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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16:6~17:16 담보물을 주소서 2016. 4. 27

 

18 땅아 내 피를 가리지 말라 나의 부르짖음이 쉴 자리를 잡지 못하게 하라 19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가 높은 데 계시니라 17:3 청하건대 나에게 담보물을 주소서 나의 손을 잡아 줄 자가 누구리이까

 

욥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경건하고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욥 본인은 까닭도 모르면서 고난에 휩싸였습니다. 이러한 욥을 위로하려고 온 친구들은 자기들이 알고 있는 최고의 지식과 종교적인 경험과 세상의 논리로 욥을 위로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위로가 욥에게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재난을 주는 자들이었음을 지난주에 보았습니다. 우리도 어떤 어려움이 있으면 사람들이 위로하려고 옵니다. 병이 나면 병문안도 오고 초상이 나면 문상도 옵니다. 그런데 정말 위로가 되겠습니까? 제가 성진군에게 심방을 가지만 그 커다란 눈동자를 보면 아무른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오히려 말씀을 전하는 내가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욥은 극심한 고난 가운데 재난을 주는 친구들에게 그만 말하라고 하면서 자신이 당하는 고난은 하나님께서 이유도 없이 주시는 것이라고 하나님께 하소연을 합니다. 6절을 보시면 내가 말하여도 근심이 풀리지 아니하고 잠잠하여도 내 아픔이 줄어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제 더 이상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친구들에게 재난을 주는 위로 자들이라고 하여도 그들은 계속하여 돌아가면서 욥을 공박하고 있습니다. 네가 너무 교만하다고 말하면서 빨리 죄를 자복하고 주께로 돌이키라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욥의 친구들의 말을 보면 이런 패턴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욥은 자신의 이러한 고난이 자신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주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합니다.

 

7~16절입니다. “7 이제 주께서 나를 피로하게 하시고 나의 온 집안을 패망하게 하셨나이다 8 주께서 나를 시들게 하셨으니 이는 나를 향하여 증거를 삼으심이라 나의 파리한 모습이 일어나서 대면하여 내 앞에서 증언하리이다 9 그는 진노하사 나를 찢고 적대시 하시며 나를 향하여 이를 갈고 원수가 되어 날카로운 눈초리로 나를 보시고 10 무리들은 나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며 나를 모욕하여 뺨을 치며 함께 모여 나를 대적하는구나 11 하나님이 나를 악인에게 넘기시며 행악자의 손에 던지셨구나 12 내가 평안하더니 그가 나를 꺾으시며 내 목을 잡아 나를 부서뜨리시며 나를 세워 과녁을 삼으시고 13 그의 화살들이 사방에서 날아와 사정없이 나를 쏨으로 그는 내 콩팥들을 꿰뚫고 그는 내 쓸개가 땅에 흘러나오게 하시는구나 14 그가 나를 치고 다시 치며 용사 같이 내게 달려드시니 15 내가 굵은 베를 꿰매어 내 피부에 덮고 내 뿔을 티끌에 더럽혔구나 16 내 얼굴은 울음으로 붉었고 내 눈꺼풀에는 죽음의 그늘이 있구나” 10절에서 무리들이라는 말 외에 전부 하나님이 욥을 대적한다고 탄식합니다.

 

17절을 봅니다. 그러나 내 손에는 포학이 없고 나의 기도는 정결하니라자신이 이렇게 상하게 된 것은 욥의 친구들의 말처럼 욥의 포학 때문이 아니라고 합니다. 자신이 기도는 정결하다고 합니다. 지금 하나님 앞에 이렇게 탄식하면서 자신의 재앙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대단한 인내입니다. 욥은 지금 사람이 당할 수 있는 모든 고난을 다 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고난을 당하고 있는데 욥의 친구들은 욥이 자기 죄로 이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욥의 놀라운 고백이 나옵니다. 자신의 증인과 중보자가 하늘에 계시다는 말을 합니다. 이것이 인과율의 한계를 넘어서는 은혜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기까지 그 고난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18~22절입니다. “18 땅아 내 피를 가리지 말라 나의 부르짖음이 쉴 자리를 잡지 못하게 하라 19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가 높은 데 계시니라 20 나의 친구는 나를 조롱하고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니 21 사람과 하나님 사이 에와 인자와 그 이웃 사이에 중재하시기를 원하노니 22 수년이 지나면 나는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갈 것임이니라

 

욥은 자신에게 닥친 고난으로 인하여 죽음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손에 포학함이 없었으며 자신의 기도는 정결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피를 가리지 말라고 땅에게 말합니다. 땅과 하늘을 부를 때는 성경에서 언약의 증인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욥은 자신의 죽음을 감지하면서 자신의 죽음이 억울하게 피 흘려지는 사건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피를 가리지 않음으로 인하여 그 피의 호소가 하늘에 닿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벨의 피 소리가 하늘에 호소하듯이 자신의 피를 가리지 말라고 합니다. 이러한 호소는 결국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됩니다. 그래서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가 높은 데 계신다고 합니다.

