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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7:1~17 의로우신 재판장 2020. 7. 1

 

1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아오는 모든 자들에게서 나를 구원하여 내소서 2 건져낼 자가 없으면 그들이 사자 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 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런 일을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4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서 까닭 없이 빼앗았거든 5 원수가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게 하고 내 영광을 먼지 속에 살게 하소서 (셀라) 6 여호와여 진노로 일어나사 내 대적들의 노를 막으시며 나를 위하여 깨소서 주께서 심판을 명령하셨나이다 7 민족들의 모임이 주를 두르게 하시고 그 위 높은 자리에 돌아오소서 8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나의 성실함을 따라 나를 심판하소서 9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 10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11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12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13 죽일 도구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가 만든 화살은 불화살들이로다 14 악인이 죄악을 낳음이여 재앙을 배어 거짓을 낳았도다 15 그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16 그의 재앙은 자기 머리로 돌아가고 그의 포악은 자기 정수리에 내리리로다 17 내가 여호와께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존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오늘 본문도 표제어가 있습니다. (다윗의 식가욘, 베냐민인 구시의 말에 따라 여호와께 드린 노래) ‘식가욘이 무슨 곡조인지 알려진 바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시의 배경으로 베냐민인 구시의 말에 따라 여호와께 드린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울이 베냐민 지파입니다. 그러므로 베냐민 자파의 사람들이 사울 편에 서서 다윗을 고소할 수 있습니다. 압살롬의 반역으로 도망갈 때에 다윗을 저주한 시므이도 베냐민 지파입니다. 이뿐 아니라 에돔 사람 도엑도 다윗을 고발합니다. 그 결과 아히멜렉 제사장의 집안이 도륙이 납니다(삼상22:18). 엔게디 사람들과 십 사람들이 다윗을 고발하여 사울 왕이 직접 잡으려고 왔습니다. 그러나 다윗 편에 서는 요나단 같은 자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름부음 받은 자를 기준으로 양 편으로 나누어집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메시아는 어떤 모습일까요?

 

사무엘상 24:10~15절입니다. 오늘 여호와께서 굴에서 왕을 내 손에 넘기신 것을 왕이 아셨을 것이니이다 어떤 사람이 나를 권하여 왕을 죽이라 하였으나 내가 왕을 아껴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을 들어 내 주를 해하지 아니하리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기 때문이라 하였나이다 내 아버지여 보소서 내 손에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소서 내가 왕을 죽이지 아니하고 겉옷 자락만 베었은즉 내 손에 악이나 죄과가 없는 줄을 오늘 아실지니이다 왕은 내 생명을 찾아 해하려 하시나 나는 왕에게 범죄 한 일이 없나이다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옛 속담에 말하기를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 하였으니 내 손이 왕을 해하지 아니하리이다 이스라엘 왕이 누구를 따라 나왔으며 누구의 뒤를 쫓나이까 죽은 개나 벼룩을 쫓음이니이다 그런즉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어 나와 왕 사이에 심판하사 나의 사정을 살펴 억울함을 풀어 주시고 나를 왕의 손에서 건지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될 만한 내용입니다. 다윗의 이 말이 시편 7편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죽일 마음이 전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악인들의 부추김으로 인하여 죽은 개나 벼룩 같은 나를 쫓아 왔느냐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재판장이 되셔서 나와 왕 사이에 심판하여 달라고 합니다. 왕은 나를 죽이려고 하였지만 나는 왕에게 범죄 한 일이 없다는 것을 왕의 옷자락을 벤 것으로 증거를 보여줍니다. 그러자 사울이 잠시 제정신이 돌아와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왕위를 넘겨주실 것을 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다윗에게 자신의 후손과 자신의 이름을 멸하지 않게 할 것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게 합니다. 다윗이 맹세하자 사울은 돌아갑니다만 나중에 또 다윗을 잡기 위하여 십 황무지에 왔습니다. 여기서도 다윗이 물병과 창을 가져감으로 죽일 수 있음에도 죽이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다윗의 이런 배경을 생각하고 오늘 본문을 보면 좀 더 이해가 됩니다.

 

본문 1~2절입니다. “봉독 여호와를 내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이미 여호와 하나님을 경험하였기에 이렇게 부르면서 주께 피한다고 합니다. 주께 피하는 이유는 자신을 쫓아오는 모든 자들이 사자 같이 찢고 뜯을까 한다고 합니다. 만약 주께서 건져주시지 않으시면 자신은 사자에게 찢겨 죽는 연약한 지승처럼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합니다. 다윗은 목동으로 사자가 양을 잡아먹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한 마리 양처럼 죽음의 위협 앞에 놓여있다고 합니다. 베드로의 표현으로는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합니다(벧전5:8). 구약이나 신약이나 주의 택함을 입은 자들에게는 반드시 대적이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속한 자는 세상이 사랑하지만 이 세상에서 택하심을 입은 자들은 세상이 미워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이 예수님을 미워하는 세상이라고 합니다(15:18~19). 그런데 성도는 이런 일로 인하여 더욱 주께 피합니다.

