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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3:27~35 대조(對照)와 대비(對比) 2017. 1. 18

 

27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28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 29 네 이웃이 네 곁에서 평안히 살거든 그를 해하려고 꾀하지 말며 30 사람이 네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거든 까닭 없이 더불어 다투지 말며 31 포학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며 그의 어떤 행위도 따르지 말라 32 대저 패역한 자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 있으며 33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 34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35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미련한 자의 영달함은 수치가 되느니라

 

언어라는 것은 글자로 표기되어 드러나는 것과 그 표기되는 글자가 함유하는 뜻이 있습니다. 흔히 기표와 기의라고 합니다. 그리고 한 단어의 표기만으로 그 뜻이 잘 드러나지 않을 때에 다른 단어들과 대조하고 대비하여 그 뜻을 드러냅니다. 대조(對照)는 둘 이상을 맞대어 보는 것이고 대비(對比)는 서로 다른 성질의 것을 나란히 놓음으로 차이를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언어에도 사용하지만 그림이나 음악과 같은 것도 대조나 대비를 통하여 더 깊은 뜻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수많은 대조와 대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인과 아벨, 이스마엘과 이삭, 에서와 야곱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벌써 대조와 대비가 됩니다. 가인과 아벨, 이스마엘과 이삭, 에서와 야곱의 대비를 통하여 성경을 무엇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언약 밖의 사람과 언약 안의 사람이 어떠한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아주신 아벨을 돌로 쳐 죽이는 가인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과 은혜가 임할 때에 언약 밖의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전적인 언약의 능력으로 태어난 자가 아니라 아브라함의 혈과 육의 능력으로 태어나 언약 밖의 사람이 되고, 이삭은 사라의 생리가 끊어지고 아브라함이 할례를 행하고 나서 얻은 자식입니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언약 백성은 없는데서 만들어지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방식을 보여줍니다. 에서와 야곱도 하나님의 택하심은 이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미워할 자와 사랑할 자가 정해진 것입니다. 이러한 대조와 대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의 언약을 어떻게 이루어내실 지를 계시하여 주신 것입니다.

 

오늘본문 27~28절입니다.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서 마땅히 받을 자란 어떤 자들입니까? 율법에 의하면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입니다. 여기에 레위인도 포함이 됩니다. 레위인도 기업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마땅히 받을 자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있을 때에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같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긍휼을 베푸심으로 구원하여 약속의 땅에 들여놓았으니 그들을 돌봄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긍휼을 잊지 않게 하시는 장치가 됩니다. 그런데 분명히 줄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갔다가 다시 오라고 내일 주겠다고 하는 자는 인색하고 악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출애굽기 22:21~27절입니다. “21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 22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23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으리라 24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의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 25 네가 만일 너와 함께 한 내 백성 중에서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 주면 너는 그에게 채권자 같이 하지 말며 이자를 받지 말 것이며 26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27 그것이 유일한 옷이라 그것이 그의 알몸을 가릴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로운 자임이니라

 

이방 나그네, 과부, 고아, 가난한 자를 돌보라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애굽에서 나그네였음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약자를 해롭게 하면 그들이 부르짖을 것이며 그 부르짖음을 들으면 여호와의 노가 맹렬하여 칼로 그 남자들을 죽임으로 그 아내가 과부가 되고 자녀가 고아가 되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더구나 내 백성중의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 주면 채권자처럼 하지 말고 이자를 받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가난한 자의 옷을 전당잡았더라도 해가 지기 전에 돌려주라고 합니다. 겉옷이 이불도 되기에 그렇습니다. 이러한 말씀들은 여호와의 자비로우심을 알게 하시기 위하여 마땅히 베풀 자에게 베풀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도 자비를 베푸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대비되고 있습니다. 자비를 베풀 수 있는 사람이란 단지 재산이 넉넉한 사람이 아닙니다. 주님의 긍휼이 담겨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자비를 베풀 것입니다.

 

본문 29~30절입니다. 이웃이 곁에서 평안히 살면 그를 해하려고 꾀하지 말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남이 평안하게 사는 것이 배가 아파서 그대로 두지 못하고 해하려고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인간의 악함은 우리의 속담에도 나옵니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것입니다. 남도 아닌 사촌이 잘 되는 것을 시기질투 하는 것이 타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네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거든 까닭 없이 더불어 다투지 말라고 합니다. 이웃과의 사이에 화평을 도모하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과 화평이 일어난 사람이라면 남을 해하려고 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31절입니다. 포악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며 그의 어떤 행위도 따르지 말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포악한 자를 왜 부러워할까요? 그들이 세상에서 형통하기에 사람들은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악인의 결국이 어떻게 되는지 시편 37:1~3절을 봅니다. “1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2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3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이러한 악인과 의인의 대비가 시편 37편 전체에 다 나옵니다.

