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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14:6-15 이 산지를 주소서 2010. 2. 3

 

6 그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7 내 나이 사십 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하게 하였으므로 내가 성실한 마음으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8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 9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10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11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13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14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 15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라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에서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그리고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12절에 보시면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라고 합니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청하는 것이지만 이미 모세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내용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에게 청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기에 기도의 내용으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기에 여호와의 사자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산지를 주소서라고 하고 허락을 받아 그 땅을 정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좀 다닌 사람은 아마 이 말씀을 기억할 것입니다. 교회가 중요한 결정을 할 때에 자주 사용하는 본문입니다. 특히 교회당의 부지를 마련하기 위하여 이런 본문과 주제를 선택하여 이 산지를 주소서! 하면서 여리고성을 무너뜨린 것을 본 받아 땅 밟기를 합니다. 부산의 큰 교회당도 그렇게 하였고, 분당의 어느 교회도 당회원들이 가서 먼저 땅 밟기를 하여 다들 커다란 교회당을 지었습니다. 지금 서울의 큰 교회도 지금 땅을 사서 교회당을 지으면서 성전을 건축한다고 하는데 역시 땅 밟기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본문이 정말 그렇게 사용되어도 되는 간구의 내용일까요? 이런 해석을 성경의 도구화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자기들의 욕망의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라는 주제를 가지고 살펴보고 있지만 기도라는 것도 얼마든지 자기들의 욕망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경을 보아도 기도를 하여도 예배를 드린다고 하여도 모두가 자기들의 소원을 이루는 일에 동원되는 도구로 사용한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들이 온 천지에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6절을 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는 것이라고 자신과 여호수아의 공동경험을 이야기 합니다. 이것은 가데스 바네아에서 12정탐꾼을 가나안땅에 보낸 일입니다. 갈렙은 성실한 마음으로 보고 하였습니다. 성실한 마음으로 보고 하였다는 것은 그의 믿음으로 보고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믿음의 보고란 그들이 아무리 강하다고 하여도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면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다른 정탐꾼들은 내 형제들의 간담을 녹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원주민들이 강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들은 튼튼한 성벽을 가지고 있었으면 특히 아낙 자손이라는 거인 족들이 있었기에 그들의 힘으로는 당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10명도 사실대로 성실하게 보고를 하였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우리를 보면 우리가 메뚜기처럼 보일 것이라고 보고함으로 온 백성들이 새로운 지도자를 뽑아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한 것입니다.

 

민수기 13:30-33절입니다. “봉독” 갈렙과 다른 사람들의 보고가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똑 같은 상황을 보고서도 믿음으로 보는 것과 믿음으로 보지 못하는 시각이 이런 모습입니다. 이런 본문을 가지고서도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인 사고방식과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자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정말 엉터리 해석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우리가 힘을 합하면 이루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가 무엇인지를 갈렙을 통하여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갈렙은 자기의 영웅적인 믿음을 보여주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갈렙을 통하여 전체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 없음을 고발하는 것입니다. 14절을 보시면 그니스의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그니스 사람 또는 그나스 사람이라고 하는데(민32:12)이 족속은 창세기에서 보면 가나안 지역에 속한 민족입니다(창15:19). 이 족속 중에 한 사람인 갈렙이 출애굽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편입이 되었는지 그 이전인지는 모르지만 이스라엘에 편입되어 유다지파에 소속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정탐꾼으로 지목할 때에 갈렙이 유다지파로 나온 것입니다.

 

이런 갈렙이 여호와의 약속을 얼마나 신실하게 신뢰하는지 7절에서 성실한 마음으로 보고하였다고 하며, 9절에서는 여호와께 충성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말하기를 네가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고 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오늘도 교회들이 자기들이 원하는 땅이 있으면 그곳에 가서 땅 밟기를 한다고 야단입니다. 정말 아전인수식으로 성경을 적용하는 모습입니다. 신약 성도들에게 땅이란 예수 그리스도여야 마땅한 것입니다. 예수 안이 천국이기에 예수 없는 곳은 지옥입니다.

 

그러므로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요청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내용을 이제 이루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다른 지파들은 지금 땅을 제비뽑아 나누는 중입니다. 제비뽑아 나누는 것은 자기들이 차지하기 좋은 곳을 힘 있다고 선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땅은 여호와의 것이기에 여호와의 전쟁으로 취하여진 전리품을 여호와께서 마음대로 각자에게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갈렙도 가만히 있으면 제비뽑아 한 구역을 차지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갈렙이 요청하는 것은 좋은 땅을 차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가기를 싫어하는 산지의 아낙 자손이 사는 곳입니다.

