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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38:8~18 너는 아느냐? 2016. 9. 28

 

8 바다가 그 모태에서 터져 나올 때에 문으로 그것을 가둔 자가 누구냐 9 그 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옷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10 한계를 정하여 문빗장을 지르고 11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더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높은 파도가 여기서 그칠지니라 하였노라

 

지난주에 드디어 하나님께서 말씀하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오늘도 같은 맥락에서 질문하시는 하나님이 무엇을 질문하시는지 보려고 합니다. 욥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자신의 답답함을 알려달라고 최종진술을 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폭풍이 가운데서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내용은 질문의 형태이며 그 질문에 욥은 하나도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도 세상에서 수많은 질문들을 하고 삽니다. 어린 아이가 태어나서 말을 배우고 나면 수많은 질문들을 합니다. 그런 질문들을 통하여 사물을 알고 세상을 알아가는 것이지만 때로는 우리가 전혀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나중에 커면 알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커도 다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기에 계속되는 질문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생은 질문도 여러가지 죄악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정말 몰라서 묻는 질문도 있지만 상대방을 시험하기 위한 질문도 있습니다.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려는 질문도 있습니다. 또는 질문하여 무엇을 알게 되면 그 알게 된 것을 나의 소유로 삼아 힘으로 사용합니다. 그래서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더구나 오늘과 같이 정보사회에서는 빨리 정보를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전쟁이나 경제도 정보전입니다. 어느 주식이 오르고 내리는지, 기름 값과 부동산. 환율과 같은 것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사전에 안다면 금방 부자가 될 수 있는 세상입니다.

 

이러한 지식만이 아니라 근원적인 진리에 대한 질문들을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들을 철학자라고 합니다. 지혜를 사랑하는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예술이나 문학도 사실 근원적인 질문을 합니다. 최승자 시인의 시를 두 편 소개합니다. 이 시인은 어려서 주일학교를 열심히 다닌 사람이며 대학에서 독문학을 하고 노장 사상도 많이 공부한 사람입니다. 오늘 질문과 연결되는 시라서 소개합니다.

 

제목: 따뜻한 풀빵 같은(/ 이 표시는 줄이 바뀜을 표시하기 위하여 제가 붙였습니다)

하늘의 바람을 불게 하는 자가 누구인가/ 누군가 운명을 주고 누군가 운명을 건네받는다/ 이 운명을 누가 주는 것인가/ 따뜻한 풀빵 같은 그러나 끝내/ 먹지는 않고 손에 쥐고 있을/ 따뜻한 풀빵 같은 이 운명은/ 누가 내게 주는 것인가?

 

제목: 너는 묻는다

너는 묻는다 언제냐고/ 나는 대답한다 모른다고/ 확실한가 안 확실한가/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른다/ 내일이 올지 안 올지/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른다/ 너는 눈을 떨군다/ 수세기의 바람이 그냥 불어간다/ 수세기의 눈()이 그냥 잠잠하다

 

우리는 이런 시인의 질문에 답을 할 수가 있습니까? 마치 하나님께서 욥에게 질문하시는 것처럼 하늘의 바람을 불게 하는 자가 누구인가를 묻습니다. 누가 우리의 운명을 주는 것입니까? 너와 내가 서로 묻고 답을 합니다. 내일이 올지 안 올지 묻습니다. 그런데 너도 모르도 나도 모른다고 하면서 고개를 떨굽니다. 그러면서 이 시인은 그저 수세기의 바람이 그냥 불어가고 수세가의 눈이 그냥 잠잠하다고 합니다. 결국 모른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하시는 것입니까?

 

최초의 질문은 창세기 3:9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최초의 질문이 선악과를 따 먹은 후에 나온 질문입니다. 금단의 열매를 먹고 나니 눈이 밝아졌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의 벌거벗음으로 보고 수치를 느낍니다. 그래서 무화과 잎으로 가립니다. 그리고 그날 바람이 불 때에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나무 아래 숨었습니다.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그 유혹에 넘어간 아담과 하와는 오히려 자신들의 수치를 보고 여호와의 낯을 피하게 된 것이 타락입니다.

