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예레미야 3:11~25 참된 회개 2013. 5. 29

 

1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배역한 이스라엘은 반역한 유다보다 자신이 더 의로움이 나타났나니 12 너는 가서 북을 향하여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배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나의 노한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긍휼이 있는 자라 노를 한없이 품지 아니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3 너는 오직 네 죄를 자복하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고 네 길로 달려 이방인들에게로 나아가 모든 푸른 나무 아래로 가서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라 내가 너희를 성읍에서 하나와 족속 중에서 둘을 택하여 너희를 시온으로 데려오겠고 15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한 목자들을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 16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이 땅에서 번성하여 많아질 때에는 사람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 아니할 것이요 생각하지 아니할 것이요 기억하지 아니할 것이요 찾지 아니할 것이요 다시는 만들지 아니할 것이며 17 그 때에 예루살렘이 그들에게 여호와의 보좌라 일컬음이 되며 모든 백성이 그리로 모이리니 곧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에 모이고 다시는 그들의 악한 마음의 완악한 대로 그들이 행하지 아니할 것이며 18 그 때에 유다 족속이 이스라엘 족속과 동행하여 북에서부터 나와서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기업으로 준 땅에 그들이 함께 이르리라 19 내가 말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든지 너를 자녀들 중에 두며 허다한 나라들 중에 아름다운 기업인 이 귀한 땅을 네게 주리라 하였고 내가 다시 말하기를 너희가 나를 나의 아버지라 하고 나를 떠나지 말 것이니라 하였노라 20 그런데 이스라엘 족속아 마치 아내가 그의 남편을 속이고 떠나감 같이 너희가 확실히 나를 속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1 소리가 헐벗은 산 위에서 들리니 곧 이스라엘 자손이 애곡하며 간구하는 것이라 그들이 그들의 길을 굽게 하며 자기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렸음이로다 22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 하시니라 보소서 우리가 주께 왔사오니 주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심이니이다 23 작은 산들과 큰 산 위에서 떠드는 것은 참으로 헛된 일이라 이스라엘의 구원은 진실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있나이다 24 부끄러운 그것이 우리가 청년의 때로부터 우리 조상들의 산업인 양 떼와 소 떼와 아들들과 딸들을 삼켰사온즉 25 우리는 수치 중에 눕겠고 우리의 치욕이 우리를 덮을 것이니 이는 우리와 우리 조상들이 청년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 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지난주에 거짓된 회개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북 이스라엘의 거듭된 간음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이혼증서를 주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하였습니다. 이것을 본 남 유다가 정신을 차리고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와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의 종교적인 행위들이 우상숭배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섬긴다며 제사도 지내고 절기도 지키기에 그들은 회개한 것이라고 여깁니다. 이러한 행위들을 선지자들은 책망합니다. 제사도, 절기도, 자기들의 욕망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거짓된 회개가 교회 안에 만연합니다. 일반교회에서는 교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기 위하여 회개를 많이 강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회개를 말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교회가 어떤 목표와 비전을 가지고 일을 하는데 잘 협조하지 않을 경우 회개하라고 합니다. 이러한 회개는 교회의 사업에 잘 참여하라는 회개이지 주께로 돌아오라는 회개는 아닙니다. 이런 미지근한 회개보다 더 화끈한 회개를 외치는 곳들이 많습니다. 신오순절 운동과 신사도운동과 세대주의적인 종말론에 빠진 곳에는 일반교회의 차지도 뜨겁지도 않는 그런 모습은 내침을 당한다고 하면서 자기들만이 참된 회개를 하는 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보통으로 회개 하는 것이 아니라 일 년 365일 24시간 기도 운동한다고 합니다. 자기들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중보기도도 한다고 합니다. 중보자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사람이신 그리스도 한분 뿐 이신데도(딤전2:5) 자기들이 중보자의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얼마나 자부심이 대단하겠습니까? 다른 곳에는 거저 자기 잘되기만을 기도하는데 이런 곳에서는 자기들의 죄만을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교회들의 죄도 대신회개 하는 중보의 기도도 한다고 하니 말입니다. 이러한 자들만이 구원에 이르고 나머지는 탈락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회개들도 결국 자기들의 확실한 구원을 챙기기 위한 것이며 또한 자기 의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합동 총회에서는 중보기도 라는 용어가 적절하지 않다고 그런 용어를 사용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큰 교회들이 사용하면 건드리지도 못하는 힘이 지배하는 교단에서는 그런 말조차 통하지 않습니다. 교회만 성장된다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는 현실입니다. 회개운동이 교회성장에 효과가 있다면 회개운동조차 이용하는 것이 이 땅의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를 회개하라는 말이 성립이 됩니다. 그러면 참된 회개는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예레미야 11~12절입니다. 배역(背逆)한 이스라엘은 반역(反逆)한 유다보다 의로움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것은 상대적인 것입니다. 북 이스라엘이 회개하지 않아서 멸망하였는데 남 유다는 이런 북 이스라엘을 보고서도 회개하지 않았기에 북 이스라엘이 남 유다에 비하여 더 의롭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북 이스라엘을 향하여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이제는 노한 얼굴로 너희에게 향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기에 항상 노를 품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남 유다는 악용한 것을 지난주에 보았습니다. 이러한 유다로 인하여 북 이스라엘의 상대적으로 긍휼을 입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에스겔 16:44~52절을 봅니다. “봉독”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와 소돔을 세 자매로 비유합니다. 소돔의 멸망과 북 이스라엘의 멸망을 보고서도 회개하지 아니한 유다로 인하여 소돔과 북 이스라엘을 의롭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남 유다는 이들보다 더한 수치를 당하게 하신 후에 이들을 돌이켜 주신다고 합니다. 남 유다는 자기들만 남았을 때에 자기들은 의로워서 멸망하지 않았다고 착각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지도자들로 인하여 그들의 제사와 절기지킴이 마치 의가 되는 것 인양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것들이 더욱 악을 행하기 위한 탐심을 품은 우상숭배의 행위인데도 이것을 잘 한다고 칭찬 한 것입니다.

