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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39:1~10 예루살렘의 함락 2014. 10. 15

 

1 유다의 시드기야 왕의 제구년 열째 달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과 그의 모든 군대가 와서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치더니 2 시드기야의 제십일년 넷째 달 아홉째 날에 성이 함락되니라 예루살렘이 함락되매 3 바벨론의 왕의 모든 고관이 나타나 중문에 앉으니 곧 네르갈사레셀과 삼갈네부와 내시장 살스김이니 네르갈사레셀은 궁중 장관이며 바벨론의 왕의 나머지 고관들도 있더라 4 유다의 시드기야 왕과 모든 군사가 그들을 보고 도망하되 밤에 왕의 동산 길을 따라 두 담 샛문을 통하여 성읍을 벗어나서 아라바로 갔더니 5 갈대아인의 군대가 그들을 따라 여리고 평원에서 시드기야에게 미쳐 그를 잡아서 데리고 하맛 땅 리블라에 있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로 올라가매 왕이 그를 심문하였더라 6 바벨론의 왕이 리블라에서 시드기야의 눈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죽였고 왕이 또 유다의 모든 귀족을 죽였으며 7 왕이 또 시드기야의 눈을 빼게 하고 바벨론으로 옮기려고 사슬로 결박하였더라 8 갈대아인들이 왕궁과 백성의 집을 불사르며 예루살렘 성벽을 헐었고 9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자기에게 항복한 자와 그 외의 남은 백성을 잡아 바벨론으로 옮겼으며 10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아무 소유가 없는 빈민을 유다 땅에 남겨 두고 그 날에 포도원과 밭을 그들에게 주었더라

 

우리 자신에게 절대로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고 여기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의 가정, 나의 회사, 나의 교회, 나의 믿음, 나의 몸, 대한민국, 이 세상, 이러한 것들 중에 과연 무너지지 않을 것이 있습니까? 눈에 보이는 것치고 무너지지 아니할 영원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너질 것들을 무너지지 아니할 것처럼 붙들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제 노회를 마치고 그동안 어려운 문제들이 해결되었다고 체육대회를 가졌습니다. 규모가 있는 일곱 교회가 협찬을 하여 부곡에서 시찰별 체육대회를 하였습니다. 시찰장이라 끝까지 함께 하고 왔습니다. 오는 중에 라디오에서 무의미의 축제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책을 쓴 밀란 쿤데라가 14년 만에 나온 소설 이름이 `무의미의 축제`입니다. 어느 서평의 한 구절을 인용합니다. "우리는 이제 이 세상을 뒤엎을 수도 없고, 개조할 수도 없고, 한심하게 굴러가는 걸 막을 도리도 없다는 걸 오래전에 깨달았어. 저항할 수 있는 길은 딱 하나,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것뿐이지." 쿤테라는 결국 인간의 고독과 삶이 아무런 의미 없음의, 보잘 것 없음의 축제이며, `무의미의 축제` 야말로 우리가 받아들이고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이 시대의 본질이라고. 어려운 말들을 인용했습니다만 아주 간단하게 개그 콘서트 버전으로 말씀드리면 아이고 다 의미 없다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루살렘성이 함락되는 내용입니다. 수많은 선지자들과 왕과 지도자들과 백성들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성이 함락이 되었습니다. 이들이 죽이려고 한 예레미야의 말대로 바벨론이 쳐들어와서 성을 16개월 동안 포위하여 공격하였습니다. 드디어 성이 함락이 되는데 이때 왕과 신하들이 밤중에 비밀 통로로 빠져나가 아라바로 도망을 갑니다. 바벨론 군대가 추격하여 여리고 평원에서 사로잡아 왔습니다. 바벨론 왕이 시드기야를 심문하고 나서 그 신하들과 두 아들을 죽이고 나서 시드기야의 눈을 뺍니다. 그런 후에 바벨론에 사로잡아가기 위하여 사슬로 결박합니다. 왕궁과 백성의 집은 불에 타고 성중에 남아있는 자들과 항복한 자들과 그 외의 백성을 잡아 바벨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아무 소유가 없는 빈민을 유다 땅에 남겨 두어 포도원과 밭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두고 가장 놀란 자들이 누구였겠습니까?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듣고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신다고 믿은 자들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믿음은 왕과 백성과 고위 관료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은 애국애족의 말도 아닐뿐더러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그렇게 망하게 하실 리가 없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 이유는 열심히 성전제사를 드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사장과 선지자들이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우리를 지켜주실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미 예레미야 5:31절에서 본대로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고 있으니 마지막이 어떻겠느냐고 고발합니다. 결국 그 마지막은 이러한 심판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심판이 오는 이유는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큰 구원을 직접 눈으로 보았습니다. 애굽에서 10가지 재앙 속에서 살아남았습니다. 마지막 장자의 죽음에서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살아남았으며 홍해에서 바다를 마른 땅으로 건넜습니다. 추격하던 애굽 군대는 홍해에서 몰살합니다. 광야에서 구름 기둥 불기둥과 만나로 인도하였습니다. 드디어 시내산에서 모세가 언약의 중재자가 되어 언약을 체결합니다. 여호와와 이스라엘 사이에 피를 뿌려 언약을 체결함으로 언약을 어기면 죽임을 당하여야 한다는 생명을 건 언약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 그 언약증서를 받아 오는 40일도 안되어 이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을 정면으로 배반합니다. 백성들이 아론을 향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어 내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상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십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우리를 위하는 신을 만들어 내라고 합니다. 그 신이 바로 황금송아지입니다. 왜 하필 황금 송아지 입니까? 히브리어 첫 글자가 알렙인데 이 글자가 황소의 머리를 표현하는 글자입니다. 그래서 알렙을 통하여 영원하신 하나님을 알라고 하였는데 오히려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리를 위하는 신이라고 하면서 경배하였습니다. 

