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설교 바로듣기]  [음성설교 다운받기]

다니엘 8:1~27 정한 때 끝 2015. 9. 30

 

15 나 다니엘이 이 환상을 보고 그 뜻을 알고자 할 때에 사람 모양 같은 것이 내 앞에 섰고 16 내가 들은즉 을래 강 두 언덕 사이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있어 외쳐 이르되 가브리엘아 이 환상을 이 사람에게 깨닫게 하라 하더니 17 그가 내가 선 곳으로 나왔는데 그가 나올 때에 내가 두려워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매 그가 내게 이르되 인자야 깨달아 알라 이 환상은 정한 때 끝에 관한 것이니라 18 그가 내게 말할 때에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어 깊이 잠들매 그가 나를 어루만져서 일으켜 세우며 19 이르되 진노하시는 때가 마친 후에 될 일을 내가 네게 알게 하리니 이 환상은 정한 때 끝에 관한 것임이라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을 볼 때에 제일 방해가 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세대주의나 안식교에서 날짜들을 계산해내는 그런 방식들이 상당한 방해를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해석들 보다 더 방해가 되는 것은 내가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 것인가 하는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은 모든 인간들이 다 가지고 있습니다. 구원이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런 구원을 나를 위한 구원으로 생각하고 성경을 보면 성경은 답이 없습니다. 어떤 말씀을 보면 구원을 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말씀을 보면 도저히 구원을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말씀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본다는 것은 나를 위한 구원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봐야 해석이 됩니다. 성경이 그렇게 기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본문 다니엘 8:1~2절입니다. “1 나 다니엘에게 처음에 나타난 환상 후 벨사살 왕 제 삼년에 다시 한 환상이 나타나니라 2 내가 환상을 보았는데 내가 그것을 볼 때에 내 몸은 엘람 지방 수산 성에 있었고 내가 환상을 보기는 을래 강변에서이니라벨사살 왕 원년에 처음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 내용은 지난주에 보았던 다니엘서 7장의 내용입니다. 오늘 8장은 그 환상을 본 후 제 삼년에 다시 본 것입니다. 이 환상을 볼 때에 몸은 엘람 지방 수산 성에 있었지만 환상을 보는 배경은 을래 강변입니다. 수산성은 에스더의 배경이 되는 곳입니다. 을래 강변은 수산 성 가까이 있는 강으로 페르시아 만으로 흘러들어가는 강입니다.

 

3~4절입니다. “3 내가 눈을 들어 본즉 강가에 두 뿔 가진 숫양이 섰는데 그 두 뿔이 다 길었으며 그 중 한 뿔은 다른 뿔보다 길었고 그 긴 것은 나중에 난 것이더라 4 내가 본즉 그 숫양이 서쪽과 북쪽과 남쪽을 향하여 받으나 그것을 당할 짐승이 하나도 없고 그 손에서 구할 자가 없으므로 그것이 원하는 대로 행하고 강하여졌더라다니엘 7장에서는 바다에서 나온 짐승을 말합니다. 여기서는 강가의 짐승인데 두 뿔을 가진 숫양 입니다. 그 뿔이 다 긴데 하나의 뿔이 더 깁니다. 이 숫양이 서쪽과 북쪽과 남쪽을 들이받는데 당할 짐승이 없습니다. 이 짐승에 대한 해석은 역시 세상 나라의 왕을 말하는데 그 해석이 본문에서 나옵니다.

 

20절입니다. 네가 본 바 두 뿔 가진 숫양은 곧 메대와 바사 왕들이요두 뿔을 가진 숫양이 메대와 바사 왕들이라고 합니다. 이미 앞에서도 몇 번 언급이 된 메대와 바사의 왕들을 두 뿔 가진 숫양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환상을 다니엘이 알고 깨닫게 된 것은 자신의 능력이 아닙니다.

