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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 1:9~11 내 사랑아! 2019. 11. 27

 

9 내 사랑아 내가 너를 바로의 병거의 준마에 비하였구나 10 네 두 뺨은 땋은 머리털로, 네 목은 구슬꿰미로 아름답구나 11 우리가 너를 위하여 금 사슬에 은을 박아 만들리라

 

지난주에 아가서 설교를 들은 어떤 분이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솔로몬과 술람미의 사랑이야기가 그리스도와 교회의 이야기임을 알겠지만 그런데 솔로몬의 아내가 너무 많았기에 술람미도 그 많고 많은 여자 중의 한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가서 본문에서 솔로몬의 왕비가 육십 명이요 후궁이 팔십 명이요 시녀가 무수하다고 합니다(6:8). 이때는 아직 많지 않습니다. 나중에는 후궁이 칠백이며 첩이 삼백이었습니다(왕상 11:3). 이런 내용을 보면 솔로몬이 술람미를 향하여 사랑한다는 말이 그저 수많은 여인 가운데 하나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한 것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두 곳의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아모스 3:2절입니다. 내가 땅의 모든 족속 가운데 너희만을 알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하셨나니아모스 선지자는 남 유다 출신의 농부인데 북 이스라엘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가 됩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책망하십니까? 1절부터 보면 애굽에서 올라온 모든 족속 가운데 내가 너희만 알았다고 합니다. 이스라엘만 알았다는 것은 다른 족속을 모르시는 것이 아니라 너희만 선택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이 술람미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다른 수많은 여인들이 아니라 너만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우리도 가끔씩 경험하는 내용입니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정말로 사랑하게 되면 세상의 그 어떤 아름다운 여자도 그 남자에게는 안 보이는 것입니다. 여자도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볼 때에도 수많은 학생들이 같은 교복을 입고 있고, 군복을 입고 있어도 자기 아이만 눈에 확 들어오는 겁니다. 그런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는 너만 알고 너만 사랑한다면 그런 것입니다. 천지만물을 동원하여서라도 주님의 사랑을 증거 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1:18~22절입니다.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베드로가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도망갔습니다. 부활하신 후에 다시 찾아오셔서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후에 양을 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어떻게 죽을 것인지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요한을 보고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느냐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 그게 네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하시면서 너를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아직도 옆 사람이 신경 쓰이고 목사의 눈치를 보면서 신앙생활 한다면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종교 생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너는 나만 보라고 하시면 나도 주님만 보면 됩니다.

 

지난주에 본 말씀 5~6절을 먼저 봅니다.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답다고 합니다. 이것은 신부된 교회가 신랑 되신 예수님께서 고백하는 말이 됩니다. 신랑 되신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전부를 신부에게 주셨습니다. 그 십자가에서 살과 피를 주신 것은 전부를 주신 것입니다. 그 사랑을 받았다면 나의 형편이 어떠하든지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하든지 상관없이 나는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받았기에 그 사랑을 주신 분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사랑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고받고 하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사랑이라는 것은 거래의 주고받음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은 일방적으로 주십니다. 그 일방적인 사랑을 받고 나니 그 사랑을 알게 됩니다.

 

요한일서 4:9~13절입니다.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의 십자가로 죽은 우리를 살려내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반응한 조건이 아닙니다. 그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과 성령을 보내심을 통하여 우리가 그 사랑을 알게 됩니다. 이런 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났고 함께 하늘에 앉혀진 자들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며 또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알고 믿게 되는 것도 성령을 주심으로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기에 성령이 임한 자는 성령의 조명으로 성경을 보게 되면 아가서가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으로 봅니다.

 

오늘본문 9절을 봅니다. 내 사랑아!’ 이 말은 남자가 하는 말입니다. 히브리어를 풀어쓰면 내가 사랑하는 여인아!’입니다. 지난주에는 여인이 남자를 찾아가는 이야기였습니다. 물론 그 사랑을 받았기에 그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간 것입니다. 이제 만났습니다. 그러므로 남자가 여자를 향하여 내 사랑이라고 하면서 바로의 병거를 모는 준마(駿馬)에 비한다고 합니다. 남자가 여자를 아름답다고 할 때에 최고의 가치를 가진 것으로 비유를 한 것입니다. 병거와 준마의 가치를 봅니다.

 

열왕기상 10:28~29절입니다. “28 솔로몬의 말들은 애굽에서 들여왔으니 왕의 상인들이 값 주고 산 것이며 29 애굽에서 들여온 병거는 한 대에 은 육백 세겔이요 말은 한 필에 백오십 세겔이라 이와 같이 헷 사람의 모든 왕과 아람 왕들에게 그것들을 되팔기도 하였더라솔로몬의 지혜와 부를 말하면서 나온 기록입니다. 이 당시 최고의 말과 병거는 애굽 산입니다. 말과 병거를 수입하여 다른 나라에 팔기도 하였습니다. 말 한 필에 백 오십 세겔이라면 노예 몸값의 다섯 배입니다. 그런데 바로 왕의 말은 가치로 환산할 수 없습니다. 그 정도로 아름답다고 하는 말입니다.

