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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12:1~13:19 나도 안다 그러나 2016. 3. 16

 

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 너희만 참으로 백성이로구나 너희가 죽으면 지혜도 죽겠구나 3 나도 너희 같이 생각이 있어 너희만 못하지 아니하니 그 같은 일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욥의 친구 세 명이 한 번씩 돌아가면서 욥에게 말하고 욥이 그들의 말에 답변을 하였습니다. 오늘 볼 말씀은 소발의 말에 대하여 답변을 하는 것이지만 소발만이 아니라 세 명의 친구 모두에게 대한 답변입니다. 욥의 답변이 12장부터 14장까지 계속됩니다. 그 중에 오늘은 13:19절까지 보겠습니다. 이렇게 구분한 것은 욥의 친구들에게 답을 하면서 나도 너희가 말하는 것을 안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너희가 대답하는 것으로는 나도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인데 그것으로 답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나도 알고 있고 나도 너희만 못하지 않으니 그런 말 그만하라고 하면서 하나님께 묻게 됩니다.

본문 12:1~2절입니다. 욥이 소발에게 대답합니다. 물론 소발만이 아니라 그의 세 친구에게 대답하기를 나도 너희같이 생각이 있어 너희만 못하지 않다고 합니다. 그들이 말한 것을 누가 모르겠느냐고 합니다. 그런데 너희는 너희만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말하니 너희가 죽으면 지혜도 죽겠다고 욥이 답변을 합니다. 그동안 엘리바스와 빌닷과 소발이 욥에게 한 말은 이 세상에서 말할 수 있는 지혜라는 것들은 다 나왔습니다. 자연을 보면서 익히고 배운 학습과 역사적인 교훈과 전통, 종교적인 신비체험, 윤리 도덕적인 인과율과 선악체계가 다 나왔습니다. 이런 것은 이미 욥도 알고 있지만 그것으로 욥의 상황은 해석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욥은 친구들에게 나도 안다 이제 그만하라고 합니다.

 

13:1~2절입니다. “1 나의 눈이 이것을 다 보았고 나의 귀가 이것을 듣고 깨달았느니라 2 너희 아는 것을 나도 아노니 너희만 못하지 않으니라나도 보고 듣고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 아는 것을 나도 아노니 너희만 못하지 않다고 합니다. 여기서 제목만으로 지나간 내용을 잠시 생각해 봅시다. 2주 전에 욥이 하나님께 알려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런데 소발이 자신이 마치 하나님이나 되는 양 내가 알려 주마 하고 나서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찌 대답이 없겠느냐 말입니다. 이러한 말에 욥은 나도 너희가 아는 것은 안다 그러나 그것이 나에게 답이 안 된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묻는 것이 다음에 볼 내용입니다. 오늘은 욥이 나도 너희가 말하는 그런 정도는 이미 알고 있다는 내용을 봅니다.

 

12:4~6절입니다. “4 하나님께 불러 아뢰어 들으심을 입은 내가 이웃에게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의롭고 온전한 자가 조롱거리가 되었구나 5 평안한 자의 마음은 재앙을 멸시하나 재앙이 실족하는 자를 기다리는구나 6 강도의 장막은 형통하고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자는 평안하니 하나님이 그의 손에 후히 주심이니라

 

욥이 하나님께 불러 아뢰어 들으심을 입었다고 합니다. 이 말은 한 때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을 받은 자는 자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웃에게 웃음거리가 되었고 의롭고 온전한 자가 조롱거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욥의 이러한 말은 친구들이 견디지를 못합니다. 어떻게 의롭고 온전한 자가 비웃음거리가 되고 조롱거리가 되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욥이 당하는 이런 일은 반드시 지은 죄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욥은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고난 받는 것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기에 일어나는데 나는 이런 일을 하시는 하나님이 아직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새 번역으로 이 본문을 다시 봅니다. “4 한때는 내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신 적도 있지만, 지금 나는 친구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의롭고 흠 없는 내가 조롱을 받고 있다. 5 고통을 당해 보지 않은 너희가 불행한 내 처지를 비웃고 있다. 너희는 넘어지려는 사람을 떠민다. 6 강도들은 제 집에서 안일하게 지내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들도 평안히 산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까지 자기 손에 넣었다고 생각한다.” 악인의 형통과 의인이 고난에 대하여 시편 37편과 73편과 하박국서를 통하여 살펴봤습니다. 그런데 욥은 이러한 부조리한 일들까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기에 일어난다고 봅니다. 그러나 욥의 친구들은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그러실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은 이 세상을 보라고 합니다.