 

15~19절입니다. “15 나 다니엘이 이 환상을 보고 그 뜻을 알고자 할 때에 사람 모양 같은 것이 내 앞에 섰고 16 내가 들은즉 을래 강 두 언덕 사이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있어 외쳐 이르되 가브리엘아 이 환상을 이 사람에게 깨닫게 하라 하더니 17 그가 내가 선 곳으로 나왔는데 그가 나올 때에 내가 두려워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매 그가 내게 이르되 인자야 깨달아 알라 이 환상은 정한 때 끝에 관한 것이니라 18 그가 내게 말할 때에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어 깊이 잠들매 그가 나를 어루만져서 일으켜 세우며 19 이르되 진노하시는 때가 마친 후에 될 일을 내가 네게 알게 하리니 이 환상은 정한 때 끝에 관한 것임이라

 

다니엘이 환상을 보고 그 환상의 뜻을 알게 되는 것도 다니엘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통하여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서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이 음성이 가브리엘 천사에서 이 환상을 이 사람에게 깨닫게 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은 환상을 본 것도 자신의 의지가 아닙니다. 환상을 보여주시고 그 뜻도 가브리엘을 통하여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 천사가 다니엘에게 다가오자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립니다. 이 상태를 깊이 잠들었다고 합니다. 그가 다니엘을 어루만져서 일으켜 세웁니다. 주일오후에 보는 열왕기 상에서 로뎀나무 아래에 지쳐있는 엘리야를 어루만지는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그렇게 세운 후에 이러한 환상들은 정한 때 끝에 관한 것이라고 합니다.

 

5~8절입니다. “5 내가 생각할 때에 한 숫염소가 서쪽에서부터 와서 온 지면에 두루 다니되 땅에 닿지 아니하며 그 염소의 두 눈 사이에는 현저한 뿔이 있더라 6 그것이 두 뿔 가진 숫양 곧 내가 본 바 강가에 섰던 양에게로 나아가되 분노한 힘으로 그것에게로 달려가더니 7 내가 본즉 그것이 숫양에게로 가까이 나아가서는 더욱 성내어 그 숫양을 쳐서 그 두 뿔을 꺾으나 숫양에게는 그것을 대적할 힘이 없으므로 그것이 숫양을 땅에 엎드러뜨리고 짓밟았으나 숫양을 그 손에서 벗어나게 할 자가 없었더라

 

2~4절에서 두 뿔을 가진 숫양을 봤습니다. 이 두 뿔 가진 숫양이란 20절에서 본 대로 메대와 바사입니다. 두 나라를 한 숫양으로 봅니다. 이 숫양을 생각하고 있을 때에 한 숫염소가 서쪽에서 와서 온 지면에 두루 다니는데 땅이 닿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숫양은 알렉산더 대왕입니다. 그가 얼마나 빨리 정복을 하는지 그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리 달리는 숫양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그 숫염소의 뿔이 두 뿔 가진 숫양을 공격하는데 그 숫양이 대적할 힘이 없습니다. 이 숫염소가 심히 강대하여 가다가 그 큰 뿔이 꺾이고 그 대신에 현저한 뿔 넷이 하늘 사방을 향하여 났습니다.

 

이것은 알렉산더 사후에 헬라제국이 네 나라로 나누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주전 33년에 마케도냐 임금이 되어 332년에 수리아와 애굽을 점령하고 331년에 바벨론을 정복합니다. 330년에는 바사제국을 점령하였지만 얼마 있지 않아서 죽고 그 후에 제국이 네 개로 나누어집니다. 숫염소의 큰 뿔이 꺾이고 그곳에서 네 뿔이 나오는 환상이 장차 일어날 일들이며 이러한 일들이 이미 역사 속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나라들의 흥망성쇠가 역사내적인 원인이아니라 이 역사를 창조하신 그 뿐의 뜻에 따라 일어나는 일입니다.

