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동영상 설교]

에스겔 9:1-11 이마에 표하라 2012. 1. 11

 

1 또 그가 큰 소리로 내 귀에 외쳐 이르시되 이 성읍을 관할하는 자들이 각기 죽이는 무기를 손에 들고 나아오게 하라 하시더라 2 내가 보니 여섯 사람이 북향한 윗문 길로부터 오는데 각 사람의 손에 죽이는 무기를 잡았고 그 중의 한 사람은 가는 베 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찼더라 그들이 들어와서 놋 제단 곁에 서더라 3 그룹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 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에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 하시고 5 그들에 대하여 내 귀에 이르시되 너희는 그를 따라 성읍 중에 다니며 불쌍히 여기지 말며 긍휼을 베풀지 말고 쳐서 6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이와 여자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하지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7 그가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성전을 더럽혀 시체로 모든 뜰에 채우라 너희는 나가라 하시매 그들이 나가서 성읍 중에서 치더라 8 그들이 칠 때에 내가 홀로 있었는지라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아하 주 여호와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분노를 쏟으시오니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두 멸하려 하시나이까 9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의 죄악이 심히 중하여 그 땅에 피가 가득하며 그 성읍에 불법이 찼나니 이는 그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땅을 버리셨으며 여호와께서 보지 아니하신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그들의 행위대로 그들의 머리에 갚으리라 하시더라 11 보라 가는 베 옷을 입고 허리에 먹 그릇을 찬 사람이 복명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내가 준행하였나이다 하더라

 

에스겔 8장에서는 성전 안에 우상숭배가 가득함을 보았습니다. 여인들과 장로들과 제사장들조차 성전에서 여호와를 등지고 태양신과 담무스를 위하여 경배하였습니다. 이런 우상숭배는 여호와께서 성전을 떠나시도록 하는 반역이었습니다. 이러한 예루살렘의 성전에 대하여 하나님은 심판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에스겔 8:18절입니다. “그러므로 나도 분노로 갚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리니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이런 우상숭배로 심판이 집행되는 장면이 에스겔서 9장입니다.

 

9:1-2절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집행되는데 각기 죽일 무기를 든 여섯 사람이 북향한 문에서 옵니다. 이들은 성을 관할하는 자들인데 이제는 성을 심판하는 자로 세워집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는 천사들로 봅니다. 출애굽 때에 10번째 재앙에서 어린 양의 피를 바르지 아니한 집의 장자를 치던 그런 모습입니다. 또 이사야 시대에 산헤립의 군대를 치던 그런 모습입니다. 그리고 다른 모습의 한 사람은 서기관의 먹 그릇을 허리에 차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들이 예루살렘의 적을 치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을 치도록 부름을 받습니다.

 

3-4절입니다. 그룹에 머물러 있는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에 이르러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 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서 이릅니다. 예루살렘의 성읍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 집행 직전에 심판에서 제외될 사람들을 표시하라고 합니다. 이 표시는 히브리어 철자의 제일 마지막 철자인 타우라는 철자로 표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마에 표시조차 마지막이라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5-7절입니다. 이마에 표가 없는 자들은 불쌍히 여기지 말고 긍휼을 베풀지 말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 죽이라고 합니다. 그 심판의 집행은 여호와의 성소에서부터 시작하라고 합니다. 성전의 늙은 자들부터 심판이 집행이 됩니다. 늙은 자란 백성의 대표인 장로들을 말합니다. 이들이 여호와를 배반하는 일에 앞장선 자들입니다. 그리하여 그 시체를 성전에 채우라고 합니다. 성전은 시체로 더럽히면 안 되는 곳인데 시체로 채우라고 하는 것은 이제 성전도 버림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8절입니다. 심판이 집행 될 때에 에스겔 홀로 있었습니다. 그때 에스겔이 여호와께 엎드려 부르짖습니다. 주 여호와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분노를 쏟으시니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두 멸하려 하시나이까? 이러한 중보적인 간구에 대하여 하나님은 언급이 없습니다. 선지자는 심판의 일방적인 선포만 전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을 미리보고서 중보의 역할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에스겔의 간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심판만 선언하시고 집행하십니다. 북 이스라엘의 아모스도 심판의 소식에 중보 하지만 결국은 심판이 일어납니다.

 

아모스 7:1-9절을 봅니다. "봉독“ 아모스 선지자는 북 이스라엘에 대하여 예언한 선지자입니다. 아모스가 여호와께서 보여주시는 심판을 환상으로 보게 됩니다. 그 첫째가 메뚜기 재앙입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설수 있느냐며 있느냐에 중보 할 때에 심판을 연기하십니다. 두 번째 환상은 불입니다. 역시 아모스가 간구하자 뜻을 돌이키십니다. 그러나 마지막 다림줄의 심판에서는 더 이상 중보가 없습니다. 이제는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북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도 우상숭배로 인한 것입니다.

 

본문 9-10절입니다. 에스겔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심판은 집행이 됩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의 죄악이 심히 중하여 그 땅에 피가 가득하며 그 성읍에 불법이 찼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이 땅을 버리셨고 돌보지 아니하신다고 합니다. 자신들이 언약을 배반하고서는 하나님을 탓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돌보시지 않으시기에 자기들이 우상에게 절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불쌍히 여기지 않으시고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그들의 행위대로 심판하신다고 하십니다.