 

12:7~10절입니다. “7 이제 모든 짐승에게 물어 보라 그것들이 네게 가르치리라 공중의 새에게 물어 보라 그것들이 또한 네게 말하리라 8 땅에게 말하라 네게 가르치리라 바다의 고기도 네게 설명하리라 9 이것들 중에 어느 것이 여호와의 손이 이를 행하신 줄을 알지 못하랴 10 모든 생물의 생명과 모든 사람의 육신의 목숨이 다 그의 손에 있느니라

 

모든 짐승이나 공중의 새나 땅에게 물어보라고 합니다. 바다의 고기도 네게 설명하리라고 합니다. 이 말은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이 다 여호와의 손으로 행하신 것을 안다고 합니다. 모든 생물의 생명과 모든 사람의 육신의 목숨이 다 그의 손에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합니다. 이 말은 욥의 친구들이 말하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으로는 세상의 일을 다 담아 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초식동물이 육식동물에 잡아먹힙니다. 진실이 거짓에 묻힙니다. 의인이 고난을 받고 악인이 형통합니다. 이러한 일들도 다 여호와의 손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욥의 친구들의 말로는 이런 문제에 대하여 답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은 너희가 아는 것보다 더 깊은 세계가 있다는 말을 합니다.

12:11~16절입니다. “11 입이 음식의 맛을 구별함 같이 귀가 말을 분간하지 아니하느냐 12 늙은 자에게는 지혜가 있고 장수하는 자에게는 명철이 있느니라 13 지혜와 권능이 하나님께 있고 계략과 명철도 그에게 속하였나니 14 그가 헐으신즉 다시 세울 수 없고 사람을 가두신 즉 놓아주지 못하느니라 15 그가 물을 막으신즉 곧 마르고 물을 보내신즉 곧 땅을 뒤집나니 16 능력과 지혜가 그에게 있고 속은 자와 속이는 자가 다 그에게 속하였으므로

 

새 번역으로 보면 인간의 지혜와 명철이 하나님 앞에 아무 것도 아님을 좀 더 분명하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오랜 기간 축척된 지식이라고 할지라도 지혜와 권능은 본래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류가 이것이 지혜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그런 것들을 없는 것처럼 헐어 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세울 자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물길을 막으면 땅이 마릅니다. 물길을 열어두시면 홍수로 범람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능력과 지혜가 그분의 것입니다. 인생은 속고 속입니다. 그런데 속는 자도 속이는 자도 주님께 속하여 있습니다. 참 놀라운 표현입니다. 우리는 속이는 자는 악마에게 속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속이는 자도 하나님께 속하여 있다는 말은 우리의 이해를 넘어섭니다.

 

이사야 45:5~8절입니다. “5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6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7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8 하늘이여 위로부터 공의를 뿌리며 구름이여 의를 부을지어다 땅이여 열려서 2)구원을 싹트게 하고 공의도 함께 움돋게 할지어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창조하였느니라여호와만이 신이십니다. 그러므로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합니다. 이 모든 것들을 통하여 여호와의 주되심을 보입니다.

 

12:17~22절입니다. “17 모사를 벌거벗겨 끌어가시며 재판장을 어리석은 자가 되게 하시며 18 왕들이 맨 것을 풀어 그들의 허리를 동이시며 19 제사장들을 벌거벗겨 끌어가시고 권력이 있는 자를 넘어뜨리시며 20 충성된 사람들의 말을 물리치시며 늙은 자들의 판단을 빼앗으시며 21 귀인들에게 멸시를 쏟으시며 강한 자의 띠를 푸시며 22 어두운 가운데에서 은밀한 것을 드러내시며 죽음의 그늘을 광명한 데로 나오게 하시며

 

자연의 만물들이 규칙이 있어 보이지만 그러나 규칙으로 설명이 다 되지 않듯이 인간 세상의 지혜와 권세라는 모사, 재판장, 왕들과 제사장들을 세우기도 하시고 무너지게도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며 충성된 자들의 말을 물리치시며 늙은 자 곧 지혜자의 판단도 빼앗으시며 귀인들에게 멸시를 쏟으시고 강한 자의 띠를 푸시며 어두운 가운데에서 은밀한 것을 드러내시며 죽음의 그늘을 광명한 데로 나오게 하신다고 합니다. 욥의 친구들이 말하는 세계관의 한계를 넘어서는 발언들을 욥이 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이 신약에서는 아주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시고 세상의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들을 택하셔서 지혜롭고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십자가의 도입니다(고전1:18~31).

 

23~25절입니다. “23 민족들을 커지게도 하시고 다시 멸하기도 하시며 민족들을 널리 퍼지게도 하시고 다시 끌려가게도 하시며 24 만민의 우두머리들의 총명을 빼앗으시고 그들을 길 없는 거친 들에서 방황하게 하시며 25 빛 없이 캄캄한 데를 더듬게 하시며 취한 사람 같이 비틀거리게 하시느니라자연이나 인간이니 인간들의 나라들의 모든 흥망성쇠가 사람하기 나름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욥의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로서는 이 세상을 다 설명하지 못합니다. 더더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가는 길을 가로 막고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욥은 까닭모를 고난으로 인하여 더욱 깊이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 나아가는 모습이 불평과 원망의 모습으로 보일지라도 세상의 온갖 지혜와 경험이 주는 답이 아니라 하나님의 답을 듣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이 욥의 인내며 믿음입니다.

