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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 2:5~7 사랑하므로 생긴 병 2019. 12. 25           (찬송 108장 405장)

 

5 너희는 건포도로 내 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하게 하라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생겼음이라 6 그가 왼팔로 내 머리를 고이고 오른팔로 나를 안는구나 7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노루와 들 사슴을 두고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

 

오늘 본문에서 사랑하므로 병이 들었다고 합니다. 사랑해서 병이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아마 여러 모양으로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들은 자기들의 욕심을 채우는 것을 사랑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욕망하는 것을 얻어내려고 아이들은 밥을 먹지 않고 투정하고 어른들은 단식투쟁을 합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금식기도와 철야농성까지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는 참된 사랑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말로 얼마나 상대방을 괴롭혔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잘못된 사랑에 대하여 먼저보고 본문을 통하여 참된 사랑을 보겠습니다.

 

사무엘하 13:1~4절입니다. “1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 아름다운 누이가 있으니 이름은 다말이라 다윗의 다른 아들 암논이 그를 사랑하나 2 그는 처녀이므로 어찌할 수 없는 줄을 알고 암논이 그의 누이 다말 때문에 울화로 말미암아 병이 되니라 3 암논에게 요나답이라 하는 친구가 있으니 그는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이요 심히 간교한 자라 4 그가 암논에게 이르되 왕자여 당신은 어찌하여 나날이 이렇게 파리하여 가느냐 내게 말해 주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암논이 말하되 내가 아우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사랑함이니라 하니라

 

다윗의 아들 암논이 배다른 누이 다말을 사랑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복형제이기에 어떻게 하지 못하고 병이 든 것입니다. 나날이 파리하게 말라갑니다. 이런 것을 상사병(相思病)이라고 합니다. 이럴 때에 간교한 사촌 시므이가 암논에게 왜 그러냐고 물어본 후에 다말을 범할 꾀를 가르쳐 줍니다. 그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는 압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랑하여 상사병이 들었는데 이것이 왜 가짜 사랑이었는가 하면 욕망이 채워지는 순간 그를 미워하여 전에 사랑하던 사랑보다 미움이 더하였다고 합니다(15). 오늘 본문과 같이 사랑함으로 병이 들었다고 하지만 인간의 사랑이라는 것이 이 모양입니다. 오늘날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폭력들이 등장합니다.

 

본문 5절입니다. 너희는 건포도로 내 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하게 하라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생겼음이라여인의 노래입니다. 사랑함으로 병이 들었다고 합니다. 사랑함으로 병이 들었는데 건포도와 사과로 힘이 나고 시원하여 지겠습니까? 그러므로 건포도와 사과는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은유입니다. 아가서 2:3절에서도 여인이 자기가 사랑하는 임을 향하여 수풀 속의 사과나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으로 병이 난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야 치료가 됩니다.

 

그런데 앞에서 본 대로 인간의 이기적인 사랑이라는 것이 얼마나 악한 모습으로 나오는지 보았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이기적인 사랑으로 인하여 결혼하여 자녀를 놓았지만 버림을 받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런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하는 감정도 잃어버린 것입니다. 제가 몇 년 전에 여름성경학교 강사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어려서 시골에서 교회를 다니다가 선교사님의 주선으로 유학을 하여 기독교 상담학을 전공한 사람입니다. 국가에서도 일을 하는 사람으로 여러 단체에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결손가정의 아이들을 돌보는 그런 일도 하면서 사람의 뇌 속에 감정신경이 죽어버렸다는 표현을 하였습니다.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그런 아이들을 돌보면서 가족끼리 서로 화해하게 하고 포옹하게 하면 그 죽어버린 것 같은 감정신경이 자극을 받아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두 번 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하면 그 감정신경이 제대로 작동을 한다고 뇌 사진까지 보여주면서 설명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환경적으로 인하여 감정의 문제들이 있는 사람들은 전문가의 상담이나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미술치료, 음악치료, 역할극 등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저는 그런 분들이 상담을 해오면 전문인의 상담이나 치료 받기를 권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원인을 바르게 진단하고 적절한 치료를 하면 나아집니다. 그런 치료를 받고 건강하게 일생을 살면 본인이나 가족도 편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좋아졌다고 하여도 성경이 말씀하는 참된 사랑을 받지 않으면 참된 만족은 없습니다. 그래서 좀 나아졌다고 하여도 참된 사랑으로 채워지지 않으면 또 다른 욕망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인생이 인생의 문제를 온전히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 본문 5을 봅니다. 봉독 5절을 설명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예를 들었습니다. 사랑함으로 병이 든 사람에게는 백약이 무효입니다. 그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야 병이 낫게 됩니다. 그런데 이기적인 사랑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참된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만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구약은 오실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에 이런 사랑이야기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함이 마땅합니다.

