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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40:6~14 네 의를 세우려고? 2016. 10. 19

 

6 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7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겠으니 내게 대답할지니라 8 네가 내 공의를 부인하려느냐 네 의를 세우려고 나를 악하다 하겠느냐 9 네가 하나님처럼 능력이 있느냐 하나님처럼 천둥소리를 내겠느냐 10 너는 위엄과 존귀로 단장하며 영광과 영화를 입을지니라 11 너의 넘치는 노를 비우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모두 낮추되 12 모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낮아지게 하며 악인을 그들의 처소에서 짓밟을지니라 13 그들을 함께 진토에 묻고 그들의 얼굴을 싸서 은밀한 곳에 둘지니라 14 그리하면 네 오른손이 너를 구원할 수 있다고 내가 인정하리라

 

지난주에 본 말씀은 폭풍우 속에서 폭풍처럼 말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질문에 욥은 자신이 비천하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겠느냐며 내 입을 손으로 가릴 뿐이라고 합니다. 입으로 손을 가린다는 것은 다른 번역으로 보면 손으로 입을 막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질문 앞에서 더 이상 할 말이 없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속에서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러나, 그렇지만, 그래도 이런 접속사를 붙여가면서 계속하여 말이 나오려고 하니 입을 손으로 막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더 대답을 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한 말을 거두어들이고 회개하기 까지는 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본문 6~7절을 봅니다. 이 말씀은 이미 38장에서 여호와께서 욥에게 말씀하실 때에 하신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욥의 첫 대답으로 욥의 답변이 끝이 났다면 같은 질문을 하지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욥이 손으로 입을 틀어막을 정도이지 아직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자신의 말을 거두어들이며 회개하기에 이른 것은 아닙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욥은 하나님도 인정하신 의인인데 왜 그래야 되느냐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욥도 아담 이후의 인간입니다. 이미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의 인간이기에 욥이 아무리 의롭게 살아도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죄인입니다.

 

8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욥에게 네가 내 공의를 부인하려고 하느냐는 질문을 합니다. 욥이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계심을 믿고 일하심도 믿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재앙을 당하고 나서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하여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욥의 세 친구들이 말하는 그런 인과율의 하나님이 아니심을 자신이 까닭모를 재앙을 통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하여는 의구심이 생긴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속 시원하게 말씀이라도 해 주시면 좋겠다고 그렇게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무른 대답이 없었습니다. 엘리후가 등장한 후에 드디어 여호와 하나님께서 욥에게 나타나셔서 질문하시는데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욥은 입을 손으로 막았지만 그러나 그 중심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욥에게 하나님은 너의 의로움을 세우려고 나를 불의하다고 말하겠느냐고 물으십니다. 욥의 지금까지의 불평은 하나님의 일하심이 공의롭지 못하다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주신이도 하나님이시며 취하신 이도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복을 주신 하나님께서 재앙도 주신다는 말도 했습니다. 그런데 욥의 세 친구들의 공격이 이어지고 아내도 욕하고 자기의 양 지키는 개들 중에도 들지 못할 자들의 자식들까지 욥을 조롱하게 됩니다. 그런 일을 당하면서 하나님이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는 항의가 나온 것입니다. 이러한 욥에게 하나님은 네 의로움을 세우기 위하여 나의 의로움을 부인하려고 하느냐는 질문을 하십니다.

 

아담의 타락이후에 태어난 인간이 자기 스스로 전적으로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겠습니까? 이미 선악과의 유혹이 너도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유혹에 넘어간 것이기에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면서 자기 자신이 하나님인줄로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자들이 자신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억울하게 욕을 먹거나, 재산상의 손해가 나거나, 자존심에 상처가 되는 일을 당하였다면 우리는 견디지 못합니다. 그런데 욥은 우리가 말하는 의롭다는 기준으로 보면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재앙이 일어나고 욥의 종들에게조차 무시를 당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자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일하시느냐고 항의를 하면서 조율 좀 해달라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욥과 같은 마음이 없습니까? 욥처럼 의롭지도 못하면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이 영 마땅찮을 때가 없습니까? 더구나 아주 열심히 수 십 년을 아니 평생을 하나님을 섬긴다고 섬겼는데 도와주는 일은 하나도 없이 어려움만 가중되면 가만히 있겠습니까? 이러함에도 끝까지 견디는 사람들도 간혹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내가 희생해서 내 자손들이 복을 받는다면 견뎌내겠다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부모세대들은 이러한 마음들이 있었습니다. 내가 굶주려도 내 자식들은 배를 곯게 하지 않게 하려고 억척스럽게 일했습니다. 이러한 심성들을 종교심으로 자극하면 이 땅에서 복을 못 받으면 하늘에서 상이 클 것이며 또 나의 후손들이 잘 될 것이라는 신념으로 버티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우리의 부모세대들처럼 희생하지도 않았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그렇게 헌신 봉사하지도 않았습니다. 월요일 광주 모임에서 나훔서의 피의 성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교회 건축 헌금을 얼마나 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최고로 많이 한 사람이 5천만 원을 했다고 합니다. 별로 많이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어떤 어려움들이 일어나면 하나님 왜 이러시느냐고 원망 불평을 합니다. 그런데 욥은 이런 우리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의로운 삶을 살았지만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하여 불평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도대체 왜 이렇게 일하실까 하는 의문이 든 것입니다.

