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설교 바로듣기]  [음성설교 다운받기]

 

전도서 5:10~20 만족하십니까? 2019. 4. 3

 

10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11 재산이 많아지면 먹는 자들도 많아지나니 그 소유주들은 눈으로 보는 것 외에 무엇이 유익하랴 12 노동자는 먹는 것이 많든지 적든지 잠을 달게 자거니와 부자는 그 부요함 때문에 자지 못하느니라

 

돈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풍요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돈을 사랑하고 풍요를 사랑하기 위하여 우상을 섬기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0절을 보니 돈과 풍요를 사랑하는 자들은 그것으로 결코 만족할 수 없다고 합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모으고 풍요하여졌다고 해도 그것이 더욱 큰 갈증을 일으킬 뿐이지 참된 만족이 없으니 이것도 헛되다고 합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나도 좀 돈을 모아보고 풍요로워지고 나서 그런 말을 해 보고 싶다고 합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자신의 처지에 자족하지 못하여 화가 나는 것입니다.

 

본문 10~12절을 공동번역으로 봅니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치고 돈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없다. 욕심 부린다고 더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이 또한 헛된 일이다. 재산이 많으면 그만큼 먹여 살릴 사람이 많은 것, 그러니 많은 재산은 눈요기밖에 될 것이 없다. 막일을 하는 사람은 많이 먹든 적게 먹든 단잠이나 자지만, 부자는 아쉬운 것 없어도 뒤채기만 하며 제대로 잠을 못 이룬다.”

 

노동을 하는 자와 부자의 잠을 비교합니다. 노동자는 잠을 잘 자지만 부자는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합니다. 부자가 잠을 못 이루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겁니다. 사업에 대한 걱정도 있을 것이고, 다른 부자와의 경쟁도 있을 것이고, 너무 잘 먹어 배가 불러서 잠을 자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인생이 삼분의 일이 잠인데 그 잠을 제대로 못 잔다면 인생의 삼분의 일을 망친 것입니다. 말씀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래도 돈을 모아보아야겠다고 하는 사람은 열심히 모아보시기 바랍니다. 돈을 모으려면 수전노(守錢奴)가 되어야 합니다. 수전노란 돈을 지키는 노예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돈을 모으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이어지는 말씀을 보겠습니다.

 

본문 13~17절입니다. “13 내가 해 아래에서 큰 폐단 되는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곧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가 되도록 소유하는 것이라 14 그 재물이 재난을 당할 때 없어지나니 비록 아들은 낳았으나 그 손에 아무것도 없느니라 15 그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가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자기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16 이것도 큰 불행이라 어떻게 왔든지 그대로 가리니 바람을 잡는 수고가 그에게 무엇이 유익하랴 17 일평생을 어두운 데에서 먹으며 많은 근심과 질병과 분노가 그에게 있느니라

 

공수래(空手來) 공수거(空手去)라는 말입니다. 일평생의 수고가 하루아침에 다 날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재산을 모으기 위하여 얼마나 애를 썼는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할 틈도 없었습니다. 가족이나 건강을 돌볼 틈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악착같이 큰 재산을 모았지만 재난을 당하면 하루아침에 사라집니다. 사업이 부도가 날 수 있습니다. 무리하게 돈을 모으려고 하다가 불법이 발각되어 감옥에 갈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해가 되도록 소유한 결과입니다. 그렇지 않고 많이 모았다고 할지라도 죽을 때에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남겨진 재산으로 자녀들끼리 싸움만 일어날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삶은 어두운데서 먹고 많은 근심과 질병과 분노로 한 평생 보내는 헛된 삶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삶일까요?

 

본문 18~20절입니다. “18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그것이 그의 몫이로다 19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20 그는 자기의 생명의 날을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기뻐하는 것으로 응답하심이니라

 