 

6절을 봅니다. “봉독이제 사랑하는 임을 만났습니다. 그 사랑하는 임이 왼팔로 내 머리를 고이고 오른 팔로 나를 안아줍니다. 사랑하는 남녀가 함께 누운 모습이 연상이 됩니다. 사랑하여 병이 들었는데 그 사랑하는 사람이 와서 자신을 안아주면 병이 낫는 정도가 아니라 사랑으로 충만합니다. 그래서 이 번역은 현재형이지만 과거도 미래도 이렇게 되기를 원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신명기 33:26~27절입니다. “26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이가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 27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여수룬은 이스라엘의 별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십니다. 출애굽 하여 약속의 땅으로 들여놓으시는데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이 처소가 되신다고 합니다. 구원한 백성을 자기 품안에 두시겠다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자기의 처소를 삼으려고 출애굽 시키신 것입니다. 출애굽기 15:17절을 보면 출애굽의 이유를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주님의 처소가 되고 주님이 이스라엘의 처소가 되는 것입니다. 이 일을 하시려고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다고 합니다.

 

이사야 40:6~9절입니다. “6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7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9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인생의 도움들이 어느 정도 필요한 사람이 있다고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인생은 풀입니다. 영원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이어지는 10~11절입니다. “10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11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오셔서 친히 그 팔로 다르실 것이라고 합니다. 상급과 보응이 그의 앞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 주님의 팔에 안기는 자들은 구원입니다. 그래서 그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고 온순히 인도하신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그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호세아 11:1~3절입니다. “1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2 선지자들이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 3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았음에도 내가 그들을 고치는 줄을 그들은 알지 못하였도다호세아 선지자가 음란한 고멜을 아내로 취하여 끝까지 사랑하는 내용이 호세아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아들로 여겨 품에 안아 인도하여 내십니다. 그런데 그렇게 안아 오셨고 지금도 안고 가시는데도 그들은 모른다고 합니다.

 

이어지는 4~7절입니다. “4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 그들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었으며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었노라 5 그들은 애굽 땅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겠거늘 내게 돌아오기를 싫어하니 앗수르 사람이 그 임금이 될 것이라 6 칼이 그들의 성읍들을 치며 빗장을 깨뜨려 없이하리니 이는 그들의 계책으로 말미암음이니라 7 내 백성이 끝끝내 내게서 물러가나니 비록 그들을 불러 위에 계신 이에게로 돌아오라 할지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안고 오셔서 걸음마를 가르치며 앞에 먹을 것을 두어도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끝끝내 물러갑니다. 그래서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하여 망하게 합니다.

 

이어지는 8~11절입니다. “8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9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나타내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 네 가운데 있는 거룩한 이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10 그들은 사자처럼 소리를 내시는 여호와를 따를 것이라 여호와께서 소리를 내시면 자손들이 서쪽에서부터 떨며 오되 11 그들은 애굽에서부터 새 같이, 앗수르에서부터 비둘기 같이 떨며 오리니 내가 그들을 그들의 집에 머물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끝끝내 돌아오지 않아서 망하였지만 하나님의 긍휼이 불붙듯이 하기에 돌이켜 주십니다. 각국에 흩어진 자들이 새 같이 비둘기 같이 떨며 와서 주님의 품에 거합니다.

 

잠언 3:13~18절입니다. “13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14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15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네가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도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16 그의 오른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의 왼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17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의 지름길은 다 평강이니라 18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잠언에서 본 내용이지만 오른 손과 왼손이 나와서 다시 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을 잘 섬기면 장수하고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지혜를 얻는 것은 정금보다 낫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지혜를 얻어서 세상의 부귀를 누리려고 한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장수라는 것도 세상에서 오래 사는 것은 결코 복이 아닙니다. 나이가 많아서 자기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요양병원에 계시는 분들에게 들어보면 하루라도 빨리 죽는 것이 복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오른 손의 장수와 왼손의 부귀가 세상의 썩어질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품에 안긴 자들이 영생을 얻는 이야기이며 예수님이 그들에게 부귀가 됨을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5:12~14절입니다. “12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14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은 죽임 당한 어린 양과 보좌에 계신이가 세세토록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품에 안긴 자는 예수님이 전부입니다.