 

이럴 때에 우리는 내가 하나님이라면 이런 생각을 해 보실 것입니다. 좀 더 줄이면 내가 대통령이라면 이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내가 목사라면 이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제가 목사인데 젊어서 내가 목사라면 이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그런 목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저의 목회가 마음에 들지 않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이 상대방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막상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면 그렇게 말 할 수가 없는데 말입니다. 더구나 다른 사람들이 본인을 볼 때에도 똑 같이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되신다면 어떻게 천지를 운영하시겠습니까? 크리스토퍼 에쉬의 욥기 강해가 제 생각과 많이 일치해서 참고를 합니다. 그 중에 올마이티 영화 이야기가 나오는데 저도 본 영화라서 조금 말씀드립니다. 2003년에 나온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영화입니다. 범사에 불만인 리포트 기자(짐 캐리)가 자신이 하나님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닐 때에 하나님(모건 프리먼역)이 나타나셔서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기적을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전지전능한 능력을 줄 테니 하나님 노릇을 해 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놀랐지만 전능한 능력이 생기자 자기 부인을 위하여 무드 조성하려고 달을 당겨 놓은 결과로 일본에 어마어마한 해일이 덮치게 됩니다.

 

그리고 온갖 기도가 자기 귀에 다 들립니다. 전능한 능력으로 기도를 들어주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얼마나 고민이 되겠습니까? 이 사람 기도를 들어주면 저 사람이 피해가 가는데 어떤 기도를 들어주어야 합니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전능한 능력을 행하였는데 오히려 세상이 엉망진창이 됩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까? 사람들마다 하나님에 대하여 불평과 원망들을 하지만 하나님 노릇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느냐며 너희들이 양보하면서 사이좋게 살아가라는 그런 영화입니다. 아마 욥에게도 이런 식의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공의롭게 통치하신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는 항의에 대하여 하나님은 영화처럼 대답하시는 것이 아니라 의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다시 본문 8절을 새 번역으로 봅니다. 아직도 너는 내 판결을 비난하려느냐? 네가 자신을 옳다고 하려고, 내게 잘못을 덮어씌우려느냐?” 하나님의 일하심이 잘 못 되었다고 할 수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러면 욥은 억울한 것입니다. 어떻게 자신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이런 재앙을 당하느냐고 항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렇게 정당한 욥의 항의에 대하여 네가 네 자신을 옳다고 하려고 나를 불의하다고 하느냐며 책망하십니다. 내가 세상을 창조하고 운영하는 일이 네게 부당해 보이느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망은 그동안 시편과 하박국서를 통하여서도 살펴보았습니다. 답변은 하나님께서 실수 하시는 것이 아니기에 믿음으로 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사야 55:6~9절입니다. “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이 말씀에 비추어보면 욥도 하나님께로 돌아가려면 그의 길을 버리고 그의 생각을 버리고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여호와께서 긍휼히 여기시도 너그럽게 용서하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욥이 의롭기에 이 말씀에 해당이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말씀은 죄인들에게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사야 55:1절에서는 목마르는 자는 값없이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하십니다. 욥이 값없이 생명을 얻으려면 자신의 의로움을 버리고 와야 합니다. 그래야 값없이 생명수를 얻게 됩니다(22:17).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들의 생각이 다릅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하심은 전혀 빈틈없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이어지는 말씀에서 하십니다.

 

이사야 55:10~11절입니다. “10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비와 눈이 오면 그대로 흘러가고 녹아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땅을 적셔 소출이 나게 됩니다. 풀이 자라 짐승들도 먹고 곡식이 자라 사람의 양식도 주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헛되이 돌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콩나물에 물을 주면 그대로 흘러내리는 것 같지만 콩나물은 자랍니다. 우리의 영혼의 양식인 말씀은 분석하고 이해하고 암기하여 지식으로 파악하고 소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밥을 먹으면 그 사람의 살과 피가 되어야지 체하여 있으면 안 되듯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영혼의 양식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말씀을 지식으로 소유하려고 합니다. 그 결과는 교만하여지고 그것을 가지고 칼로 사용하고 또 하나님마저 자신의 판단으로 제한하는 일들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 생각이 다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도 빈틈없이 다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3절입니다. “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은 영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지만 동시에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신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신 분이십니다. 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만유의 상속자가 되시고 예수님을 위하여 만물을 지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며 그 본체의 형상이신 높아지신 예수님께서 그의 능력의 말씀을 만물을 붙들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이 자리에 모여서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도 결국은 누가 붙들어주셔야 하십니까? 만물 속에 우리가 포함되기에 말씀 그 자체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붙들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욥이나 우리나 간에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에 대하여 불평을 하고 있습니다.