새 번역으로 다시 봅니다. “18 그렇다. 우리의 한평생이 짧고 덧없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이니, 2)세상에서 애쓰고 수고하여 얻은 것으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요, 좋은 일임을 내가 깨달았다! 이것은 곧 사람이 받은 몫이다. 19 하나님이 사람에게 부와 재산을 주셔서 누리게 하시며, 정해진 몫을 받게 하시며, 수고함으로써 즐거워하게 하신 것이니, 이 모두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선물이다. 20 하나님은 이처럼, 사람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시니, 덧없는 인생살이에 크게 마음 쓸 일이 없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하늘 아래서 내가 수고하여 먹고 마시며 즐기며 사는 것도 하나님께서 짧은 인생 속에서 허락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먹고 살 돈과 재산을 하나님께 받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차이점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내가 수고하여 얻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아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모든 삶이 하나님의 선물로 알고 기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합니다. 말씀이 이러함에도 우리가 사는 것이 힘이 드는 이유는 자족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지난주일 오전에도 잠시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어떤 분이 목사님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요!’ 하는 문자가 왔습니다. 저의 답변은 잘 살려고 하니 힘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잘 살려고 하면 더 힘이 드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분이 이 설교를 들으시면 전도서를 읽어보라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행복이라는 것이 결코 물질의 풍성함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전도서는 모든 것이 헛되다고 합니다. 이 헛된 세상 속에서 사람이 자기 수고로 먹고 살아갈 수 있다면 이것으로 기뻐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신약까지 연결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6:7~10절입니다. “7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오늘 말씀과 연결이 됩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인데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로 알라고 합니다. 그런데 족한 줄을 알지 못하고 자기에게 해가 되도록 돈을 사랑하여 모으려고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부자가 되려고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집니다.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교회를 다니면서 들은 이야기는 하나님을 잘 섬기면 부자가 된다고 하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말한다면 성경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증언하기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합니다.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찌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만족하십니까? 더 이상 원하는 것이 없습니까? 지금 사는 것도 너무나 과분한 은혜인줄 아십니까? 찬송가 395장을 보면 천국 가고 싶지만 나의 공로가 없기에 예수 공로 힘입어 천국가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이것을 허락받은 자는 구주밖에 누구를 달리 찾아보겠느냐고 합니다. 복과 영생이 예수니 더 원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예수님이 만유의 주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만유(萬有)는 모든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신다면 더 원할 것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이런 자는 예수님 더 알기 원합니다.

 

시편 17:14~15절입니다. “14 여호와여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그들의 분깃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주의 손으로 나를 구하소서 그들은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들의 남은 산업을 그들의 어린 아이들에게 물려주는 자니이다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이 세상이 전부인 자들은 다른 사람들을 압제하고 은밀한 곳에 엎드린 사자처럼 남의 것을 삼킵니다(12). 이러한 자들의 만족은 이 세상에 속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들에게 핍박을 받는 믿음의 사람들의 만족은 주의 얼굴을 뵙는 겁니다.

 

시편 73:23~28절입니다. “24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26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27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악인의 형통함과 의인의 고난에 대하여 고민하다가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찬송하는 내용입니다. 자신의 그런 생각이 우매 무지한 짐승과 같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께서 자신을 붙들어 주셔서 알게 된 것은 그런 자들이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전히 부조리한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사는 것임을 알고 하늘과 땅에서 주 밖에 사모할 이가 없다고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도 이런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의 답변은 의인은 믿음으로 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주를 떠나는 자가 망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복임을 알기에 더욱 주를 사모합니다.

 

전도서 1:8절입니다.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이미 앞에서 본 말씀입니다. 해 아래서 이것이 새로운 것이라고 할 것이 없습니다. 새로운 곳을 여행하고 새로운 것을 먹는다고 하여도 그것으로 채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에 영원한 만족이 되시는 분이 오시지 않으면 그 어떤 것으로도 만족이 안 됩니다. 왜 인기가 많고 돈이 많은 사람들이 약물에 의존한다는 뉴스들이 나옵니까? 인기와 돈이 있어도 그 마음의 만족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만족은 어디서 옵니까?

 

고린도후서 3:5절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사람들은 만족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생들은 자기들의 마음과 생각과 계획이 어려서부터 항상 악한 것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만족하게 살아야한다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어 있습니다. 나의 만족을 내가 설정해 놓고서 그 만족을 위하여 살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기준으로는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만족이 되지 않습니다. 사업도, 취미도, 결혼도, 종교도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으로는 결코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참된 만족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것들만이 우리에게 참된 만족이 됩니다.

 

고린도후서 3:6절입니다.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우리의 만족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인데 하나님의 만족은 우리가 새 언약의 일꾼이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새 언약은 하나님의 모든 약속의 완성이기에 하나님의 만족이며 그 하나님의 만족인 새 언약을 받은 자들도 새 언약으로 만족합니다. 율법의 조문도 하나님께 온 것이기에 영광스러운 것이지만 율법의 조문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은 살리는 것인데 그 영으로 한다는 것이 새 언약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살리려고 하는 것이 육이며 율법입니다.

 

고린도후서 3:15~18절입니다. “15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16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새 언약은 자유를 줍니다. 자유만이 아니라 주의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이 안에서만이 참 만족입니다. 더 이룰 것이 없습니다. 다 이루신 그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참된 만족과 참된 안식입니다. 높아지지 않아도 성공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입니다. 그런데도 아직 살아가야하는 이유는 그 사랑과 그 은혜를 더 알아가는 것이며 이것을 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당장 이 세상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것이 더 좋지만 사명 때문에 산다고 합니다.

 

고린도후서 12:7~10절입니다.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1)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무는 자들은 약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은혜를 받은 자들은 만족함 정도가 아니라 과분한 은혜임을 알아가게 됩니다.

 

에베소서 3:14~21절입니다.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성도의 만족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나타난 그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