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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3:1~12 마음에 새기라 2016. 12. 28

 

1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2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3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 판에 새기라 4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7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8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 9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10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11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12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본문 1~2절을 봅니다. 1절에서 내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솔로몬이 아들을 부르는 형식이지만 솔로몬이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서 전하기에 지혜가 부르는 말이기도 합니다. 지혜의 근원이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아들을 부르면서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고 합니다. 마음으로 지키라는 것은 겉으로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사람들이 말을 잘 듣지 않으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잊어버리지 않도록 명심(銘心)하라고 합니다. 명심하라는 말은 마음에 새기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마음에 새겨서 그 법대로 살면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할 것이라고 합니다. 장수를 하는데 고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평강가운데 장수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런 말씀을 보고서 그대로 적용을 하면 내가 장수하고 평강하기를 원한다면 주의 법을 잊어버리지 않고 그 명령을 마음으로 지켜야 한다고 보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지혜의 말씀이 주어졌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으로 이 법을 지키지 못하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평화롭게 장수하지 못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나라도 평안한 나라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말씀들을 통하여 문자 그대로 적용을 하게 되면 이것이 살리는 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법이 되는 것입니다(고후3:6). 이 말씀을 직접 받은 자들도 메지 못한 멍에를 우리가 어떻게 맬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말씀도 예수님을 중심으로 해석하야 마땅합니다. 모든 성경이 예수님을 증거 한다고 한 말씀으로 해석을 해야 합니다(5:39).

 

본문 3~4절입니다.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라고 합니다. 1절의 내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마음으로 지키라는 말씀과 같은 내용입니다만 선택한 단어가 언약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히브리어로 헤세드와 에메드는 자주 언약의 용어로 사용됩니다. 공동번역은 성실과 신의라고도 번역을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적인 사랑이 인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언약 안에 머물라는 말씀도 됩니다. 그 언약을 목에 매며 네 마음 판에 새기라고 합니다. 언약을 마음 판에 새기라는 말씀이 율법을 주시면서도 하신 말씀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언약을 체결할 때에 받은 언약의 판은 돌 판에 새겨진 것입니다. 그런데도 마음에 새기라고 합니다.

 

신명기 30:11~14절입니다. “11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12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이 아니요 13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도 아니라 14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모세가 받은 율법이 어렵고 먼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다고 합니다.

 

이어지는 15~16절을 봅니다. “15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16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여호와의 명령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기에 지키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명령이 하늘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바다 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네 입과 네 마음에 있다고 합니다. 모세가 율법을 노래처럼 외워서 잊지 않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명령대로 살면 생명과 복을 받지만 그렇지 않으면 사망과 화를 당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결론은 그 말씀을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마음에 있었습니다.

 

이어지는 17~20절입니다. “17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18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할 것이니라 19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잠언서가 신명기의 말씀의 요약과 같습니다. 분명히 외우고 마음에 있는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가면 생명과 복을 얻을 수 있는데 문제는 유혹을 받아 마음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유혹을 받아 마음을 돌이킨 후손들의 별 수 없는 모습으로 보여줍니다. 아무리 율법을 주어도 그 마음에 기록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말씀을 받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망과 화의 길로 간 것이 구약의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물보다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며(17:9), 그 죄가 마음 판에 금강석 철필로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17:1).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아 광야를 지나면서도 언약을 배반합니다. 사사시대도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갑니다. 왕들의 시대에 왕도 타락합니다. 이런 왕들의 시대에 선지자들이 나타나서 옛 언약이 아닌 새 언약을 예언합니다.

 

예레미야 31:31~34절입니다.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구약에서 율법을 주시면서 마음에 새기라고 하였지만 인간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인자와 진리를 목에 메며 마음 판에 새겨서 살면 생명과 복을 주시고 그렇지 못하면 사망과 저주를 주신다고 하셨지만 인간은 그 마음 판에 말씀을 새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멸망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하시기에 인간이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여도 하나님의 언약은 파기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새 언약을 예언하면서 이 언약이 얼마나 신실하게 이루어질 것인지를 해를 낯의 빛으로 주었고 달을 밤의 빛으로 준 이러한 법도가 폐하여진다면 언약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천지가 없어져도 자신의 언약은 그대로 이루어내신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다시 잠언 3~4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 판에 새기라고 합니다. 그러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이 여김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누가 이렇게 살았습니까?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 역시 예수님께서 이루어내십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이 인자와 진리이십니다. 목메 매여 마음 판에 새길 이유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이 그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태어나시고 자라나실 때에 키와 지혜가 자라며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사랑스러워 지셨다고 합니다(2:52).