 

그 극심한 고난 속에서 자신의 증인과 자신의 중보자가 하늘 높은데 계시는 것으로 믿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피 곧 자신의 생명을 걸고 증인과 중보자를 요청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 증인과 중보자가 너무 하늘 높은 곳에 계시니 지금 자신에게는 너무 멀리 계셔서 아니 계시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22절에서 수년이 지나면 나는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갈 것이라고 합니다. 하늘 높은 곳에 자신의 증인과 자신의 중보자가 계시지만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17:1~3절입니다. “1 나의 기운이 쇠하였으며 나의 날이 다하였고 무덤이 나를 위하여 준비되었구나 2 나를 조롱하는 자들이 나와 함께 있으므로 내 눈이 그들의 충동함을 항상 보는구나 3 청하건대 나에게 담보물을 주소서 나의 손을 잡아 줄자가 누구리이까자신의 증인과 중보자가 하늘 높은 곳에 계심을 말하면서 현재 자신은 죽어가고 있다는 탄식입니다. 자신을 조롱하고 충동하는 자들을 항상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청하 건데 나에게 담보물을 달라고 합니다. 나의 증인이며 나의 중보자가 되시는 하나님께 담보물을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보면 욥이 죄인이며 고난 없는 욥의 친구들이 의인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보이는 것은 주께서 그들의 마음을 가리어 깨닫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4~8절입니다. “4 주께서 그들의 마음을 가리어 깨닫지 못하게 하셨사오니 그들을 높이지 마소서 5 보상을 얻으려고 친구를 비난하는 자는 그의 자손들의 눈이 멀게 되리라 6 하나님이 나를 백성의 속담거리가 되게 하시니 그들이 내 얼굴에 침을 뱉는구나 7 내 눈은 근심 때문에 어두워지고 나의 온 지체는 그림자 같구나욥의 친구들이 욥을 공격하는 것은 그들의 마음이 가려져 있기에 의인의 고난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욥은 백성들의 속담거리가 되고 사람들이 욥의 얼굴에 침을 뱉습니다. 직접 침을 뱉은 기록은 없지만 사람들이 욥을 대하는 태도가 침을 뱉는 모독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고난의 가장 깊은 자리에서 또 다시 놀라운 고백이 나오고 있습니다. 앞에서는 고난 중에 자신의 증인과 중보자가 하늘 높은데 계신다고 하면서 자신에게 담보물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고난 중에 오히려 꾸준히 그 길을 가고 손이 깨끗한 자는 점점 힘을 얻는다고 합니다.

 

8~10절입니다. “8 정직한 자는 이로 말미암아 놀라고 죄 없는 자는 경건하지 못한 자 때문에 분을 내나니 9 그러므로 의인은 그 길을 꾸준히 가고 손이 깨끗한 자는 점점 힘을 얻느니라 10 너희는 모두 다시 올지니라 내가 너희 중에서 지혜자를 찾을 수 없느니라정직한 자와 경건한 자가 욥이 당하는 이런 고난을 보고 놀라고 분노 하겠지만 의인은 그 길을 꾸준히 가고 손이 깨끗한 자는 점점 힘을 얻습니다. 이것이 역설이며 이러한 힘은 욥에게서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힘을 내어 너희 모두 다시 오라고 합니다. 재난을 주는 위로 자들이지만 이들이 다시 와도 괜찮다는 말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말해도 그들 중에서는 지혜 자를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잠시 힘을 얻었지만 다시 침체가 옵니다.

 

11~16절입니다. “11 나의 날이 지나갔고 내 계획, 내 마음의 소원이 다 끊어졌구나 12 그들은 밤으로 낮을 삼고 빛 앞에서 어둠이 가깝다 하는구나 13 내가 스올이 내 집이 되기를 희망하여 내 침상을 흑암에 펴놓으매 14 무덤에게 너는 내 아버지라, 구더기에게 너는 내 어머니, 내 자매라 할지라도 15 나의 희망이 어디 있으며 나의 희망을 누가 보겠느냐 16 우리가 흙 속에서 쉴 때에는 희망이 스올의 문으로 내려갈 뿐이니라

 

고난 가운데 잠시 힘을 얻었지만 자신의 현실은 다시 죽음의 문으로 내려가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죽은 자의 장소인 스올 곧 무덤이 아버지가 되고 구더기가 어머니와 자매라고 한다는 말은 죽음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죽음으로 내려가는 본인의 실상을 보면서 다시 낙담이 됩니다. 이런 욥의 고난과 그 고난의 극심한 상황 속에서 잠시 잠깐 번개가 번쩍이듯이 하늘에 계시는 증인과 높은 곳에 계시는 중보자에게 의탁하면서 자신의 보증이 되어 주시기를 청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도에게 일어난 현상입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성도에게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을 넘어서는 증인과 중보자와 담보물을 요청하게 됩니다. 세상에서 저주 받아 죽는 모습과 같지만 그 안에 놀라운 약속을 바라보게 되는 일이 성도에게 일어납니다. 이들은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됩니다.