 

9~14절입니다. “9 그 중 한 뿔에서 또 작은 뿔 하나가 나서 남쪽과 동쪽과 또 영화로운 땅을 향하여 심히 커지더니 10 그것이 하늘 군대에 미칠 만큼 커져서 그 군대와 별들 중의 몇을 땅에 떨어뜨리고 그것들을 짓밟고 11 또 스스로 높아져서 군대의 주재를 대적하며 그에게 매일 드리는 제사를 없애 버렸고 그의 성소를 헐었으며 12 그의 악으로 말미암아 백성이 매일 드리는 제사가 넘긴바 되었고 그것이 또 진리를 땅에 던지며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 13 내가 들은즉 한 거룩한 이가 말하더니 다른 거룩한 이가 그 말하는 이에게 묻되 환상에 나타난바 매일 드리는 제사와 망하게 하는 죄악에 대한 일과 성소와 3)백성이 내준 바 되며 짓밟힐 일이 어느 때까지 이를꼬 하매 14 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되리라 하였느니라

 

여기서 한 뿔이 남쪽과 동쪽을 치고 영화로운 땅 곧 유다도 공격을 합니다. 그렇게 하여 제사를 없애버렸다고 합니다. 이러한 제사가 다시 폐하여지는 때가 역사적으로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때입니다. 여기서 제사를 금하였다는 것은 제사가 드려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감으로 성전도 파괴되어 제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고레스와 다리오 왕의 칙령으로 예루살렘의 성전과 성벽이 재건되고 제사가 드려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재건된 성전의 제사를 폐한 것이 네 뿔 중의 한 뿔인 셀레우크스 제국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입니다. 그런데 그 제사가 폐하여 지는 기간을 이천삼백 주야라고 합니다.

 

이 날짜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이론들이 있습니다. 이천삼백일이 아니라 주야라고 하였으니 절반의 날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1150일이 되고 이것은 약 3년의 기간이 됩니다. 성전의 제사를 금한 것이 그렇게 오랜 기간이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에서도 성전에서는 제사가 드려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제사를 금한 기간을 2300주야를 하루를 일 년으로 계산하여 23백년으로 본 사람들이 안식교입니다.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명이 내린 해를 주전 457년으로 보고 23백년을 계산하니 1844년입니다. 그래서 이날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재림이 일어나지 않으니 성경을 잘못 해석한 부분이 있다고 하면서 지금은 그 날은 모르지만 하늘에서 심판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식의 날짜 계산들에 사람들이 왜 마음을 빼앗기는 것입니까? 앞에서도 말씀드린 대로 자기 구원 중심으로 성경을 보기 때문입니다.

이 내용들이 무슨 뜻인지 20~27절을 봅니다. “20 네가 본 바 두 뿔 가진 숫양은 곧 메대와 바사 왕들이요 21 털이 많은 숫염소는 곧 헬라 왕이요 그의 두 눈 사이에 있는 큰 뿔은 곧 그 첫째 왕이요 22 이 뿔이 꺾이고 그 대신에 네 뿔이 났은즉 그 나라 가운데에서 네 나라가 일어나되 그의 권세만 못하리라 23 이 네 나라 마지막 때에 반역자들이 가득할 즈음에 한 왕이 일어나리니 그 얼굴은 뻔뻔하며 속임수에 능하며 24 그 권세가 강할 것이나 자기의 힘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며 그가 장차 놀랍게 파괴 행위를 하고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며 강한 자들과 거룩한 백성을 멸하리라 25 그가 꾀를 베풀어 제 손으로 속임수를 행하고 마음에 스스로 큰 체하며 또 평화로운 때에 많은 무리를 멸하며 또 스스로 서서 만왕의 왕을 대적할 것이나 그가 사람의 손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깨지리라 26 이미 말한바 주야에 대한 환상은 확실하니 너는 그 환상을 간직하라 이는 여러 날 후의 일임이라 하더라 27이에 나 다니엘이 지쳐서 여러 날 앓다가 일어나서 왕의 일을 보았느니라 내가 그 환상으로 말미암아 놀랐고 그 뜻을 깨닫는 사람도 없었느니라