 

11절입니다. 가는 베 옷을 입고 허리에 먹 그릇을 찬 사람이 주께서 명령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다고 합니다. 주께서 명령하신 내용이 무엇입니까? 예루살렘 성읍에서 일어나는 가증한 일을 보고서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시하는 일을 마쳤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마에 표를 받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여인들과 백성의 장로들과 제사장과 대제사장까지 다 여호와를 등지고 태양신과 온갖 우상에게 절하는 그 예루살렘에 과연 몇 사람이 이마에 표를 받았겠습니까?

 

예레미야 5:1절을 봅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예루살렘 성읍에서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과 함께 비추어보면 이마에 표를 받을 자가 거의 없다는 말씀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이미 여호와를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는 것이 일상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배불리 먹였더니 그 힘으로 우상숭배하고 간음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찌 이런 나라를 심판하지 않겠느냐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이 멸망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이유는 예레미야와 에스겔 두 곳의 말씀을 보면 아주 분명합니다. 예루살렘의 일어나는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들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롯이 구원받은 것은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도 있었지만 롯이 그 성읍에서 일어나는 일로 인하여 마음이 상하였다고 합니다. 베드로후서 2:6-7절입니다. “6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7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8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롯이 비록 소돔과 고모라에 살았지만 그의 심령이 상하였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탄식과 마음의 상함이 있습니까? 우리의 마음을 한번 봅시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몸이 성전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성령이 오셨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이 성전인데 우리의 마음에 도대체 무엇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까? 예레미야와 에스겔 시대에 예루살렘 성전 안에 우상이 가득하듯이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로 가득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평소에 탄식하며 우는 것은 무엇 때문에 탄식하며 울고 있습니까? 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이 없다고 탄식하십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만을 사랑하지 아니함에 대하여 탄식하십니까?

 

제가 어제 극동방송 녹음을 하고 오는 중에 라디오 설교를 들었습니다. 어느 유명한 부흥사인데 창원에도 몇 몇 큰 교회에서 부흥회를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십분 강의에서 모세 언약을 말하면서 왜 인간이 율법적인 행위로 복을 받을 수가 없고 의에 이를 수가 없는지를 증거 하면서 아브라함이 행위로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인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라고 녹음을 하고 오는 중에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말하는 설교를 들었습니다. 부자가 되고 자녀가 번성하고 엄청난 복을 받은 것은 아브라함이 예배를 잘 드렸고 십일조를 하였고 순종하여서 그렇게 복을 받았다고 하면서 온갖 세상의 복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설교를 들으면서 이것이 바로 우상숭배인데 하는 탄식과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주일 낮에 갈라디아서를 보면서 아브라함의 복이 무엇이라고 보았습니까?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이방인인 우리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복입니다. 그런데 예배 잘 드리고 십일조 잘하고 순종을 잘하여 복을 받자고 합니다. 그런데 그 세 가지 잘해서 복을 받을 수가 결코 없습니다. 모든 율법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말을 듣고서 열심히 노력하여 자신이 받아낼 수 있는 복을 말하는 것은 아브라함 언약도 모세 언약도 모르고 거저 내 잘 되고 내 집안 잘되자는 것입니다. 이런 설교를 들으면서 우리는 이 땅의 교회의 현실을 보면서 탄식하여 울어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이런 설교를 은근히 좋아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하고 그것도 열심히 하기만 하면 온갖 세상의 복을 다 준다고 하니 그렇게 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설교를 듣고 그 말을 따라 열심히 해 보니 병이 고침을 받고, 부자가 되는 경우도 간혹 있습니다. 간혹 있는 간증을 자꾸 내세우니 많은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다른 사람은 왜 그런 복을 받지 못하느냐고 물어보면 아직 충성과 헌신의 잔이 채워지지 않아서 그렇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빠져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말에 목을 매면서 달려가는 사람들은 주님을 사랑해서입니까? 그렇게 함으로 나의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것입니까? 거의 다 후자일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12-19절을 봅니다. “봉독” 예수 믿고 세상의 복을 받는 것으로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재림하실 때에 그의 영원한 영광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때에 이 세상의 영광이라는 것들은 다 불살라 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성도라면 무엇을 즐거워해야 합니까? 세상에 대하여 부요한 자들은 울고 회개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고난 받는 자는 즐거워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살아가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그 영광을 받으시고서 보내신 영이 영광의 영입니다. 그 영광의 영이 어디에 계십니까? 14절을 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는 자 위에 함께 하시는 것이 영광의 영입니다. 세상의 악행으로 고난을 받지 말고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심판받을 세상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바꾸어 섬기고 있습니다. 이런 교회와 세상에 대하여 하나님은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이런 우리의 모습과 우리 교회의 모습과 이 땅의 교회를 보면서 우리는 탄식하며 울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4:17-18절을 봅니다. “17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18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에스겔서에서 이마에 표 받은 자 외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 진멸을 당하는데 어디서 누구로부터 시작되었습니까? 성전에서 장로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이 마지막 시대에도 심판이 어디에서 시작이 됩니까? 하나님의 집이라는 교회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에스겔서에서 인치는 작업이 끝났다고 합니다. 이미 하늘나라에서는 인치는 작업이 마쳤습니다. 그러면 인침을 받은 자가 누구겠습니까? 내 안에, 가정 안에, 교회 안에 가증한 일을 보면서 탄식하며 우는 자들입니다. 이것은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마에 표를 받은 자는 이런 말씀에 동의가 되면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이 땅의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탄식하며 울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