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설교 바로듣기]  [음성설교 다운받기]


잠언 18:13~24 죽고 사는 것 2017. 11. 20

 

20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대통령이 왜 탄핵이 되었습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오늘 말씀과 연결하여 보면 말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불법을 행하도록 지시한 것도 말 때문입니다. 국정농단이라는 것도 한 개인의 말이 국가전체를 흔들어 된 것입니다. 이러한 불법이 드러났을 때에 솔직하게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변명하고 덮으려고 하였기에 이 지경까지 왔습니다. 그러므로 방금 읽은 말씀처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다는 말씀이 세상에도 통하는 말씀입니다.

 

본문 13절입니다.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이 내용도 말과 연관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을 하는데 그 사연의 자초지종을 듣지 않고 중간에 잘라서 대답을 하는 자는 미련한 자이며 결국 욕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도 그렇지만 우리가 말을 하다 보면 상대방의 말을 다 들어주고 있을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빨리 잘라서 결론을 내려놓고 내 말을 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미련하여 욕을 당하는 모습입니다.

 

14절입니다. 사람의 심령은 그의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1)일으키겠느냐이런 말씀을 세상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마음 자체가 병이 들어있다면 어떻게 합니까? 여기서 심령이 히브리어로 하나님의 숨결인 루아흐입니다. 이 심령이 상하면 병만이 아니라 그 어떤 것도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숨결이 떠나가면 인간은 육체가 되기에 영적인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숨결이 담긴 그 말씀이 우리 안에 임하여야 일어설 수가 있는 것입니다.

 

15절입니다.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얻고 지혜로운 자의 귀는 지식을 구하느니라아담의 타락 이후로 모든 인간의 마음은 병이 들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에 관한 갈급함이 없이 그저 짐승처럼 자기 욕망에 이끌려 살아가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자를 잠언에서 명철한 자라고 합니다. 이러한 자들의 마음은 지식을 얻고자 합니다. 지식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생명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자가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16절입니다. 사람의 선물은 그의 길을 넓게 하며 또 존귀한 자 앞으로 그를 인도하느니라여기서 선물이란 감사와 존경과 사랑으로 선물을 줄 수가 있습니다. 그런 자들은 존귀한 자 앞으로 인도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말씀들도 단지 세상의 선물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선물로 연결시켜 봅니다. 사람의 선물이 그 길을 넓게 하고 존귀한 자 앞으로 인도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게 주시는 선물이 어떤 선물일까요? 에베소서 2:8절의 말씀을 보면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 구원으로 인하여 영원히 존귀하신 분 앞으로 인도되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가 그 안에서 그가 우리 안에서 살게 됩니다.

 

17절입니다. 송사에서는 먼저 온 사람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의 상대자가 와서 밝히느니라소송도 말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소송에서 먼저 온 사람의 말만 들어보면 그 사람의 말이 바른 것 같지만 그의 상대자가 오면 그 말의 진위여부가 밝혀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말을 들을 때에 한 사람의 말만 들으면 안 됩니다. 두 사람의 말을 다 들어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이 교부들에게 상당히 많습니다. 거의 대부분 이 말에 대한 해석을 자신의 죄를 먼저 고백하라고 합니다. 대적이 고발하기 전에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18절입니다. 제비 뽑는 것은 다툼을 그치게 하여 강한 자 사이에 해결하게 하느니라성경에서 제비뽑기 방식은 우림과 둠밈의 판결법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땅을 지파별로 분배할 때에 제비뽑아 결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문제에 있어서 제비뽑았습니다. 그런데 일상적인 일에서 제비뽑는 경우는 많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제비뽑는 다는 말은 강한 자 사이에 조금도 양보하지 않을 때에 제비를 뽑아서 다툼을 그치게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19절입니다. 노엽게 한 형제와 화목하기가 견고한 성을 취하기보다 어려운즉 이러한 다툼은 산성 문빗장 같으니라노엽게 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말로서 상대방을 노엽게 할 수가 있습니다. 아주 사소한 말 한 마디로 감정이 상해서 원수처럼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불화하게 된 것을 다시 화목한 관계로 회복하는 것은 견고한 성을 취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합니다. 이러한 다툼은 산성 문빗장처럼 견고한 것입니다. 왜 이렇게 견고한 것입니까? 자신이 옳다는 주장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도라면 비록 자신이 옳았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보면 그 견고한 성이 무너져 내려져야 합니다. 자신이 어떠한 죄인인지를 안다면 그 문이 열릴 것입니다.

22절을 먼저 봅니다.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라고 합니다. 그러면 아내를 얻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의 은총의 복을 받지 못한 자라는 말입니까? 그리고 결혼을 했는데 아내가 남편을 정말로 힘들게 하는 아내라면 어떻게 복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주석을 찾아보니 여러 번역에서 좋은 아내라고 합니다. 70인 역이나 다른 여러 번역에서 좋은 아내라고 번역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아내가 좋은 아내입니까? 잠언 31장에 나옵니다만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입니다.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23절입니다. 가난한 자는 간절한 말로 구하여도 부자는 엄한 말로 대답하느니라가난한 자가 부자에게 간절한 말로 무엇을 구하지만 부자는 엄한 말로 대답합니다. 세상은 정말 이렇습니다. 부자라고 마음이 넉넉한 것이 아닙니다. 부자가 되기까지 얼마나 자기를 위하여 쌓아두었으면 부자가 되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런 자들은 가난한 자의 간절한 구함도 응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누구에게 후하고 누구에게 엄합니까?

