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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애가 3:1~66 슬픈 노래(3) 2015. 6. 3

 

1 여호와의 분노의 매로 말미암아 고난당한 자는 나로다 2 나를 이끌어 어둠 안에서 걸어가게 하시고 빛 안에서 걸어가지 못하게 하셨으며 3 종일토록 손을 들어 자주자주 나를 치시는도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예레미야 애가는 히브리어의 알파벳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보는 3장은 알파벳 하나로 3절씩 노래합니다. 그러므로 총 66절이 됩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구조는 시의 화자가 나로 시작하여(1~39) 우리가 되었다가(40~47) 다시 나로 마감이 됩니다(48~66). 이런 구조를 좀 더 살펴보면 나로 시작하여 나로 끝나는 부분은 이스라엘의 고난을 예레미야 자신이 받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그런데 중간 부분의 우리는 예레미야와 이스라엘 백성이 연대되어 있습니다. 예레미야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러한 고난과 탄식을 하게 되는 것은 그들의 죄로 인한 것입니다(39).

 

그러나 모든 성경이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에(5:39) 이 본문도 그리스도 중심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벧전1:11) 예레미야가 이러한 애가를 부른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자기 백성들과 함께 한 고난으로 연결해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죄로 인하여 이런 고난을 당하지만 예수님은 죄 없이 이런 고난을 당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살펴보겠습니다만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고난들의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들과 함께 받는 고난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땅에서 고난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을 바라보게 하시면서 동시에 그 고난을 통하여 참된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시적 운율을 살리기 위하여 한절씩 줄 바꿈을 한 채로 보겠습니다.

 

1 여호와의 분노의 매로 말미암아 고난당한 자는 나로다

2 나를 이끌어 어둠 안에서 걸어가게 하시고 빛 안에서 걸어가지 못하게 하셨으며

3 종일토록 손을 들어 자주자주 나를 치시는도다

4 나의 살과 가죽을 쇠하게 하시며 나의 뼈들을 꺾으셨고

5 고통과 수고를 쌓아 나를 에우셨으며

6 나를 어둠 속에 살게 하시기를 죽은 지 오랜 자 같게 하셨도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주의 말씀을 대언하면 되는데 선지자 자신이 여호와의 분노로 인하여 고난당하는 자가 자기 자신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예레미야의 죄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주께서 종일토록 손을 들어 자주자주 나를 친다고 합니다. 자신을 쇠하게 하시고 나의 뼈들을 꺾으셨고 고통과 수고를 쌓아 나를 에우며 죽은 지 오랜 자 같게 하셨다고 슬픈 노래를 부릅니다.

 

7 나를 둘러싸서 나가지 못하게 하시고 내 사슬을 무겁게 하셨으며

8 내가 부르짖어 도움을 구하나 내 기도를 물리치시며

9 다듬은 돌을 쌓아 내 길들을 막으사 내 길들을 굽게 하셨도다

 

부르짖어 기도하는데도 기도를 물리쳤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의인은 간구는 들어주시고 죄인의 간구를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예레미야가 이런 고난을 당하면서 부르짖는데도 하나님께서 기도를 물리치시는 것은 무엇을 보여주십니까? 유일하게 의로우신 분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를 물리치시는 것을 보게 하십니다. 십자가에서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하시는 그 부르짖음에 하나님께서 외면하셨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지 않으시고 구원하셨다면 우리는 그것으로 끝이 난 자들이 됩니다. 예수님의 부르짖음을 듣지 않으시고 그에게 자기 백성의 죄를 전가시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고난에 처하게 됨으로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10 그는 내게 대하여 엎드려 기다리는 곰과 은밀한 곳에 있는 사자 같으사

11 나의 길들로 치우치게 하시며 내 몸을 찢으시며 나를 적막하게 하셨도다

12 활을 당겨 나를 화살의 과녁으로 삼으심이여

13 화살통의 화살들로 내 허리를 맞추셨도다

14 나는 내 모든 백성에게 조롱거리 곧 종일토록 그들의 노랫거리가 되었도다

15 나를 쓴 것들로 배불리시고 쑥으로 취하게 하셨으며

16 조약돌로 내 이들을 꺾으시고 재로 나를 덮으셨도다

17 주께서 내 심령이 평강에서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내가 복을 내어버렸음이여

18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하였도다

 

활을 당겨 나를 화살의 과녁으로 삼으셨다고 합니다. 죄라는 단어가 화살이 목표에 빚나갔다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지금 나로 표현된 예레미야의 탄식은 자신이 화살의 과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화살통의 화살들로 내 허리를 맞추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니 모든 백성에게 종일토록 조롱거리와 그들의 노랫 거리가 되었습니다. 소망이 다 끊어졌습니다. 이러한 예레미야의 애가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오버랩이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향한 조롱들을 미리 보여주는 것과 같습니다.

