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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8:10-22 벧엘에서 서원한 야곱 2009. 12. 23

 

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찌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16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 야곱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베개 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본 이름은 루스더라 20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21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지난주에는 에서의 방성대곡과 야곱을 비교하여 보았습니다. 에서는 울면서 축복을 구하였지만 축복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도 땅에서 강하고 번성하게 살았던 것을 보았습니다. 반면에 야곱은 이삭의 축복을 받았지만 얼마나 고생을 하였는지를 대비하면서 보았습니다. 성경이 이렇게 증거하고 있지만 우리는 늘 생각하기를 내가 하나님을 잘 섬기면 이 세상에서도 복을 받고 저 세상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나의 모습을 보니 그런 복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무슨 말이 귀에 솔깃하게 들어오는가 하면 수많은 간증 자들이 말하는 이렇게 하여 복을 받았다는 이야기들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기도입니다. 기도도 보통 기도를 하면 안 되고 철야와 금식과 일천번제와 그것도 헌금을 드리면서 일천번제를 하면 소원을 이룬다고 합니다. 그것도 안 되면 서원을 하라고 합니다. 신년 축복대성회 하는 곳에 가면 단골로 나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도 야곱이 서원을 합니다. 서원(誓願)이란 맹세하고 원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냥 원하는 정도가 아니라 맹세하고 원하는 것인데 그것은 조건을 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하여 주면 내가 이렇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야곱도 그런 서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의 서원이 먼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인 약속이 야곱에게 먼저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릅니다.

 

야곱이 에서의 장자 권과 장자의 축복을 다 가로채 버린 것입니다. 그러자 에서가 말하기를 아버지가 늙어서 이제 곧 돌아가실 때가 되었으니 아버지 살아계실 때에 차마 동생을 죽일 수는 없고 돌아가시기만 하면 야곱을 죽일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리브가가 듣고서는 야곱을 자기 오라비 라반의 집으로 가게 합니다. 그때 이삭이 다시 야곱을 축복합니다. 전에는 모르고 했다고 해도 이제는 알고 축복을 합니다. 28:1-4절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그 복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시기를 원한다고 한 것입니다. 즉 언약에 동참되는 복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형을 피하여 도망가는 신세입니다. 이때 야곱의 나이가 77세입니다. 어떻게 그런 계산이 나오는가 하면 요셉이 나중에 애굽의 총리가 될 때 30세입니다. 그리고 7년 풍년과 2년 흉년이 지났으니 39세에 아버지를 만나는데 그때 야곱이 바로 왕 앞에서 130세라고 합니다. 그러면 야곱이 요셉을 낳은 때는 91세인데 이때는 두 아내를 위하여 14년을 보낸 때입니다. 그러므로 77세에 도망가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너무 늙었다고 생각이 되지만 야곱이 147세에 죽었으니 인생 중반에 도망간 것입니다.

 

브엘세바에서 하란으로 도망을 가는 중에 해가 져서 돌로 베게삼아 잠이 들었습니다. 잠들기 전에 기도했다는 말도 없습니다. 그런데 꿈에 무엇을 본 것입니다. 사닥다리가 땅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는데 여호와께서 그 위에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네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고 하시면서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하신 약속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이루기까지 너와 함께 있어 어디로 가든지 지키며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합니다.

 

이러한 언약을 주시는 것이 바로 일방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야곱의 어떤 외적인 조건을 보고서 언약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형을 속이고 아비를 속이고 도망가는 야곱에게 책망한마디 없는 것입니다. 왜 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그런 인간적인 수완을 발휘하여 장자의 권리를 가로 챘느냐고 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언약을 이루시는 일에는 인간의 자질을 아예 무시하고 이루어 가시는 것을 봅니다. 인간의 자질을 무시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불가능한 자들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내용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동일하게 그들의 자손이 많아질 것이며 모든 족속이 그 자손을 인하여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자식이 많아지려면 자식을 잘 낳는 사람을 택하시면 되실 텐데 오히려 자식을 낳지 못하는 아브라함과 사라를 택하시고 또 이삭은 40세에 리브가와 결혼하지만 20년 동안 자식을 낳지 못하였다가 기도하고 60세에 겨우 낳은 자식이 에서와 야곱뿐입니다. 그리고 야곱은 열두 아들을 낳지만 그러나 77세에 홀로 도망가는 이런 신세입니다. 결국 이런 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언약은 없는데서 있게 하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는 방식으로 이루어내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야곱이 잠을 깨고 나서 무엇을 말합니까? 과연 여호와께서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다고 하면서 두려워하며 이곳이 하나님의 전이요 하늘의 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베게 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벧엘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원을 하는데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오게 하시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며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드리겠다고 합니다.