 

13:1~5절입니다. “1 나의 눈이 이것을 다 보았고 나의 귀가 이것을 듣고 깨달았느니라 2 너희 아는 것을 나도 아노니 너희만 못하지 않으니라 3 참으로 나는 전능자에게 말씀하려 하며 하나님과 변론하려 하노라 4 너희는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요 다 쓸모없는 의원이니라 5 너희가 참으로 잠잠하면 그것이 너희의 지혜일 것이니라앞에서도 보았습니다만 욥은 친구들이 하는 말을 자신도 다 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런 말들은 쓸모없는 의원이니 차라리 잠잠 하는 것이 너희의 지혜일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이제 전능하신 하나님과 변론하겠다고 합니다.

 

13:6~13절입니다. “6 너희는 나의 변론을 들으며 내 입술의 변명을 들어 보라 7 너희가 하나님을 위하여 불의를 말하려느냐 그를 위하여 속임을 말하려느냐 8 너희가 하나님의 낯을 따르려느냐 그를 위하여 변론하려느냐 9 하나님이 너희를 감찰하시면 좋겠느냐 너희가 사람을 속임 같이 그를 속이려느냐 10 만일 너희가 몰래 낯을 따를진대 그가 반드시 책망하시리니 11 그의 존귀가 너희를 두렵게 하지 않겠으며 그의 두려움이 너희 위에 임하지 않겠느냐 12 너희의 격언은 재 같은 속담이요 너희가 방어하는 것은 토성이니라 13 너희는 잠잠하고 나를 버려두어 말하게 하라 무슨 일이 닥치든지 내가 당하리라

 

욥이 친구들에게 말하기를 나의 변론을 들어보라고 합니다. 너희가 하나님 입장에서 서서 답변을 해 준다고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불의를 말하는 것이며 속임을 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얼굴을 따르며 그를 위하여 변론하려고 하는데 하나님이 너희를 감찰하시면 하나님이 너희를 책망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의 존귀가 너희를 두렵게 할 것이라고 하면서 너희의 격언은 재 같은 속담이며 너희가 방어하는 것은 흙으로 된 성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잠잠하고 나를 버려두어 말하게 하라고 합니다. 내가 말한 것으로 인하여 무슨 일이 닥치면 내가 당하겠다고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 질문하고 답을 얻는 것에 자신의 목숨을 건다는 말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걸고 하나님께 질문하겠다고 합니다.

 

13:14~19절입니다. “14 내가 어찌하여 내 살을 내 이로 물고 내 생명을 내 손에 두겠느냐 15 1)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 16 경건하지 않은 자는 그 앞에 이르지 못하나니 이것이 나의 구원이 되리라 17 너희들은 내 말을 분명히 들으라 내가 너희 귀에 알려 줄 것이 있느니라 18 보라 내가 내 사정을 진술하였거니와 내가 정의롭다 함을 얻을 줄 아노라 19 나와 변론할 자가 누구이랴 그러면 내가 잠잠하고 기운이 끊어지리라

 

새 번역으로 읽어봅니다. “14 나라고 해서 어찌 이를 악물고서라도 내 생명을 스스로 지키려 하지 않겠느냐? 15 하나님이 나를 죽이려고 하셔도, 나로서는 잃을 것이 없다. 그러나 내 사정만은 그분께 아뢰겠다. 16 적어도 이렇게 하는 것이, 내게는 구원을 얻는 길이 될 것이다. 사악한 자는 그분 앞에 감히 나서지도 못할 것이다. 17 너희는 이제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라. 내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들어라. 18 나를 좀 보아라, 나는 이제 말할 준비가 되어 있다. 내게는, 내가 죄가 없다는 확신이 있다. 19 하나님, 나를 고발하시겠습니까? 그러면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죽을 각오를 하고 있겠습니다.”

 

참으로 목숨을 건 욥의 질문입니다. 내가 하나님과 변론한다는 것은 내가 아무리 의롭고 정당하다고 하여도 하나님께서 죽이시면 할 말이 없는 사람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께 나아가면 사람이 아무리 의로워도 죽이신다면 할 말이 없다는 것을 동물들의 세계와 인간의 지혜와 권세 있는 자들과 나라들의 흥망성쇠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음을 이미 앞에서 밝혔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아무리 의로워도 하나님이 죽이시면 죽을 것이지만 그러나 죽더라도 하나님께 해답을 받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욥이 목숨을 걸고 하나님께 질문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15절에 각주가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의뢰하리니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죽이시면 나는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의 사정을 하나님께 아뢰겠습니다. 새 번역은 하나님을 나를 죽이신다고 하여도 나는 더 이상 잃을 것도 없고 합니다. 지금 욥이 처한 상황이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바닥까지 왔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승복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이런 재앙을 당할 정도로 죄를 지은 것이 없다는 주장입니다. 욥은 이런 재앙을 당할 죄가 없지만 하나님이 죽이시면 할 말이 없는 것도 인정을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라도 하나님의 답을 얻으려고 합니다. 이 이것이 욥의 신앙이며 인내라는 말씀입니다.

