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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50:21~34   교만하였음이라     2015. 3. 11

29 활 쏘는 자를 바벨론에 소집하라 활을 당기는 자여 그 사면으로 진을 쳐서 피하는 자가 없게 하라 그가 일한 대로 갚고 그가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라 그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여호와를 향하여 교만하였음이라 30 그러므로 그 날에 장정들이 그 거리에 엎드러지겠고 군사들이 멸절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1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교만한 자여 보라 내가 너를 대적하나니 너의 날 곧 내가 너를 벌할 때가 이르렀음이라 32 교만한 자가 걸려 넘어지겠고 그를 일으킬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그의 성읍들에 불을 지르리니 그의 주위에 있는 것을 다 삼키리라

예레미야서에서 바벨론의 심판과 멸망의 내용이 가장 많습니다. 이러한 바벨론의 심판과 멸망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려고 하시는 것입니까? 이 세상이 왜 심판을 받아야 하고 멸망을 받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려주십니다. 지금까지 바벨론의 심판과 멸망의 이유를 여러 가지로 보았습니다만 오늘 본문에서는 교만입니다. 29절을 보시면 활 쏘는 자를 바벨론으로 소집하여 심판하시는데 그 심판의 근거로 그가 일한 대로 갚고 그가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라고 합니다. 그가 일하고 행한 것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여호와를 향하여 교만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그를 대적하여 벌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1~22절을 봅니다. “21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는 올라가서 므라다임의 땅을 치며 브곳의 주민을 쳐서 진멸하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대로 다하라 22 그 땅에 싸움의 소리와 큰 파멸이 있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말씀 그자체가 이미 성취입니다. 그 말씀의 내용은 너희는 올라가서 므라다임의 땅과 브곳의 주민을 쳐서 진멸하되 나의 명한대로 하라고 합니다. 므라다임과 브곳은 바벨론을 말하는 것이지만 정확한 지명이라기보다는 바벨론의 정신 상태를 보여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므라다임은  ‘갑절이나 반역이 심한 곳’ 또는 ‘반항이 심한 땅’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브곳은 바벨론의 지명으로도 나오지만(겔23:23) 히브리어 말로는 ‘처벌’로 들리는 말입니다. 바벨론이 하나님께 대하여 반역이 심한 곳이니 처벌을 받는 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 땅에 싸움의 소리와 큰 파멸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23절입니다. “온 세계의 망치가 어찌 그리 꺾여 부서졌는고 바벨론이 어찌 그리 나라들 가운데에 황무지가 되었는고” 바벨론이 온 세계의 망치라고 합니다. 이것은 바벨론이 거대한 제국으로 수많은 나라들을 정복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망치가 부서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벨론이 나라들 가운데에 황무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지난주에 보았습니다만 앗수르가 교만하여 졌을 때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말씀을 다시 봅니다. 

이사야 10:15~19절입니다. “15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하겠느냐 이는 막대기가 자기를 드는 자를 움직이려 하며 몽둥이가 나무 아닌 사람을 들려 함과 같음이로다” 앗수르가 이러한 교만으로 망하였고 바벨론도 이러한 교만으로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는 주제에 자신이 대단한 줄 알고 교만한 것은 이러한 강대국만이 아니라 아담 이후의 모든 자들이 다 이러한 교만이 나옵니다. 도끼, 톱, 막대기, 몽둥이, 망치 이러한 도구들이 사람에게 큰 체 하며 사람을 들려고 한다면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면서 그것이 교만인 줄도 알지 못합니다. 우리의 죄라는 것이 다 이러합니다. 그러므로 근원적인 죄가 교만입니다. 

본문 24절입니다. “바벨론아 내가 너를 잡으려고 올무를 놓았더니 네가 깨닫지 못하여 걸렸고 네가 여호와와 싸웠으므로 발각되어 잡혔도다” 바벨론을 잡으려고 올무를 놓았는데 바벨론이 깨닫지 못하고 걸렸다고 합니다. 바벨론이 깨닫지 못한 것이 무엇입니까? 자신이 하나님의 손에 들린 망치일 뿐인데 주인의 손에 들려서 사용되는 주제에 자기가 잘나서 그렇게 된 줄 아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신 상태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며 교만한 것인데도 이것을 알지 못합니다. 이것은 바벨론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바벨론의 의하여 심판을 당한 유다도 하나님께 교만하였기에 심판을 받습니다. 이러한 유다를 심판하는 도구인 바벨론도 교만하여 심판을 당합니다. 이것이 온 세상이 심판을 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본문 25~27절입니다. “25 여호와께서 그의 병기창을 열고 분노의 무기를 꺼냄은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갈대아 사람의 땅에 행할 일이 있음이라 26 먼 곳에 있는 너희는 와서 그를 치고 그의 곳간을 열고 그것을 곡식더미처럼 쌓아 올려라 그를 진멸하고 남기지 말라 27 그의 황소를 다 죽이라 그를 도살하려 내려 보내라 그들에게 화 있도다 그들의 날, 그 벌 받는 때가 이르렀음이로다” 