 

본문 10절입니다. 네 두 뺨은 땋은 머리털로, 네 목은 구슬꿰미로 아름답다고 합니다. 술람미는 예루살렘 성안에 사는 여인들처럼 꾸미고 살 수 없는 여인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모든 인위적인 장식으로 꾸민 여인들보다 들판에서 양들을 치고 포도원을 돌보느라고 새까매진 이 여인을 가장 아름답게 보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나의 기준을 가지고 저울질하면서 이러면 사랑하고 저러면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법입니다. 법으로는 참된 사랑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참된 사랑은 법을 통한 사랑이 아니라 왕이 아름답다고 선포하는 사랑입니다. 여기에 누가 의의를 걸 수 없습니다. 왕이 아름답다고 하는데 이의를 제기하면 이것이 사탄입니다.

 

욥기 1:6~12절입니다. “6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온지라 7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 8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9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10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11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1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천상회의에 사탄도 시립(侍立)하여 있습니다. 아가서 식으로 표현하면 하나님께서 욥을 아름답다고 하십니다. 그러자 사탄이 욥이 까닭 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무언가 받은 것이 있기에 사랑하는 것이니 그 받은 것을 없애버리면 주를 욕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로 인하여 욥은 재산과 자식이 다 날아갔지만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시험도 통과하였습니다. 그런데 욥의 친구들이 와서 꼭 사탄이 하는 말을 합니다. 네가 이렇게 망한 것은 죄를 지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그러나 욥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을 받는 것을 사탄은 배 아파하고 세상의 이론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왕이 아름답다고 하십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인 자들이 누구입니까? 사마리아 여인, 세리, 죄인, 창기, 이방인과 같은 자들이 예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들인 자들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자신들은 율법의 의로 흠이 없다고 하면서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아간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귀신이 들렸다고 미쳤다고 하며 신성모독으로 몰아 살해합니다. 이 정도로 인간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은 오직 은혜로 받은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점도 흠도 티도 없는 거룩한 신부가 됩니다(5:27).

 

본문 11절입니다. 우리가 너를 위하여 금 사슬에 은을 박아 만들리라화자가 복수로 되어 있기에 친구들 또는 합창단으로 표시하는 번역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도 신랑의 노래로 봐도 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기에 복수로 표현하든 단수로 표현하던 삼위 하나님은 함께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도 신랑이 신부를 위한 노래로 보면 됩니다. 그런데 금 사슬에 은을 박아 만든 것을 귀고리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어로 보면 금과 은으로 만든 장식물입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신랑이 신부에게 준 선물로 보면 됩니다.

 

솔로몬이 술람미를 향하여 내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면서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신부에게 선물을 줍니다. 이것은 신랑이 신부에게 주는 증표입니다. 금과 은으로 된 장식물은 신부가 신랑에게 받은 표시가 됩니다. 누가복음 15장에 한 여인이 열 드라크마 중에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를 찾는 내용이 나옵니다. 누가복음 15장은 잃어버린 양 백 마리 중에 잃어버린 한 마리 찾는 이야기와, 열 드라크마 중에 잃어버린 하나를 찾는 이야기와 두 아들 중에 잃어버린 한 아들을 찾는 이야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기 백성을 찾아내시는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두 번째 이야기 드라크마가 은전(銀錢)을 말합니다. 이것은 신부가 받은 빙폐물이기에 꼭 찾아낸다는 이야기를 한 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말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신랑이 신부에게 내 사랑이라고 하면서 아름답다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신부에게 선물을 줍니다. 이것은 신랑으로부터 받은 증거물입니다. 이 증거물을 받았지만 겉으로 여전히 옛날 모습 그대로입니다. 단지 사랑의 증거만 있습니다. 이 내용을 구약의 성도와 신약의 성도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구약에서는 오실 신랑을 기다렸습니다. 그리스도가 오신다는 그 약속의 증거를 받고서 기다리다가 만난 자들이 구약의 성도들입니다. 이들이 어디서 그 신랑을 만났습니까? 세상의 영광이 아닌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만난 자들이 구약의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신약의 성도들은 이미 오신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이미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혀진 자들입니다(2:4~6). 그러나 아직 이 역사 속에서는 그 영광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분명히 사랑의 증거를 받았지만 그 사랑의 증거가 이 역사 속에서 십자가이기에 그 사랑의 증거를 받은 사람만 아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받지 못한 자는 그 십자가의 사랑이 저주와 죽음과 실패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받은 자는 그 십자가가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임을 믿습니다(5:8).

 

로마서 8:28~30절입니다.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3)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맏아들의 형상을 입는 것이 의롭게 되고 영화롭게 된 것을 압니다.

 

이어지는 31~39절입니다.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우리 주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는 것이 내 사랑아라고 부름을 받은 신부된 교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