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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12:4~9 봉함(封緘)과 해제(解除) 2015. 12. 5

 

4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 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5 나 다니엘이 본즉 다른 두 사람이 있어 하나는 강 이쪽 언덕에 섰고 하나는 강 저쪽 언덕에 섰더니 6 그 중에 하나가 세마포 옷을 입은 자 곧 강물 위쪽에 있는 자에게 이르되 이 놀라운 일의 끝이 어느 때까지냐 하더라 7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쪽에 있는 자가 자기의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원히 살아 계시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기까지이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 8 내가 듣고도 깨닫지 못한지라 내가 이르되 내 주여 이 모든 일의 결국이 어떠하겠나이까 하니 9 그가 이르되 다니엘아 갈지어다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 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

 

오늘 말씀 4절과 9절에서 이 말을 마지막 때 까지 간수 하고 봉함하라고 합니다. 봉함이라는 말은 편지를 쓴 후에 그 편지를 아무나 볼 수 없도록 봉하는 것을 봉함이라고 합니다. 이와 비슷한 말은 인봉(印封)입니다. 인봉은 봉한 물건이나 편지에 도장을 찍어서 개봉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봉함하여 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기록되어 전하여집니다. 그러면 무엇을 봉함하여 두라는 것입니까? 선지자들이 받은 그 계시의 내용이 봉함이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서에서 봉함하여 두라는 것은 마지막 때입니다. 다니엘도 마지막 때에 대하여 깨닫지를 못하였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마지막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뜻이 중첩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범죄 하면 그 마지막이 나라의 멸망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고난의 마지막이 되면 다시 돌이켜 주신다는 뜻으로도 마지막을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마지막이라는 말씀에는 심판도 있고 구원도 있습니다. 이러한 심판과 구원의 마지막은 이미 지난주에 보았습니다. ‘땅의 티끌과 부활에서 땅의 티끌이 다 부활할 것과 부활 후에 생명의 부활을 얻을 자와 영원한 심판인 부끄러운 부활이 있을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다니엘이 그 마지막 때에 대한 내용을 봉함하라는 말씀은 무엇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여기서도 마지막이란 중첩되어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환난의 때는 다니엘서의 내용과 다른 역사 자료들과 비추어 보았을 때에 안티오쿠스 4세가 유다를 핍박하는 그런 내용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내용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약의 선지자들이 공통적으로 바라본 마지막은 메시아의 오심입니다. 이러한 선지자들의 관점을 산꼭대기에서 멀리 있는 산봉우리들을 보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높은 산에서 멀리 있는 산봉우리들을 바라보면 산의 봉우리들이 마치 겹쳐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막상 그 산에 가보면 겹쳐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멀리 있는 산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여호와의 계시를 받을 때에 궁극적으로 메시아를 기다립니다만 우선은 자신들의 현실에 있는 상황들에 대하여 먼저 언급합니다. 나라가 망하거나 포로로 잡혀가거나 돌아오는 것들을 예언하지만 그런 내용들이 끝이 아니라 마지막 메시아 오심을 목표로 합니다.

 

그러므로 다니엘도 앞으로 있을 환난을 예언하지만 그 마지막 때는 여전히 봉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마지막 때까지 봉함하여 두라는 말씀은 안티오쿠스 4세 때의 환난이 마지막 때가 아니라 그 보다 더 궁극적인 마지막 때는 메시아의 오심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아의 오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는데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못하였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남은 자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여기에 이방인들도 포함이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로 구별되는 것이 구약이 내다본 마지막 때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구약의 선지자들이 자기들이 속한 시대의 문제들을 예언하면서 궁극적인 메시아 오심을 함께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의 오심이 그들의 눈에는 최종 완성으로 본 것입니다. 드디어 약속하신 대로 메시아가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다 이루어내십니다. 그 약속을 다 이루신 자리가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것은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신 것입니다. 이러한 아버지의 뜻을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것들을 다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다 이루심으로 인하여 세상의 끝이 온 것입니다. 이 세상의 종말이 온 것입니다.

 

다시 본문 4절을 봅니다. 마지막 때 까지 이 말을 간수 하고 봉함하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빨리 왕래한다는 이 말씀이 책에 대한 내용이라면 깊이 숙고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빨리 왕래하고 깊이 숙고하여도 봉함이 되어 있다면 알 수가 없습니다. 아모스 8:11~12절입니다. “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12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하나님께서 기근을 보내시는데 말씀을 얻지 못한 기근입니다. 사람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지만 얻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자기들만이 참된 말씀이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성경의 비밀을 풀었다고 하는 자들도 너무 많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비유로 풀이합니다. 어떤 곳에서는 숫자로 풀이합니다. 어떤 곳에서는 원어로 풀이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결론이 자기들만이 성경을 제대로 푼다고 나오면 이것은 다 엉터리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 모든 성경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다 이루심을 증거 해야 합니다.