바벨론의 교만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그의 병기창을 열고 분노의 무기를 꺼내십니다. 갈대아 사람의 땅에 행할 일이 있다고 합니다. 여호와의 병기창의 무기들은 메데와 바사를 통하여 바벨론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의 곡간도 그들의 황소도 다 진멸을 당하게 됩니다. 진멸이란 모두 다 죽이는 전쟁입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전쟁의 특징입니다. 이러한 진멸 전쟁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은 아직도 자기 자신에게 무언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인본주의적인 생각입니다.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있다는 생각은 결코 하지 못합니다. 아담 이후의 모든 인간들이 하나님이 되고자 선악과를 따 먹은 그 교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본문 28절입니다. “바벨론 땅에서 도피한 자의 소리여 시온에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보복하시는 것, 그의 성전의 보복하시는 것을 선포하는 소리로다” 바벨론 땅에서 도피하는 자들이 소리가 나옵니다. 바벨론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예루살렘을 시작으로 주변의 여러 나라들이 심판을 받을 때에 도망하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이 심판당할 때에 그곳에서 도피하는 자들의 소리는 시온을 중심으로 일어납니다. 시온이란 예루살렘의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시온에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보복하시는 것, 그의 성전의 보복하시는 것을 선포하는 소리라고 합니다. 바벨론이 하나님의 망치로 사용되어 여호와의 성전을 파괴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힘과 능력인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보복이라는 선포가 나오는 것입니다. 

본문 29~32절입니다. “봉독”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입니다. 바벨론이 심판을 받는 이유는 그가 일하고 행한 대로 갚아지는 것인데 그 행한 것이란 여호와를 향하여 교만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 심판의 날에 장정들과 군사들이 멸절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선포됩니다. 교만한 자여 보라 내가 너를 대적하나니 너의 날 곧 내가 너를 벌할 때가 이르렀음이라고 합니다. 교만한 자가 걸려 넘어지겠고 그를 일으킬 자가 없을 것이며 그의 성읍들에 불을 지르는데 그의 주위에 있는 것을 다 삼킬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서만 교만이라는 말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 바벨론의 심판과 멸망은 여호와께 대한 교만입니다. 그런데 여호와께 대한 교만이라는 사실을 바벨론은 알지 못합니다. 

어제 밤에 어느 방송에서 일본의 원전 폭발 4년의 모습을 잠시 봤습니다. 그때 집사람이 일본에 온 독일 총리가 일본의 역사 인식에 대하여 비판하였다는 말을 듣고 오늘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습니다. 독일 총리가 일본에 와서 한 발언은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나치 시대 때 독일이 행한 끔찍한 일에도 불구하고 독일이 국제사회에 받아들여진 것은 행운이라고 하면서 그것은 독일이 과거의 역사를 똑바로 보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그렇지 않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 자기의 과거를 잘못 했다고 인정하는 것이 용기입니다. 

