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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9:13~18 가난한 자의 지혜 2019. 8. 7

 

13 내가 또 해 아래서 지혜를 보고 크게 여긴 것이 이러하니 14 곧 어떤 작고 인구가 많지 않은 성읍에 큰 임금이 와서 에워싸고 큰 흉벽을 쌓고 치고자 할 때에 15 그 성읍 가운데 가난한 지혜자가 있어서 그 지혜로 그 성읍을 건진 것이라 그러나 이 가난한 자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도다 16 그러므로 내가 이르기를 지혜가 힘보다 낫다마는 가난한 자의 지혜가 멸시를 받고 그 말이 신청되지 아니한다 하였노라 17 조용히 들리는 지혜자들의 말들이 우매한 자들의 다스리는 호령보다 나으니라 18 지혜가 무기보다 나으니라 그러나 죄인 한 사람이 많은 선을 무너지게 하느니라

 

오늘 저와 여러분이 죽었다면 누가 얼마나 기억할까요? 며칠 동안 몇 사람이 기억하겠지만 곧 잊어지는 것입니다. 몇 분이 교회 홈페이지의 설교 원고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설교 원고의 파일이 커서 그런지 몽땅 다 날아갔습니다. 그래서 홈페이지에 한편씩 올린 설교원고 모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6년 전의 설교 ‘기드온의 속셈을 들어보니 저의 속셈도 말한 내용이 나왔습니다. 고 김성수 목사님의 장례식에 갔다가 미국에서 온 장로님이 저를 한번 초청하겠다는 말을 듣고 미국 한번 가겠구나 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람이 죽어 장례를 치르는 현장에서도 각자의 속셈이 따로 있습니다. 이미 죽은 자나 이런 속셈을 가지고 있는 자나 결국은 다 사라지고 그 기억마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가난한 사람이 그 지혜로 성을 구하였다고 하여도 가난한 지혜자의 지혜이기에 곧 잊어지는 것입니다.

 

본문 13~16절을 새 번역으로 봅니다. “13 나는 세상에서 지혜로운 사람이 겪는 일을 보고서,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14 주민이 많지 아니한 작은 성읍이 있었는데, 한 번은 힘센 왕이 그 성읍을 공격하였다. 그는 성읍을 에워싸고, 성벽을 무너뜨릴 준비를 하였다. 15 그 때에 그 성 안에는 한 남자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가난하기는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이므로, 그의 지혜로 그 성을 구하였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가난한 사람을 오래 기억하지 않았다. 16 나는 늘 "지혜가 무기보다 낫다"고 말해 왔지만, 가난한 사람의 지혜가 멸시받는 것을 보았다. 아무도 가난한 사람의 말에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지혜가 무기보다 나음을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가난한 지혜 자가 성을 구하였지만 어느 누구도 그 가난한 사람을 오래 기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17~18절도 새 번역으로 봅니다. “17 어리석은 통치자의 고함치는 명령보다는, 차라리 지혜로운 사람의 조용한 말을 듣는 것이 더 낫다. 18 지혜가 전쟁무기보다 더 낫지만, 죄인 하나가 많은 선한 것을 망칠 수 있다.” 교통사고가 나면 먼저 큰소리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블랙박스가 있는 사람은 조용히 있어도 나중에 누구의 책임인지 다 드러납니다. 지혜로운 사람의 모습이 이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혜가 전쟁무기보다 낫지만 죄인 하나가 많은 선한 것을 망칠 수 있습니다. 그 죄인이 힘이 강한 사람이라면 가난한 지혜 자가 만들어놓은 선한 것도 망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세상은 어리석지만 힘이 강한 사람의 말이 가난한 지혜자의 말을 이기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늘 말씀은 13~16절을 중심으로 가난한 자의 지혜가 어떤 취급을 받는지 보려고 합니다. 먼저 전도서 2:16절을 봅니다. 사람이 지혜가 있다고 해서 오래 기억되는 것도 아니다. 지혜가 있다고 해도 어리석은 사람과 함께 사람들의 기억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린다. 슬기로운 사람도 죽고 어리석은 사람도 죽는다.” 지혜로운 자도 어린 석은 자도 죽고 나면 사람의 기억에서 사라져 버립니다. 그런데 왜 전도자는 지혜를 찾으려고 그렇게 애를 썼는가 하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 남지 않고 사라지는 지혜들이 수도 없이 많지만 참된 지혜는 영원히 사라지지 아니할 지혜입니다. 그런데 이 참된 지혜는 가난한 자의 지혜처럼 관심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무엘하 20:14~22절입니다. “14세바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 두루 다녀서 아벨과 벧마아가와 베림 온 땅에 이르니 그 무리도 다 모여 그를 따르더라 15이에 그들이 벧마아가 아벨로 가서 세바를 에우고 그 성읍을 향한 지역 언덕 위에 토성을 쌓고 요압과 함께 한 모든 백성이 성벽을 쳐서 헐고자 하더니 16그 성읍에서 지혜로운 여인 한 사람이 외쳐 이르되 들을지어다 들을지어다 청하건대 너희는 요압에게 이르기를 이리로 가까이 오라 내가 네게 말하려 하노라 한다 하라 17요압이 그 여인에게 가까이 가니 여인이 이르되 당신이 요압이니이까 하니 대답하되 그러하다 하니라 여인이 그에게 이르되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 하니 대답하되 내가 들으리라 하니라 18여인이 말하여 이르되 옛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아벨에게 가서 물을 것이라 하고 그 일을 끝내었나이다 19나는 이스라엘의 화평하고 충성된 자 중 하나이거늘 당신이 이스라엘 가운데 어머니 같은 성을 멸하고자 하시는도다 어찌하여 당신이 여호와의 기업을 삼키고자 하시나이까 하니 20요압이 대답하여 이르되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다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다 삼키거나 멸하거나 하려 함이 아니니 21그 일이 그러한 것이 아니니라 에브라임 산지 사람 비그리의 아들 그의 이름을 세바라 하는 자가 손을 들어 왕 다윗을 대적하였나니 너희가 그만 내주면 내가 이 성벽에서 떠나가리라 하니라 여인이 요압에게 이르되 그의 머리를 성벽에서 당신에게 내어던지리이다 하고 22이에 여인이 그의 지혜를 가지고 모든 백성에게 나아가매 그들이 비그리의 아들 세바의 머리를 베어 요압에게 던진지라 이에 요압이 나팔을 불매 무리가 흩어져 성읍에서 물러나 각기 장막으로 돌아가고 요압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왕에게 나아가니라

