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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9:11~20 이방 나라들   2020. 7. 22

 

11 너희는 시온에 계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행사를 백성 중에 선포할지어다 12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그들을 기억하심이여 1)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도다 13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 받는 나의 고통을 보소서 14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찬송을 다 전할 것이요 딸 시온의 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15 이방 나라들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짐이여 자기가 숨긴 그물에 자기 발이 걸렸도다 16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사 심판을 행하셨음이여 악인은 자기가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얽혔도다 (힉가욘, 셀라) 17 악인들이 스올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이방 나라들이 그리하리로다 18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당하지 아니함이여 가난한 자들이 영원히 실망하지 아니하리로다 19 여호와여 일어나사 인생으로 승리를 얻지 못하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주 앞에서 심판을 받게 하소서 20 여호와여 그들을 두렵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자기는 인생일 뿐인 줄 알게 하소서 (셀라)

 

지난주에 10절까지 보았습니다. 9~10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요 환난 때의 요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어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은 세상에서 압제와 환난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요새이신 여호와께 피합니다. 여호와를 자신의 요새와 피난처로 삼는 자들은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을 인하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세상의 힘인 말과 병거와 사람의 숫자를 의지하지 않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행하시는 일을 알기에 주를 이름을 의지합니다. 이들을 주께서 버리지 않으십니다. 말씀이 이러함에도 다른 것을 의지하면 어떻게 됩니까?

 

에스겔 29:6~7절입니다. “6 애굽의 모든 주민이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애굽은 본래 이스라엘 족속에게 갈대 지팡이라 7 그들이 너를 손으로 잡은즉 네가 부러져서 그들의 모든 어깨를 찢었고 그들이 너를 의지한즉 네가 부러져서 그들의 모든 허리가 흔들리게 하였느니라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공격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을 의지합니다. 그런데 그 애굽이 갈대 지팡이라서 그것을 의지하려고 잡으니 부러져서 이스라엘의 어깨가 찢어졌고 모든 허리가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애굽의 도움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이름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와서 책망을 받고 있습니다. 주의 이름을 알았다면 애굽을 의지하지 않았을 것인데 주의 이름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주의 이름을 몰랐다는 것은 이방나라와 같이 되어버렸습니다. 구약 성경전체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얼마나 모르는지를 보여줍니다.

 

지난주 설교 제목이 주의 이름을 아는 자였습니다. ‘주의 이름을 아는 자의 반대말이 무엇일까요? ‘주의 이름을 모르는 자입니다. 그 말을 오늘 본문에서 보면 이방 나라들입니다. 한 국가를 개인으로 응축하면 이방인이 됩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이방 나라에서 태어났기에 주의 이름을 들어볼 기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계시를 받아서 언약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주의 이름을 알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여기서 주의 이름을 안다는 말은 일방적인 정보의 습득이 아니라 상호하나가 될 정도의 앎을 말합니다. 마리아가 수태고지를 듣고 남자를 알지 못하였다고 할 때에 그런 알지 못함의 관계는 부부관계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아는 일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이방인이나 주님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고 믿게 하시려고 오신 분이 계십니다.

 

요한복음 17:3절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겁니다. 그런데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주의 이름을 몰랐기에 나라가 망하였습니다. 우리도 스스로 알 수가 없기에 알게 하여 주십니다. 요한복음 17:26절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 성령을 보내십니다. 영생이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만 그 결과는 썩어지지 아니할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피조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1:21~23). 인간이 스스로 찾아낸 하나님은 마귀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8:44). 그러므로 우리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어 영생을 얻는 길은 삼위 하나님의 일하심으로만 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신다고 합니다. 그 아버지의 이름을 아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신 사랑을 그들 안에 있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믿는 것이 곧 아버지를 알고 믿는 겁니다.