그런데 일본이 자신들의 전쟁을 절대로 정복전쟁으로 보지 않습니다. 2년 전에 일본에 갔을 때에 야스쿠니 신사 근처에서 대동아전쟁 기념 70주년 기념전을 열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비행기와 대포까지 전시를 하고서는 세계 지도를 그려 놓고 그들이 한때 정복하였던 곳을 표시해 놓았습니다. 그들은 그러한 기념전을 통하여 2차 대전에서 패배한 것을 못내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념전 이름이 대동아전쟁입니다. 이들은 대동아공영론(大東亞共榮論)을 주장하기에 반성을 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일부 사람들은 잘못을 인정하지만 극우주의자들의 역사 인식은 자기들이 선행을 한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반성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시사적이인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의 마음에도 바벨론과 같고 일본과 같은 생각들이 들어있다는 말씀입니다. 독일도 반성을 하였지만 아직도 나치를 추앙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이나 일본의 주장이나 비슷한 것은 자신들은 우등한 민족이기에 열등한 민족들을 개조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열등한 민족으로 낙인을 찍고는 무자비하게 죽였습니다. 그러함에도 죄의식도 없는 것은 내가 행한 일은 진리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정신이 바로 바벨론 정신입니다. 이러한 정신이 집단적 광기로 나오면 그것이 전쟁으로 치닫게 되고 개인적으로 나오면 사이코 패스로도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언제부터 인간에게 나왔을까요? 이미 창세기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뱀이 선악과를 따 먹으면 너도 하나님처럼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금단(禁斷)의 열매입니다. 금한다는 금자가 나무 목(木)자 두 개에 보일 시(示)자입니다. 경기도 성경공부 하는 집사님 중에 붓글도 쓰고 한문도 가르치는 분이 아이들에게 한문 이야기 하면서 금자를 선악과 이야기에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의미가 있는 말입니다. 나무로 보여주고 알려주었다는 뜻이 금자에 담겨있다고 본 것입니다. 금단의 열매이기에 먹으면 죽는데도 사단의 너도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그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지금 우리도 다 아담의 허리에 속하여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습니다. 이것을 성경은 아담 안이라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15:21~22절입니다. “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인류는 한 사람으로 보시면 됩니다. 모든 인류의 모든 악이 다 아담 안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입니다. 이런 증세가 어떤지 에베소서의 말씀을 봅니다. 

에베소서 2:1~3절입니다.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아담 안에서 죽은 자의 증세가 이렇습니다. 공중 권세 잡은 자 아래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던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는 말입니다. 물론 이러한 인간들 속에서도 진선미(眞善美)를 말하지만 역시 자기를 중심으로 말하는 선악의 결정이기에 본질상 진노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이 세상의 풍조를 따른다는 것은 세상 정신의 총합입니다. 이것이 바벨론이기에 바벨론의 교만은 하나님을 향한 교만이라는 말입니다. 

본문 30~32절입니다. “30 그러므로 그 날에 장정들이 그 거리에 엎드러지겠고 군사들이 멸절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1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교만한 자여 보라 내가 너를 대적하나니 너의 날 곧 내가 너를 벌할 때가 이르렀음이라 32 교만한 자가 걸려 넘어지겠고 그를 일으킬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그의 성읍들에 불을 지르리니 그의 주위에 있는 것을 다 삼키리라” 바벨론의 교만함이란 온 세상의 교만함이며 이것은 바로 우리자신들의 교만입니다. 이러한 교만한 자들을 여호와께서 대적하시고 벌하십니다. 이러한 세상을 하나님은 심판하십니다. 이런 교만을 심판하시는 이유를 성경에서 아주 많지만 몇 곳만 찾아봅니다. 

레위기 26:19~21절입니다. “19 내가 너희의 세력으로 말미암은 교만을 꺾고 너희의 하늘을 철과 같게 하며 너희 땅을 놋과 같게 하리니 20 너희의 수고가 헛될지라 땅은 그 산물을 내지 아니하고 땅의 나무는 그 열매를 맺지 아니하리라 21 너희가 나를 거슬러 내게 청종하지 아니할진대 내가 너희의 죄대로 너희에게 일곱 배나 더 재앙을 내릴 것이라” 교만은 세력과 연결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나의 세력을 원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와서 기도하고 정성을 바치는 것도 세력을 원한다면 이것은 교만을 쌓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종교적인 열심 으로 세력을 구축하려고 할 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도 세력을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힘이 되고 돈이 되고 세력이 될 만한 모임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세력을 추구하면서 하나님을 청종하시 않으면 일곱 배나 더 재앙을 내린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세력을 추구함을 버릴 수가 없었던 이스라엘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망하고 바벨론이 망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세상은 우리를 속이고 있습니다. 힘이 없어서 망하기에 계속하여 힘을 추구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과 이방인이 보기에 미련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십자가는 힘을 추구하는 자들에게는 저주의 표시일 뿐입니다. 

신명기 8:11~20절입니다. “11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12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13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14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15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 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16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17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19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 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20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 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니라”

신명기 8:1~10절을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 40년 길을 통하여 주리고 낮추신 이유는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 훈련을 마치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먹고 배부르게 되면 교만하여질까 염려하였습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도 이와 같지 않습니까? 먹고 살만하게 되니 이것이 마치 나의 능력으로 된 것 인양 교만하여 지는 것입니다. 내 능력과 내 힘으로 이것을 이루었다고 하는 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이것이 가정이든 교회든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이 가정을 위하여 이만큼 수고한 능력이라고 하거나 이 교회를 위하여 내가 이만큼 수고하였기에 이런 결과가 이루어졌다는 생각들이 다 교만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을 향한 교만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교만을 봅니다. 