 

예레미야 3:13절입니다. 이미 이혼당한 이스라엘을 향하여 다시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긍휼로 인하여 한 없이 노를 품지 않겠다고 하시면서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돌아오는데 죄를 자복하라고 합니다. 그 자복할 내용은 여호와를 배반하고 자기 길로 달려가서 이방인들에게 나아가 모든 푸른 나무 아래로 가서 내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만 하시고 이스라엘이 돌아오도록 내 버려두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말씀하셔도 돌아올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스스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돌아오라는 말씀을 듣고서도 스스로 돌아가면 내가 회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 우리가 주께로 돌이킬 수 있다면 이 돌이킨 것이 우리의 의가 됩니다. 회개라는 조건으로 구원을 주신 것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회개조차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14절을 보시면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고 합니다. 나는 너희의 남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아비이기도 하시며 남편이기도 하십니다. 그런데 말씀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읍에서 하나와 족속 중에서 둘을 택하여 너희를 시온으로 데려오겠다고 합니다. 아주 적은 소수를 하나님께서 친히 데리고 오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배들이 기도할 때에 천에 하나 만에 하나 고르고 골라서 택하여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은혜로 택하여주셨다는 표현입니다. 이처럼 성읍에서 한 사람 족속에서 두 사람을 하나님께서 친히 데리고 오시는 그 과정이 성도에게는 회개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참된 회개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선물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어떤 일이 나타납니까?

 

15절입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목자를 너희에게 주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데리고 온 자들을 그대로 두시는 것이 아니라 이들에게 목자를 주시는데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할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목자가 복수로 나타납니다만 이들은 결국 한 목자를 가리키는 목자들이 됩니다. 다윗의 왕위를 이은 한 목자를 에스겔 34:23~24절을 봅니다. “23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24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죽은 다윗이 그들의 목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다윗에게 언약하신 그 왕이 오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왕이 목자가 되어 다스린다고 합니다.