 

이사야 50:4~9절입니다. “4 주 여호와께서 1)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5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여셨으므로 내가 거역하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6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7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하였으므로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줄 아노라 8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냐 나와 함께 설지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냐 내게 가까이 나아올지어다 9 보라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냐 보라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이 그들을 먹으리라

 

4절의 각주가 학자들에 있습니다. 각주를 보면 제자들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는 자들이라면 곤고한 자를 도와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귀를 열어 알려주시는 자들이 어떤 모습입니까?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등을 맡기며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얼굴을 가리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도우시므로 부끄러워하지 않고 얼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한다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도우시는데 왜 이런 꼴을 당하는 것입니까? 그런데 여호와께서 도우시고 귀를 여셔서 알아듣게 된 자들이 이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런 자를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니 누가 정죄할 것입니까? 이런 자를 정죄하는 자들이 오히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이 그들을 먹을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욥기를 보면서 이 말씀을 보니 욥의 상황을 압축하여 보여주는 말씀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내용이 그리스도에게서 일어납니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구약이나 신약이나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자들이 가는 길이 이런 모습니다. 이렇게 하여 주님만 의지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죄란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이 선악체계로 세운 자기 의를 의지하는 것이 근원적인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8:31~34절입니다. “3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32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33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34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예수님의 이 말씀을 제자들이 못 알아듣습니다. 예수님이 이런 고난 곧 희롱과 능욕과 침 뱉음을 당하는 일이 욥과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된 일입니다. 그 고난과 죽음과 삼일 만의 부활에 대하여 하나도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입니다. 그 말씀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이 모든 말씀들을 이루시고 성령을 부어주셔야 이 뜻을 알게 됩니다.

 

마태복음 27:27~31절입니다. “27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28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29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30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31 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욥과 이사야 선지자가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 증거 한 내용들이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성취가 됩니다. 그러므로 구약이나 신약에서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자들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알고 믿게 되는 자들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미련하고 어리석기에 고개를 돌이질 하면서 침을 뱉고 돌아서는 자리가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고 합니다. 그 다 이루심을 성령을 통하여 자기 백성에게 넘겨주시면 비로소 십자가의 의미를 알게 됩니다. 너희가 십자가 못 박아 죽인 예수, 곧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 선포 앞에 자신이 그 예수를 살해한 가해자임을 인정하고 무릎을 꿇는 자들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고 전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지금까지 욥기서 본문과 이사야서와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을 통하여 까닭 없이 고난당하는 그 이유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예수님의 십자가가 구원의 능력임을 믿는 자들은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로 승리하였기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힘과 권세를 가지고 세상 사람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세상에서 통하는 그런 힘으로 역사할까요? 결코 아닙니다. 십자가의 도는 그런 방식이 아닙니다. 욥이나 이사야나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타난 그런 모습으로 가게 됩니다. 이 역사의 마감까지 그렇게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 까지 하나님의 비밀이 숨겨진 자리입니다.

 

고린도전서 4:1~5절입니다. “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바울사도가 고린도지역에 복음을 전하고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바울은 십자가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지역에 다른 복음 전하는 자들이 들어왔습니다. 이들은 십자가라는 고난의 복음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광의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바울을 실패한 전도자로 판단을 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볼 때는 욥과 같은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런 판단은 나에게 아주 작은 일이라고 하면서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않는다는 자유를 말합니다. 그러면서 정말 판단하실 분이 오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가 모든 것을 드러내실 것이라고 하면서 권면합니다.

 

6~8절입니다. “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7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8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바울과 아볼로가 본을 보였지만 이들은 교만하여졌습니다. 모든 것을 다 은혜로 받았는데도 자신들이 잘나서 받은 것처럼 자랑하고 교만하여진 것입니다. 이들에게 믿음의 길이 무엇인지 말합니다.

 

9~13절입니다. “9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10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11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 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13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이 말씀을 보면 지금까지 살펴본 욥기와 이사야서와 복음서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이 다 연결되고 있습니다. 지난주일 오후에 고 허운석 선교사 장례식에 갔다가 작사 작곡한 노래를 동영상으로 보았습니다. 노래 가사가 이 본문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죽도록 충성하였는데 폐암으로 죽어갔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고 믿는다는 길은 이런 길로 가는 것입니다. 누가 이런 자들을 흠모하며 좋아하며 따라가겠습니까?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만이 그리스도의 영에 의하여 이렇게 끌려가는 것입니다.

 

14~15절입니다. “14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바울사도가 이 편지를 쓴 것은 부끄럽게 하려고 쓴 것이 아니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바울의 이 편지가 정말 사랑하는 부모의 심정으로 쓴 것임이 읽어진다면 같은 영이 임한 사람입니다. 이런 자들은 하늘에 계시고 높은데 계시는 증인과 중보자와 보증이 아니라 성도 안에 그 보증이 주어진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1~5절입니다. “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2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3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4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욥이 부르짖은 담보물 곧 성령이 우리에게 보증으로 임하신 자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6~9절입니다. “6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이제는 하늘에 계시는 증인과 높은 곳에 계시는 중보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하여 그 담보물인 성령이 성도에게 내주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나를 기쁘게 하는 자가 아니라 주를 기쁘시게 하려고 힘쓰게 됩니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도 임하여지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