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설교 바로듣기]  [음성설교 다운받기]

 

욥기 36:26~37:24 하나님은 높으시니 2016. 9. 14

 

26 하나님은 높으시니 우리가 그를 알 수 없고 그의 햇수를 헤아릴 수 없느니라 27 그가 물방울을 가늘게 하시며 빗방울이 증발하여 안개가 되게 하시도다 28 그것이 구름에서 내려 많은 사람에게 쏟아지느니라 29 겹겹이 쌓인 구름과 그의 장막의 우렛소리를 누가 능히 깨달으랴 30 보라 그가 번갯불을 자기의 사면에 펼치시며 바다 밑까지 비치시고 31 이런 것들로 만민을 심판하시며 음식을 풍성하게 주시느니라 32 그가 번갯불을 손바닥 안에 넣으시고 그가 번갯불을 명령하사 과녁을 치시도다 33 그의 우레가 다가오는 풍우를 알려 주니 가축들도 그 다가옴을 아느니라

 

오늘로 엘리후의 말이 마감이 됩니다. 지난주에는 엘리후가 하나님의 일을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결론부분은 높으신 하나님을 누가 헤아려 알 수가 있느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우리가 높으신 하나님을 무슨 수로 그의 길을 정하겠으며 누가 주께서 불의를 행한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하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일이라고 무슨 일을 조금 하였으면 그것으로 하나님을 조정하려고 하는 모습도 함께 보았습니다. 오늘 말씀도 높으신 하나님에 대한 엘리후의 말입니다.

 

높으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우리가 잘 모르지만 우리가 잘 모른다고 그분이 하시는 일을 잘못 하였다고 가르치거나 불의하다고 불만을 품을 수는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욥의 말 중에 그런 부분이 나온 것을 우리는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엘리후는 욥의 그런 원망의 말들은 높으신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여 그런 것이기에 이제 높으신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는 자신의 말을 듣고 욥이 여호와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하여 순종하고 그를 경외하라고 합니다.

 

오늘본문 26~33절을 봅니다. 하나님의 높으심을 여러 가지 내용으로 말합니다. , 안개, 구름, 우렛소리, 번개를 말하며 37장에서는 폭풍우, 추위, 북풍, 남풍 등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은 본문에서는 물방울을 가늘게 하시며 빗방울이 증발하여 안개가 되게 하신다고 합니다. 초등학교의 교과서에서 비가 내리는 것을 설명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이 증발되어 안개가 되고 그것이 모여서 구름이 되고 그 구름이 비가 되어 많은 사람에게 내리는 것을 말합니다. 겹겹이 쌓인 구름과 그의 장막의 우렛소리를 누가 능히 깨닫겠느냐고 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를 빽빽한 구름이 가려져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 곳에서 우렛소리와 번갯불이 번쩍이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예측할 수도 없고 제어할 수도 없는 천둥번개를 하나님은 자신의 뜻대로 다루고 계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기상청에서 인공위성의 사진과 슈퍼컴퓨터로 어느 정도 예측을 하지만 다 맞는 것이 아닙니다. 이번에 일어난 지진과 같은 것은 예측불가능입니다. 그런데 높으신 하나님은 번갯불을 사면에 펼치시고 바다 밑까지 비추신다고 합니다. 우렛소리와 번갯불이 나오면 폭풍과 비도 동반이 됩니다. 이러한 것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만민을 심판도 하시지만 또한 음식을 풍성하게 주시기도 합니다. 번갯불을 명령하여 과녁을 치십니다. 천둥소리와 폭풍이 오는 것은 가축들도 안다고 합니다.

 

올해 81일에 부산 동래의 한 교회당 담이 벼락에 맞았습니다. 담의 붉은 벽돌이 교회당 마당에 가득 흩어지고 차량도 8대나 파손이 되었습니다. 교회를 좋게 보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말할까요? 교회 다닌다는 우리는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합니까? 무언가 잘못한 것이 있어서 그렇다고 봐야 합니까? 아니면 무엇을 깨달으라고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우연히 일어난 것입니까? 그 보도 사진을 보고 댓글이 달렸는데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가 주장하는 게 모든 일은 하나님의 뜻인데 저것도 역시 마찬가지겠죠. 얼마나 하나님의 분노를 살만한 짓을 했으면 저렇게 ㅎㅎ또 다른 댓글입니다. “사람이 안 다쳤길 바라며 뭔가 비리가 있는 교회라면 이번 기회에 뜨끔하길 바랍니다이런 댓글을 다는 사람들도 벼락 사건을 나름대로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합니까? 예수님은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사람들보다 죄가 더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이렇게 망한다고 하셨습니다(13:4,5).