 

다니엘에게 환상의 내용을 설명하였습니다. 두 뿔 가진 숫양은 메대와 바사 왕임을 이미 앞에서 보았습니다. 그리고 두 뿔 가진 숫양을 물리친 숫염소는 헬라의 알렉산더 왕입니다. 성경에서 알렉산더라는 이름은 나오지 않지만 헬라 왕이라는 말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왕의 일과 사후에 네 나라가 나누어지는 환상을 보여주지만 헬라 왕의 이름과 네 나라의 이름과 그 끝의 한 뿔의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역사에서 유추하여 알렉산더로 보고 마지막 뿔을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로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환상의 결론은 항상 그런 짐승들이 결국 망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그 뿔이 아무리 강하여도 사람의 손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깨어질 것이라고 합니다(25). 이러한 환상을 보고 그 해석을 들은 다니엘이 여러 날 앓다가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환상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 뜻을 깨닫는 자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일이 언제 일어난다는 말씀입니까? 역사적으로는 이미 일어난 일들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을 정한 때 끝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15~19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오늘이 무슨 날입니까? 930일입니다. 이 날은 구월로 정한 마지막 날입니다. 이러한 달력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사람들이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달력을 통하여 우리는 9월의 끝을 압니다. 이미 정하여 놓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역사 경륜도 다 정하여 두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한 때 끝이라는 말씀이 17절과 19절에서 두 번이나 나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다 정하여 두신 뜻대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사야 46:9~11절입니다. “9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10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11 내가 동쪽에서 사나운 날짐승을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뜻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반드시 이룰 것이요 계획하였은즉 반드시 시행하리라하나님은 처음부터 종말을 알리시고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시편 33:8~12절입니다. “8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상의 모든 거민들은 그를 경외할지어다 9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10 여호와께서 나라들의 계획을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하게 하시도다 11 여호와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의 생각은 대대에 이르리로다 12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천지가 창조되었습니다. 또한 나라들의 계획을 폐하시고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하게 하십니다. 지금 온 땅의 나라들마다 온갖 계획과 사상들이 난무합니다. 국가 발전계획과 온갖 경제정책들을 세상의 최고의 브레인 집단들이 모여서 계획하고 이루어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다 무너집니다.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영원히 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자기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이 세상에 그 어떠한 흉흉한 소식으로도 놀라거나 두렵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끝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정한 때 끝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살다가 놀라거나 두려워할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보면 잠시잠간 있다가 사라지는 것임을 알기 때문에 세상 사람처럼 죽음의 종노릇하면서 벌벌 떨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세상의 변화에 두려워 떨고 온갖 종말론에 놀라서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면 그리스도의 영이 자기 안에 임하셨는지 점검해 보셔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 곧 성령이 임하여 예수님을 믿게 된 자들이라면 세상의 멸망, 그 정한 때 끝이 어떤 것인지 알기 때문에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요한일서 4:15~18절입니다. “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성도는 심판의 날에 담대함을 가진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심판은 최후의 심판입니다. 이 심판에서 두려움을 이가는 것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5:8). 그러므로 십자가 안에서 세상을 보면 이미 죽은 세상 곧 심판을 받은 세상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십자가를 보면 십자가가 심판을 받을 곳으로 보입니다(6:14). 그러면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다는 성도와 교회가 과연 세상이 볼 때에 죽은 것으로 보입니까? 죽기는커녕 땅의 짐승들처럼 더욱더 땅의 것들을 확보하려고 한다면 이것을 결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아닙니다. 그런 곳은 짐승의 나라와 다를 바가 없는 곳입니다.

