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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5:1-10 통곡과 눈물로 간구 2011. 9. 7

 

1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택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2 그가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휩싸여 있음이라 3 그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신을 위하여도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4 이 존귀는 아무도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5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6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월요일에 이사를 하고 짐을 정리하느라 지금까지 피곤합니다. 이삿짐센터의 광고들을 보면 어떤 이사는 키만 들고 가면 된다는 말을 들었는데 지금까지 13번인가 이사하면서 처음에는 화물차만 빌려서 직접 정리하고 풀곤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짐이 좀 많아져서는 포장이사라고 해서 이사를 하였지만 언제나 뒷정리는 우리의 몫이었습니다. 전과 달리 이틀 정도 정리하고 나니 너무 힘이 들어서 설교준비도 제대로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전에 히브리서 설교원고의 이 부분을 찾아서 인용하면서 기도에 대한 초점을 보려고 합니다.

 

세상을 살면 여러 가지들이 필요합니다. 그 중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돈이 좀 넉넉하다면 이사도 수월하게 하고, 좀 더 넉넉하면 집을 사서 살면 이사도 하지 않고 살았으면 편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럴 때 갑자기 누가 나타나 돈을 준다면 구세주를 만났다고 합니다. 자기의 필요를 스스로 채울 수가 없을 때에, 누군가 필요를 채워주면 메시아를 만났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참된 구원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필요가 아닌 것을 위하여 기도하십니까?

 

갈라디아서 1:4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드리셨다고 합니다. 여기서 이 악한 세대란 어느 특정한 한 세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 전체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from the present evil age NIV, from this present evil world KJV).

 

그러므로 구원이란 이 악한 세상에서의 건짐인데, 우리는 이 악한 세상에서의 건짐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악한 세상에서 더 든든하고 안전하게 살기를 구하면서 구원하여 달라고 한다면 주님과 전혀 코드가 맞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면 찾을 것이요,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는 말씀에서, 마태복음 7장에서 좋은 것을 말하지만 이 좋은 것이 그저 세상을 사는 일에 좋은 것들이 아님을 누가복음 11장에서는 성령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찾고 구하고 두드려야 할 내용은 성령입니다.

 

성령이 임한 자들은 무엇을 구하며 살았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대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필요란 세상을 살기에 유익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대면한 자들의 절실한 필요란 무엇이겠습니까? 누가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전하여 주는 자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다 죽게 된 자리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감당할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제사장의 역할입니다. 또한 그 거룩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았는데 그 율법을 어기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변개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죄를 속죄 받을 길을 마련하여 두신 것이 제사장 제도입니다.

 

히브리서 5:1-4절입니다. 구약의 제사장의 역할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 가운데 취하여 하나님께 속한 일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대제사장이 무식하고 미혹한 자들을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신도 연약하였기 때문입니다. 무식하다는 것은 길을 알지 못하는 것이고, 미혹이란 길을 알면서도 무시하는 자들이라고 해설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니 세상에서 무식하다는 그런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것을 말하고, 미혹이란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순종치 못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을 대제사장이 율법으로 심판을 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용납하여 속죄의 제사를 지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사장 자신도 연약하기에 그들을 용납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제사장 자신이 연약하다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도 속죄의 제사를 지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존귀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의 제사장에 대한 말씀이고 이것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5-10절입니다. 시편 2:7절과 110:4절을 인용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을 증거 합니다. 그것은 너는 내 아들이니 오늘날 너를 낳았다고 하시는 말씀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 되리라는 말씀을 인용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택하심과 영원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씀입니다. 대제사장으로의 역할을 하려면 구약의 율법시대에도 하나님의 택하심이 있어야 하고 대제사장의 직분을 잘 감당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대 제사장의 역할 중에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7절에서 그는 육체의 계실 때에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체에 계심으로 사람의 연약을 다 체험하신 것입니다. 연약하여지심으로 인간의 연약을 아시는 것입니다. 5:2절에서 구약의 제사장들이 용납하는 것도 자신들도 연약하기에 용납을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만약 자신들이 완벽하다면 용납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연약하기에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한 육체로 계셨기에 인간의 모든 연약을 다 체험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2:18절입니다.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였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4:15절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느니라.”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이 세상의 자랑이 되는 유혹들을 다 받으셨지만 그런 유혹을 말씀으로 다 이기셨습니다. 그래서 죄가 없으십니다. 육체로 계실 때에 이런 유혹을 다 받으셨기에 우리의 연약함을 다 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육체에 계실 때에 죽음에서 구원하실 하나님께 심한 통곡과 눈물과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이 부족하여 이러한 통곡과 눈물과 간구를 하였겠습니까? 자신의 십자가 죽으심의 두려움과 고통을 인하여 이렇게 하였겠습니까? 물론 예수님께서 우리와 꼭 같은 몸을 입으셨기에 두렵고 고통스러운 길입니다. 그리고 더 고통스러운 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단절입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단절된 상태이기에 하나님 아버지와의 단절의 고통을 알지 못하지만 예수님은 아버지와 하나이시기에 유일하게 아버지와의 단절의 고통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심한 통곡과 눈물과 간구와 소원을 올렸습니다.