 

오늘 본문과 비슷한 내용이지만 여기는 지혜로운 여인이 등장합니다. 성을 구한 남자의 지혜도 가난한 사람이라서 곧 잊어진다면 이스라엘 사회에서 여자는 더더욱 쉽게 잊어질 것입니다. 사무엘하 20장의 내용은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역함으로 다윗이 도망을 갔습니다. 압살롬이 다윗의 군대에 의하여 죽고 나서 다윗 성으로 돌아오는 준에 세바가 또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다윗의 군대가 세바를 추격하자 세바가 아벨 성으로 들어갑니다. 요압이 성을 에워싸고 토둔을 쌓아서 성을 함락시키려고 합니다. 이때 한 지혜로운 여인이 요압 장군을 불러서 이스라엘의 어머니와 같은 성을 허물려고 하느냐고 합니다. 그러자 요압이 세바를 넘겨주면 물러가겠다고 합니다. 이 여인이 그 성읍 사람들을 설득하여 세바의 목을 잘라 요압에게 던져줌으로 요압이 물러가고 그 성읍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 이 여인에 대하여 단 한마디도 없습니다.

 

지혜로운 한 여인에 의하여 성읍이 구원을 받았다면 그 안의 무수한 사람과 어린 아이들과 짐승들이 다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이라고 하여 그 지혜가 무시당하는 것입니다. 사무엘하 20장의 이 사건에서도 이 지혜로운 여인의 이름조차 전해지지 않습니다. 구약에서 은혜를 입은 자들이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배은망덕한 행위를 하는 자들이 많이 나옵니다. 이런 모습은 사람을 구원한 지혜가 약하게 보인다는 것 때문에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을 억압하고 큰소리치는 세상의 영웅들을 오래 기억합니다. 이런 세상에 참 지혜가 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빌립보서 2:6~8절입니다. “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지혜이시며 하나님과 동등 되신 하나님의 본체이신 분이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알아보는 자가 없습니다. 세상의 지혜로는 결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죽기 까지 복종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시고 부활하시고 승천 하셔서 성령을 부어주심으로만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믿게 됩니다. 그런데 세상의 지혜로는 아무도 십자가의 도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요하신 주님이 가난하게 되심으로 그 부요를 자기 백성에게 나누어주십니다.

 

고린도후서 8:9절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빌립보서 2장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본체이신 그 영광의 주님께서 가난해 지신 것입니다. 물론 이 본문은 연보에 대한 내용을 말씀하면서 예수님께서 부요하신 분이 가난해 지심으로 우리를 부요하게 하셨다는 말씀을 합니다. 그런데 이 부요가 세상의 물질적인 차원이 아닙니다. 영원한 영광의 부요함을 우리에게 나누어주시기 위하여 자신을 비워 종의 모습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부요하신 분이 가난하게 되신 그 지혜를 세상은 거리끼고 미련하고 어리석은 지혜로 봅니다.

 

고린도전서 1:18~25절입니다. “18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이 세상의 지혜로는 알 수 없는 지혜가 십자가의 도입니다. 빌립보서 2장의 그 지혜를 누가 알겠습니까? 하늘의 모든 신령한 복으로 가득하신 분이 자기를 비워 가장 가난하게 되신 그 놀라운 지혜를 이 세상의 섞어질 지혜로 어떻게 알아보겠습니까? 썩어지지 아니할 영원한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우상으로 바꾸어버린 자들의 지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루어내신 하나님의 지혜를 결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만 십자가로 다 이루신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지혜임을 믿게 됩니다.

 

이어지는 26~31절입니다. “26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참으로 부요하신 분이 가난한 자가 되어 오셨습니다. 그런데 전도서에서 본 대로 가난한 자의 지혜를 세상이 다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이 지혜를 알아봅니다. 이것은 우리가 잘나서 알아보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세상의 가치관으로 보면 못난 자들이 이 지혜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렇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지혜롭다는 어른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내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아들과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들만이 가난하게 되신 분의 지혜를 알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0:21~24절입니다. “21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2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23제자들을 돌아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24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세상의 지혜로 알 수 없는 것을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으면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바울사도는 서신 서에서 풀어주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18~23절입니다. “18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19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바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20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21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22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23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자신을 속이지 말라고 합니다. 자신이 속는 것은 세상에서 지혜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지혜로운 자들은 세상의 썩어질 것들에 눈이 밝은 것입니다. 그런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에 대하여는 어리석은 것이기에 자기 꾀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세상의 보암직한 종교적인 업적들이나 건물들에도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세상의 영광을 바라본 자들이 다 십자가에서 돌아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세상 사람들에게 거리끼고 미련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십자가의 도만이 하나님의 지혜이며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선호하는 세상의 지혜로 보면 너무나 가난한 자의 지혜로 보여서 무시당하는 그 십자가의 도만이 구원의 능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