 

이러한 아담을 찾아오신 하나님께서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이런 질문을 통하여 죄가 무엇인 드러내시면서 결국 여호와의 전쟁을 말씀하십니다.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의 전쟁을 말씀하시고서 아담과 하와에게는 가죽 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원시복음이라고 합니다. 최초의 복음이 이런 내용에 담겨있다는 말씀입니다. 인간이 행한 일은 하나님의 언약을 어긴 타락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들에게 언약을 하시고 가죽옷을 입혀주셨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이미 영원 전에 하나님과 아들의 언약을 드러내시기 위한 계시 전달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의 말씀을 듣는 것은 하나님의 질문으로 받는 것입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는 이 질문을 받는 것이 우리가 말씀을 듣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귀는 무방비로 열려있습니다. 온갖 세상의 소리가 다 들립니다. 세상 소리는 얼마나 귀를 잘 기울여 듣는지 우리가 이미 아는 사실입니다. 앞에서 정보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서울의 유명한 입시 전문가가 창원에 와서 강의하면 커다란 강당이 가득 찹니다. 그리고 얼마나 열의가 대단한지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다 들으려고 합니다. 우리의 귀가 세상의 힘이 될 정보에는 그렇게 잘 기울이면서 영원한 생명의 말씀에 대하여는 귀를 닫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본 말씀 욥기 38:4~6절입니다. “4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5 누가 그것의 도량 법을 정하였는지, 누가 그 줄을 그것의 위에 띄웠는지 네가 아느냐 6 그것의 주추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잇돌을 누가 놓았느냐재산 잃고, 자식 다 죽고, 몸은 병들고, 아내는 욕하고, 친구들은 재난만 주는 위로를 하고, 종들도 조롱하는 상태의 욥에게 하나님은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욥과 같은 재앙을 당하지 않았는데도 하루를 살면서도 온갖 불평과 원망이 나왔을 것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이 질문을 하십니다. 너 천지 창조할 때에 어디에 있었으냐? 우리가 이 하나의 질문에만 제대로 맞닥뜨려져도 아무른 할 말이 없는 자가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는 잠잠하라고 합니다(2:20). 그리고 들으라고 합니다(6:4). 우리가 이 세상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과 목적이 있어서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생들은 세상만사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그래서 세상만사를 내 중심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신에게 비는 것이 종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이미 세상을 누구 중심으로 창조하셨는지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이미 지난주에 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통일하기 위함이며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만드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또 한 주간 살면서 세상을 예수님 중심으로 보았습니까? 나를 중심으로 보고 해석하였습니까? 나를 중심으로 보았기에 지난 한 주간도 괴로운 한 주간 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또 하나님의 질문에 마주 서야 합니다. 너는 무엇을 아느냐는 질문에 답해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욥기 38:8~11절입니다. “8 바다가 그 모태에서 터져 나올 때에 문으로 그것을 가둔 자가 누구냐 9 그 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옷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10 한계를 정하여 문빗장을 지르고 11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더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높은 파도가 여기서 그칠지니라 하였노라성경에서 바다는 혼돈과 교만과 악의 세력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욥기 7:12절입니다. 내가 바다니이까 바다 괴물이니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나를 지키시나이까하나님께서 바다를 지키시고 바다의 괴물을 제어하시는 분이신데 하나님께서 마치 욥을 바다처럼 바다의 괴물처럼 다루시느냐고 하소연 합니다. 이러한 욥에게 하나님은 바다에 대하여 질문하시고 하나님께서 답변을 하십니다.

 

다른 번역으로 8~11절을 봅니다. “8 바닷물이 땅 속 모태에서 터져 나올 때에, 누가 문을 닫아 바다를 가두었느냐? 9 구름으로 바다를 덮고, 흑암으로 바다를 감싼 것은, 바로 나다. 10 바다가 넘지 못하게 금을 그어 놓고, 바다를 가두고 문빗장을 지른 것은, 바로 나다. 11 "여기까지는 와도 된다. 그러나 더 넘어서지는 말아라! 도도한 물결을 여기에서 멈추어라!" 하고 바다에게 명한 것이 바로 나다.” 바다를 만드시고 그 한계를 정하신 분이 하나님 자신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시편에서 보겠습니다.

