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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 7:11~13 합환채의 향기 2020. 4. 22    (436장)

 

11 내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 12 우리가 일찍이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퍼졌는지, 석류꽃이 피었는지 보자 거기에서 내가 내 사랑을 네게 주리라 13 합환채가 향기를 뿜어내고 우리의 문 앞에는 여러 가지 귀한 열매가 새 것, 묵은 것으로 마련되었구나 내가 내 사랑하는 자 너를 위하여 쌓아 둔 것이로다

 

지난주에 본 7:9~10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 9절의 앞부분은 솔로몬이 한 말이며 뒷부분은 술람미가 한 말입니다. 문자대로 보면 서로가 입맞춤을 통하여 서로 하나가 되는 과정이라고 보았기에 포도주로 하나 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하나 됨을 말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하나가 되는 것은 마치 최후의 만찬에서 한 포도주를 마시듯이, 한 성령을 마심으로 한 몸이 되는 그리스도의 몸이기에 어떤 차별도 없음을 보았습니다(고전12:12~13).

 

오늘본문 11절을 봅니다. 내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이 말을 누가 누구에게 합니까? 여자가 남자에게 합니다. 그러므로 7:9절 하 반절부터 8:3절까지는 다 여자의 말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여자가 남자를 향하여 내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함께 들로 가자고 합니다. 그리고 동네에서 유숙하자고 합니다. 전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서울의 어떤 변호사가 자신은 술람미를 하늘의 지혜로 본다고 하였습니다. 저도 동의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잠언 8장과 9장에서 지혜가 어리석은 길에서 돌이키라고 소리 지르며 부릅니다. 이 지혜가 천지를 창조한 지혜입니다. 그런데 이 지혜라는 단어가 여성명사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술람미를 하늘의 지혜로 볼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지혜의 말만이 아니라 잠언 7장에 음녀의 유혹도 있습니다. ‘음녀곁길로 가게 하는 여자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지혜는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고 합니다.

 

여기서 들이란 도시의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그리고 동네라고 번역된 단어는 히브리어로 카파르입니다. ‘카파르의 가장 중요한 뜻이 덮어주다는 뜻입니다. 이 단어로 촌락, 부락, 동네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덮어주고 가려주는 뜻이 더 많습니다. 들에 나가서 누워 자려면 무언가 덮어야 합니다. 그래서 새번역은 동네를 나무 숲속이라고 합니다. 들로 나가자는 말을 보면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여 광야로 나갑니다. 광야에서 구름기둥 불기둥이 덮어줍니다. 그렇게 인도되어 시내산 앞에서 모세가 계시를 받아 성막을 만들고 언약궤도 만듭니다. 언약궤의 뚜껑이 속죄소입니다. 속죄소의 이름이 캅포레트인데 카파르라는 단어에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들로 나가서 동네에서 살자는 말은 세상에 정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덮어주심을 입고 사는 나그네라는 말입니다.

히브리서 11:24~29절입니다.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27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28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그들을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29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성도란 이 땅에서 왕궁이 아닌 광야로 부름을 받아 나가는 자들입니다.

 

본문 12절입니다. 우리가 일찍이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퍼졌는지, 석류꽃이 피었는지 보자 거기에서 내가 내 사랑을 네게 주리라11절에서 들로 나가자고 하였습니다. 그 들에서 덮어줌 안에서 살아가자고 합니다. 그런데 그 들에서 다시 일찍이 일어나 포도원으로 가자고 합니다. 우리가 이미 앞에서도 보았습니다만 남녀가 서로가 동산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술라미가 솔로몬에게 포도원으로 가자고 합니다. 그러면 이 술람미가 포도원을 소유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술람미를 솔로몬이 포도원이라고 부릅니다. 그 포도원에서 내 사랑을 네게 주리라고 합니다. 이 말은 하나가 된다는 말이지만 광야와 포도원 이미지가 함께 나오는 곳을 찾아보겠습니다.

 

호세아 2:14~15절입니다. “14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15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4)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호세아 선지자가 음란한 여인 고멜과 결혼합니다. 음란한 여인이 음란한 행위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에게 그런 고멜을 값을 주고 사오라고 합니다. 이 내용은 음란한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돌이키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돌이키시는 내용이 들로 데려가서 포도원을 주시고 아골 골짜기를 소망의 문으로 삼아주신다고 합니다.