 

16절도 다시 봅니다. 경건하지 않은 자는 그 앞에 이르지 못하나니 이것이 나의 구원이 되리라경건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합니다. 그런데 욥은 하나님 앞에 서고자 자신의 생명을 걸고 나섭니다. 이것이 나의 구원이 되리라고 합니다. 새 번역은 이렇습니다. “적어도 이렇게 하는 것이, 내게는 구원을 얻는 길이 될 것이다. 사악한 자는 그분 앞에 감히 나서지도 못할 것이다.” 욥이 이렇게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목숨을 걸고서라도 나아가려고 하는 것을 통하여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계시합니까?

 

욥의 친구들이 말하는 체계를 넘어서는 것이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전통을 이야기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인정하는 도덕률을 말합니다. 선한 사람은 상을 받고 악한 사람을 벌을 받는 다는 말은 누구라도 수긍을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게 보이는 세상입니다. 이런 부조리한 세상에서 도대체 하나님은 어떻게 세상을 경영하시는지 알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렇게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욥처럼 고민할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그저 신이 있다면 신을 섬겨서 복을 받는 방법이나 알려 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전통을 이야기하고 교리를 이야기합니다. 자신들의 교단이 얼마나 건전한지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르치는 대로 하면 천국도 가고 복도 받는다는 말을 하지 않는 종교단체가 없습니다. 이런 세계를 무너뜨리는 것이 욥기입니다.

 

16절의 구원이 되리라는 이 표현은 히브리어입니다. 그런데 구약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번역한 것이 70인 역입니다. 나의 구원이 되리라는 이 표현이 신약의 빌립보서 1:19절의 표현과 같습니다.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지금 바울 사도가 어떠한 환경에서 자신이 구원에 이를 줄을 안다고 합니까? 복음을 전하다가 옥에 갇혀 있습니다. 바울이 옥에 갇히자 바울을 시기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바울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이기 위하여 더욱 열심히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의 괴로움을 더하게 하려고 순수하지 못하지만 그런데 이렇게 전하여져도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 되면 자신은 기뻐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으로 인하여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안다고 합니다.

 

바울의 지금 상황은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구원과 너무나 다릅니다. 바울이 정말 바른 복음을 전하였다면 왜 이런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교회들이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일을 잘 도와주셔서 사업도 성공하고 세상에서 하는 일들이 다 잘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오는 말이 나는 하나님의 일을 하고 하나님은 나의 일을 한다고 하는 마치 성경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욥의 고난이나 바울의 고난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봐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한 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욥이나 바울은 이러한 일들이 오히려 구원에 이를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자신의 몸에서 오직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한다고 하면서 자신 안에 사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기에 자신은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합니다.

 

욥이 친구들의 말에 승복하지 않고 끝까지 변호하면서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 하나님께 답을 구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욥은 이렇게 하는 자신이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능력이 아닙니다. 그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역사하여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옥에 갇혀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으로 자신이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볼 때에 실패와 같고 죽는 자와 같은 모습인데 오히려 이런 것이 구원의 길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은 세상의 이론과 논리들을 압니다. 세상의 경험과 지혜와 전통과 교리가 어떤 것임을 압니다. 그런데 그런 것으로는 결코 답이 없는 것입니다. 어떤 교리를 외우고 성경구절을 외워도 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도 기쁨과 체험을 얼마든지 맛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다음 단계로 가면 또 다시 인본주의로 나아가게 되며 그 조직과 단체를 위한 곳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번영신학으로도 신비주의로도 금욕주의로도 해답이 안 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런 곳에서 빠져 나오는 것은 마치 죽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게 되면 욥처럼 아니라고 하면서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답을 찾게 됩니다.

 

욥기 42:1~6절입니다. “1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2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4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욥은 욥기의 시작과 이 결론을 모르고 진행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압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도 욥과 같은 고난들과 지난한 질문들을 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동일하게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그 복음을 들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의 사도들이 성령이 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할 때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시며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분으로 증언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14절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성령이 임한 사도가 증언하였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목격한 사도 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며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분으로 증언하였습니다. 오늘 우리의 고난과 의문들이 십지가 지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답이 주어질 것입니다. 다 이루었다는 그 주님의 약속이 우리에게 위로와 소망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