 

31절을 보시면 우렛소리와 번개는 비를 몰고 옵니다. 그러한 것들로 만민을 심판도 하시고 음식을 풍성하게 주시기도 합니다. 태풍이 오면 어떤 지역은 피해를 입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태풍으로 비가 와서 농사가 잘 되기도 하고 바다 속에는 산소가 공급이 됩니다. 도시의 공기도 정화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항상 자기를 중심으로 해석하기에 태풍의 피해가 오면 피해가 왔다고 원망합니다. 비가 안 오면 비가 안온다고 원망합니다. 이러한 생각들은 세상만사를 다 자기중심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타락한 모든 인간들이 다 이렇게 세상을 살기에 세상이 지옥입니다.

 

37:1~12절입니다. “1 이로 말미암아 내 마음이 떨며 그 자리에서 흔들렸도다 2 하나님의 음성 곧 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똑똑히 들으라 3 그 소리를 천하에 펼치시며 번갯불을 땅 끝까지 이르게 하시고 4 그 후에 음성을 발하시며 그의 위엄 찬 소리로 천둥을 치시며 그 음성이 들릴 때에 번개를 멈추게 아니하시느니라 5 하나님은 놀라운 음성을 내시며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큰일을 행하시느니라 6 눈을 명하여 땅에 내리라 하시며 적은 비와 큰 비도 내리게 명하시느니라 7 그가 모든 사람의 손에 표를 주시어 모든 사람이 그가 지으신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8 그러나 짐승들은 땅 속에 들어가 그 처소에 머무느니라 9 폭풍우는 그 밀실에서 나오고 추위는 북풍을 타고 오느니라 10 하나님의 입김이 얼음을 얼게 하고 물의 너비를 줄어들게 하느니라 11 또한 그는 구름에 습기를 실으시고 그의 번개로 구름을 흩어지게 하시느니라 12 그는 감싸고도시며 그들의 할 일을 조종하시느니라 그는 땅과 육지 표면에 있는 모든 자들에게 명령하시느니라

 

높으신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 모든 천지만물들을 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십니다. 사람이 조정할 수 없는 우레와 번개와 폭풍우를 하나님은 자기 뜻대로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우레와 번개를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고 합니다. 2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고 합니다. 3절에서 그 소리를 천하에 펼치신다고 합니다. 5절에서 하나님은 놀라운 음성을 내시며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큰일을 행하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구름과 비와 큰 비도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대로 움직입니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사람들이 그가 지으신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폭풍우가 올 때에 짐승들은 그 굴속에 들어가 머뭅니다. 하나님은 폭풍우, 추위가 오는 북풍, 물이 어는 것, 비가 오는 것들을 다 하나님의 뜻대로 조정하시며 모든 자들에게 명령하시는 분이십니다.

 

13절입니다. 혹은 징계를 위하여 혹은 땅을 위하여 혹은 긍휼을 위하여 그가 이런 일을 생기게 하시느니라 31절에서 우레와 번개는 폭풍이 동반되는데 그런 폭풍을 통하여 심판도 행하시지만 먹을 것을 풍성하게 주시기도 한다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자연 현상이라고 하는 것들도 다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인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가 자연(自然)이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스스로 존재하는 피조물이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만물이 다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시는데 그 하나의 일을 통하여 어떤 경우는 징계로, 어떤 경우는 땅을 위하여, 어떤 경우는 긍휼을 위하여 그렇게 하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내용을 가지고 신비주의가 되어 무슨 음성을 들으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에 알아들을 자만 알아듣게 하십니다. 사도행전 9장을 보시면 주님께서 바울을 부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대낮에 하늘로부터 빛이 비추었습니다. 태양과 다른 빛입니다. 그래서 땅에 엎드려졌는데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가 있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냐는 음성을 듣고 사울이 주여 누구십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고 합니다. 그런데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고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들은 소리는 음성으로 들은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6: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음성으로 하시는 말씀을 듣지 못한 것입니다. 들을 자만 듣게 됩니다. 그러면 오늘날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까?

