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33:14~26   말씀을 성취할 날     2014. 8. 13

1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 준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15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16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 것이며 이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으리라 17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이스라엘 집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다윗에게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며 18 내 앞에서 번제를 드리며 소제를 사르며 다른 제사를 항상 드릴 레위 사람 제사장들도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이주 전에 본 말씀 중 예레미야 33:2~3절을 다시 봅니다. “2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야 선지자가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께로부터 임한 말씀입니다. 일을 행하시고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부르짖으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할 일을 보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크고 은밀한 일이 무엇인지 지난주에 말씀드렸습니다. 그 내용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약을 성취하는 십자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사람의 능력으로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내용입니다.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에게는 십자가는 저주 받아 죽은 죽음입니다. 지혜를 구하는 헬라인들에게는 참으로 미련하고 어리석은 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는 자들에게만 유대인이나 헬라인에게나 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이것을 이미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언하여 놓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언들은 사사로이 풀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성령의 감동으로 사도들이 풀어놓은 것이 신약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을 통하여 구약의 예언들이 어떻게 성취가 되었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금 읽은 말씀과 오늘 말씀이 연결이 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본문이 길어서 두 번에 나누어 말씀드린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말씀하시고 그 말씀하신 바를 반드시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약속과 성취라는 구도로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언약과 성취라고 하여도 됩니다.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성취하신다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약속과 성취를 모르면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그저 자신의 소원하는 바를 이루어달라고 하는 그런 신은 우상이지 성경의 하나님의 아닙니다. 이러한 약속의 성취라는 구도를 성경 전체를 통하여 간단하게 말씀을 드리고 오늘 본문을 보겠습니다. 

성경은 언약의 책입니다. 그래서 구약이 있고 신약이 있습니다. 옛 약속과 새 약속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옛 언약 안에 이미 새 언약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예레미야 31장부터 거듭 말씀드렸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좀 더 큰 그림으로 그려보면 창세전 언약부터 시작이 됩니다. 창세전에, 영원 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언약하신 내용들을 창조를 통하여 드러내신 것입니다. 천지창조 전에 이미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하여 천지를 창조하시겠다는 것이 하나님과 아들의 언약입니다(요17:5, 딛1:2, 딤후1:9). 이러한 언약을 따라 천지를 창조하시고 아담에게 언약하시고 노아와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과 언약하심을 통하여 왜 인간의 행위로서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될 수 없는 지를 보여주면서 새 언약을 예언한 것이 구약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모세의 율법을 통하여 인간의 율법지킴이나 그 어떤 행위로도 의에 이를 수가 없음을 철저하게 보여주는 것이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의 언약인 새 언약으로만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새 언약입니다. 이것이 이미 구약에서 예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고 합니다. 그러면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줄 것이라고 합니다. 그 크고 비밀한 일은 바벨론 포로에 잡혀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그렇게 잡혀간 자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크고 은밀한 일이지만 이것 역시 그림자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언약들은 점진성이 있습니다. 하나의 언약이 성취되면서 그 한계를 넘어서는 언약의 완성을 내다보게 됩니다. 그러한 언약의 완성이 예레미야 선지자나 에스겔 선지자나 다른 선지자들을 통하여 새 언약을 예언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도 살펴보겠습니다만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성취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본문 14~15절을 표준 새 번역으로 봅니다. “14 "나 주의 말이다. 보아라,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유다 가문에게 약속한 그 복된 약속을 이루어 줄 그 날이 오고 있다. 15 그 때 그 시각이 되면, 한 의로운 가지를 다윗에게서 돋아나게 할 것이니, 그가 세상에 공평과 정의를 실현할 것이다. 16 그 때가 오면, 유다가 구원을 받을 것이며, 예루살렘이 안전한 거처가 될 것이다.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주님은 우리의 구원이시다' 하는 이름으로 부를 것이다.” 