 

시편 104:6~9절입니다. “6 옷으로 덮음 같이 주께서 땅을 깊은 바다로 덮으시매 물이 산들 위로 솟아올랐으나 7 주께서 꾸짖으시니 물은 도망하며 주의 우렛소리로 말미암아 빨리 가며 8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정하여 주신 곳으로 흘러갔고 1)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갔나이다 9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시편 104:1~5절의 말씀은 천지 창조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바다에 대한 말씀입니다. 욥기 38장의 패턴과 비슷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면 천지 창조도 생각이 나고 노아 홍수도 생각이 납니다.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물이 뒤 덮은 혼돈의 땅을 물과 뭍으로 나누시는 장면이 연상이 됩니다. 그리고 노아 홍수 때에 물을 물러가게 하신 것과 산이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가게 함으로 다시 바다의 경계를 정하신 것입니다. 세상을 멸망시킨 그 물조차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2~15절입니다. “12 네가 너의 날에 아침에게 명령하였느냐 새벽에게 그 자리를 일러 주었느냐 13 그것으로 땅 끝을 붙잡고 악한 자들을 그 땅에서 떨쳐 버린 일이 있었느냐 14 땅이 변하여 진흙에 인친 것 같이 되었고 그들은 옷 같이 나타나되 15 악인에게는 그 빛이 차단되고 그들의 높이 든 팔이 꺾이느니라욥이나 우리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침이 오라고 명령해서 아침이 오게 한 적이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새벽에게 명령할 수가 있습니까? 해가 떠오르게 함으로 사물이 분명하게 드러나게 하고 악인들이 어둠에서 행하는 일들은 밝혀 낼 수가 있느냐고 하십니다.

 

다른 번역으로 보겠습니다. “12 네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네가 아침에게 명령하여, 동이 트게 해 본 일이 있느냐? 새벽에게 명령하여, 새벽이 제자리를 지키게 한 일이 있느냐? 13 또 새벽에게 명령하여, 땅을 옷깃 휘어잡듯이 거머쥐고 마구 흔들어서 악한 자들을 털어 내게 한 일이 있느냐? 14 대낮의 광명은 언덕과 계곡을 옷의 주름처럼, 토판에 찍은 도장처럼, 뚜렷하게 보이게 한다. 15 대낮의 광명은 너무나도 밝아서, 악한 자들의 폭행을 훤히 밝힌다.”이런 질문에 욥이나 우리나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본문 16~18절입니다. “16 네가 바다의 샘에 들어갔었느냐 깊은 물 밑으로 걸어 다녀 보았느냐 17 사망의 문이 네게 나타났느냐 사망의 그늘진 문을 네가 보았느냐 18 땅의 너비를 네가 측량할 수 있느냐 네가 그 모든 것들을 다 알거든 말할지니라바다의 샘 깊은 물에 다녀봤느냐고 합니다. 바다의 깊은 곳을 사망의 문으로도 말합니다. 그러한 사망의 그늘진 문을 봤느냐고 묻습니다. 땅의 너비를 측량할 수 있느냐고 하시면서 그 모든 것들을 다 알거든 말해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왜 이런 질문을 하시는 것입니까? 욥이 자신이 알고 있는 세상과 자신이 알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으로는 자신이 당하고 있는 까닭모를 고난이 해석이 되지 않았기에 하나님께 따지고 물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제발 나에게 말씀을 좀 해 주시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하나님께서 욥에게 말씀하시는데 욥의 궁금함에 대하여 자세하고 친절하게 답변을 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욥이 전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욥이 답변도 할 수 없는 이런 질문을 하신 것입니까? 우리도 엄청난 문제가 생겼다고 합시다. 그런데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도 없고 해결이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하나님은 부재하시는 것처럼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리적으로도 배운 것은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며 무소부재 하신 하나님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못하실 일이 없으시고 아니 계신 곳이 없다고 배우기는 하였지만 어떻게 나의 문제에 있어서는 하나님은 무능하시고 안 계신 것과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자기중심적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비가 많이 왔습니다. 왜 비가 왔습니까? 우리에게는 비가 별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 경주에 오늘도 3.1의 지진이 일어났다고 국민안전 처에서 긴급 재난 문자가 왔습니다. 지진은 왜 왔습니까?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지진 전문가들도 지신이 일어나는 것은 알지만 왜 일어나는지는 모릅니다. 그런데 비가 오는지 지진이 일어나는 것에 문제가 되는 것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나를 중심으로 해석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제가 나를 중심으로 역사도 세상도 해석을 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러한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질문은 나의 중심성에서 벗어나게 해 주십니다. 그리고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하십니다. 해가 뜨고 해가 지고,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이런 것은 원래부터 자연히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천지를 만들 때에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고 물으십니다. 바다를 만들고 그 한계를 정하신 분이 누구신지 아느냐고 물으십니다. 해를 명하여 뜨게 하고 어둠을 물러가게 하는 일을 네가 할 수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바다의 깊은 곳에 가 보았느냐고 묻습니다. 사망의 문에 가보았는지 묻습니다. 알면 대답해 보라고 합니다.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질문을 통하여 네가 누구인지 알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네가 알든 알지 못하든 간에 이 우주 만물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일하심 안에 욥도 들어있습니다. 욥은 알지 못하고 갑자기 재앙을 당하였지만 이미 하나님은 아시고 허락하신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자기의 뜻을 알리시는 것이 계시입니다. 천지 만물의 창조 때부터 계셨고 그 창조를 하신 어떤 분을 증거 하기 위한 내용입니다.

