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동영상 설교]

에스겔 1:1-3 그발 강가에서 하늘이 열리고 2011. 10. 26

 

1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2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 년 그 달 초닷새라 3 갈대아 땅 그발 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오늘부터 에스겔서를 보려고 합니다. 에스겔서는 대선지서로 분류되는 이사야 예레미야와 함께 삼대선지서를 기록한 선지자입니다. 에스겔은 제사장 가문의 출신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기록한 선지자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북 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남 유다의 멸망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에스겔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상황에서 기록이 되었습니다.

 

먼저 에스겔 선지자의 이름에 대하여 보려고 합니다. 부모가 에스겔의 이름을 지었겠지만 이 이름에도 에스겔 선지자의 사역의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에스겔의 뜻은 하나님이 강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와 비슷한 이름이 히스기야입니다. 히스기야는 여호와께서 강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끝에 하나님과 여호와를 말하여 발음의 차이가 있습니다만 강하게 하신다는 같은 뜻입니다. 나라의 위기를 보면서 부모가 하나님께서 강하게 하여 달라는 의미로 이름을 지었겠지만 이스라엘은 지금 약할 때로 약하여져서 포로로 잡혀 가 있습니다. 부모의 간절한 소원으로 하나님이 강하게 하여 달라고 하였지만 현실은 그 당시 세계 최강의 제국인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간 상태입니다. 이름의 뜻과는 반대에 처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역시 강하심이 드러납니다.

 

왜 사로잡혀 갔습니까? 신명기 28:36-37절입니다. “36 여호와께서 너와 네가 세울 네 임금을 너와 네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나라로 끌어가시리니 네가 거기서 목석으로 만든 다른 신들을 섬길 것이며 37 여호와께서 너를 끌어가시는 모든 민족 중에서 네가 놀람과 속담과 비방거리가 될 것이라” 이어지는 47절의 말씀입니다. “네가 모든 것이 풍족하여도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한 것입니다.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남 유다는 바벨론에 멸망한 것이 하나님의 언약의 저주대로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소망이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의 언약이 지금 유효하게 적용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언약을 배반하여도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시지 않으시면 언약이 적용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약의 저주로 인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것이 오히려 소망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만약 계속하여 언약을 배반하는데도 이런 징계가 없다면 그것은 언약이 파기 되었기에 완전히 버리신 것이 됩니다. 그러나 이런 바벨론 포로로 인하여 자신들이 언약의 저주임을 알고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게 하시는 일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언약은 파기되지 않고 지금 그대로 적용이 되고 있기에 소망이 있습니다.

 

열왕기상 8:46-53절입니다. “봉독”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하고 나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하나님께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적국에서 넘기셨을지라도 그 곳에서 죄를 깨닫고 돌이켜 주시기를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돌이켜 달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범죄 하지 아니하는 인생이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하나는 철 풀무 같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이 주의 소유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세상 만민 중에서 그들을 구별하여 주의 기업으로 삼으셨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상기하면서 구원하여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을 봅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날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서른 해 넷째 달 초 닷새라고 합니다. 이 서른 해에 대하여 다른 견해들도 있지만 대부분 에스겔의 나이로 말합니다. 에스겔이 제사장 가문 출생이기에 어려서부터 제사장의 사역을 보고 배웠을 것입니다. 제사장의 사역이 30세에서 50세까지이니 공식적인 사역의 나이이기도 합니다. 에스겔 30세 때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연대 표시는 2절에서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년 그달 초닷새라고 합니다. 여호야긴 왕은 여호야김 왕이 죽은 후 18세에 왕이 되어 3개월 만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왔습니다.

 

잡혀온 곳이 그발 강가입니다. 이곳은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 강에서부터 인공적인 관개수로를 만들어 니푸르라는 곳으로 흐르게 하였습니다. 바벨론 지역을 발굴한 고고학적인 자료에 의하여서도 드러난 곳이라고 합니다. 유대에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것은 3차에 걸쳐서 잡혀왔는데 여러 곳에 거주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왜 그발 강가에서 계시를 받은 것입니까? 이들이 고국을 그리워하면서 기도하기 위하여 모였을 수도 있습니다. 사도행전 16:13절에 보시면 바울 일행이 빌립보에서 안식일에 기도할 곳을 찾아서 강가로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처럼 그발 강가에서 기도하기 위하여 모인 곳일 수 있습니다.