나라가 망하는 지경에 여호와의 말씀이 주어집니다.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준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올 것이라고 합니다. 그 성취란 그 날 그 때에 다윗에게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내용은 이주 전 주일 낮에 마태복음에서 ‘나사렛 사람’이라는 설교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이처럼 구약이나 신약이나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 다윗의 가지에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와서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 것이며 이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는 것입니다. 결국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고 그 선한 일을 성취한 결과는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의가 아닌 우리의 의는 어떻겠습니까? 

이사야 64:5~7절입니다. “5 주께서 기쁘게 공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 우리가 범죄하므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며 이 현상이 이미 오래 되었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6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7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소멸되게 하셨음이니이다” 우리의 의가 누더기 같기에 우리는 다 소멸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가 있습니다. 

8~12절입니다. “8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9 여호와여, 너무 분노하지 마시오며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마시옵소서 구하오니 보시옵소서 보시옵소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 10 주의 거룩한 성읍들이 광야가 되었으며 시온이 광야가 되었으며 예루살렘이 황폐하였나이다 11 우리 조상들이 주를 찬송하던 우리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성전이 불에 탔으며 우리가 즐거워하던 곳이 다 황폐하였나이다 12 여호와여 일이 이러하거늘 주께서 아직도 가만히 계시려 하시나이까 주께서 아직도 잠잠하시고 우리에게 심한 괴로움을 받게 하시려나이까” 

이것이 이사야나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언약을 알고 간구하는 내용입니다. 우리의 행위대로라면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스스로 의로운 행위들로 만들어 입은 옷이라고 할지라도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는 다 냄새나는 더러운 누더기일 뿐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의롭다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의가 결국 여호와 우리의 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크고 은밀한 일을 말씀하시고 그것을 성취하실 날이 이르면 다윗의 가지에서 한 의로운 가지가 나와서 다스리게 됩니다. 그렇게 될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이 구원을 받고 안전히 살게 됩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왕과 제사장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본문 17~18절입니다. “17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이스라엘 집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다윗에게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며 18 내 앞에서 번제를 드리며 소제를 사르며 다른 제사를 항상 드릴 레위 사람 제사장들도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 우리의 의라는 성읍이 되기 위하여서는 이스라엘 집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다윗에게서 영원히 끊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함으로 당연히 왕위가 끊어집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약속과 성취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리고 제사를 드릴 제사장도 끊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왕이 공의로 통치하면 죄인은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한 죄인을 속죄하게 위한 제사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나라가 망하고 예루살렘 성읍이 파괴되고 성전이 파괴되고 제사장이 끌려가는 지경에서 여호와께서 이런 말씀을 주시면서 자신이 말씀하셨기에 반드시 성취할 것이며 성취할 날에는 여호와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 정도 말씀드리면 무엇을 말씀 하는지 아시겠지요! 

누가복음 1:31~33절입니다.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다윗의 가지에서 한 왕이 날 것을 말씀하신 그 왕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릴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나라가 망하여 포로로 잡혀가도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가 된다는 그 내용이 바로 신약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한 왕이며 영원한 제사장입니다. 

히브리서 9:11~15절입니다. “11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15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대 제사장을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한 여호와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는 일은 영원한 왕과 영원한 제사장인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성도가 얻는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언약을 성취할 그 날에 여호와가 우리의 의라는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한 마디로 말씀하시는 내용이 고린도전서 1:30절입니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났다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한 그 성취할 날의 완성이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로 이루어집니다. 이 약속을 이루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보겠습니다. 

본문 19~22절입니다. “19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능히 낮에 대한 나의 언약과 밤에 대한 나의 언약을 깨뜨려 주야로 그 때를 잃게 할 수 있을진대 21 내 종 다윗에게 세운 나의 언약도 깨뜨려 그에게 그의 자리에 앉아 다스릴 아들이 없게 할 수 있겠으며 내가 나를 섬기는 레위인 제사장에게 세운 언약도 파할 수 있으리라 22 하늘의 만상은 셀 수 없으며 바다의 모래는 측량할 수 없나니 내가 그와 같이 내 종 다윗의 자손과 나를 섬기는 레위인을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께서 크고 은밀한 일을 알려주실 뿐만 아니라 그 일을 자신이 친히 이루어내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 약속이 얼마나 변할 수 없는지 낮과 밤에 대한 언약을 우리가 깨뜨릴 수 있다면 여호와의 언약도 깨뜨려질 것이라고 합니다. 그 언약이란 왕과 제사장에 대한 내용입니다. 지금 예루살렘은 왕도 포로로 잡혀가고 왕궁도 파괴되고 제사장도 잡혀가고 성전도 파괴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약속은 절대로 파기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볼 때는 완전히 망한 것으로 보이지만 하나님은 다윗의 자손과 레위인을 번성하게 하여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와 같이 측량할 수 없게 하신다고 합니다. 