 

누가복음 1:31~33절입니다.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예레미야와 에스겔과 이사야와 다른 선지자들이 예언한 그 왕으로 다스리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회개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참된 회개입니다.

 

요한복음 10:7~16절입니다. “봉독”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목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다른 자들은 도둑들이라서 양을 도둑질 하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목자는 다윗도 아닙니다. 다윗도 양을 잡아먹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된 목자이신데 자기 양떼를 살리기 위하여 자기 목숨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께로 돌이킨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만이 우리의 생명임을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선한 목자로 믿는 자들이 주께로 돌아온 자들입니다. 이것을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증거 한 것입니다(벧전1:10~12).

 

예레미야 3:16절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한 목자에 의하여 찾아진 자들은 더 이상 언약궤를 말하지 않습니다. 언약궤란 율법의 돌 판을 담아둔 상자입니다. 다른 말로 옛 언약이라고 합니다. 이 옛 언약으로는 바람기 많은 이스라엘이라는 아내를 잡아둘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옛 언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회개가 일어난 자는 새 언약을 말하게 됩니다. 새 언약이란 돌 판에 새겨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새겨집니다.

 

예레미야 31:31~34절입니다. “봉독” 새 언약을 맺어야 하는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의 남편이 되어 이끌어 내었지만 그들은 언약을 깨뜨렸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들이 깨뜨릴 수 없는 새 언약으로 자기 백성과 언약하십니다. 그 언약은 사람의 마음에 기록이 되는 것입니다. 이 언약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맺은 언약입니다(눅22:20). 이 언약이 체결되면 이웃과 형제에게 여호와를 알라고 하지 않습니다. 새 언약의 완성으로 성령을 보내시면 성령께서 친히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요16:13, 요일2:27). 그러므로 예레미야 선지자가 언약궤를 말하지 않게 되리라는 것은 새 언약의 시대를 말한 것입니다. 이때가 되면 언약궤에 대하여 생각하지 아니할 것이며 기억하지 아니할 것이며 다시는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예레미야 3:18절입니다. 남 유다가 회개하지 않음으로 북 이스라엘을 오라고 하신 주님께서 이제 유다 족속과 이스라엘 족속과 동행하여 북에서부터 나와서 너희 조상들에게 준 기업으로 준 땅에 그들이 함께 이를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바벨론 포로에 돌아올 것을 말씀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새 언약시대에 열방이 주께로 돌아올 것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렘4:2).

 

19~21절입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스스로 돌아올 수 없는 모습을 다시 상기시킵니다. 이 땅을 주시면서 너희는 나를 나의 아버지라고 하고 나를 떠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족속은 마치 아내가 남편을 속이고 떠나감 같이 너희가 확실히 나를 속였다고 합니다. 이들의 애곡하며 간구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길을 굽게 하며 자기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돌아오라고 합니다. 돌아오라고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 친히 성읍에서 하나 족속 중에서 둘을 택하여 데려오시는데(렘3:14) 북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남 유다도 포함됩니다(18). 이렇게 주로 말미암아 회개하는 자들의 고백이 나옵니다.

 

22~25절입니다. 첫째는 우리가 주께 왔사오니 주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임을 고백합니다. 그동안 다른 주를 찾아다닌 것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작은 산들과 큰 산 위에서 떠드는 것은 참으로 헛된 일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크고 작은 우상숭배만이 아니라 크고 작은 나라들을 의지한 것도 포함이 됩니다. 이들이 결코 구원을 줄 수 없음을 알고 이스라엘의 구원은 진실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있다고 합니다. 셋째로 자기 죄를 압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한 그 우상들이 우리의 청년 때로부터 우리 조상들의 산업이 양 떼와 소 떼와 아들들과 딸들을 삼켰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수치와 치욕을 당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청년 때로부터 지금까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참된 회개가 일어난 모습입니다. 이러한 회개가 우리에게 날마다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