 

10-12절을 봅니다. 45년 전에 이 약속을 받았는데 지금도 자신은 강건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명한 이 산지를 자기에게 달라고 합니다. 그 산지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쫒아낼 것이라고 합니다. 철저하게 여호와께서 함께 하셔서 여호와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고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곳은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는 곳이며 아직도 정복되지 못한 곳입니다.

 

13-14절을 봅니다.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쫓았다고 합니다. 이런 모습이 45년 전에도 나왔습니다. 민수기 32:11-13절입니다. “11 애굽에서 나온 자들이 이십 세 이상으로는 한 사람도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한 땅을 결코 보지 못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를 온전히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12 그러나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여호와를 온전히 따랐느니라 하시고 1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에게 사십 년 동안 광야에 방황하게 하셨으므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한 그 세대가 마침내는 다 끊어졌느니라”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불신한 자들이 다 끊어지고 가나안을 공격한지 5년이 지난 때에 갈렙이 헤브론을 공격하여 그의 기업이 되게 하는 것은 여호와를 온전히 따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4절에서도 온전히 쫓았다고 합니다. 물론 여호수아도 온전히 따랐다고 말하지만 신명기 1:36절에서는 여호수아의 이름은 없고 갈렙만 언급하면서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께 순종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여호수아보다 갈렙의 순종과 온전한 믿음을 더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믿음이라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라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방인이 이스라엘에 편입되는 자로서 이런 신실하고 온전하고 충성된 믿음이 나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불가능한 일이 일어난 것을 보고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기생 라합에게서도 지난주에 보았던 기브온 족속에게서도 보게 됩니다. 즉 이런 믿음이란 없는데서 있게 하시는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만을 신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갈렙의 이런 믿음, 즉 하나님의 모든 약속에 대한 믿음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15절을 봅니다.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라고 합니다. 기럇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에서 가장 큰 사람이라고 합니다. 아낙 사람이 원래 큰 사람들이지만 이 헤브론에 거주하는 아낙 사람들은 그 중에서 가장 큰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곳을 갈렙이 정복하였다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싸운 싸움인 것입니다. 이런 싸움의 결과를 말하는 마지막 절을 봅니다. 그리고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고 합니다.

 

헤브론을 정복하였다고 전쟁이 그친 것은 아닙니다. 아직 정복해야 할 땅이 많이 남았습니다. 제비를 뽑았지만 아직 땅만 제비로 뽑아 정하였지 차지하지 못한 곳이 많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땅을 다 차지하는 것은 사사시대를 지나 다윗 때에 다 차지하기 때문에 전쟁이 마치려면 수 백 년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갈렙이 헤브론을 정복하자 그 땅에 전쟁이 그쳤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충성되게 믿고 따른 갈렙을 통하여 여호와의 전쟁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온전하게 믿고 따르는 한 사람만 있어도 그 약속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쟁이 그쳤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운동회 날 기마전을 하는 것을 생각해 봅시다. 운동장에서 이리저리 흩어져서 싸우는데 승부가 나는 것은 대장의 깃발을 빼앗으면 끝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수가 얼마나 많이 남았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느 대장이 이겼는가의 문제입니다.

 

이런 여호와의 전쟁이 이미 창세기 3:15절에 예언이 되어 있습니다.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의 싸움입니다. 뱀의 후손이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지만 여자의 후손은 그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것입니다. 즉 치명상을 입히는 것으로 여자의 후손이 승리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전쟁의 장소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임으로 그들이 승리한 줄 알았지만 그것은 발꿈치의 상처정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다 이루었다고 하신 것입니다. 전쟁이 끝났다는 것입니다.

 

아니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저주 받아 죽은 모습인데 그것이 무엇을 다 이루었다는 것입니까? 그 십자가의 다 이루심이란 여호와 전쟁의 최종승리의 깃발을 꼽은 것입니다. 갈렙이 온전히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서 헤브론을 정복하였을 때에 그 땅에 전쟁이 끝났다고 하는 것처럼 예수님의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는 것은 이제 사단의 권세가 깨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예수님의 십자가로 다 이루신 것입니다. 그 증거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부활시키시고 하늘에 등극하여 하나님의 보좌우편에 앉으셔서 온 세상을 다스립니다.

 

그러나 아직 세상에서 전쟁은 끝난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여전히 적의 세력이 강하여 보입니다. 도대체 예수님이 승리하셨다고 하는데 예수 믿는 나의 모습은 왜 이러느냐고 할 것입니다. 갈렙처럼 이 산지를 주소서!하면 땅이 기적처럼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런 간증을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왜 우리는 그러지도 않느냐고 할 것입니다. 갈렙이 달라고 한 땅이 약속의 땅입니다. 그 약속의 땅이란 이제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산지를 주소서! 하는 것은 예수님을 주소서!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