사무엘상 2:3절입니다.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의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 자식 있다고 자식 없는 한나를 공격한 브닌나가 교만한 자가 됩니다. 자신의 있다는 것을 자기의 능력으로 여기기에 없는 자들을 무시하는 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이러한 자들을 심판하시는 분이 그리스도임을 한나의 찬양과 마리아의 찬양을 통하여 이미 보았습니다.  

사무엘하 22:28절입니다.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자를 살피사 낮추시리이다” 다윗의 찬송입니다.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지지만 교만한 자는 낮추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곤고한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늘 원하는 바가 세력과 힘입니다. 이런 것들이 있으면 곤고하지 않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윗이 곤고할 때는 늘 주님을 의지하였지만 세력을 얻고 왕이 되었었을 때에 한 짓은 간음과 살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은 또 낮추시는 것이 인생 후반부입니다. 이러한 곤고함을 통하여 주의 구원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거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눈은 세상을 거꾸로 보는 것입니다. 

잠언 21:3절에서는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의 형통이 죄라고 합니다. 이와 비슷한 내용은 시편 105편 5절입니다. “자기의 이웃을 은근히 헐뜯는 자를 내가 멸할 것이요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를 내가 용납하지 아니하리로다” 이러한 교만을 하나님께서 다 아십니다. 잠언 8:13절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잠언 16:18~20절입니다.  “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19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 20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교만을 벗어나는 길은 삼가 말씀에 주의하며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본문 33~34절입니다. “ 33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이 함께 학대를 받는도다 그들을 사로잡은 자는 다 그들을 붙들고 놓아 주지 아니하리라 34 그들의 구원자는 강하니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라 반드시 그들 때문에 싸우시리니 그 땅에 평안함을 주고 바벨론 주민은 불안하게 하리라” 위에서 찾아본 교만이라는 말씀의 결론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교만하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와서 마음이 낮아져 있습니다. 이렇게 곤고한 자를 하나님이 돌보십니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 곤고하게 된 자들을 구원하십니다. 그 결과 지금 곤고한 자들은 평안을 얻지만 그 교만한 바벨론 주민은 불안하게 하실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약속된 말씀으로 인하여 곤고함을 받습니까? 그렇다면 주께서 구원하시는 표가 됩니다. 그런데 말씀과 상관없이 세상의 평안과 영광을 누리고 있다면 이들이 심판을 받습니다. 

끝으로 고린도후서 10:4~6절을 봅니다. “4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5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6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바울사도가 복음을 전하는 것을 전투로 묘사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싸움의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라 어떠한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구원 얻는 자들에게만 능력이 됩니다. 세상의 힘을 추구하는 자들은 결코 미련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십자가에 마음이 두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이론과 생각들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이론과 생각으로 똘똘 뭉쳐져 있습니다. 선악과로 인하여 너도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이론과 생각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은 이러한 이론과 생각들을 다 무너뜨립니다. 이것은 마음의 이론과 생각만 무너뜨려서 잘 알 수가 없습니다. 이론과 생각이라고 하니 지식으로 생각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식만이 아니라 우리의 세포 하나하나에 까지 스며든 모든 이론과 생각들은 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행위들은 나의 힘을 빼는 쪽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힘과 세력을 높이는 쪽으로 가는 것입니다. 세상이나 교회에서 사람을 사귀어도 나의 힘을 빼는 자라면 피합니다. 무언가 떡 고물이라고 떨어지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 본능입니다. 이러한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낮추십니다. 그래서 건강도 잃게 하시고, 재산도 날아가게 하시고, 믿던 자들에게 배신도 당하게 하시고, 사람 막대기 인생채찍을 통하여 교만할 수 없도록 만들어내십니다. 이것이 당할 때는 고통스럽지만 이것을 당하고 나면 의의 평강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라면 반드시 하나님을 향하여 교만한 것을 이 역사 속에서 낮추십니다. 그리고 세상의 끝이 옵니다. 

고린도후서 10:6절입니다.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의 복종이 온전하게 된다는 것은 모든 교만이 다 날아가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시인하며 그 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주님께서 자기 성도에게는 날마다 낮추시는 일들을 일으키십니다. 이러한 복종이 온전하게 되면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 즉 교만을 심판하십니다.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가 되시는 분이 십자가를 지셨는데 그 앞에서 복종하지 않는 것이 교만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복종이 온전하게 되면 복종되지 않은 교만한 자를 벌하려고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산다고 하는 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우리의 교만과 우리의 자존심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 원통하고 억울한 것이 아니라 영원한 복임을 알고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