 

히브리서 1:1~3절입니다. “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높으신 하나님의 자리에 십자가 지신 예수님이 앉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 됩니다. 또한 세상의 모든 일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해석하면서 살아가는 자들이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욥기 37:14~20절입니다. “14 욥이여 이것을 듣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오묘한 일을 깨달으라 15 하나님이 이런 것들에게 명령하셔서 그 구름의 번개로 번쩍거리게 하시는 것을 그대가 아느냐 16 그대는 겹겹이 쌓인 구름과 완전한 지식의 경이로움을 아느냐 17 땅이 고요할 때에 남풍으로 말미암아 그대의 의복이 따뜻한 까닭을 그대가 아느냐 18 그대는 그를 도와 구름장들을 두들겨 넓게 만들어 녹여 부어 만든 거울 같이 단단하게 할 수 있겠느냐 19 우리가 그에게 할 말을 그대는 우리에게 가르치라 우리는 아둔하여 아뢰지 못하겠노라 20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어찌 그에게 고할 수 있으랴 삼켜지기를 바랄 자가 어디 있으랴

 

욥에게 엘리후가 이것을 듣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오묘한 일을 깨달으라고 합니다. 엘리후는 사람이 다스릴 수 없는 일기현상과 같은 것들을 말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고 한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라고 한 것입니다. 욥이 당한 일도 징계를 위하여 일어난 일일 수도 있고 긍휼을 위하여 일어난 일 일수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욥의 세 친구와 엘리후가 다른 점임을 앞에서도 살펴보았습니다.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의 죄로 인하여 이런 재앙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엘리후는 교육을 위하여서도 그렇게 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해석이 더 깊어지고 넓어집니다.

 

엘리후는 욥에게 네가 하나님처럼 놀라운 일들을 행할 수 있느냐고 하면서 네가 말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가르쳐 보라고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이 말은 욥이 하나님이 잘 못하고 있다고 말한 것에 대한 엘리후의 책망입니다. 만약 하나님을 잘못 하였다고 말한다면 그것이 하나님께 삼켜지는 심판을 받는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엘리후는 그 말의 결론이 태풍이 물러간 후에 태양의 밝은 빛을 사람이 볼 수가 없듯이 북쪽에서 황금 같은 빛이 나오고 하나님께는 두려운 위엄이 있다고 합니다. 태양도 맨눈으로 볼 수가 없는 인간이 어떻게 태양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볼 수가 있겠느냐는 식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능자를 우리가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이것은 너무 높으신 분이라는 말입니다. 그의 권능은 지극히 크셔서 정의나 무한한 공의를 굽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를 경외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는 모든 자를 하나님은 무시합니다. 그러므로 높으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우리는 아무른 반론을 할 수가 없습니다. 욥조차 반론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앞에서도 보았듯이 엘리후의 말에 욥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드디어 38장에서 폭풍우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욥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엘리후의 이 말들은 폭풍우 속에 등장하시는 하나님을 예비한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은 27:13절로 보았습니다. 우레와 번개와 폭풍우가 일어날 때에 그 한가지의 일을 통하여 하나님은 징계도 하시고 땅을 위하여도 하시고 긍휼을 위하여도 그렇게 하시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다른 번역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땅에 물을 주시려고 비를 내리십니다. 사람을 벌하실 때에도 비를 내리시고, 사람에게 은총을 베푸실 때에도 비를 내리십니다.” 한가지의 비가 어떤 사람에게는 벌이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에는 은총이 됩니다. 노아 홍수를 생각해봅시다. 동일한 비가 어떤 사람에게는 심판이지만 은혜를 입은 노아에게는 은총입니다. 그러므로 욥의 까닭모를 재앙이 징계처럼 보여도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긍휼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신비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징계를 받는 모습인데 그 속은 자기 백성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신 것입니다.