 

그러면 구약에서 말하는 정한 때 끝은 어떤 날입니까? 구약에서의 끝 날은 여호와의 큰 날과 연결되는 메시아 오심의 날입니다. 메시아가 오면 불의한 세상을 심판하고 의인을 구원하신다는 사상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나라가 어려울 때 마다 메시아를 더욱 사모하였습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불의한 자들은 심판하시고 의로운 자들은 구원하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율법을 지키면서 자기들은 의롭기에 메시아를 맞이할 수 잇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선지자들은 그렇게 기다리는 메시아의 날이 심판의 날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과 12선지서를 통하여 자세하게 다 살펴보았습니다.

 

지금 다니엘서를 보면 구약의 선지서는 다 마무리가 됩니다. 구약에서 정한 때 끝 날은 여호와의 심판과 구원이 동시에 일어나는 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끝 날에는 새 언약의 약속과 성령의 부어주심의 약속들이 다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들도 선지서를 통하여 이미 다 확인한 내용들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증언 한 대로 메시아가 오셨습니다. 그 메시아가 바로 말구유에 태어나신 아기 예수입니다. 그가 메시아의 일을 다 이루어내신 것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심으로 부활 승천하셔서 성령을 부어주시는 분이 되셨습니다. 성령이 임한 사건이 종말의 사건입니다. 요엘 선지자의 예언대로 성령이 임함으로 종말이 온 것입니다.

 

이 종말의 현상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란 종말의 영인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자들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만이 유일하게 세상의 끝을 아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말은 교회라고 하는데 세상의 끝을 모르면 교회가 아닙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자들은 세상의 종말을 본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이미 정한 때 끝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완료된 것을 압니다. 이것이 묵시로 완성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시간과 공간 안에 살고 있기에 끝이 오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미 세례요한으로부터 세상의 종말이 선포된 것입니다. 타작마당에서 타작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이미 추수가 된 것이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심판입니다. 이것이 종말의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끝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봐야 합니다. 십자가 안에서 보면 세상은 이미 끝났습니다. 십자가 밖에서 세상을 보니 세상을 고쳐서 살만한 세상으로 만든다고 합니다. 세상만 이런 것이 아니라 교회도 개혁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교회를 사람이 개혁하여서 만들어낼 수 있는 교회는 없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을 주고 산 백성들이 교회이기에 어떤 인간의 노력으로도 교회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선포될 뿐입니다. 그러면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가 있을 것이며 돌을 들고 던지는 자들도 나올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이 이미 종말입니다. 이 종말의 현상이 역사 끝까지 갑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천국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되면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그렇게 예언한 메시아 오심의 세상 끝이 이미 십자가로 완료되었다는 것을 믿는 자들이 종말의 영 곧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자들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세상을 개혁하거나 교회를 개혁하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백성아 그곳에서 나오라고 하는 자들입니다. 이미 멸망한 세상에서 빨리 탈출하라고 엑소도스를 말하고 별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영광스럽게 변모한 그리스도와 함께 별세를 의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율법이나 선지자가 증거 한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정한 때 끝이 무엇인지를 아는 자들입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끝이 난 것을 압니다. 그런 자들은 십자가 앞에서 쉼을 얻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짐을 내려놓게 됩니다. 또한 하루라도 빨리 그 날이 임하기를 소원합니다.

 

마태복음 24:35~44절입니다. “35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 날과 그 때를 계산하는 자들은 자기 구원에 관심을 두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자들은 이미 그 정한 때 끝을 아는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 있는 자들은 세상의 끝을 본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들의 특징은 언제 주님 다시 오실지를 계산하며 기다리는 자들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싶어 하듯이 그 분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이미 부활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자들입니다. 부활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자들은 성령이 담보물이 되십니다.

 

고린도후서 5:1~10절입니다. “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2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3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4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6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이런 자세가 성령이 임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들은 부활의 처음 익은 열매를 담보물로 받았기에 몸의 구속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8:23). 이들이 정한 때 끝을 아는 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