 

본문 11~12절입니다. “봉독 시온에 계신 여호와를 찬송하라고 합니다. 시온이란 예루살렘을 말하면서 하늘의 시온도 함께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자들이 주와 함께 거하는 곳이 시온입니다. 이런 자들은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행사를 백성 중에 선포합니다.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주의 이름과 그 하신 일을 선포하고 찬양하는 곳이 시온이며 교회입니다. 이런 자들은 세상에서 그리스도께 속하였다고 핍박을 당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피 흘림을 심문하십니다. 피 흘린 자들의 재판은 앞에서 보았습니다. 피를 흘리게 한 자들을 심문하시는데 그것은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가난한 자란 겸비한 자를 말하며 시편에서 주를 의지하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로 말하며 신약에서 마음이 가난한 자를 말합니다. 이러한 자들은 주님만 의지하고 주님만 찬송합니다.

 

본문 13~14절입니다. “봉독 다윗도 여호와께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합니다. 다윗도 간음하고 살인한 죄인이라서 은혜가 아니면 영원한 사망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은혜로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님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다윗이 피 흘림의 죄에서 건져 달라고 합니다(51:4). 이렇게 용서 받은 자를 미워하는 자가 또 등장합니다. 이들이 대적들입니다. 이들에게서 받는 나의 고통을 봐 달라고 합니다.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찬송을 다 전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자들의 모임이 주의 교회라고 합니다. 이들은 딸 시온의 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합니다(22:22, 2:12).

 

본문 15~16절입니다. “봉독 이방 나라들이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짐이여 자기가 숨긴 그물에 자기 발이 걸렸다고 합니다. 자기 꾀에 자기가 빠진 겁니다. 이방 나라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알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자기 이름과 자기 행위를 믿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교회라는 이름으로 모였다고 하여도 주의 이름과 그 행하신 일을 믿지 않고 자기 이름을 위한 자기 행위만 믿고 산다면 이방인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셔서 심판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성도는 자기의 이름과 자기의 행위를 의지하는 일들이 이 역사 속에서 심판을 받습니다. 그래서 낭패와 실망을 당한 후에 자신이 정말 아무것도 아님을 알고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게 됩니다.

 

에베소서 2:11~18절입니다. “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육체적으로도 이스라엘 백성이 보면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며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며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었습니다. 이런 이방인의 특징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사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안다고 하였지만 그들도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였기에 주의 이름으로 오신 분을 배척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예수 안에서 그 피로 한 새 사람을 만드신 것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한 성령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서 하나님의 거처가 됩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이 복음을 알지 못하고 믿지 않으면 여전히 이방인이기에 스올로 가야 합니다.

 

본문 17~18절입니다. “봉독 악인들이 스올로 돌아갑니다. 스올이란 죽은 자들이 가는 곳이며 결국은 둘째 사망에 들어가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왜 악인입니까?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이방 나라들이 스올에 들어갑니다. 시편 28:5절입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과 손으로 지으신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파괴하고 건설하지 아니하시리로다여호와께서 행하신 일과 그 손으로 지으신 것을 생각하지 않는 자들이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궁핍한 자들은 항상 잊어버림이 당하지 않습니다. 가난한 자들은 영원히 실망하지 않습니다.

 

야고보서 2:5~7절입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여 믿음에 부요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세상의 부요한 자를 부러워하며 그들을 교회에서도 대접하는 겁니까? 세상에 부요한 자들은 가난한 자들을 멸시하며 법정에 끌어간 자들입니다. 이 땅의 부자들도 어떤 재판을 받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부자들은 전관예우를 받는 힘 있는 변호사를 사서 가난한 자를 학대하였습니다. 세상이 이러한데 교회마저 그러하다면 교회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가 세상의 부요함을 사랑한다면 주의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는 이방인들의 모임과 다를 바 없다는 말씀입니다. 말세에 재물을 쌓음이 저주입니다(5:1~6).