 

오늘 본문 5~6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 다시 읽어보니 느낌이 달라집니다.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신부를 사랑하는 이야기로 읽어집니다. 그러므로 앞에서 찾아본 신명기와 호세아를 통하여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품에 안고 걸음마를 가르치며 구원하여 내셨지만 늘 엉뚱한 곳으로만 달려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팔을 벌리고 계시는데도 그 품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늘 세상의 미혹을 받아 세상을 사랑하여 달려간 것입니다. 하나님은 도망가지 못하도록 가시로 막고 담으로 막습니다. 그러함에도 또 도망갑니다. 이 정도라면 버려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긍휼이 불붙듯 하여 그들을 다시 품에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율법의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긍휼에 있는 것입니다(11:32).

 

마태복음 23:37~39절입니다. “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바 되리라 3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이 하나님께서 품으려고 선지자들 보내셨지만 그들이 배척합니다. 그 선지자들이 증거 한 그리스도가 오셔서 품으려고 하여도 그들은 거절할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립니다. 그것으로 그들의 집이라고 여긴 성전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죽으심이 성전의 휘장이 찢어짐으로 성전이 파기가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자신의 몸이 성전이 되었습니다. 그 성전이 되신 예수님의 품에 안기는 자들이 성전이 됩니다. 성전 되신 주님께서 우리를 품에 안아주시면 우리도 주님을 품에 안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을 미리 보여준 자들이 구약의 남은 자들입니다. 구약의 남은 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이전에 예수님을 품에 안고 주여 종을 평안히 놓아주신다고 시므온처럼 찬송합니다. 그리고 청상과부가 되어 오랫동안 성전에서 기도한 안아도 그 아기를 봅니다. 이뿐 아니라 세리와 죄인과 창기들이 예수님을 품에 안고 참된 안식을 맛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자들은 다 그리스도께서 먼저 이들을 안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들은 이 사랑에서 더 이상 방해를 받고 싶지 않습니다. 그 어떤 것들이라도 이 사랑에서 벗어나지 않고 싶습니다.

 

본문 7절입니다.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노루와 들 사슴을 두고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예루살렘 딸들은 앞에서 볼 때에 율법주의자로도 보았습니다. 온갖 자격을 다 갖춘 여인들이 아무른 자격도 없는 술람미 여인이 그 왕의 사랑을 받으니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예루살렘의 딸들에게 노루와 들 사슴을 두고 너희에게 부탁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부탁한다는 말은 맹세시킨다는 뜻이 있습니다. 노루와 들 사슴을 부르니 이것을 증인이라고 하기도 하고 노루와 사슴은 작은 소리에도 놀라서 도망가는 짐승이니 아주 작은 것들로도 내가 지금 받고 있는 이 사랑을 방해하지 말라고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아무도 나를 이 사랑에서 끊어내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가서 2:7절입니다.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노루와 들 사슴을 두고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같은 말을 후렴구처럼 반복합니다.

 

아가서 3:5절입니다.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노루와 들 사슴을 두고 너희에게 부탁한다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이 번역을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번역한 70인 역에서는 이렇게 번역합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이여, 들판의 권능들과 권세들을 걸고 그들에게 애원하니 우리 사랑을 방해하지도 말고 깨우지도 말아주오, 그 사랑이 원할 때까지여기서는 노루와 사슴을 권능들과 권세로 번역합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의 그 무엇이라도 이 사랑에서 떼어 놓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주님이 원하시지 않으시면 결코 떨어지지 않습니다.

 

로마서 8:36~39절입니다. “36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이 사랑을 누가 방해하려고 합니까? 예루살렘의 딸들이 방해하려고 합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이 율법주의자들입니다.

 

갈라디아서 4:21~26절입니다. “21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22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23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24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25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노릇 하고 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예수님의 피로 산 자기 신부들입니다.

 

갈라디아서 6:14~18절입니다.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15 할례나 무 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16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18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십자가로 확정 된 사랑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완벽한 신부를 향하여 율법으로 괴롭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이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의 사랑을 방해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맛보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