본문 23~26절입니다. “23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4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자기가 택하신 그들 중에 두 가계를 버리셨다 한 것을 네가 생각하지 아니하느냐 그들이 내 백성을 멸시하여 자기들 앞에서 나라로 인정하지 아니하도다 2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주야와 맺은 언약이 없다든지 천지의 법칙을 내가 정하지 아니하였다면 26 야곱과 내 종 다윗의 자손을 버리고 다시는 다윗의 자손 중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다스릴 자를 택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 포로 된 자를 돌아오게 하고 그를 불쌍히 여기리라”   

나라가 완전히 망하게 되었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만들어 내십니다. 유다 백성들은 자기들의 나라가 망하여 바벨론에 끌려갔으니 당연히 망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유대를 공격한 바벨론 사람들도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자기가 택하신 그들 중의 두 가계를 버리셨다고 합니다. 두 가계란 다윗의 왕가와 제사장 가문을 말합니다. 그런데 왕과 제사장이 다 사로잡혀 포로로 끌려가기에 바벨론이나 주변의 나라들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택하신 두 가계를 버리셨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을 그들이 나라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본문 25~26절을 보시면 20절의 말씀을 반복하시면서 자기 언약을 이루어내시겠다고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주야와 맺은 언약은 창세 이후로 계속 유지되고 있습니다. 또한 천지의 법칙이 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입니다. 이러한 언약과 규칙들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입니다. 모든 인류가 다 달려들어도 날짜 하나 바꾸지 못합니다. 해를 뒤로 물릴 수도 앞서서 더 나아가게도 하지 못하는 무능한 인생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언약을 인간이 깨뜨릴 수 있다거나 여호와께서 정하지 않았다면 야곱과 다윗의 자손을 버리고 다시는 다윗의 자손 중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다스릴 자를 택하지 아니하리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내신다는 역설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대로 비록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왕도 제사장도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기 약속은 신실하셔서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 포로 된 자를 돌아오게 하고 불쌍히 여기시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은 자기 약속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그런데 그렇게 약속을 지키시는 모습이 겉으로 볼 때에 나라가 완전히 망하는 모습으로 보이지만 이런 방식을 통하여 자기 약속을 이루어내십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저주 받아 죽는 모습으로 보이지만 그 십자가가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다 이루시는 자리가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를 따르고자 하는 자들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스스로 예수님을 따라 나설 자가 없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금욕을 하고 극기를 하는 것은 보다 차원 높은 자기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돌이질 하면서 침 뱉고 돌아서는 그 십자가를 누가 하나님의 약속이 다 완성된 자리로 보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하신 대로 성취할 그 날이 이미 십자가로 완성이 되었다는 것을 전하는 것이 십자가의 도입니다. 그러면 누가 믿을 수 있겠습니까? 스스로 믿고자 하는 자들은 다 떨어져 나가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만 믿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과 성취를 통하여 이루어내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믿은바 믿음의 내용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를 믿었습니다(롬4:17).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 성취를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음으로 믿는 믿음이란 없는데서 있게 하신 새로운 창조의 내용입니다. 이런 믿음의 선물을 받은 자들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세상이나 사람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오직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그 사실이 믿어지며 그 십자가가 삶속에서 실재가 되어 자신이 부인당하며 날마다 죽음에 넘겨지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의 결과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같은 믿음, 같은 말, 같은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러한 은혜가 제대로 맛보며 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