 

출애굽기 32:7~14절입니다. “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8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9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10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어 여호와의 절기라고 하면서 먹고 마시며 뛰어놉니다. 언약을 체결하였다고 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진멸하시고 모세를 통하여 다시 큰 나라를 만들어 내시겠다고 합니다.

 

11~14절에서 모세의 간구를 봅니다. “11 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12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13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14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모세는 아브라함 언약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가지고 용서를 구합니다. 아브라함 언약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언약입니다. 쪼개진 짐승 사이로 지나가는 언약체결은 생명을 건 언약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지나가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불에 타는 횃불의 형상으로 지나가시면서 언약이 체결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기 언약을 자기 생명을 걸고 언약하신 것입니다. 모세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하신 내용을 말씀드리자 여호와께서 그 뜻을 돌이키셨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의 말을 듣고 뜻을 돌이키셨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랬다저랬다 하시는 분이 아니라 모세 언약대로 한다면 이들은 벌써 시내산에서 진멸당하여야 마땅하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계시적인 표현입니다.

 

광야에서 10번이나 여호와 하나님을 거역한 자들입니다. 10번이라는 것은 평균 4년에 한번 꼴인데 이것은 4년 동안 속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다가 화산 폭발하듯이 분출하면서 모세를 때려죽이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늘 여호와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입니다. 이렇게 거역하는 역사들이 구약입니다. 이들을 하나님은 자기 언약으로 인하여 광야 40년을 지나 약속에 땅에 들여놓습니다. 약속의 땅에서도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을 거역하는 역사가 사사시대입니다. 사사 시대를 지나 왕들의 시대가 왔지만 여전히 여호와를 거역하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가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 우상을 부수고 말씀의 회복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그마저 잠깐이었습니다. 이러한 우상숭배의 결국은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먼저 망하고 남 유다는 바벨론에 망합니다. 예루살렘 성이 파괴되고 성전이 파괴되고 왕과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갑니다.

 

이렇게 나라가 망하게 되었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하나님이 과연 살아 계신가? 우리가 그동안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의 말을 듣고 부지런히 성전에서 희생 제사를 드리며 온갖 율법을 지켜 왔는데 왜 이렇게 나라가 망하는가 하는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이욕을 쫓으면서도 겉으로는 종교 행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영이 임한 선지자들은 이러한 종교적인 외식을 멈추고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라고 외칩니다. 그러나 이들은 언제나 극소수였기에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 지도자들과 심지어 백성들에게조차 배척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배척받았던 선지자들의 말대로 나라가 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나라가 망하기 전에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새 언약의 선포되었습니다. 새 언약은 인간의 죄가 어떠한지를 완전히 드러내신 후에 체결됩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나라가 완전히 망하는 즈음에 새 언약을 주신 것입니다. 나라가 망하여도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하시기에 그 언약대로 이루실 것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인간이 지킬 수 없음을 약속의 땅에 들여놓은 백성들을 통하여 보여주십니다. 약속의 땅은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이 흘러야 합니다. 그런데 공의도 긍휼도 없어졌기에 땅이 백성들을 토하여 냅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의 왕을 통하여 심판하심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어내십니다.

 

오늘 본문 10절을 봅니다.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아무 소유가 없는 빈민을 유다 땅에 남겨 두고 그 날에 포도원과 밭을 그들에게 주었더라약속의 땅은 오직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긍휼로 주어진 땅입니다. 그러므로 그 땅에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잘 돌보아야 합니다. 그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땅에 떨어진 이삭이나 곡식 단은 거두지 말아야 하며 토지 소산물의 일부들을 그대로 남겨두라고 합니다. 또한 삼년에 한 번씩은 십일조를 더 하여 땅이 없는 약자를 돌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미 가나안 문화를 따라 부동산 투기기 일어납니다. 가옥에 가옥을 더하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게 됩니다(5:8). 공의와 긍휼이 사라진 나라입니다.