 

그러나 이런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표적과 기적을 보고 따르는 자들은 잠시 환영하였지만 곧 모든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고 미움을 받아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유일하게 인자와 진리로 사신 예수 그리스도가 배척을 받았다면 이 땅이 어떤 곳인지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인자와 진리로 사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은 모습이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사람들 목록 중 첫 번째가 아벨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아주신 아벨이 형 가인에 의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께서 데려가셨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보면 인생 절반도 못 살고 행방불명된 것입니다. 노아는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이런 자들이 언약 백성들입니다.

 

본문 5~6절입니다. 잠언서 중에서 유명한 말씀입니다. 복음성가 가사로도 나옵니다. 여기서도 마음이 나옵니다.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평소에 살아가면서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십니까? 나의 계획을 세워놓고 그것을 도와달라고 하지 않습니까? 계획을 세우기 전에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마음을 다하여 헤아려보십니까?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고 합니다. 모든 일에 주님을 인정하십니까? 온 천지가 주님의 손 안에 있음을 믿으십니까? 나의 뜻과 계획이 실패할지라도 범사에 주님을 인정하십니까?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 뜻대로 계획을 세워놓고 그것을 이루어달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은 범사에 주님을 인정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본문 7~8절입니다. 우리는 범사에 주님을 인정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생각과 판단을 어리석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이 모습이 타락한 인간의 실상입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미련하고 어리석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악을 떠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범사에 주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한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근심을 하면 간이 안 좋아지고, 분노하면 무엇이 안 좋아지고, 하면서 여러 가지 의학적인 말을 하는 설교를 들어보았습니다. 어느 정도 일리는 있습니다. 범사에 주님을 인정하면 걱정과 염려와 두려움이 없어질 것입니다. 주님을 범사에 신뢰하면 염려에서 해방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믿음이 좋은 사람은 병에도 안 걸리고 늘 건강하게 산다면 히브리서 11장을 찢어 버려야 할 내용이 됩니다. 우리가 그동안 살펴본 욥기나 시편 73편이나 하박국서를 통하여서도 악인의 형통과 의인의 고난에 대하여 많이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도 율법이나 잠언서의 이런 말씀 몇 구절을 가지고 이렇게 지켜 행하면 범사에 복을 받고 형통하며 살게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이곳저곳에서 그런 말씀들을 끌어와서 계속하여 단순 반복을 합니다. 이것이 세뇌의 기본입니다. 그런데 그런 설교를 듣고서 아멘하면서 따라가는 자들도 결국은 그런 세상적인 복들을 받고 싶어 하니 그렇게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이런 말씀도 현세적이고 육신적이 것으로 푸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궁극적인 내용으로 풀어야 합니다.

 

본문 9~10절입니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고 합니다. 맥추감사절이나 추수감사절에 단골로 등장하는 말씀입니다. 재물과 처음 익은 열매를 여호와를 공경하는 것이 어떤 것이라고 가르칩니까? 교회당에 가져오라는 것입니다. 주의 종에게 대접하라고 합니다. 가장 귀하고 처음 것을 드리라고 합니다.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칠 것이라고 합니다. 제가 시골에서 도시로 나올 때에 시골교회 전도사님이 저에게 신신당부한 것이 십일조를 하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복을 준다고 하였습니다. 백년이 넘은 고신교단 교회입니다. 그리고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고 해서 전도사 첫 사례 전액을 헌금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십일조 했을까요? 안했을까요? 우리 집사람은 항상 십일조보다 더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직 전셋집 얻을 형편도 되지 못합니다.

 

우리의 재물과 우리의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고 합니다. 구약적인 상황에서는 십일조와 각종 헌물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으로 성전이 유지되고 제사장들이 먹고 사는 것이며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까지 돌보는 일들에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오늘은 처음 익은 열매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어떤 청년이 이 본문으로 질문을 하면서 구약에서 물질적인 복을 말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것을 드린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성경전체에서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왜 처음 것을 드리는 것이 여호와를 공경하는 것이 되는지 성경 전체를 찾아보고서는 처음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는 답이 왔습니다.