 

19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20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21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22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24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고난의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그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여 달라고 간구합니다. 고초와 재난과 쑥과 담즙이란 애통과 슬픔과 극한 고난들을 표현하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고난을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고난을 통하여 소망을 발견하게 된 것은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기 때문이라 고합니다. 그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헤세드를 기억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멸되어도 마땅하지만 진멸되지 않는 것은 주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며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운 것은 주의 성실함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고난의 가장 밑바닥에 내려가야 주의 인자와 긍휼만 의지하게 됩니다. 여기서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고 합니다. 성도가 고난을 통과하지 않으면 나의 영원하신 기업이 무엇인지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 정도로 우리는 이 땅의 현실에 붙들려 삽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예레미야의 슬픈 노래는 그리스도와 자기 백성들과 함께 어우러지면서 가게 됩니다.

 

25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26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27 사람은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28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메우셨음이라

29 그대의 입을 땅의 티끌에 댈지어다 혹시 소망이 있을지로다

30 자기를 치는 자에게 뺨을 돌려대어 치욕으로 배불릴지어다

 

고난 속에서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보고 기다리는 자에게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여주십니다. 사람이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메우셨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떤 고난이 닥치면 잠잠히 앉아있지를 못합니다. 내가 도대체 무엇을 잘 못하였다고 이렇게 하시느냐는 원망이 먼저 나옵니다. 그런데 그런 과정도 주님께서 허락하셨기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고난을 통하여 그 입을 땅의 티끌에 대라고 합니다. 고대에 왕 앞에 항복하는 모습이 이렇다고 합니다. 그러나 고난을 통하여 그 입을 땅의 티끌에 대라는 것은 우리가 땅의 티끌임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혹시 소망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고난을 통하여 인간의 원래 자리가 무엇인지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원래 자리가 어디입니까? 땅의 티끌입니다. 그뿐 아니라 자기를 치는 자에게 뺨을 돌려대어 치욕으로 배를 불리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순종할 수가 있습니까? 나의 뺨을 치는 자에게 다른 뺨을 돌려대는 것은 치욕으로 배를 불리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하여 나의 원수들을 내가 갚기 위하여 신에게 정성을 바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을 수가 있습니까?

 

이사야 50:4~6절입니다. “4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5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여셨으므로 내가 거역하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6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사야 선지자가 이러한 대접을 받는 것은 오실 그리스도의 고난을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개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나의 귀를 깨우치셔서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알아듣게 하시기 위하여 귀를 열어주셨는데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등을 맡기여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뺨을 맡기고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일들이 그리스도에게서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하여서만 곤고한 자들이 도움을 받습니다. 자신의 곤고함을 통하여 자신은 자신의 죄로 인하여 고난을 받지만 그리스도는 죄가 없이 고난당하심을 보고서 믿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인생에게 고난을 주신 이유가 있습니다.

 

31 이는 주께서 영원하도록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며

32 그가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고난당하는 자를 주께서 영원하도록 버리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비록 근심하게 하시지만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면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근심하며 고생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자신의 죄를 알고 회개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임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어떤 사람의 글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복음을 듣고 주님의 은혜를 알았는데 또 다시 죽을 지경이 되었다고 합니다. 험악한 나그네 세월을 보냈기에 궁핍이나 질병이나 자녀의 문제들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은혜 되지 않아서 죽을 지경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고통 가운데 결국 말씀을 통하여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다고 저에게 보낸 글입니다.