 

마태복음 26:38-42절을 봅니다. “봉독” 예수님께서 마음이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기도하라고 하였지만 제자들은 한 시간도 깨어 기도하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합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은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 기도를 세 번이나 하십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고 다른 방법이 없느냐는 간구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분명하였습니다. 아버지의 뜻은 아들이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2:27-22절을 봅니다. “봉독” 이 때를 면하여 하여 달라고 간구하시지만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라고 간구합니다. 아버지의 이름의 영광이란 아들의 십자가를 통하여 받으시기에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아들이 낮아지심과 십자가와 부활이 다 하나님의 영광이 됩니다. 이 일을 인하여 세상의 임금인 사탄이 쫓겨나고 예수님은 땅에서 들리심으로 모든 사람을 이끌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들리심은 십자가에 들리심입니다. 이로 인하여 하늘로 들리셔서 자기 백성을 이끌어 내시는데 이것이 여호와 경외입니다.

 

8절에서 그가 아들이시라도 고난으로 순종을 배워 온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배웠다는 말씀은 이곳이 유일합니다. 결국 예수님의 심한 통곡과 눈물과 간구란 자신의 죽음으로 자기 백성의 대속을 위한 간구였습니다. 이러한 경외를 하나님께서 들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신 것이 하나님을 경외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나서 이삭을 바친 사건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가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알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아브라함의 경외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을 십자가의 대속 물로 제공하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2:9-10절입니다. “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10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고난이 구원받을 자의 대신 죽음을 맛보신 것이며, 고난으로 온전케 하신 것이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의 뜻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그 죽으심의 자리까지 순종하심으로 무엇이 이루어진 것입니까? 9절에서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신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의 근원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의 순종으로 구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분의 변함없는 대제사장의 역할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 순종을 다른 말로 하면 믿음입니다. 이제부터 예수님을 믿는 것이 순종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씀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순종하는 길이 우리의 구원의 근거라고 하시면 또다시 우리는 아무른 소망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지상에서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지상이 이런 간구는 한편으로는 거절이면서 한편으로서는 응답입니다. 거절이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마셔야 하실 잔에 대하여 아버지께서 들어주지 아니하심을 그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잔을 마십니다. 이로 인하여 아버지의 뜻이 다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응답이 된 것입니다. 이 다 이루심이 어떻게 확증이 되는지 다음의 말씀을 봅니다.

 

히브리서 7:22-28절입니다. “22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23 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24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26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 27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28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새 언약의 영원하고 완전한 제사장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을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는 것은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간구하는 자들은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예수님의 눈물과 통곡과 간구의 기도를 알게 하시고 그런 기도에 우리도 참여시키시는 것이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세상의 썩어질 것을 구할 때에도 예수님의 기도를 받는 자들은 썩어질 것을 피하여 영원한 것을 눈물과 통곡과 간구로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