 

그러면 봉함하라는 말씀은 단지 다니엘 시대의 환난의 한 날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전체가 증거 하는 그 마지막 날로 봐야 합니다. 물론 한 시대의 환난과 마지막을 내포하고 있지만 궁극적인 마지막이 무엇인지는 봉함해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까지냐하는 문제입니다. 다니엘도 천사의 말에 대하여 그 마지막이 언제냐고 물었습니다. 천사들의 말을 듣고도 다니엘이 깨닫지를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 까지 봉함하여 두라는 말을 듣습니다.

 

본문 5~9절입니다. “봉독 다니엘이 강 양쪽에 서 있는 두 천사를 봅니다. 6절과 7절은 천사들의 대화입니다. 한 천자가 마지막이 언제냐고 물을 때에 한 천사가 두 손을 하늘로 들고 영원히 살아계시는 분에게 맹세하면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가 지나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앞에서도 살펴보았습니다만 모든 시대 모든 성도의 고난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다음 주에 한 번 더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고난을 통하여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질 때 까지라고 합니다. 다른 번역은 성도의 핍박이 끝날 때 이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이 끝도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로 다 이루심이 끝입니다. 그 십자가의 다 이루심이 묵시적인 사건으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 한 명도 잃어버리지 않으시고 다 찾아내시는 그 날이 역사의 끝입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다니엘이 알 수 없다고 하자 이 말씀을 마지막이 올 때까지 봉함하여 두라고 합니다. 분명히 글로 기록이 되어있지만 그 뜻을 다 알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봉함되어 있습니까?

 

이사야서를 봅니다. 6:9~13절입니다.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11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12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다니엘의 봉함이나 이사야 선지자의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한다는 말씀이 같은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때가 언제까지입니다. 다니엘은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지는 날이라고 합니다. 이사야는 예루살렘이 망하고 그 남은 십분의 일도 다 베임을 당하고 나서 거룩한 그루터기만 남기실 때 까지라고 합니다. 이런 내용이 다 메시아께서 이루실 내용이 됩니다. 그러므로 메시아가 오셔서 그 눈을 뜨게 하시고 귀를 열어주셔야 봉함된 내용들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봉함된 내용은 그 마지막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러한 봉함된 내용을 열어주시는 메시아의 역할을 봅니다.

 

마태복음 13:10~17절입니다. “10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11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13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14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16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다니엘이 예언한 대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진다는 것은 이사야서의 예언대로 하나님의 심판을 통하여 다 잘려나갑니다. 십분의 일이 남아도 그마저 다 잘려진 후에 거룩한 그루터기로 인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밝히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이 예언한 그 메시아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이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봉함되어 있기에 열어주시지 않으면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마지막 때 까지 봉함하여 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제 자기 백성들에게 눈을 뜨게 하시고 귀를 열어 주시는 것은 예수님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알려주시고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십자가 이후로도 여전히 복음은 봉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전하고 예수님의 사도가 복음을 전해도 들을 자만 듣게 되는 것이 복음의 비밀입니다. 그 이유는 복음이 봉하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1:25~30절입니다. “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표적을 많이 행하신 마을에서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만 예수님의 아버지를 바르게 알고 믿게 됩니다. 그런 자는 마음에 참된 쉼을 누리게 됩니다. 다니엘이 물었을 때에 그 마지막 때가 언제인지에 대한 답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 마지막인지 알기 때문에 쉼이 있습니다. 이미 이 역사가 십자가로 종결되었기에 십자가 안에서 쉼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십자가의 복음이 땅 끝 까지 증거 되면 믿는 자도 나오고 믿지 않는 자도 나오는 것입니다. 믿는 자는 이미 여기서부터 쉼을 누리지만 믿지 않는 자는 여기서부터 영원히 안식이 없습니다.

