전적인 은혜가 설교되고 있습니까? 안 되고 있다면 왜 안 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교회가 세상의 힘을 가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을 주고 산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이런 교회를 지향하지 않고 세상에 드러나 보이는 교회 상을 꿈꾸고 있기에 아직도 개혁이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설교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만 증거 되고 있습니까? 오직 은혜만 강조하면 행위가 따르지 않는다고 염려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로 일하고 계심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바울사도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믿는 내적 원인은 하나님의 선택과 부르심입니다. 외적으로는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복음은 복음서에 증거 하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가 되심을 전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다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납니다. 복음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약속 곧 씨를 주신다는 말씀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다고 합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이 내용은 하박국서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하박국 2:1~4절입니다. “1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1)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하였더니 2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의 일하심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어떻게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고난을 받는 일들이 일어나느냐고 질문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대답은 묵시는 정한 때가 있다고 하십니다. 그 종말이 속히 이를 것이고 결코 거짓되지 않고 이루어집니다. 비록 우리 눈에는 더디게 보여도 기다리라고 합니다.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이 하나님의 묵시는 결국 그리스도가 오실 것이며 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다 이루신 것입니다. 이제 이 복음의 땅 끝까지 증거 되면 주님이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심판을 하고 개혁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아무리 개혁을 해도 개혁이 되지 않습니다. 500년을 개혁하고 501년이 되어도 무엇이 달라진 것이 있습니까? 그러므로 성도는 복음을 믿음으로 삽니다. 우리의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복음을 믿고 삽니다. 그 믿음으로 사는 내용이 무엇이냐고 구체적으로 물으신다면 베드로후서 3장을 봅니다.

 

베드로후서 3:8~18절입니다.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1)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15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2)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믿음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이러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