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동영상 설교]

에스겔 44:15~27 무엇이 복인가? 2013. 1. 2

 

15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 행하여 나를 떠날 때에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들은 내 성소의 직분을 지켰은즉 그들은 내게 가까이 나아와 수종을 들되 내 앞에 서서 기름과 피를 내게 드릴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6 그들이 내 성소에 들어오며 또 내 상에 가까이 나아와 내게 수종들어 내가 맡긴 직분을 지키되 17 그들이 안뜰 문에 들어올 때에나 안뜰 문과 성전 안에서 수종들 때에는 양털 옷을 입지 말고 가는 베 옷을 입을 것이니 18 가는 베 관을 머리에 쓰며 가는 베 바지를 입고 땀이 나게 하는 것으로 허리를 동이지 말 것이며 19 그들이 바깥뜰 백성에게로 나갈 때에는 수종드는 옷을 벗어 거룩한 방에 두고 다른 옷을 입을지니 이는 그 옷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할까 함이라 ,,,,,,,,,,,,,,,,,,,,,,,,,,,,,,,,, 27 성소에서 수종들기 위해 안뜰과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속죄제를 드릴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말을 주고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인사말 중의 복이 어떤 복입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면서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말합니다. 그 중에 제일은 돈입니다. 스마트 폰으로 오는 어떤 영상 메시지는 새해에 돈 벼락을 맞으라는 것도 있습니다. 이런 인사는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주로 하는 인사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에게 과연 복은 무엇입니까?

 

시편 73:25~28절입니다. “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26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27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시편 73편은 악인의 형통과 의인의 고난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되는 시편입니다. 그런데 그 결론이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언제 하나님을 가까이 하게 됩니까? 세상에서 고난을 당할 때입니다. 시의 시작은 악인의 형통과 의인의 고난에 대하여 실족할 뻔 하다가 성전에서 얻은 답이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복이라는 결론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리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율법과 여러 가지 제도를 주신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복임을 알리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지킨다고 여러 가지 규례를 지켜 행한 것은 여호와를 가까이 함이 복이라는 것을 안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원하는 복을 받아내기 위한 정성을 바치는 것으로 오해하였습니다. 그래서 제사를 드리고 성전을 짓고 율법을 지키는 모든 것들은 이 세상에서 말하는 복이라는 것을 받아내려는 수단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이사야 1:10~15절입니다. “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수한 제물을 드리고 온갖 절기를 지켰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일들이 다 여호와를 괴롭힌 일입니다. 이들이 제물을 바치고 절기를 지킨 것은 그들의 탐욕을 더하기 위한 것입니다.

 

오늘 새벽 기도회에 나오려고 보니 제 차 앞에 이중으로 주차를 해 놓았습니다. 한두 대는 밀고 나오는데 오늘 새벽에는 가득 차 있어서 도저히 밀고 나올 수가 없어서 다시 집으로 들어가 다른 목사의 설교를 기독교 방송에서 보았습니다. 어느 여자 목사인데 아주 열정적인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기록된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야 복을 받는다고 하면서 배고프다고 종자를 먹어버리면 아무 것도 거둘 것이 없다는 말을 합니다. 즉 먼저 많이 바쳐야 복을 받는다는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아직도 이런 설교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복이라고 하는 말씀도 그 복의 개념을 왜곡시키면 사람들이 복을 받기 위하여 온갖 열심을 냅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바로 이사야 선지자와 구약의 선지자들이 고발하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지금 에스겔서를 보고 있습니다. 에스겔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온갖 우상으로 성전에 가득 채웠기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중에 들려온 소식은 예루살렘성이 무너졌고 성전까지 파괴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이런 절망의 시기에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하여 새로운 성전의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이 성전은 사람들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시고 하나님께서 영광으로 임재 하셔서 다시는 떠나지 아니할 그런 성전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새로운 성전에서 여호와를 가까이서 예배할 자들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열방 중에서 택하시고 이들에게 성전을 짓게 하시고 제사를 드리게 하신 것은 여호와를 가까이 하는 것이 복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철저하게 실패하였습니다. 율법도 제사장도 선지자도 왕들도 다 실패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 레위지파를 구별하여 여호와의 성전에서 봉사하게 하였지만 레위지파도 다 실패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시면 레위 지파 중에 사독가문은 제사장의 직분을 하도록 허락을 받습니다. 사독도 역시 죄인이며 그들이 온전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새로운 성전에서 사독의 가문이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까? 먼저 에스겔서에서 찾아봅니다.