 

저는 이 야곱의 서원이 불신앙의 모습이라고 봅니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의 약속을 아멘하고 받으면 될 텐데 그런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미 약속하신 내용을 다시 언급하면서 자기를 지켜주시고 돌아오게 하시면 이곳에 자기 하나님이 될 것이며 이곳이 하나님의 전이 되고 십일조를 바치겠다고 합니다. 야곱이 다급하니 이런 서원을 하였을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만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이 늘 이런 모습인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됨에도 우리는 늘 불안합니다. 염려가 됩니다. 그러니 스스로 조건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내가 이러면 복을 받을 것인가? 내가 이런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께 무엇을 잘못하여 벌을 받는 것인가? 그러니 내가 서원을 하여서 어려움을 타개하고 복을 받아야겠다는 식의 서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김 집사님이 이야기를 하지요. 건축을 하는데 입찰을 합니다. 얼마나 아쉬운 상황입니까? 입찰만 하나 떨어지면 어려움을 해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절로 서원이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이 입찰만 되면 무엇을 하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서원을 보면서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시는 일에 야곱의 서원과 상관없이 이루어 내시는 것을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다급하게 서원을 합니다. 나중에 야곱이 벧엘로 돌아오기는 합니다만 돌아와서 하나님의 전을 지은 적도 없고 겨울 돌로 단을 쌓기는 합니다. 또 십일조를 드렸다는 말씀도 없습니다. 그러함에도 야곱이 벧엘로 돌아오게 되는 것은 야곱이 서원하고 지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야곱에게 언약하신 그 약속을 이루어내신 결과라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의 서원이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31:1-3절을 봅니다. “봉독”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보니 전과 다른 것입니다. 그러니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때 여호와께서 야곱에서 네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 아내와 자식과 가축을 데리고 몰래 도망을 친 것입니다. 라반이 추격할 때에 하나님께서 라반의 꿈에 나타나셔서 야곱을 손대지 못하게 주십니다(31:34).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하신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고 계시는 것입니다. 라반은 축복하고 돌아갔지만 이제 또 문제는 형 에서가 400명을 데리고 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야곱이 얼마나 두렵고 답답하였는지 짐승 떼들을 두 떼로 나누고 한 떼를 치면 한 떼는 도망가려고 하였습니다. 야곱의 이름답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자신이 살아남아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서 기도합니다. 그 다급한 순간에 기억나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32:9-12절입니다. 벧엘에서 약속하신 그 내용을 이제 간구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베푸신다고 하셨고 이제 그 베푸신 은총과 진리를 종이 감당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베푸신 결과를 은총과 진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하심을 고백하는 순간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도 자기 형의 손에서 구원하여 달라고 합니다. 그 간구의 근거는 역시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모래 같게 하겠다는 것을 근거로 기도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기도하였다면 믿어야지요! 지금까지 지내온 것을 은혜라고 고백하였다면 이제 남은 삶도 믿고 맡겨야 하는데 야곱은 기도는 그렇게 하지만 어떻게 합니까? 형을 위한 예물을 택하여 종들을 손에 맡기고 그것도 세 떼로 나누어 보냅니다. 밤새 씨름하다가 환도뼈가 위골되고 나서도 자기 가족을 자기가 사랑하는 순서대로 다시 세 무리로 나누어 보냅니다. 그들을 치면 도망가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도망갈 수도 없는 절름발이 신세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여기서 화해하게 된 것은 이미 보았습니다.

 

이제 에서가 먼저 가고 나서 야곱이 세겜에 머물게 됩니다. 이곳에서 장막을 치고 그 밭을 사고 지냅니다. 여기에서 자기 딸 디나가 그곳의 추장에게 강간을 당합니다. 레위와 시므온이 그들에게 할례를 조건으로 결혼하겠다고 하고서는 그들이 할례행한 후에 그들을 죽여 버립니다. 만약 그들이 공격하여 오면 다 죽게 된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야곱에서 벧엘로 올라가게 하십니다. 35:1-7절입니다. “봉독” 벧엘까지 올라오기 까지 라반의 집에서 도망쳐야 하고, 에서와의 만남에서 구원받아야 하고, 세겜에서 사건이 일어나 결국 벧엘까지 올라와서 단을 쌓고 엘벧엘이라고 합니다. 형을 피하여 갈 때에 하나님이 나타나셨던 곳입니다.

 

이런 야곱을 보면서 오늘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지 않습니까? 예배당에서 말씀을 들을 때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살아야지 하면서도 돌아서면 우리의 살 궁리를 야곱보다 더 치밀하게 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서원의 기도도 하나님의 약속도 우선이 아닌 것입니다. 자기 사는 길이 우선인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기 약속을 이루어내셔서 벧엘로 올라가게 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나중에 애굽에서 죽게 됩니다. 물론 그 해골을 가나안 땅에 묻힙니다. 이것은 단지 장소로서의 벧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중에 이 벧엘에 금송아지를 섬기는 전이 세워집니다. 금송아지를 세워놓고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합니다. 오늘도 교회당을 성전이라고 하면서 자기 욕망을 위하여 온갖 서원을 하게 만들고 있다면 이런 곳은 우상의 전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주를 위한 헌신의 서원도 있습니다. 이런 서원은 반드시 자기 부인이 일어나면서 주님의 은혜만 증거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짜 벧엘은 어디입니까? 요한복음 1:51절입니다.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나다나엘과의 대화중에 하신 말씀입니다. 야곱이 본 하늘과 땅이 연결된 사닥다리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야곱이 벧엘에서 약속을 받고서 수많은 환난을 통하여 벧엘로 올라가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서원 때문입니다. 이처럼 오늘도 하나님께서 자기 서원을 이루시기 위하여 자기 백성을 하늘의 사닥다리인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늘의 사닥다리는 야곱처럼 고난의 길에서만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