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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1:4-28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 2011. 11.

 

4 내가 보니 북쪽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이 그 사방에 비치며 그 불 가운데 단 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이고 5 그 속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 그들에게 사람의 형상이 있더라 ············ 10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오른쪽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왼쪽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11 그 얼굴은 그러하며 그 날개는 들어 펴서 각기 둘씩 서로 연하였고 또 둘은 몸을 가렸으며 12 영이 어떤 쪽으로 가면 그 생물들도 그대로 가되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22 그 생물의 머리 위에는 수정 같은 궁창의 형상이 있어 보기에 두려운데 그들의 머리 위에 펼쳐져 있고··················· 26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 27 내가 보니 그 허리 위의 모양은 단 쇠 같아서 그 속과 주위가 불같고 내가 보니 그 허리 아래의 모양도 불같아서 사방으로 광채가 나며 28 그 사방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엎드려 말씀하시는 이의 음성을 들으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면서 가장 큰 충격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천지를 창조하시고 언약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디에 계시는가에 대한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나라가 멸망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언약하신 그 왕위가 영원하리라는 언약들은 다 어디에 가고 이렇게 나라가 멸망하게 되었는가 하는 충격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가? 과연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가 하는 이런 갈등이 가득하였을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도 포로로 잡혀가서 5년, 그 절망의 순간에 그발 강가에서 하늘이 열린 것입니다.

 

4절입니다. 북쪽에서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이 그 사방에 비치며 그 불 가운데 단 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이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타나실 때의 모습입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체결하기 위하여 시내산에 강림하실 때에도 구름과 불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부분적으로 다르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모습은 비슷합니다. 그리고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실 때에도 강한 바람과 지진과 불이 지나고 나서 세미한 음성이 들립니다. 출애굽기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제일 끝에 들리고 엘리야도 그리하고 에스겔서도 끝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 위하여 강림하시는 모습이 엄청난 두려움으로 임합니다.

 

5절에서 25절까지 네 생물이 영에 의하여 움직이는 모습을 묘사하는데 무엇과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과 같다고 하는 것은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이런 형상들을 그려낼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마치 바울사도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갔지만 그 내용을 말로 할 수 없었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고린도후서 12:4절입니다.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바울의 환상과 계시가 어떠하였는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이 본 이런 환상은 여호와 하나님의 전능하신 활동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그 절망의 순간, 가장 바닥을 쳤다고 하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신실하게 자신의 일을 이루고 계시는 것입니다.

 

시편 18:7-14절입니다. “7 이에 땅이 진동하고 산들의 터도 요동하였으니 그의 진노로 말미암음이로다 8 그의 코에서 연기가 오르고 입에서 불이 나와 사름이여 그 불에 숯이 피었도다 9 그가 또 하늘을 드리우시고 강림하시니 그의 발아래는 어두캄캄하도다 10 그룹을 타고 다니심이여 바람 날개를 타고 높이 솟아오르셨도다 11 그가 흑암을 그의 숨는 곳으로 삼으사 장막 같이 자기를 두르게 하심이여 곧 물의 흑암과 공중의 빽빽한 구름으로 그리하시도다 12 그 앞에 광채로 말미암아 빽빽한 구름이 지나며 우박과 숯불이 내리도다 13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우렛소리를 내시고 지존하신 이가 음성을 내시며 우박과 숯불을 내리시도다 14 그의 화살을 날려 그들을 흩으심이여 많은 번개로 그들을 깨뜨리셨도다” 여호와의 우주적인 통치와 다스림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에스겔 1:5-24절의 내용에서 여호와의 활동성을 보려고 합니다. 네 생물이 사자와 독수리와 소와 사람의 얼굴의 형상을 하고서 날개가 있다는 표현들은 유대인들의 율법 해석에서 이 네 생물의 특징을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생물들 중 가장 높은 존재는 인간이다. 새 중에는 독수리, 가축 중에는 소 그리고 짐승 중에는 사자다. 이 모든 것들은 충성을 받았으며 위대함을 부여받았다. 그리고 그것들이 하나님의 보좌 아래 놓여있다” 결국 네 생물이 하나님의 보좌 아래 놓여있음을 말하지만 네 생물을 에스겔 10장에서는 그룹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방금 본 시편 18편에서 그룹을 타고 다니신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네 생물의 활동에 대하여 바퀴와 날개는 다 빠르게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날개 밑의 손과 바퀴에 눈이 가득합니다. 네 생물과 네 면의 얼굴의 형상이란 사방을 다 살피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온 세상을 두루 살피며 다스리고 계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바벨론 포로로 잡혀 와서 도대체 하나님이 계신가 하는 그런 절망의 상황에서 에스겔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영광의 형상은 이미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하신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움직임이 얼마나 빠른지 14절에서는 번개 모양 같이 왕래한다고 합니다. 그 움직임은 네 생물의 바퀴 가운데 있는 영에 따라 움직입니다. 영이 어떤 쪽으로 가면 네 생물로 그대로 가게 되는데 상하좌우 회전하지 않고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22-25절입니다. 그 생물의 머리 위에는 수정 같은 궁창의 형상이 있어 보기에 두렵다고 합니다. 이 궁창을 기준으로 위와 아래로 나눠집니다. 궁창 위는 보좌의 형상이 있습니다. 네 생물은 궁창 아래에서 활동하고 있고 이 네 생물에 대하여 명령하는 음성은 궁창 위에서 들립니다. 그러므로 보좌에 계신 이의 음성을 듣고 이 네 생물이 그 영에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 네 생물의 날개소리가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전능자의 음성과도 같으며 많은 군중이 떠드는 소리 곧 군대의 소리와도 같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심부름을 하는 네 생물을 통하여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빈틈없이 이루어내고 계심을 보여주십니다.