 

본문 3~5절입니다. “봉독 다윗이 자기 잘못으로 인하여 대적들에게 찢겨 죽는다면 마땅히 죽어도 된다고 합니다. 자기 손에 죄악이 있거나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서 까닭 없이 빼앗았거든 원수가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게 하고 내 영광을 먼지 속에 살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자기 저주가 됩니다. 다윗이 기름부음 받은 자로서 자기를 죽이려는 자를 두 번이나 살려주었습니다. 그런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대적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재판을 의뢰합니다. 자기 자신이 재판장이 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야고보서 4:11~12절입니다. “11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12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우리는 죄인인 주제에 형제를 비방하고 판단하는 재판관이 되려고 합니다. 복음을 알면 복음의 재판장이 되려고 합니다. 그러나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재판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본문 6~10절입니다. “봉독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을 모으시고 높은 자리 곧 보좌에 앉으셔서 모든 민족들을 심판하여 달라고 합니다. 그 심판은 의로운 심판입니다. 의로운 심판이란 세상에서 말하는 정의의 가치가 아닙니다. 세상에는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사람이 정의 사회를 구현한다고 합니다. 공정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정부도 결코 모든 사람들에게 공정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기의 환경과 가치관에 따라 정의나 공정의 개념이 다 달라집니다. 자기 나름의 의를 가진 자들이 의로우신 하나님께 재판하여 달라고 한다면 그들 자신이 먼저 심판을 받아 마땅한 자들이 됩니다. 그러므로 의로우신 재판장께 재판을 구하는 것은 자기 행위로 나온 의의 성실함이 아닙니다.

 

본문 8절을 다시 봅니다. 여호와께서 만민을 심판하십니다. 그런데 시편 기자는 자신의 의와 자신의 성실함을 따라 심판하여 달라고 합니다. 이 본문이 다윗의 시편이라면 다윗은 죄인이 아닙니까? 오늘 본문의 배경으로는 자기 잘못이 아닌데 핍박을 받기에 호소합니다만 다윗도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이렇게 자기의 의와 성실함을 따라 심판하여 달라고 하는 말은 본문 1절에서 나의 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의가 되신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의와 자신의 성실함을 따라 심판하여 달라는 말은 자기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만 믿는 성실함을 말합니다.

 

본문 9절입니다.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워달라고 합니다. 여기서 악인이란 하나님을 자기의 의로 삼지 않은 자들이 악입니다. 이들은 까닭모를 고난을 당하는 다윗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다윗이 죄를 많이 지어서 저렇게 고난을 당한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의 방패가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다고 합니다. 이런 고백이 나오는 것은 아브라함에게 임한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의 방패와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합니다(15:1). 여기서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15:6).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신약이 시작이 되고(1:1), 아브라함과 다윗이 받은 복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복이라고 로마서 4장에서 바울사도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로우신 재판장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세상의 정의나 공평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기준입니다.

 

본문 11~16절입니다. “봉독 하나님께서 의로우신 재판장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매일 분노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왜 매일 분노하시겠습니까? 인간들이 매일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피조물 중에 하나님을 거역하여 죄를 짓는 피조물은 인간뿐입니다. 만물보다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17:9). 그런데 사람들이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전적인 죄인인줄 아는 일은 오직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어 성령이 임한 자들만이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도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자들은 인간이 어떠한 죄인인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어려서부터 항상 악함을 이미 창세기에서 증거 합니다(6:5, 8:21). 사람의 생각하는 바가 어떠함을 하나님은 아십니다(31:21). 하나님은 우리의 체질을 아시기에 오직 하나님의 긍휼로 구원하십니다(103:14,15). 그런데도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낸 자기 의가 있다면 그 자기 의가 하나님의 의를 배척하게 됩니다.

 

로마서 1:18~23절입니다.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4)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자들에게 나타난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인간들이 타락하여 하나님께서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영광을 위하여 우상숭배를 하는 겁니다. 우상숭배란 자기를 위한 것이 우상숭배입니다. 이것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성경이 증거 하는 타락한 인간의 속성이 자기 영광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여도 자기를 위하여 하나님을 섬깁니다.

 

이런 죄악을 본문 14~16절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14 악인이 죄악을 낳음이여 재앙을 배어 거짓을 낳았도다 15 그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16 그의 재앙은 자기 머리로 돌아가고 그의 포악은 자기 정수리에 내리리로다악인이 수고하여 낳은 것이 다 죄악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인생들을 그대로 내 버려두시면 그것이 심판입니다. 내 버려두신 결과를 봅니다.

 

로마서 1:24~32절입니다. “봉독 그대로 내 버려두신 결과를 목록으로 말하자면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세상에 가득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매일 분노하시며 의로운 재판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이런 세상을 당장이라도 심판을 하셔야 하는데 왜 아직 재판을 하지 않습니까?

 

로마서 9:22~24절입니다. “22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24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오직 주님의 일방적인 택하심의 구원을 말하는 내용에서 주의 오래 참으심을 말씀합니다. 주께서 긍휼로 오래 참으시지 않으시고 매일 분노하셨다면 이미 세상은 노아 홍수로 끝이 났습니다.

 

디모데전서 1:15~16절입니다.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매일 분노하시는 의로우신 재판장께서 오래 참으시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자기 백성을 다 구원하시기까지 오래 참으십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의가 아닌 아브라함과 다윗이 받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이 복음을 바울이 전하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3:12~16절입니다.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15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2)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십니다. 그 날이 재림의 날입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오래 참고 기다리십니다. 회개하고 돌아오는 길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날이 오기까지 믿음으로 기다리는 자가 얼마나 될까요?

 

누가복음 18:1~8절입니다. “봉독이 내용은 우리가 잘 압니다. 그런데 밤낮 부르짖어 기도 응답을 받자는 내용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론이 7~8절입니다.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신다고 합니다. 택하심을 입은 자들은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습니다. 그런 자들의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 다시 오실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십니다. 자신이 세상의 재판장이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심판을 주님께 맡기고 믿음으로 사는 자들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의로우신 재판장의 재판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예수님이 우리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됨을 믿기에 재판을 의로우신 재판장에서 맡기고 삽니다. 우리 목숨 다하는 그날까지, 주님 다시는 오시는 그날까지 이 믿음으로 살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