 

24절입니다. “2)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많은 친구의 각주를 보면 해를 끼치는 친구들이 있으나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피를 나눈 형제보다 친밀한 친구가 있습니까? 요나단과 다윗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나단과 다윗이 피를 나눈 가족보다 친밀하여 진 것은 요나단과 다윗의 말에서 서로 연락이 됩니다. 요나단이 한 말과 다윗이 한 말이 어떤 것인지 찾아보겠습니다.

 

사무엘상 14:6절입니다.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요나단이 블레셋과 대치된 상황에서 무기 잡은 소년과 자기 혼자 적진으로 향하면서 하는 말이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린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칠 때에 이런 말을 합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고 사울 왕 앞에 나가서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요나단과 다윗의 마음이 하나가 되고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합니다(삼상18:1). 이러한 사랑을 여인의 사랑보다 더한 사랑이라고 합니다(삼하1:26).

 

20~21절입니다. “봉독사람의 입에서는 나오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람의 말의 열매가 사람의 배를 채워주고 만족하는 것만이 아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에 힘에 달려있다고 합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도 말 한마디로 탄핵받을 수도 있습니다. 법정에서 증인의 말 한마디가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도 있습니다. 말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의 예비신자 교리교육에서 혀는 입의 중앙에 칼처럼 서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죄를 스스로 고발하기 위하여 그것을 날카롭게 사용하십시오. 그러나 그것을 사용해 여러분의 형제에게 상처를 입히지는 마십시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중 벽, 곧 이의 장벽과 입술의 담으로 혀를 둘러싸셨습니다. 해서는 안 될 말을 부주의하게 함부로 내뱉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처럼 말에 대하여 경고와 교훈은 많습니다. 우리의 혀가 무엇인지 성경을 봅니다.

 

야고보서 3:1~12절입니다. “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3 우리가 말들의 입에 1)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2)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10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11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12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혀 곧 말에 대하여 이렇게 엄중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혀에 달려있다는 말씀에 대한 주석과 같은 내용입니다. 혀가 배의 키와 같고 불과 같다고 합니다. 혀가 지옥의 불이라고 합니다. 세상의 길들이지 못할 것이 없지만 혀는 능히 길들이지 못하는 악이며 죽이는 독이 가득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말을 조심하자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세상에서 말조심하라는 교훈을 위하여 혀의 권세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1~2절과 9~12절을 보면 선생 된 자 곧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을 말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가 바르게 전하지 못하면 그 말이 곧 사람을 죽이는 말이 되기에 선생 된 자가 주의하라는 말입니다.

 

저도 말씀을 가르친다고 이렇게 앞에 서서 말하고 있습니다만 얼마나 말에 실수가 많은지 모릅니다. 설교시간에 성경구절을 잘 못 인용하는 것도 많고, 성경의 인물을 잘 못 말하는 것도 부지기수입니다. 게다가 본문의 내용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이 수두룩합니다. 설교를 하고 나면 다시 해야겠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는 전하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성경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이며(5:39), 인간의 행함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언약을 따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만을 전하려고 합니다. 그 피가 우리를 살리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3:6절입니다.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율법 조문을 전하는 모세는 죽이는 직분이라고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 곧 새 언약의 일꾼은 살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한다고 하는 자들이 아직도 율법조문처럼 전한다면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것입니다. 잠언에서 죽고 사는 일이 말에 있다고 하지만 이 말씀은 죽고 사는 일이 복음에 있습니다. 율법 조문으로 전하면 죽이지만 영은 살린다는 말은 새 언약을 전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가 새 언약입니다. 그 피가 우리를 살리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1:9~10절입니다. “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어제 전주에서 전한 말씀입니다. 영원 전 언약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복음이 무엇인지 너무나 선명한 말씀입니다. 마칠 때에 한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삼십년을 교회에 다녔는데 그동안 자신은 천국에 갈 수 없겠다고 생각을 했답니다. 이분은 믿어지지 않는 것은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언약을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이루어내신다는 말씀을 듣고서는 그런 하나님이라면 자기도 천국에 갈 수 있겠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12:32~37절입니다. “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33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3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말에 대하여 야고보서보다 더 엄중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귀신 들려 보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자를 고쳐주셨을 때에 무리가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고 놀라워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말하기를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서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다고 하시면서 강한 자를 결박하여야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할 수 있다고 하시면서 말로서 인자를 거역하면 용서를 받지만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함을 받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오늘날도 온갖 성령의 사역을 한다고 하는 자들이 전매특허처럼 사용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하는 사역이 성령의 사역인데 이것을 반대하면 영원히 용서 못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에 제자들조차 예수님을 부인하였습니다. 그런데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을 거역한다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십자가의 다 이루심으로 예수님께서 그 영을 넘겨주십니다. 그러면 그 성령이 임한 자는 자신의 죄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임을 알고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으로 그리스도의 일을 증거하고 믿게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그 입의 말로 심판을 받는다는 말씀은 우리의 속에 가득한 것이 말로 나옵니다. 우리 안에 온갖 율법주의와 자신의 의로 가득한 사람이라면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자신의 행위가 말로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성령이 임하게 되면 자신이 행한 일이 다 죄임을 알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의지하게 됩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의롭다 받는 종교개혁의 대 원리입니다. 이런 자는 오직 예수님의 은혜만 말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한 것은 우리 안에 가득한 것이 말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서는 무엇이 가득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