 

26-28절입니다. 네 생물의 머리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습니다. 네 생물을 에스겔 10장에서 그룹이라고 합니다. 그룹이란 날개형상인데 이 그룹은 언약궤 뚜껑에 그룹을 양편에서 붙여 만듭니다. 이런 그룹은 날개의 형상인데 하나님께서 그룹 위에 또는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삼상 4:4, 시80:1). 그러므로 이 그룹 위에 하나님의 보좌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그룹을 타고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룹위에 궁창이 있고 그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보이는 것입니다. 이 보좌에 형상이 남 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다고 합니다.

 

이 사람의 모양과 같은 형상이 허리 위의 모양은 불에 달구어진 쇠 같아서 그 속과 주위가 불같고 그 허리 아래의 모양도 불같아서 사방으로 광채가 납니다. 그 사방 광채가 비 오는 날의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을 보고 엎드렸다고 합니다. 그 영광 앞에 엎드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음성이 들립니다. 여호와의 영광과 음성을 듣는 선지자들의 공통점입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예루살렘이 아닌 이방인의 땅 바벨론에 나타났다는 것이 놀라운 일입니다.

 

이로서 여호와 하나님은 온 우주와 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리시며 또한 자신의 언약대로 이루어내시는 분이심을 에스겔과 포로로 잡혀온 자들에게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왜 심판을 받아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포로에서 회복되어 돌아가게 될 지를 말씀하십니다. 마른 뼈와 같은 자들이 살아나서 하나님의 군대가 되고 새 예루살렘과 새 성전에 대한 환상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회복은 바벨론 포로 70년 후에 아주 부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에스겔이 본 그런 완벽한 새 예루살렘과 새 성전이 아닙니다. 이것은 앞으로 보겠습니다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완성되어질 새 하늘과 새 땅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 생물과 함께 궁창 위의 보좌에 드러난 여호와의 영광이 무엇을 말씀하는지 신약에서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7:1-5절입니다. “봉독”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는데 그들 앞에서 변형이 되십니다.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도 보입니다. 이때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는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하십니다. 평소에 알고 있는 예수님이 아닙니다. 그 영광이 바로 구약에 여호와의 영광이 임할 때의 모습입니다. 그때 모세와 엘리야는 홀연히 사라지고 너희는 그의 음성을 들으라는 것이 하늘에서 들렸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한복음 1:14절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골로새서 1:15-17절입니다.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예수님이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며 은혜와 진리가 충만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형상이시며 만물이 예수님에게서 예수님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왜 세상을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습니까? 고린도후서 4:3-11절입니다. “봉독”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가려서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그리스도의 영광이란 마치 구약시대에 나타난 그런 영광으로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런 영광의 모습으로 오셨다면 그때가 바로 이 세상의 심판입니다. 그러므로 그 영광을 버리시고 자신의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종의 모습으로 오셨기에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부 제자들에게 자신을 알리심으로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하셨습니다.

 

그러면 오늘날은 어떻게 십자가에 못 박하신 예수님이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이신 주와 그리스도 되심을 믿을 수가 있습니까? 6절입니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으로 사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비쳐 주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의 영광임을 알고 믿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그 능력입니다.  이러한 재창조는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사람이 되시고 피를 흘리심으로 만들어 내시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이런 사도들의 증거를 오늘도 성령을 통하여 믿게 되는 것도 역시 바벨론과 같은 이 땅에서 하나님이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들은 자신이 질그릇인줄 압니다. 능력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합니다. 이런 자들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박해를 당해도 버린바 되지 않고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합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항상 예수의 죽음을 짊어지는 것이며 또한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죽음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포로에서 욱여쌈을 당한 것 같아도 그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시니 하늘이 열리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게는 그 어떤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을 지라도 하나님의 일하심은 그곳에서도 동일하게 역사하고 계십니다. 또한 초대교회 때에 엄청난 환난과 핍박이 가하여 져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하늘의 문을 여시고 하늘의 음성을 듣게 하십니다. 요한계시록 4:1-11절입니다. “봉독” 에스겔서와 연결이 되는 보좌에 계시는 분의 모습니다. 하늘 문이 열리고 이후에 마땅히 될 일을 보이신다고 하십니다. 이미 하늘에서 완료된 일입니다. 8절을 봅니다.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이시라” 주의 약속을 믿는 자들은 지금 어떤 상황과 환경에 처하여 있을지라도 주의 이 약속을 바라보고 삽니다. 바벨론에서도 함께 하셨고 초대교회 때도 함께 하셨고 지금도 자기 백성들과 함께 하시는 분이 영광중에 오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