 

출애굽기 23:15~19절입니다. “14 너는 매년 세 번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15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손으로 내 앞에 나오지 말지니라 16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17 네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 18 너는 네 제물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며 내 절기 제물의 기름을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지니라 19 네 토지에서 처음 거둔 열매의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삼대절기에 여호와께 나아올 때에 빈손으로 오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빈손으로 오지 말라는 이 단어를 찾다가 광주에 어떤 분이 출애굽기 설교를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교제가 되고 있습니다. 빈손으로 오지 말고 여호와께 나아올 때에 처음 거둔 열매의 가장 좋은 것을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왜 처음 것을 가져와야 합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처음 것을 드리면 우리가 부자 된다는 말씀을 하시기 위하여 이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 그러므로 처음 것이라고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에 장자의 죽음에서 어린 양의 피로 살아남았습니다. 그 처음 장자와 짐승의 처음 수컷을 여호와의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처음 것으로 구별된 자들이 나중에 레위지파로 대체가 됩니다. 그러므로 처음 것을 드린다는 것은 장자의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신명기 26:1~11절입니다. “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실 땅에 네가 들어가서 거기에 거주할 때에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에서 그 토지의 모든 소산의 맏물을 거둔 후에 그것을 가져다가 광주리에 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으로 그것을 가지고 가서 3 그 때의 제사장에게 나아가 그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아뢰나이다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렀나이다 할 것이요 4 제사장은 네 손에서 그 광주리를 받아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 앞에 놓을 것이며 5 너는 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내 조상은 방랑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애굽에 내려가 거기에서 소수로 거류하였더니 거기에서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는데 6 애굽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히며 우리에게 중노동을 시키므로 7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보시고 8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9 이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10 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 하고 너는 그것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두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 1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으로 말미암아 너는 레위인과 너희 가운데에 거류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토지소산의 맏물 곧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는 것은 출애굽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의 마음에 새겨야 할 말씀이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로 세우신 새 언약이 우리에 새겨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원하여 새겨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로 이루어내신 그 십자가의 완성이 바로 맏아들의 희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자의 희생과 소산의 맏물이라는 개념들이 다 그리스도의 희생을 보여주기 위한 배경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불러내실 때에 내 장자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보여주어야 할 역할은 장자의 희생역할입니다. 이것이 제사장의 역할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지런히 토지소산의 맏물은 하나님께 바친다고 하였지만 그것으로 부자 되기를 원한 것이지 그리스도의 희생을 바라보지 못한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모세의 수건이 가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11~12절입니다. 토지소산의 맏물을 드리면 복을 받는다는 말씀과 어울리지 않게 갑자기 여호와의 징계가 나옵니다. 그러면서 그의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맏물을 드림으로 복을 받는 다는 이야기가 맏아들의 희생으로 인하여 그 희생에 참여된 자들이 고난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없으면 그저 토지소산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바쳐서 창고가 가득차고 새 포도즙 이야기만 할 것입니다.

 

로마서 8:18~23절입니다.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처음 익은 열매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이 부활의 처음 익은 열매입니다. 그렇다면 구약에서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는 말씀의 성취는 곧 맏아들 되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자신의 희생하신 것이 처음 익은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빈손 들고 가지 않고 처음 익은 열매를 들고 가야 하는 것은 빈손들도 주께와 십자가를 붙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하는 것이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 아들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성도라면 몸의 구속이 일어날 그 날까지 탄식하면서 살아갑니다.

 

로마서 8:24~30절입니다.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부활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성도는 소망이 달라집니다. 보이는 소망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소망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일들이 성도에게서 일어날 것입니다. 그 소망을 믿고 참고 기다려야 하는데 우리의 믿음이 연약하니 우리 안에 임하신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시고 예수님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기도하십니다(8:34). 이렇게 하셔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데 그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내용이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것입니다. 그 아들이 바로 맏아들입니다. 맏아들의 희생을 구약에서 토지소산의 맏물을 드림과 장자가 여호와께 드려지는 것을 통하여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아들의 영이 임한 자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 판에 새겨진 새 언약의 백성들입니다. 이들은 처음 익은 열매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성도들입니다. 이들은 마음 판에 새겨진 십자가의 완성을 잊어버릴 수가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새기라는 이 말씀이 구약을 가로질러 새 언약에 이르러 그 완성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과 성령이 임함으로 인하여 마음에 여호와의 언약이 기록된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는 자들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