 

이어지는 16~22절입니다. “1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5)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17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그의 입에서 제거하여 다시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여 부르는 일이 없게 하리라 18 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19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20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2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내가 응답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답하고 하늘은 땅에 응답하고 22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답하고 또 이것들은 6)이스르엘에 응답하리라음란한 여인에게 은총과 긍휼과 진실함으로 장가들어 영원히 삶으로 여호와를 알리십니다.

 

이어지는 23절입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일하심이 이런 모습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너는 내 백성이라고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을 신약에서 봅니다.

 

로마서 9:22~25절입니다. “22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24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25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26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본문 11~12절에서 내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는 내용과 포도원으로 가서 내가 내 사랑을 네게 주리라는 말씀을 호세아서와 연결하여 로마서까지 살펴보았습니다. 북이스라엘이나 남 유다가 다 망합니다. 그런데 그 망한 자리에서 돌아오게 하시는 길도 광야로 인도합니다. 광야의 길을 거쳐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는 일을 통하여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오직 하나님의 긍휼을 보여주는 그릇의 용도로 구원됨을 바울사도는 호세아서의 말씀으로 해석 합니다(2:23,1:10).

 

본문 13절입니다. 오늘 본문이 술람미의 말입니다. 술람미를 지혜로 본다면 지혜가 솔로몬을 왕궁에서 들로 가자고 합니다. 들에서 유숙하려면 덮어주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 덮어준다는 단어가 동네라는 단어였습니다. 들에 무슨 동네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덮어주심 아래 거하는 길이 그 사랑을 받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들로 나가서 포도원에서 내 사랑을 네게 주겠다고 하는 그 술람미의 말은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주어지는지 호세아와 로마서를 통하여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이렇게 그 사랑을 받으면 하나가 됩니다. 그래서 지난주에 합환주라고 말하였고 오늘은 합환채가 나옵니다.

 

합환채를 새번역이나 공동번역에서는 자귀나무라고 번역합니다. 자귀나무는 우리가 어릴 때에 소 쌀밥나무라고 불렀던 나무입니다. 소가 이 나뭇잎을 잘 먹는다고 그렇게 불렀는데 이 나무의 껍질을 합환피라고 하고 그 나무를 합환수라고도 합니다. 이런 이름이 붙여진 것은 자귀나무의 여러 효능 중에 부부의 금실을 좋게 하기에 이런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합환채라는 단어가 나오는 곳은 이곳과 창세기의 딱 두 곳에서 나옵니다. 창세기 30장에 나오는 합환채의 내용을 보면 레아의 아들이 합환채를 그 어머니에게 주는 것을 라헬이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레아가 내 남편을 빼앗아 가더니 합환채까지 빼앗아 가려냐고 합니다. 야곱이 라헬을 사랑했지만 라반이 속여서 레아를 먼저 아내로 주었기에 순서상으로는 레아가 첫 부인입니다. 그런데도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였기에 라헬이 신랑을 거의 독차지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합환채를 주면 신랑을 언니에게 양보하겠다고 합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이 두 자매와 두 자매의 두 여종 사이에서 태어납니다. 그런데 야곱의 사랑을 받는 라헬에게는 자녀가 없고 사랑을 받지 못하는 레아에게는 자녀가 생깁니다. 제가 20년 전에 창세기 설교할 때에 레아가 자녀가 생긴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29:3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레아에게 총이 없음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무자하였더라여기서 총()은 은총 곧 사랑을 말하는데 개역개정에는 사랑으로 번역을 합니다.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 레아에게 하나님께서 은총을 베푸셔서 자녀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누구의 씨로 오십니까? 레아의 아들 유다를 통하여 오십니다. 그리고 야곱이 죽으면서 라헬 곁에 묻어달라고 하지 않고 레아 곁에 묻어달라고 합니다. 물론 이곳은 이삭과 아브라함이 묻혀있는 곳입니다만 야곱이 죽을 때에 하나님의 은총을 안 것입니다.