 

본문 9~14절을 새 번역으로 봅니다. “9 네팔이 하나님의 팔만큼 힘이 있느냐? 네가 하나님처럼 천둥소리 같은 우렁찬 소리를 낼 수 있느냐? 10 어디 한 번 위엄과 존귀를 갖추고, 영광과 영화를 갖추고, 11 교만한 자들을 노려보며, 네 끓어오르는 분노를 그들에게 쏟아 내고, 그들의 기백을 꺾어 보아라. 12 모든 교만한 자를 살펴서 그들을 비천하게 하고, 악한 자들을 그 서 있는 자리에서 짓밟아서 13 모두 땅에 묻어 보아라. 모두 얼굴을 천으로 감아서 무덤에 뉘어 보아라. 14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나는 너를 찬양하고, 네가 승리하였다는 것을 내가 인정하겠다.”

 

네가 하나님처럼 능력이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욥이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하여 불평을 하고 있기에 네가 하나님처럼 능력이 있다면 이 세상을 네가 생각하는 공의로 다스려 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네가 위엄과 존귀를 갖추고 세상의 모든 교만한 자와 악한 자들을 심판하여 보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악에 대하여 다음 주에 베헤못과 리워야단을 통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욥에게 이 세상의 악을 심판하면 네 오른 손이 너를 구원할 수 있다고 내가 인정하겠다고 합니다. 욥의 오른 손으로 구원하여 보라는 말씀은 여호와의 오른 손은 능력의 손이기에 심판과 구원을 이루어 내시는 손입니다. 그러므로 욥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오른 손으로 심판도 구원도 이루고 계신다는 말씀을 역설로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110:1~7절입니다. “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 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2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 3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5 주의 오른쪽에 계신 주께서 그의 노하시는 날에 왕들을 쳐서 깨뜨리실 것이라 6 뭇 나라를 심판하여 시체로 가득하게 하시고 여러 나라의 머리를 쳐서 깨뜨리시며 7 길 가의 시냇물을 마시므로 그의 머리를 드시리로다

 

욥의 오른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여호와의 우편에 계신 분이 구원도 심판도 이루실 것을 다윗은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 예언한 것입니다. 다윗이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이미 주님이 두 분이십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주님이 홀로 하나이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주라고 믿고 따르는 자들을 보고 율법의 의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 비난을 합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예수님은 다윗의 이 시편으로 그들의 입을 막아 버립니다.

 

마태복음 22:41~46절입니다. “41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42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43 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44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45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46 한 마디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

 

예수님의 질문에 바리새인들이 대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이 평소에 외우다시피 하는 성경으로 예수님이 질문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유대인들이 존경하는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한 것이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우편에 그리스도의 자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성경의 박사라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질문에 입을 막아야 하듯이 욥기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질문에 욥도 입을 가릴 뿐입니다. 바리새인도 욥도 대답을 못하지만 결국 자기의 말을 거두어들이고 회개하는 자리까지 가야 성도입니다.

 

로마서 10:1~3절입니다. “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바울사도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율법의 의로 흠이 없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시각으로 예수님을 보았을 때에는 예수는 이단의 괴수이며 예수를 믿는 자들을 다 잡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사람을 잡아 죽였습니다. 이런 모습이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하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욥도 자신의 의로움이 있습니다. 나는 이런 재앙을 당할 일을 하지 않았다는 자기의 의로운 행위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하여 불평과 원망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욥에게 하나님께서 폭풍우 가운데서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 믿는 사람을 잡기 위하여 가는 사울에게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는 음성을 듣고 그의 믿음이 완전히 뒤집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의라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게 되는 죄가 되는지를 알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한 율법의 마침임을 전한 것입니다.

 

빌립보서 3:1~9절입니다. “1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율법의 행위로 자기를 치장하려고 하는 자들을 향하여 개들이라고 합니다. 그러한 자들에게 자신은 그들보다 더 완벽한 율법주의자였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러나 것들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기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나오는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로 나온 믿음으로 주어진 의가 됩니다. 그러므로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하나님을 불의한 자로 만든 자가 바로 자신임을 알게 된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비밀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욥이나 바울이나 오늘 우리나 간에 우리의 의를 세우려고 하나님의 의로움을 부인하거나 하나님의 의로움을 악하다고 하는 자들이 십자가의 원수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자기 입을 막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모든 말을 거두어 둘이고 회개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이어지는 17~21절을 봅니다. “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이 은혜가 우리에게도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