 

"내가 너를 사랑 한다" 언제 나를 사랑하셨어요? 어떻게 그게 사랑 이예요? 내가 원하는 것, 내가 갖고 싶은 것 열심히 다 털어내시고, 상처입고 아파 울고 있는 나에게 주님은 지금 내가 너를 사랑한다 하신다.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다" 내 사랑은 네가 생각하는 그 사랑 아니란다. 나는 내 약속, 창세전 그 언약 안에서 너를 택하여 결국 내 신부 만드는 것, 내가 너를 위해 죽기까지 섬기는 것, 그 치명적인 사랑이 내가 너를 사랑하는 방식이란다. 주님발밑에 엎드려 나도 울며 고백한다. 맞아요! 주님! 나를 사랑하심 맞네요! 나는 골백번 죽었다 깨나도 당신 사랑 같은 거 흉내도 못내요. 사랑 한다는 고백 따위 아예 할 수도 없는 벙어리로 만드셨다죠! 내가먼저 사랑하면 안 되게요. 그저 내가 원하는 거, 내가 갖고 싶은 것 주실 때 나는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했죠! 내가 가진 것 다 털릴 때, 주님이 나를 미워하는 줄 알고 슬퍼서 원망도 참 많이 했답니다. 그러나 당신의 가학적인 그 사랑을 조금은 수용 할 수 있습니다. 아주 조금요! 여전히 내가 알고 있는 그 사랑에 굶주리고 목마르지만 이건 가짜 사랑이라는 거 조금씩 알아가는 중입니다. 언젠가 육체의 구속이 온전해지는 날, 야곱처럼 내 인생이 험악했으나, 내 해골을 그 약속의 땅에 묻어 달라! 창세전 당신의 그 사랑, 약속, 언약 기억하며 당신에게 온전한 사랑고백 나도 할 수 있겠지요... "내가 너를 사랑한다!~" 그 음성 앞에 다 알 수 없지만 여전히 "글쎄요~" 하고 싶지만 "알겠어요! '콜이요' 당신은 나를 사랑 하십니다" 아멘!

 

이 고백이 나오기까지의 고통은 다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런 고백들을 통하여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방금 본 33절의 말씀처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왜 이런 고통을 자기 백성에게 허락하시는 것입니까? 그 고통과 고난을 통하지 않으면 우리가 하나님의 진짜 사랑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기 자녀를 위하여 성실하게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11974~77절입니다. “74 주를 경외하는 자가 나를 보고 기뻐할 것은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는 연고니이다 75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판단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음이니이다 76 구하오니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대로 주의 인자하심이 나의 위안이 되게 하시며 77 주의 긍휼히 여기심이 내게 임하사 나로 살게 하소서 주의 법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시편 119편도 알파벳 시로 되어있습니다. 주를 경외하는 자가 나를 보고 기뻐할 것은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는 연고라고 합니다. 사람의 주의 말씀을 바라는 것은 우리의 본성으로 결코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기 백성이 주의 말씀을 바라게 되는 것은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으로 말미암는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실하게 자기 백성을 괴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주의 인자와 긍휼이 나의 위안이 되고 나로 살게 하게 하신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고난당하는 것이 유익이라고 합니다. 고난당함으로 주의 율례를 배우기 때문입니다(119:71).

 

34 세상에 있는 모든 갇힌 자들을 발로 밟는 것과

35 지존자의 얼굴 앞에서 사람의 재판을 굽게 하는 것과

36 사람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것은 다 주께서 기쁘게 보시는 것이 아니로다

37 주의 명령이 아니면 누가 이것을 능히 말하여 이루게 할 수 있으랴

38 화와 복이 지존자의 입으로부터 나오지 아니하느냐

39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 죄들 때문에 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랴

 

세상에서 고난당하는 것은 주로 인하여 옵니다만 이 고난을 통하여 자기 백성을 주께로 돌이키시도록 하시려고 여러 이웃나라를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그런데 이러한 도구들이 교만하여 자기들이 마치 온 세상의 주재가 되는 것처럼 갇힌 자들을 밟고 지존자의 얼굴 앞에서 재판을 굽게 하고 사람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것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도 주께서 일어나게 하신 것이며 화와 복이 지존자의 입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일이 일어날 때에 억울하다고 난리가 납니다. 그러나 주님의 징계의 도구들이 무리하게 억압을 해도 그것으로 인하여 원망할 수가 없는 것은 자기들의 죄로 인한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죄를 주변의 도구들로 징계하시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국문하시면 이미 끝난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 죄로 인하여 일어나는 일인데 어찌 원망할 수가 있습니까!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않으시고 아주 가벼운 징계를 통하여 자기 죄를 알고 주님께 돌아가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입니다.