 

로마서 9:22~25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야곱은 젊어서 자기의 혈육의 취향을 따라 라헬을 사랑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한 레아에게 하나님은 자녀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라헬이 자녀 없음으로 인하여 자기 여종을 남편에게 주어 자녀를 얻습니다. 그 후에 합환채를 받는 조건으로 남편을 언니에게 주고 그 뒤에 요셉을 낳습니다. 그리고 베냐민을 낳고 라헬은 죽습니다. 이러한 합환채의 사건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사랑이 어디에 나타나는지 보여주십니다. 레아나 라헬이 다 죄인들입니다.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즉 자격도 없는 자들이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도 아닌 이방인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일이 십자가의 복음으로 일어납니다.

 

오늘 본문 13절을 다시 봅니다. 합환채가 향기를 뿜어내고 우리의 문 앞에는 여러 가지 귀한 열매가 새 것, 묵은 것으로 마련되었구나 내가 내 사랑하는 자 너를 위하여 쌓아 둔 것이로다합환채가 향기를 뿜어낸다고 합니다. 지난주에 본대로 합환주라는 포도주가 함께 마시고 이제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합환채의 향기라고 합니다. 이것은 신랑 되신 그리스도와 신부된 교회가 하나되는 향기입니다. 그러므로 합환채의 향기가 뿜어내는 것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둔 묵은 것과 새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합환채라는 히브리어의 어원을 찾아보면 솥, 단지, 항아리, 바구니의 뜻으로 쓰입니다.

 

예레미야 24:1~3절입니다. “1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와 유다 고관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옮긴 후에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성전 앞에 놓인 무화과 두 광주리를 내게 보이셨는데 2 한 광주리에는 처음 익은 듯한 극히 좋은 무화과가 있고 한 광주리에는 나빠서 먹을 수 없는 극히 나쁜 무화과가 있더라 3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무화과이온데 그 좋은 무화과는 극히 좋고 그 나쁜 것은 아주 나빠서 먹을 수 없게 나쁘니이다 하니

 

여기서 광주리라는 단어가 합환채라는 단어와 꼭 같은 단어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극히 좋은 무화과이며 무엇이 아주 나쁜 무화과입니까?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자들이 극히 좋은 무화과 열매이며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들이 극히 나쁜 무화과라는 말씀입니다. 유다가 망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데 조용히 잡혀가는 자들이 극히 좋은 무화과열매입니다. 반면에 예루살렘에 남아서 포로로 끌려가지 않고 예루살렘을 지키려고 하거나 아니면 이집트의 힘을 의지하려고 하는 자들이 극히 나쁜 무화과열매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겉으로 보면 정 반대의 모습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그곳에서 잠깐 성소가 되어주신다고 하십니다(11:16). 포로로 잡혀가는 그들 위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이것이 합환채 향기가 뿜어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본문 13절을 다시 봅니다. 합환채 향기가 뿜어 나오는 곳에서 묵은 것과 새것이 준비되어 있다고 합니다. 묵은 것과 새것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3:52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여러 가지 천국의 비유를 말씀하신 후에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 주인과 같다고 합니다. 옛것을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완성하시고 새것을 주심이 복음임을 아는 자가 제자입니다.

 

누가복음 5:36~39절입니다. “36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어울리지 아니하리라 3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쓰게 되리라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옛것 곧 율법주의에 붙들려 있으면 새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새 언약에는 인간의 공로가 없고 주님의 공로만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2:14~17절입니다. “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5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16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17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합환채의 향기를 살펴보니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자들이 합환채의 향기가 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들로 나가서 하나님의 덮어주심을 입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포로로 잡혀가지 않고 스스로 자기를 지키려고 이집트를 의지하거나 그곳으로 피하는 자들이 극히 나쁜 무화과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합환채의 향기를 통하여 복음의 향기를 미리 보여줍니다. 십자가로 다 이룬 복음의 내용은 생명을 얻는 자들에게는 합환채의 향기가 되지만, 사망에 이르는 자들에게 사망으로 보여서 도망갑니다. 오늘 본문의 합환채의 향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생명의 향기로 맡아지는 은혜가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