 

에스겔 40:46절입니다. “북쪽을 향한 방은 제단을 지키는 제사장들이 쓸 것이라 이들은 레위의 후손 중 사독의 자손으로서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가 수종드는 자니라 하고” 새로운 성전에서 사독의 자손이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가 수종들게 합니다. 에스겔 43:19절입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를 가까이 하여 내게 수종드는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에게 너는 어린 수송아지 한 마리를 주어 속죄제물을 삼되” 레위지파 중에 왜 사독의 자손만을 말하는 것인지 에스겔 48:11절을 봅니다. “이 땅을 사독의 자손 중에서 거룩하게 구별한 제사장에게 돌릴지어다 그들은 직분을 지키고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될 때에 레위 사람이 그릇된 것처럼 그릇되지 아니하였느니라” 사독은 그들의 직분을 지키고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될 때에 레위 사람도 그릇되었지만 사독은 그렇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사독의 그릇되지 않음을 성경 두 곳에서 보겠습니다.

 

사무엘하 15:24~25절입니다. “24 보라 사독과 그와 함께 한 모든 레위 사람도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어다가 하나님의 궤를 내려놓고 아비아달도 올라와서 모든 백성이 성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도다 25 왕이 사독에게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궤를 성읍으로 도로 메어 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역하였을 때에 사독은 다윗 편에 섭니다. 그래서 언약궤를 메고 다윗을 따르고자 할 때에 다윗은 언약궤를 도로 예루살렘 성으로 메고 가라고 합니다. 여호와께 은혜를 입으면 자기를 인도하여 언약궤를 보일 것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압살롬의 반역 때에 사독은 다윗 편에 섭니다. 만약 압살롬의 반역이 성공하면 다윗 편에 선자는 처형을 당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열왕기상 1:5~8절입니다. “5 그 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오십 명을 준비하니 6 그는 압살롬 다음에 태어난 자요 용모가 심히 준수한 자라 그의 아버지가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고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7 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그들이 따르고 도우나 8 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선지자 나단과 시므이와 레이와 다윗의 용사들은 아도니야와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이번에는 다윗의 노년에 아도니야가 반역합니다. 이때 제사장 아비아달은 반역자의 편에 서는데 사독은 역시 다윗 편에 섭니다. 사독에게는 반역의 무리들이 접근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모습이 사독의 모습입니다.

 

다른 레위지파나 다른 제사장들과 달리 사독의 이런 모습으로 인하여 새로운 성전에서는 사독의 자손들이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이 이러한 사독의 조상들의 충성됨으로 인한 보상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어떤 인간도 스스로의 능력과 자격으로는 여호와 앞에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로마서 3:23절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사독도 이 범주에게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독의 자손들이 새로운 성전에서 제사장의 직분을 맡을 수 있는 것입니까? 이것은 사독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무엇을 보여주기 위한 모델입니다.

 

출애굽기 20:3~6절입니다.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우상을 섬기면 그 자손들이 삼사 대에 걸쳐 죄를 갚지만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여호와를 사랑하여 그의 계명을 지켜서 그의 후손에게 은혜를 끼칠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완벽하지는 않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으로서 사독이 선택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제사장들은 다윗을 반역하여도 사독은 반역하지 않는 모습이 장차 나타날 제사장은 완벽하게 여호와께 충성함으로 그를 믿는 자들이 여호와의 성전에 거하게 되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규례들을 에스겔 44:16~26절을 봅니다. “봉독” 제사장들이 직분을 행할 때에 양털로 된 옷을 입지 못하게 합니다. 제사에 사람의 땀이 들어가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피와 땀을 흘려야 되는 것으로 여깁니다. 죄인에게서 나오는 분비물은 더러운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거룩하신 여호와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제사장의 옷도 구별되게 다루어야 합니다. 하나님 가까이 한 것은 거룩한 것이기에 죄인들이 거룩함에 접촉되면 해를 당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머리 모양이나 포도주를 마시지 말 것과 결혼의 예와 죽은 자에 대한 접촉을 피할 것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제사장의 규례를 완벽하게 이루어 낼 자가 사실은 아무도 없습니다. 겉모양은 어느 정도 지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내용에 이르기까지 한 결 같이 충성한 제사장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나 사독은 장차 나타날 충성된 대제사장을 보여줍니다.

 

히브리서 3:1~6절입니다. “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2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 3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4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5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6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성소는 종으로 충성한 모세가 아니라 아들로 충성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입니다.

 

히브리서 10:19~22절입니다.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무엇이 복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이 복입니다. 이것이 영원한 생명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처를 정하시고 사시는 것입니다. 이런 복을 에스겔서에서는 예언하였고 신약에서는 밝히 드러내신 것입니다. 다음 주일 낮에 볼 말씀을 미리봅니다.

 

에베소서 3:12절입니다.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거룩하신 하나님께 죄인이 나아가면 심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에스겔이 예언한 이 복을 더욱 많이 맛보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