 

4~8절입니다. “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6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8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의인은 여호와를 기뻐하며 그를 의지하고 기다립니다. 그러면 여호와께서 그 의를 나타내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불평하는 것은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고 합니다.

 

9~15절입니다. “9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10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11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12 악인이 의인 치기를 꾀하고 그를 향하여 그의 이를 가는도다 13 그러나 주께서 그를 비웃으시리니 그의 날이 다가옴을 보심이로다 14 악인이 칼을 빼고 활을 당겨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엎드러뜨리며 행위가 정직한 자를 죽이고자 하나 15 그들의 칼은 오히려 그들의 양심을 찌르고 그들의 활은 부러지리로다세상에서 잠시 악인이 형통하게 사는 것을 보시고 주님께서 비웃으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결국이 어떠한지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할 것이 없습니다.

 

결론인 38~40절입니다. “38 범죄자들은 함께 멸망하리니 악인의 미래는 끊어질 것이나 39 의인들의 구원은 여호와로부터 오나니 그는 환난 때에 그들의 요새이시로다 40 여호와께서 그들을 도와 건지시되 악인들에게서 건져 구원하심은 그를 의지한 까닭이로다악인의 의인을 대비하면서 그 결론까지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세상의 것을 부러워하는 자가 아니라 주님을 의지하라는 말입니다.

 

32절입니다. 패역한 자와 정직한 자를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패역한 자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십니다. 패역(悖逆)한 자란 다른 번역으로 보면 역겨운 일이라는 말입니다. 여호와보시기에 역겨운 일을 하는 자는 외식하는 자들입니다. 입술로는 존경하지만 마음은 먼 자들입니다. 마음은 자기들의 이욕을 따르면서 여호와를 위한다고 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을 여호와께서 미워하십니다. 그런데 정직한 자는 그의 교통함이 있다고 합니다. 정직한 자란 마음이 정직한 것을 말합니다. 이들은 여호와와 교통함이 있기에 자신이 어떠한지를 아는 자들입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주님을 제대로 만난 자들의 한결같은 고백은 자신이 죽어 마땅한 자임을 아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여호와 앞에서 정직한 자들입니다. 이들에게 여호와께서 교통하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나 에스겔 선지자나 바울이나 요한이나 간에 주님의 영광을 뵌 자들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모습이 주님의 영광 앞에서 얼마나 비참하게 드러났는지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다고 하며 자신을 죄인중의 괴수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이 정직한 자들이며 이들에게 주님의 교통하심이 있는 것입니다.

 

33절입니다. 악인과 의인을 대비합니다.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저주와 복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대로 악인의 형통함이 복이 아닙니다. 그런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거나 불평하는 것은 악으로 행할 뿐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무엇을 복과 저주로 봅니까? 세상의 복은 시편 37편에서 본 악인의 모습들을 복이라고 합니다. 저주는 악인의 형통함이 없는 것을 저주로 여깁니다. 그러나 성도는 세상의 복과 저주의 개념과 전혀 다른 것입니다. 성도의 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 사는 것이 복입니다. 저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서 끊어지는 것이 저주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여호와의 저주가 임하였기에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것만 복으로 여기고 달려가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복을 받은 의인은 그런 것들이 복이 아님을 알게 하시려고 그런 것들을 흔들어 버리고 십자가가 보이게 하십니다.

 

로마서 8:34~39절입니다.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이것이 의인이 받은 복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악인의 저주와 의인의 복이 정리가 되어 있지 않으면 결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 볼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약을 통하여 이렇게 분명하게 악인의 저주와 의인의 복을 말씀하셨지만 이미 타락한 인간의 눈과 귀와 마음이 어두워져 있기에 참된 복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 것입니다. 오직 주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들만 참된 복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이들을 성경은 믿음의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사람들은 보이는 이 세상에서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면서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며 살아간 사람들입니다. 또한 신약의 성도들도 흩어진 나그네로 살아갑니다. 이러한 자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구별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함을 입었습니다. 이러한 의인의 집에 있는 복이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의인에게 주어지는 영원한 복입니다.

 

34절입니다. 거만한 자와 겸손한 자를 대비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거만한 자를 비웃으십니다. 시편 37편에서도 악인을 비웃으시는 주님에 대하여 보았습니다. 시편 2편에서도 하늘에 계신이기 웃으시는 이유는 이 세상의 임금들과 관원들이 모여서 여호와와 그 기름부음 받은 메시아를 대적하여 그 매인 것을 끊어버리려고 하는 것을 보시고 비웃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만한 자들은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에 관심이 없습니다. 자기들의 힘으로 이루어 내는 것들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이렇게 거만한 자들을 어떻게 심판하시는지 봅니다.

