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피관리 임집사님의 감기몸살로 녹화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에스겔 8:1-18 질투의 우상 2012. 1. 4

 

1 여섯째 해 여섯째 달 초닷새에 나는 집에 앉았고 유다의 장로들은 내 앞에 앉아 있는데 주 여호와의 권능이 거기에서 내게 내리기로 2 내가 보니 불같은 형상이 있더라 그 허리 아래의 모양은 불같고 허리 위에는 광채가 나서 단 쇠 같은데 3 그가 손 같은 것을 펴서 내 머리털 한 모숨을 잡으며 주의 영이 나를 들어 천지 사이로 올리시고 하나님의 환상 가운데에 나를 이끌어 예루살렘으로 가서 안뜰로 들어가는 북향한 문에 이르시니 거기에는 질투의 우상 곧 질투를 일어나게 하는 우상의 자리가 있는 곳이라 4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거기에 있는데 내가 들에서 본 모습과 같더라 5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제 너는 눈을 들어 북쪽을 바라보라 하시기로 내가 눈을 들어 북쪽을 바라보니 제단문 어귀 북쪽에 그 질투의 우상이 있더라...............17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보았느냐 유다 족속이 여기에서 행한 가증한 일을 적다 하겠느냐 그들이 그 땅을 폭행으로 채우고 또 다시 내 노여움을 일으키며 심지어 나뭇가지를 그 코에 두었느니라 18 그러므로 나도 분노로 갚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리니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에스겔이 첫 환상을 본지 약 14개월 후가 오늘 본문 1절의 여섯째 해 6월 5일, 주전 592년 9월 17일입니다. 이렇게 구체적인 날짜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성취가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역사의 시작과 진행과 결론이 역사 자체의 힘으로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 묵시의 힘으로 굴러가고 있음을 성경은 증거 하고 있습니다. 지금 바벨론 제국이 일어나서 유다를 포로로 잡아가는 것도 선지자들의 예언 속에 이미 선포된 내용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에 보이는 이 역사의 움직임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런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이 어떻게 선포되고 이루어졌는지 또 이루어질 것인지를 보아야 합니다.

 

왜 이렇게 보아야 하는가 하면 하나님의 묵시가 역사의 시작과 과정과 끝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묵시를 알지 못하면 우리는 눈에 보이는 역사 속에 함몰되어서 역사에만 목숨을 걸다가 역사가 마감되는 날 함께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의 증거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관심사는 항상 눈에 보이는 역사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리고 그 역사를 더욱 좁혀서 나를 중심으로 봅니다. 그래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지, 지구촌 곳곳에 어떤 환경재앙이 닥치는지 상관없이 나만 편하고 싶다는 원초적인 본능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보다는 내 몸 하나 편하고 싶은 것이 우리의 새해 소원이지 않았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오늘 우리들도 이런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게는 그대로 두시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십니다. 본문 1-3절을 보시면 유다의 장로들이 에스겔 앞에 앉아있습니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선지자이지만 그러나 답답한 마음에 장로들이 에스겔 앞에 앉아 있을 때에 여호와의 권능이 임합니다. 그 형상이 불같은 형상인데 허리 아래로는 불과 같고 허리 위로는 광채가 나서 단 쇠와 같다고 합니다. 그가 손으로 에스겔의 머리털 한 모숨을 잡으며 들어 올리는데 천지 사이에 올리시고 하나님의 환상 가운데 예루살렘으로 이끌어 성전의 안뜰로 들어가는 북향한 문에 이릅니다. 그곳에 질투의 우상, 질투를 일으키는 우상이 그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우상이 가득합니다.

 

출애굽기 20:3-5절입니다.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하나님의 이름이 질투의 하나님이신데 우상을 하나님의 성전 뜰에 세웠으니 하나님의 질투를 유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하고 맺은 우상숭배 금지의 언약조문을 배반한 것입니다.

 

본문 4-6절을 봅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겨야 할 성전에 우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우상이 있는 이 성전에 놀랍게도 하나님의 영광이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영광은 에스겔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던 중에 그발 강가에서 보았던 그 영광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움직이시지만 아직 성전을 완전히 떠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면서도 아직 우상을 버리고 주께로 돌아오지 않고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히려 더욱 우상을 섬기고 있기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의 우상숭배로 인하여 떠날 수밖에 없도록 그들이 만들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더 가증한 일을 보리라고 하십니다.

 