 

사도행전 28:23~28절입니다. “23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24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25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26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27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28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사도행전의 결론입니다. 사도가 복음을 전하여도 믿는 자가 있고 믿지 않는 자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이란 전하는 자의 능력이 아닙니다. 물론 듣는 자의 능력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만이 복음은 봉함된 내용이 아니라 열려진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복음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자신들이 메시아를 살해한 자로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 이 사실을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 복음이 증거 될 당시의 십자가는 로마를 반역한 이방인의 사형형틀이며 유대인들에게는 나무에 달려 죽는 것은 저주 받아 죽은 죽음으로 신명기 율법에 정하여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예수님이 하나님의 언약을 다 이루신 그리스도임을 믿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것이 봉함되어진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의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이 나오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에게만 부어지는 은혜 곧 계시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자신에게 질문을 합니다. 우리는 과연 계시를 받은 사람입니까? 계시를 받았다는 것은 마태복음과 사도행전에서 찾아본 것처럼 복음의 내용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완성이 믿어지십니까? 이것이 계시를 받은 자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바울사도는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우리의 택하심과 부르심과 그 부르신 자들이 받을 영원한 기업의 풍성함이 어떤 것인지 이것을 이루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하심이 무엇인지 알도록 에베소서 1장에서 기도합니다. 이런 자들은 이미 완료된 복음으로 인하여 하늘의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의 계시는 봉함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열린 자들입니다.

 

요한계시록 5:1~14절입니다. “1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2 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나 3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 4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5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7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8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9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11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12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14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봉함된 책, 인봉된 책을 누가 열어서 성취하십니까? 아무도 그 책을 받아서 열어볼 자가 없어서 요한이 울고 있는데 천사가 와서 말하기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 곧 일찍 죽임 당한 어린 양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어린 양이 책을 취하여 인봉을 떼셨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모든 언약을 성취하시는 것입니다. 그 언약의 완성은 그의 피로 각 족속에서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는 내용이 인봉된 책에 기록된 내용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자기 백성을 사시는 것이 봉함된 마지막 때의 일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이미 2천 년 전에 다 열려졌지만 아직도 여전히 봉함된 채로 있는 자들에게는 그것이 심판입니다.

 

요한계시록 10:1~7절입니다. “1 내가 또 보니 힘 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으며 2 그 손에는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를 들고 그 오른 발은 바다를 밟고 왼 발은 땅을 밟고 3 사자가 부르짖는 것 같이 큰 소리로 외치니 그가 외칠 때에 일곱 우레가 그 소리를 내어 말하더라 4 일곱 우레가 말을 할 때에 내가 기록하려고 하다가 곧 들으니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말하기를 일곱 우레가 말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 하더라 5 내가 본 바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가 하늘을 향하여 오른손을 들고 6 세세토록 살아 계신 이 곧 하늘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7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이 말씀을 보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내용과 연결이 됩니다. 다니엘서 본문에서는 강 이쪽저쪽에 선 천사가 서로 말하는 내용이 마지막 때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손을 들고 하늘로 맹세하는 장면이 참으로 비슷합니다. 다니엘서에서 봉함하는 말씀이나 여기서 요한이 하늘의 일곱 우레의 말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고 하는 말씀도 같은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은 이미 십자가로 완료된 내용을 증거 합니다. 다니엘서는 앞으로 십자가에서 완성될 내용을 봉함하여 준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5장에서처럼 일찍 죽임 당한 어린 양이 책을 받으시고 그 인봉을 떼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일을 예수님께서 성취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곱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은 나선형 모양으로 같은 내용을 심층화 하는 것입니다. 이 역사를 일찍 죽임 당한 어린양이 끝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곱이란 마지막인데 이 마지막 나팔이 불어지면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11:15~19절입니다. “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16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있던 이십사 장로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7 이르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18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19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일곱 번째 나팔 소리가 이미 불어졌습니다. 이제 그 봉인된 내용이 다 열렸습니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신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아직 아무리 보아도 예수님이 왕 노릇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여전히 정치와 종교와 세상의 권력이 왕 노릇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미 묵시 안에서 완료가 되었습니다. 그 묵시가 이 역사 속에서 완성된 자리가 십자가입니다. 누가 저주 받아 죽은 예수, 무력하게 죽은 예수, 침 뱉고 조롱한 그 예수의 십자가를 하나님의 비밀의 완성으로 보겠습니까?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에게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완성입니다.

 

요한계시록 22:10절입니다.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이제 인봉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 복음이 이미 2천 년 전에 선포된 내용입니다. 봉함된 계시, 인봉된 계시가 이미 십자가로 다 열려졌습니다. 그러므로 이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되면 하나님의 백성은 십자가를 바라보게 될 것이지만 그렇지 않은 자는 세상의 영광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계시가 열려진 자들입니까? 봉함이 해제되었습니까? 인봉된 것이 열린 자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내용이 밝히 보이고 들리고 믿어질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세상의 환난 속에서도 그 약속 안에서 쉼을 맛보면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기를 사모하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에게도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