 

본문 19~20절입니다. “봉독 여호와여 일어나사 인생으로 승리를 얻지 못하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주 앞에서 심판을 받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여기서 이방나라는 앞에서 본 대로 주의 이름을 알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주의 이름을 알지 못하기에 주님께서 어떤 자를 심판하시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그들을 두렵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자기는 인생뿐임을 알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 19~20절을 다시 봅니다. “19 여호와여 일어나사 인생으로 승리를 얻지 못하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주 앞에서 심판을 받게 하소서 20 여호와여 그들을 두렵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자기는 인생일 뿐인 줄 알게 하소서 (셀라)” 표준 새 번역으로 봅니다. “19 주님, 일어나십시오. 사람이 주께 맞서지 못하게 하십시오. 주께서 저 이방 나라들을 심판하십시오. 20 주님,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시며, 자신들이 한낱 사람에 지나지 않음을 스스로 알게 하여 주십시오. (셀라)”

 

인생이나 사람으로 번역된 자들이 주께 맞서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이 이방 나라들입니다. 지난주의 말씀과 연결하여 보면 주의 이름을 모르는 자들이 이방나라이며 이방인입니다. 이들은 선악과의 유혹에 넘어간 아담 안에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노아홍수 이전에 네피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하여 낳은 자들이 네피림입니다. 네피림은 거인이며 다른 번역으로는 영웅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시대를 물로 심판하셔도 인간은 스스로 고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벨탑을 쌓으면서 흩어짐을 면하고 자기들의 이름을 내자고 합니다(11:4). 이러한 세상의 네피림, 영웅호걸이라는 자들이 가득한 곳이 가나안 땅입니다(13:33). 그러므로 여호와의 전쟁은 변변한 무기도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용하여 가장 힘센 골리앗과 같은 아낙 자손들을 물리치는 전쟁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의 이름을 아는 사람입니까? 주의 이름을 모르는 이방인입니까? 우리의 삶의 방향성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네피림을 원합니다. 세상의 영웅호걸을 원합니다. 이들이 하는 일이 바벨탑을 쌓는 일입니다. 자기의 이름을 내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오늘 본문 19~20절을 보면 사람이며 인생인 주제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이방의 나라들이며 이방인들입니다. 우리도 다 이방인들입니다. 이들이 구원을 얻으려면 어떻게 되어야 합니까? 자신이 인생 뿐 인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살아생전에 자신이 연약한 인생임을 알게 되면 주의 이름을 부릅니다.

 

본문 19~20절에 나오는 인생이라는 히브리어 단어가 에노쉬입니다. 어원은 아나쉬입니다. ’‘아나쉬는 병든 상태, 매우 약함, 악함, 상처를 입다. 낫지 않는다. 부패하다. 고칠 수 없다. 앓다. 재앙의 뜻으로 사용됩니다. 지난주에 본 창세기 4:26절에서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자가 나옵니다. 아벨 대신에 주신 셋이 아들을 낳고 이름을 에노스라고 부릅니다. 아벨은 뜻도 허무, 무익한, 안개와 같은 뜻입니다. 그런 아벨 대신 주신 셋이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고 합니다. 에노스의 뿌리도 오늘 본문의 인생이라는 아나쉬입니다. 그러므로 에노스 때에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말은 에노스가 네피림처럼 강한 자가 아니라 병들고 연약하고 상처가 낫지 않고 부패한 상태임을 알기에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연약한 자들이 부르게 됩니다.

 

그런데 주의 이름을 모르는 이방인들은 허약한 땅의 티끌을 뭉쳐서 하늘에 닿고자 바벨탑을 쌓습니다. 온 세상에 바벨탑을 쌓는 소리가 지금도 요란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바벨탑들도 무너져 내릴 땅의 티끌에 불과합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나라들이며 이방인이라고 합니다. 우리도 동일한 땅의 티끌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 자신이 병들고 연약한 땅의 티끌임을 알았습니까? 성경에 기록된 복음의 말씀을 들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듣고 믿게 되는 일은 겉으로 보기에 사람이 전하고 사람이 믿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 일은 영원하신 삼위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베드로전서 1:1~2절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성도의 별명이 흩어진 나그네입니다. 이들은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성도들의 등장은 삼위 하나님의 놀라우신 일하심으로 창조되어 나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구별하여 믿게 하십니다. 무엇을 믿게 됩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이유는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게 하시려고 택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믿게 된 자들이 주의 이름을 아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삼위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성부성자와 성령 찬송과 영광 돌려보내세 태초로 지금까지 또 영원무궁토록 성삼위께 영광 영광 아멘’(찬송가 3장과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