 

사로잡혀 온 상황에서 강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시편 137편을 봅니다. “1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2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3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4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5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6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이들이 범죄 함으로 이렇게 포로가 되어 왔지만 이제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리워하며 울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이럴 때에 하늘이 열립니다. 1절과 3절을 봅니다.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보이면서 여호와의 말씀이 에스겔에게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에스겔 위에 거하게 됩니다. 포로로 잡혀 와서 낙심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린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는 이스라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온 세계를 다스리고 계심을 보게 됩니다. 바벨론마저 하나님의 도구일 뿐임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온 이스라엘이 경험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자기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포로로 잡혀가게 하시고 또한 그곳에서 나타나셔서 새로운 계시를 보여주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 뜻을 몇 가지 찾아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이스라엘 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왔는지를 알게 합니다. 에스겔 5:5-9절입니다. “5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이르시되 이것이 곧 예루살렘이라 내가 그를 이방인 가운데에 두어 나라들이 둘러 있게 하였거늘 6 그가 내 규례를 거슬러서 이방인보다 악을 더 행하며 내 율례도 그리함이 그를 둘러 있는 나라들보다 더하니 이는 그들이 내 규례를 버리고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7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 요란함이 너희를 둘러싸고 있는 이방인들보다 더하여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하며 내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를 둘러 있는 이방인들의 규례대로도 행하지 아니하였느니라 8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 곧 내가 너를 치며 이방인의 목전에서 너에게 벌을 내리되 9 네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내가 전무후무하게 네게 내릴지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변의 이방 나라들보다 더 악하였기에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둘째로 심판을 당하면서 이들은 자신들에게 완전히 소망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33:10-11절입니다. “10 그런즉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말하여 이르되 우리의 허물과 죄가 이미 우리에게 있어 우리로 그 가운데에서 쇠퇴하게 하니 어찌 능히 살리요 하거니와 11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그들 스스로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살 소망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악한 길에서 떠나라고 하시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스로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셋째로 하나님 홀로 이루어내심을 보여주십니다. 에스겔 37:11절입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마른 뼈가 살아나는 환상을 보여주시고 하나님께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포로에서 돌아오는 길은 무덤에서 살아나오는 형식입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영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일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포로로 잡혀감으로 자신들에게는 전혀 소망이 없음을 알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방식으로 돌아오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시는 목적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에스겔 36:16-38절입니다. “봉독”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일 밖에 한 것이 없습니다.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혔고 그리하여 열방에 포로로 잡혀가게 됨으로 또한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힌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돌이키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자기 이름을 아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을 그들을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 이름을 위하여 돌아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돌아오게 하시는 일에 그들을 씻기시고 깨끗하게 하셔서 새 영을 부어주심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예루살렘과 성전의 환상을 보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약속대로 바벨론 포로에서 70년 만에 돌아오지만 제대로 나라를 형성하지 못합니다. 성전은 겨우 재건하였지만 나라의 꼴은 제대로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을 계속하여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바벨론 강가에서 울다가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울어야 할 일들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렇게 메시아를 기다렸지만 정작 메시아가 왔을 때는 그들이 메시아를 맞이하지 못하고 배척하였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남은 자들은 메시아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에게는 이 땅의 예루살렘의 회복이나 성전의 회복을 바라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안이 새 예루살렘이고, 예수님 안이 새 성전임을 성령을 통하여 알고 믿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이제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이 없이 성령이 임한 자들은 이 땅의 시온을 향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에 속한 시온을 향하여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그리로 부터 구원하실 자를 기다리며 바벨론 강가에서 울었던 사람들처럼 지금 온 세상이 바벨론의 유배지가 된 이곳에서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울고 있는 자들이 이 마지막 시대의 남은 자들입니다. 물론 이러한 모양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임한 자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면서 떠날 준비를 하면서 살게 된다는 말입니다.

 

히브리서 13:14절입니다. “14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 이 땅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음을 아는 사람들이 성도입니다. 이들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땅의 일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들에게는 날마다 이 땅으로부터 분리시켜 주시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런 모습이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게 됩니다. 마치 바벨론 강가에서 탄식하며 목 놓아 우는 자들처럼 울 때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뜻이 계시가 되었습니다. 구약에서 처음 나타난 하늘이 열리고의 표현입니다. 완전히 바닥까지 갔을 때에 하늘이 열린 것입니다. 이러한 하늘이 열린 것이 신약에서 세 번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예수님 위에 임합니다(마3:16). 그리고 요한복음 1:51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야곱이 본 하늘의 사닥다리입니다. 이것은 하늘이 열리고 하늘로서 내려온 사닥다리입니다. 야곱이 본 사닥다리가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스데반 집사가 순교할 때에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서신 것을 보게 됩니다(행7:51). 그러므로 하늘이 열리는 것은 다 예수님과 연결이 됩니다.

 

하늘이 열리는 순간은 인간으로서 절망의 순간입니다. 야곱은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도망가가다 들판에서 돌베개를 하고 자는 그 순간에 하늘의 사닥다리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에서 하늘이 열려졌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순교의 순간에 열렸습니다. 그러나 밑바닥에 다다른 인생이라고 다 하늘이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게만 열려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우리의 삶의 정황 속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그 때에 오히려 하늘이 열리게 되는 때입니다. 하늘이 열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다 이루어내신 예수 그리스도가 밝히 보이게 될 것입니다. 이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