 

이러한 나라가 망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언약의 저주대로 나라가 망하지만 하나님의 공의는 다시 실현됨을 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평소에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잘 돌보지 않았습니다. 이들만이 아니라 자기의 기업을 가진 자들도 살림이 어려워져서 빚을 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동족에게는 이자를 받지 말게 하였지만 오히려 고리대금으로 땅을 차지하고 사람을 종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종으로 팔려간 자들도 땅도 희년이 되면 돌아오도록 율법에 명시하였지만 단 한 번도 희년을 지켰다는 내용이 성경에 없습니다. 그래서 나라가 망하게 되지만 나라가 망함으로 아무 소유가 없는 자들이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연히 성경에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나라가 망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고 왕의 아들이 죽고 왕의 눈이 뽑히며 나라가 망하는 지경에도 하나님은 자기 언약을 이루어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 언약을 따라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너무나 잔인하고 자기 밖에 모르시는 하나님처럼 보이십니까? 이런 사람은 아직도 하나님의 언약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중심은 자기 아들의 희생을 드러내시기 위한 언약입니다. 그 아들의 죽음으로 자기 백성을 살려내신다는 영원한 언약이 있기에 이들이 완전히 망하는 지경에 새 언약을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이것을 에스겔 선지자는 마른 해골 뼈다귀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마른 해골 뼈에 하나님의 말씀이 대언되고 하나님의 생기가 대언되자 이들이 하나님의 큰 군대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 언약을 어떻게 이루실 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이 함락이 되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지만 아무 소유도 없는 자들이 땅을 차지하듯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면서 성도 망하고 성전도 파괴되고 아무 것도 없게 하신 후에 70년 만에 돌아오게 하십니다. 70년 만에 돌아오게 하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완전하심이 성경에서는 항상 7로 나타납니다. 인간의 노력은 아무리 해도 6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하심의 완성을 보여주시는 것이 7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천지창조도 하나님의 자기 안식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제 7일에 안식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안식이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안식이 목표입니다. 그 안식은 그 아들의 희생으로 완성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언약을 알게 하시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완전히 망한 채로 70년을 지납니다. 그러나 그 70년은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지는 70년입니다.

 

역대하 36:11~21절입니다. “11 시드기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일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 동안 다스리며 12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일러도 그 앞에서 겸손하지 아니하였으며 13 또한 느부갓네살 왕이 그를 그의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게 하였으나 그가 왕을 배반하고 목을 곧게 하며 마음을 완악하게 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였고 14 모든 제사장들의 우두머리들과 백성도 크게 범죄 하여 이방 모든 가증한 일을 따라서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거룩하게 두신 그의 전을 더럽게 하였으며 15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과 그 거하시는 곳을 아끼사 부지런히 그의 사신들을 그 백성에게 보내어 이르셨으나 16 그의 백성이 하나님의 사신들을 비웃고 그의 말씀을 멸시하며 그의 선지자를 욕하여 여호와의 진노를 그의 백성에게 미치게 하여 회복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 17 하나님이 갈대아 왕의 손에 그들을 다 넘기시매 그가 와서 그들의 성전에서 칼로 청년들을 죽이며 청년 남녀와 노인과 병약한 사람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였으며 18 또 하나님의 전의 대소 그릇들과 여호와의 전의 보물과 왕과 방백들의 보물을 다 바벨론으로 가져가고 19 또 하나님의 전을 불사르며 예루살렘 성벽을 헐며 그들의 모든 궁실을 불사르며 그들의 모든 귀한 그릇들을 부수고 20 칼에서 살아 남은 자를 그가 바벨론으로 사로잡아가매 무리가 거기서 갈대아 왕과 그의 자손의 노예가 되어 바사국이 통치할 때까지 이르니라 21 이에 토지가 황폐하여 땅이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더라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였기에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파괴되었지만 그 땅은 안식년을 누림같이 칠십 년을 지냅니다.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파괴되어도 하나님의 자기 언약은 한 치의 빈틈이니 누수 없이 다 이루어집니다. 오늘날 성도란 이미 새 언약의 백성입니다. 새 언약의 백성들은 이러한 구약의 내용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다 이루시고 자기 백성들에게 부어주시는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새 언약의 백성들은 이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이 망한 그길로 가게 됩니다.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듯이 우리가 스스로 지키려고 하는 것들이 다 무너져 내린다는 말입니다.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만 무너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이라는 것도 우리가 행하였다는 주님을 위한 것이라는 것도 다 무너질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들으면 모든 것이 의미 없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들은 많은 분들이 의욕이 상실되고 당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무너질 것을 완전히 무너뜨리면서 무너지지 아니할 것들로 자기 백성 안에 채우시는 것입니다. 그 채워지는 것들은 우리의 혈과 육으로는 절대로 만들어 낼 수 없는 것들입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들입니다.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주시는 양자됨과 그 부르심의 소망과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과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강력한 일하심이 어떠한지를 알게 합니다. 그 일이 바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일으키시고 함께 하늘에 앉히신 것입니다. 이미 묵시 속에서 이루어진 일을 이 역사 속에서 이루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무언가 함락이 되고 허물어지는 것이 있다면 이것은 저주나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실 성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아니한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임을 아시기 바랍니다(12:1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