 

이제 잠언 8:22~26절입니다. “22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23 만세 전부터, 태초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나니 24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25 산이 세워지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 26 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라천지 만물을 만들기도 전에 태초에 일하기도 전에 여호와께서 가지셨다고 하는 이 분이 잠언 서에서 지혜로 말합니다. 그러므로 욥에게 하신 하나님의 질문에 응답할 수 있는 분은 이 지혜가 인격이 되신 분이어야 합니다.

 

이어지는 27~31절입니다. “27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을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28 그가 위로 구름 하늘을 견고하게 하시며 바다의 샘들을 힘 있게 하시며 29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이 명령을 거스르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30 내가 그 곁에 있어서 2)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31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느니라지난주에 하나님의 창조 시에 기뻐한 하나님의 아들들을 천사로 보았습니다만 오늘 이 말씀은 창조자가 되어 기뻐하신 분이 지혜입니다.

 

이어지는 32~35절입니다. “32 아들들아 이제 내게 들으라 내 도를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33 훈계를 들어서 지혜를 얻으라 그것을 버리지 말라 34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35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36 그러나 3)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잠언서의 이 지혜가 이제 누구신지 알아채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1:1~4절입니다. “1 태초에 1)말씀이 계시니라 이 1)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2)깨닫지 못하더라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그 지혜와 말씀이 사람의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지혜이시며 말씀이시며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들이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바람을 꾸짖으시고 바람을 잠잠케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놀랐지만 거저 놀람에 그쳤습니다. 그러므로 우주 만물의 모든 창조를 하신 분이 이 땅에 오셔서 말씀하시는데도 사람들은 알아듣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만 하늘에서 오신 분이시고 예수님만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심에도 사람들은 예수님의 증언을 받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증언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신성모독자로 몰아서 죽여 버린 것이 하나님을 잘 안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율법을 받았고 기적을 보았다는 자들이 예수님을 배척하였습니다.

 

요한복음 3:11~15절입니다. “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4)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하늘에서 오신 유일하신 분이 알고 본 것을 증언하지만 받는 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모세 같이 자신이 들리심으로 자기 백성들을 자기에게로 이끄십니다.

 

요한복음 12:32절입니다. “32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33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이렇게 십자가로 끌리는 자만이 인생의 답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임을 알게 됩니다.

 

욥이 까닭모를 고난을 통하여 자신이 세계가 무너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하소연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욥에게 나타나셔서 욥이 평소에 생각도 못한 일들을 질문하신 것입니다. 천지 창조와, 바다를 만드시고 경계를 정하신 것과, 해가 뜨는 것과, 바다 밑의 세계를 아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런 것들은 평소에 생각하지 않고 살았던 자가 욥이나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근원적인 질문 앞에 욥은 입을 막고 회개하게 됩니다. 결국 이런 근원적인 질문은 예수님이 답을 하십니다.

 

우리 인생의 답과 우주 만물의 창조와 섭리와 그 결론은 예수 그리스도가 답입니다. 만물이 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지어졌고 예수님으로 인하여 유지되고 예수님으로 인하여 결론 내려지는 것입니다(1:15~16). 욥의 질문에서 감추어진 그 대답들인 신약에서 밝혀집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11:36). 그러므로 주님이 십자가에 들리심으로 함께 그곳으로 들어 올린 자 곧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다 예수님이 답이 됩니다. 창조의 이유, 멸망의 이유, 비가 오는 이유, 바람이 부는 이유, 지진이 나는 이유 그 모든 답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질문의 답은 십자가 지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들려지는 자들은 자기중심의 해석체제가 무너지고 모든 일들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석하게 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런 자들을 성도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