 

40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행위들을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41 우리의 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

42 우리의 범죄 함과 우리의 반역함을 주께서 사하지 아니하시고

43 진노로 자신을 가리시고 우리를 추격하시며 죽이시고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셨나이다

44 주께서 구름으로 자신을 가리사 기도가 상달되지 못하게 하시고

45 우리를 뭇 나라 가운데에서 쓰레기와 폐물로 삼으셨으므로

46 우리의 모든 원수들이 우리를 향하여 그들의 입을 크게 벌렸나이다

47 두려움과 함정과 파멸과 멸망이 우리에게 임하였도다

 

이 본문이 에서 우리가 되는 본문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행위들을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이것은 나로서 될 수가 없습니다. 원망만 하는 나로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고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완성하시고 부활 승천 하셔서 그 영을 자기 백성에게 부어주십니다. 그렇게 성령이 임하여야 자기 죄를 깨닫고 주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며 우리의 마음과 손을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도록 우리 대신 버림받으신 분이 계십니다. 그 내용이 42~47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심으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48 딸 내 백성의 파멸로 말미암아 내 눈에는 눈물이 시내처럼 흐르도다

49 내 눈에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아니하고 쉬지 아니함이여

50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살피시고 돌아보실 때까지니라

51 나의 성읍의 모든 여자들을 내 눈으로 보니 내 심령이 상하는도다

52 나의 원수들이 이유 없이 나를 새처럼 사냥하는도다

53 그들이 내 생명을 끊으려고 나를 구덩이에 넣고 그 위에 돌을 던짐이여

54 물이 내 머리 위로 넘치니 내가 스스로 이르기를 이제는 멸절되었다 하도다

55 여호와여 내가 심히 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나이다

56 주께서 이미 나의 음성을 들으셨사오니 이제 나의 탄식과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가리지 마옵소서

 

48절부터 끝까지 다시 나의 간구가 됩니다. 내 백성의 파멸로 인하여 내 눈에는 눈물이 시내처럼 흐른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을 보시고 우셨습니다. 예수님의 심령이 상하셨습니다. 목자 없는 양처럼 유리하는 백성들을 보시면서 그 마음이 상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수님을 이유 없이 새처럼 사냥하고 생명을 끊으려고 구덩이에 넣고 그 위에 돌을 던진다고 합니다. 그 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주께서 이미 나의 음성을 들었사오니 나의 탄식과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가리지 말아 달라고 간구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예레미야의 탄식과 슬픈 노래입니다. 이러한 간구의 완성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밤을 새워 간구하시고 십자가 이후에도 하나님 우편에서 간구하고 계시고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자기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고 계십니다.

 

57 내가 주께 아뢴 날에 주께서 내게 가까이 하여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나이다

58 주여 주께서 내 심령의 원통함을 풀어 주셨고 내 생명을 속량하셨나이다

59 여호와여 나의 억울함을 보셨사오니 나를 위하여 원통함을 풀어주옵소서

60 그들이 내게 보복하며 나를 모해함을 주께서 다 보셨나이다

61 여호와여 그들이 나를 비방하며 나를 모해하는 모든 것

62 곧 일어나 나를 치는 자들의 입술에서 나오는 것들과 종일 나를 모해하는 것들을 들으셨나이다

63 그들이 앉으나 서나 나를 조롱하여 노래하는 것을 주목하여 보옵소서

64 여호와여 주께서 그들의 손이 행한 대로 그들에게 보응하사

65 그들에게 거만한 마음을 주시고 그들에게 저주를 내리소서

66 주께서 진노로 그들을 뒤쫓으사 여호와의 하늘 아래에서 멸하소서

 

이미 기도가 응답되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주께서 원통함을 풀어주셨고 속량하셨다고 합니다. 주님께서 다 보셨다고 합니다. 보복, 모해함, 비방, 조롱하는 것을 다 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그들의 손이 행한 대로 보응하여 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고난을 조롱하는 자들에게 거만한 마음으로 주시고 그들에게 저주를 내려 달라고 합니다. 하늘아래에서 멸하여 달라고 합니다. 이것이 예레미야 애가 3장의 결론입니다.

 

이런 슬픈 노래를 통하여 어떻게 그리스도가 증거 되는 것입니까? 그리스도 영이 임한 선지자들이 그 당시에도 고난을 받았지만 장차 그리스도의 고난도 미리 보여주는 고난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최종적인 심판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고 조롱하는 자들이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구약이나 신약이나 간에 그리스도와 우리가 된 자들은 고난의 탄식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베드로전서 4:1~19절입니다. “1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2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17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18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베드로전서 5:8~11절입니다.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1)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11 권능이 세세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탄식과 고난으로 가는 길이 성도의 길입니다. 성도는 탄식과 고난 가운데서 참된 안식과 참된 소망을 바라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