본문 7-13절입니다. 뜰 안의 담에 구멍이 있는데 에스겔을 이끌고 온 하나님의 신이 그 담을 헐라고 하여 담을 헐어보니 그 안에 문이 있고 그 문으로 들어가 보니 그 안에서 각양 곤충과 가증한 짐승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우상을 그 사방 벽에 그려놓았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식용으로도 금한 곤충과 짐승들을 벽에 그려놓고 그런 것들을 신이라고 분향하면 경배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장로 칠십 명인데 사반의 아들 야아사냐도 그 가운데서 분향하고 있습니다. 백성의 지도자요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장로들이 우상을 섬기면서 하는 말이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지 아니하시고 이 땅을 버렸으니 이제 우상을 섬기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이 쳐들어오고 나라가 망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들이 언약을 배반한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와야 하는데 나라가 망하게 된 것을 마치 하나님께서 언약을 지키지 아니함으로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신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잠언 19:2-3절입니다. “2 지식 없는 소원은 선하지 못하고 발이 급한 사람은 잘못 가느니라 3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날도 이런 모양입니다.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가르침과 명을 따르다가 얼마나 하나님을 원망하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본문 13절을 봅니다. 이보다 더한 가증한 일을 보리라고 합니다. 더 큰 가증한 일이 14절입니다.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북문에 여인들이 앉아서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고 있습니다. 담무스는 바벨론의 다산의 신인데 이 신이 죽어서 지하로 내려간 것을 인하여 때가 되면 애곡하는 것입니다. 바로 앞의 말씀에서는 장로들 70명이 성전 안에서 우상숭배를 하는데 이제는 여인들도 우상을 향하여 애곡하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에 오신 자매들이여 여러분들은 언제 우십니까? 평소에 울고 싶은 때가 언제입니까? 나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우십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밝히 보이지 않으실 때에 우십니까?

 

본문 15절에서 이보다 더 큰 가증한 일을 보이신다고 합니다. 더 큰 가증한 일이 16절입니다. 성전 안뜰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스물다섯 명이 여호와의 성전을 등지고 낯을 동쪽으로 향하여 동쪽 태양에게 예배합니다. 25명이란 제사장 24명이 돌아가면서 성전에서 수종을 드는데 한 명은 대제사장입니다. 그러므로 25명이란 제사장들이 여호와를 등지고 동쪽의 태양을 향하여 경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예루살렘 성전에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온통 우상숭배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의 우상숭배를 하고 있으니 다른 여인들과 백성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런 곳을 심판하십니다.

 

17-18절입니다. 에스겔에게 네가 보았느냐고 합니다. 에스겔이 본 것이 온통 우상숭배로 가득한 성전을 보았습니다. 이런 가증한 일이 적다고 하겠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그 땅을 폭행으로 채우고 또다시 내 노여움을 일으켜 심지어 나뭇가지를 그 코에 두었다고 합니다. 이것도 우상숭배의 일종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분노로 갚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면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어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고 합니다. 평소에 섬기던 우상에게나 구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심판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그대로 일어났습니다. 우상숭배로 인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고 남아있던 예루살렘의 성전도 완전히 파괴가 되었습니다. 여호와의 질투로 이렇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이런 말씀을 보면서 어떻게 적용을 해야 합니까? 많은 사람들이 구체적인 적용을 말해 달라고 하는데 그 적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성전에 온갖 우상숭배로 가득 채웠을 때에 질투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시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새 언약시대인 오늘 우리에게 무엇이 우상숭배가 됩니까? 형상물을 섬기는 것만이 아니라 모든 탐심이 우상숭배라고 골로새서 3:5절을 증거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탐심을 가지고 교회로 모이고, 탐심을 가지고 기도하고, 탐심을 가지고 예배하고, 봉사하고, 전도하면 이 모든 것도 우상숭배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의 성전은 성도가 성전입니다. 그런데 성도라고 말하면서 그 마음에 탐심이 가득하면 그것이 우상숭배입니다.

 

이러한 우상숭배의 자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새 언약시대의 우상숭배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가려버리는 것이 우상숭배가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이야기하면서도 세상의 성공이나 복을 말하는 것도 우상숭배이지만, 십자가의 보혈을 이야기하면서 계속하여 사람들을 금욕적으로 몰아가서 자신들이 소원하는 바를 받는다고 하고, 자기들이 받지 못하면 자식이 받고, 그것도 안 되면 하늘에서 받는다는 식으로 기도와 봉사와 헌금에 몰두하게 만드는 것도 탐심이라는 우상숭배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골로새서 3:1-5절을 봅니다.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우리가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면 이 말씀에 아멘이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이 너무 거북스럽다면 다시 살리심을 받은 사람인지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만약 그러하지 않고 계속하여 이 땅이 전부인줄 알고 땅의 것만 생각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됩니다. 이어지는 6절의 말씀을 봅니다.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이것들이란 바로 탐심으로 인한 우상숭배입니다. 이런 우상숭배의 근원은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선악과의 유혹을 받을 때에 선악과를 따 먹으면 너도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 우리 모두는 다 이 유혹의 지배아래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본능이지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는 우상숭배라는 말입니다.

 

설교시작 때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이 역사세계가 전부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묵시로 인하여 만들어진 것입니다(히11:3).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역사 속에 다 이루어지면 장마당에 멍석을 펴 놓았다가 파장이 되면 멍석을 말듯이 이 역사 자체를, 눈에 보이는 이 하늘과 땅을 멍석 말듯이 말아버립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망쳐온 역사를 보면서 아직도 기대할 것이 있습니까!

 

요한 계시록 6:12-17절입니다. “12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13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14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 15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틈에 숨어 16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질투와 하나님의 진노가 우상숭배 하는 자들에게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보여주신 것은 장차 온 세상에 나타날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역시 우상을 숭배하는 모든 자들에게 나타날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 진노가 바로 어린 양의 진노입니다. 일찍 죽임 당한 어린 양이신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다시 살아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온 세상이 창조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종말의 시대에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만 어린 양의 진노가 넘어가게 됩니다. 그 안에서만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마라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