 

이사야 53:1~6절입니다. “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람들은 메시아의 고난을 어떻게 보았습니까?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는데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나무에 달려 저주 받아 죽은 죽음임을 유대인들은 너무나 잘 압니다. 그런 저주 받아 죽은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복음을 누가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욥기의 표현대로 너무 높은 하나님도 알 수가 없고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높으신 하나님이 자신을 비워 저주 받아 죽은 모습으로 오셔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누가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오직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자들에게만 십자가를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으로 믿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자기 백성에게는 구원의 소식이 되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는 심판의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며 이방인들이게 미련하게 보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게 되는 자들에게는 어떤 일들이 일어납니까? 너무 높으신 분으로 나타나는 하나님 앞에서나 너무 낮아지셔서 십자가를 지신 분에게나 구원 받은 자들은 자신이 무너지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엎드리며 이사야 선지자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죄인이라고 하면서 자신을 떠나라고 합니다. 바울도 죄인 중의 괴수라고 합니다.

 

히브리서 12:25~29절입니다. “25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 26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27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 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창원에 사시는 분은 월요일에 지진의 무서움을 맛보았을 것입니다. 올해만 벌써 몇 번째 일어난 지진입니다. 저는 지진이 일어날 때에 서재에 있었습니다. 쿵 소리와 함께 8층으로 된 이 큰 건물이 장난감처럼 흔들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처음 지진이 일어나고 나서 복음 칼럼 란에 이 본문의 말씀을 올렸습니다. 글을 올리고 나니 처음보다 더 크게 흔들렸습니다. 사람들은 아파트에서 밖으로 뛰어나가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이런 지진만이 아니라 성도라면 우리가 그동안 붙들고 있던 모든 것들을 다 흔들어 버리시는 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인 것입니다. 무엇을 흔들어 버리십니까? 흔들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흔들어 버립니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우리의 마음의 생각과 이론들도 흔들어 버리십니다. 그런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서 붙들고 있는 것들도 다 흔들어 버립니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진동할 것들을 흔들어 버리심으로 진동하지 아니할 것을 남기시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의 자아도 흔들려야 합니다. 우리의 자존심이 무너져 내려야 합니다. 우리의 의라는 것들이 다 무너져 내려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교만한 것들을 다 무너뜨리십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재앙을 당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자기 일을 이루어가십니다. 이제 욥기의 거의 마지막에 왔습니다. 욥을 흔들어 버리신 하나님께서 욥의 생각들과 주장들 까지 다 흔들어 버리십니다. 이제 폭풍우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일만 남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붙들고 있습니까? 아직 붙들지 못하였다면 앞으로 무엇을 붙들고 싶으십니까? 내가 지금 붙들고 있고 앞으로 붙잡고자 하는 것이 영원한 것들입니까? 아니면 이 세상이 불에 타면 함께 멸망할 것들입니까?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찾아내십니다. 그 일을 예수님께서 이루시기 위하여 그 높으신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저주 받아 죽기 까지 오셨습니다. 그 백성들을 십자가로 찾아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마음에 들어오려면 내가 믿고 의지하는 것들이 다 흔들려 무너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흔들리고 무너지는 자들이 택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지진을 통하여서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어떤 꼬마들은 지진이 일어나니 지진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나님께 기도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에 부모는 알아듣든지 못 알아듣든지 세상이 흔들리고 무너지며 결국 불살라진다는 것을 히브리서 12장이나 베드로후서 3장과 같은 말씀을 찾아서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어떤 자녀는 지진을 통하여 예수님을 잘 믿어야 하겠다는 말들을 했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기도하거나 예수님을 잘 믿어야 한다는 말을 하거나 간에 자기 구원을 염두에 둔 말입니다만 이런 기회가 복음을 전하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흔들려 무너질 것들을 목숨을 다해 붙들고 있다면 그 흔들려 무너지는 것들과 함께 무너질 것이기에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미리 흔들어 대십니다. 유형의 것이든 무형의 것이든 자아를 확대하고자 하는 그 모든 것들을 흔들고 흔들어 다 털어 버리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붙들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이 역사 속에서 불러내시는 모습입니다. 흔들리지 아니할 나라를 받은 자들이라면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흔들릴 것들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더욱 은혜를 받는 삶으로 나가게 됩니다. 흔들리지 아니할 나라를 받은 자들은 세상의 흔들림이 두려움이 아니라 믿음의 진작과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진으로 하나님은 심판도 하시고 긍휼도 베풀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주님의 뜻을 헤아려 살아가는 자가 성도입니다. 이들의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