 

이사야 2:5~22절입니다. “5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6 주께서 주의 백성 야곱 족속을 버리셨음은 그들에게 동방 풍속이 가득하며 그들이 블레셋 사람들 같이 점을 치며 이방인과 더불어 손을 잡아 언약하였음이라 7 그 땅에는 은금이 가득하고 보화가 무한하며 그 땅에는 마필이 가득하고 병거가 무수하며 8 그 땅에는 우상도 가득하므로 그들이 자기 손으로 짓고 자기 손가락으로 만든 것을 경배하여 9 천한 자도 절하며 귀한 자도 2)굴복하오니 그들을 용서하지 마옵소서 10 너희는 바위틈에 들어가며 진토에 숨어 여호와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라 11 그 날에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되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 12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날이 모든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리니 그들이 낮아지리라 13 또 레바논의 높고 높은 모든 백향목과 바산의 모든 상수리나무와 14 모든 높은 산과 모든 솟아 오른 작은 언덕과 15 모든 높은 망대와 모든 견고한 성벽과 16 다시스의 모든 배와 모든 아름다운 3)조각물에 임하리니 17 그 날에 자고한 자는 굴복되며 교만한 자는 낮아지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요 18 우상들은 온전히 없어질 것이며 19 사람들이 암혈과 토굴로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땅을 진동시키려고 일어나실 때에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할 것이라 20 사람이 자기를 위하여 경배하려고 만들었던 은 우상과 금 우상을 그 날에 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지고 21 암혈과 험악한 바위틈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땅을 진동시키려고 일어나실 때에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리라 22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여호와께서 거만한 자를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잘 보여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주의 날에 모든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와 자고한 자들을 다 낮추어버리실 것입니다. 높은 산이든 망대이든 무엇이든지 높다는 것은 다 낮추어 버리신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인간의 처음 타락이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유혹에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은 아담 이후로 전부 교만하고 거만하고 자고하여져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자가 없습니다. 이런 자들을 주의 날에 낮추시게 되면 얼마나 두려운지 산과 바위틈에 숨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그동안 만든 은 우상과 금 우상을 다 던져버리고 여호와의 진노를 피하여 숨으려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6:15~17절을 봅니다. “15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틈에 숨어 16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의 결론입니다. 보좌에 계신 이와 어린 양의 진노가 임하는 날 세상의 모든 교만한 것과 거만한 것과 자고한 것과 스스로 높아지고 한 모든 것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설 수가 없습니다.

 

거만한 자들이 거만하게 살아가지만 이런 말씀에 비추어 보면 그들이 불쌍한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이들의 결론이 어떨지를 알기에 다 보여주셨습니다. 수에 칠 가치도 없는 주제에 온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큰소리치던 자들의 결론이 요한계시록입니다. 어린 양의 진노에서 누가 서겠습니까? 어린 양은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믿지 않고 세상의 힘을 추구한 자들이 어떤 결론이 나는지 성경이 이미 다 밝혀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은혜를 입은 자만 마음이 낮추어져서 십자가를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은 인생들이 수에 칠 가치도 없음을 압니다.

 

35절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지만 미련한 자의 영달함은 수치가 됩니다.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물려받지만 미련한 자는 수치를 물려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영광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미련한 자는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다가 영원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17~19절입니다.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지혜와 계시의 영이 임하면 성도의 마음의 눈이 밝아져서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또한 이러한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도 알게 됩니다. 그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란 그리스도의 죽으십과 부활과 승천인데 그 자리에 성도도 함께 참여시키신 것입니다. 이것이 지혜로운 자가 받는 영원한 영광입니다. 비련한자는 이러한 영광이 아니라 주님 오시는 날에 심판 받을 땅의 영과을 구하다가 영원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를 오늘 전체 본문과 대비하여 보면 이렇습니다. 지혜로운 자=겸손한 자=의인=정직한 자 이와 반대로 미련한 자=거만한 자=악인=패역한 자 이렇게 대비하여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대조와 대비를 하여 보면 우리의 현재 위치를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심판의 자리에 있거나 심판의 길을 추구하고 있다면 이런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비추어서 회개하고 바른 길로 돌이켜야 합니다. 물론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런 말씀의 대조들을 통하여 우리가 잘 가고 있는지 늘 말씀으로 점검하며 가기를 원합니다. 또 함께 이 길을 걷는 자들과도 서로 교통하며 점검하며 걸어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