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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4:10~19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 2017. 2. 1

 

10 내 아들아 들으라 내 말을 받으라 그리하면 네 생명의 해가 길리라 11 내가 지혜로운 길을 네게 가르쳤으며 정직한 길로 너를 인도하였은즉 12 다닐 때에 네 걸음이 곤고하지 아니하겠고 달려갈 때에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13 훈계를 굳게 잡아 놓치지 말고 지키라 이것이 네 생명이니라 14 사악한 자의 길에 들어가지 말며 악인의 길로 다니지 말지어다 15 그의 길을 피하고 지나가지 말며 돌이켜 떠나갈지어다 16 그들은 악을 행하지 못하면 자지 못하며 사람을 넘어뜨리지 못하면 잠이 오지 아니하며 17 불의의 떡을 먹으며 강포의 술을 마심이니라 18 의인의 길은 돋는 햇살 같아서 크게 빛나 한낮의 광명에 이르거니와 19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걸려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

 

201721일입니다. 새해라고 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새해에는 어떻게 살겠다는 결심을 하고 소원을 빕니다. 해맞이를 하면서 소원을 빌고 자신의 종교를 따라 이곳저곳에서 소원을 빕니다. 절에서는 등을 달거나 기와불사를 하면서 소원을 써둡니다. 소원을 비는 나무를 만들어 놓고 그곳에 종이에 소원을 써서 붙이게도 합니다. 교회에서는 송구영신예배 시간에 그렇게 합니다. 그런 소원들을 보면 거의 대부분 가족의 건강이나 당면한 입시나 취업이나 결혼을 해서 행복한 삶을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그렇게 행복하게 살 자격이 있는 것입니까? 죄의 삯이 사망인데 죄인이 그런 행복을 바란다는 것은 자신이 죄인 됨을 알지 못하기에 그런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아갑니다. 인간이 죄와 사망의 권세아래 태어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얼마나 될까요? 교회에서 죄를 말하니 그런가 보다 하고, 예수를 믿음으로 죄를 해결 받았다고 생각하고, 이제부터 신과 거래를 하면서 복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하고 가족과 이웃까지 원망하게 됩니다. 간혹 그렇지 않는 자들은 자신의 정성이 부족하다며 자신에게 채찍질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가는 이 길이 의인의 길인지 악인의 길인지 말씀으로 점검을 해 봐야 합니다.

 

본문 10절입니다. 내 아들아 내 말을 받으라고 합니다. 지혜 자는 자신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는 자입니다. 그 지혜의 말을 받으면 네 생명의 해가 길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장수로 여기는 자들이 많습니다. 장수(長壽)라는 말은 문자대로 오래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오래 사는 것이 복일까요? 이런 내용들이 나오면 성경 전체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화액(禍厄)전에 취하여 감을 당하면 오래 사는 것보다 오히려 복이 있습니다. 여로보암 집안이 화액을 당할 것이지만 여로보암의 아들이 어려서 병들어 죽게 됩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여호와께 선한 뜻을 품었기에 백성들이 슬퍼하며 묘지에 묻힐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어려서 일찍 죽어도 복된 죽음이 있는 것입니다(왕상14:13). 그러므로 세상의 가치기준으로 보면 안 됩니다.

 

잠언에서는 지혜를 따라 살면 장수한다는 표현들이 여러 곳에 나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면 장수하지만 악인의 수명은 짧아진다고 합니다(3:2,16. 10:27. 28:16). 그런데 잠언과 같이 지혜서인 전도서 7:15절에서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내 허무한 날을 사는 동안 내가 그 모든 일을 살펴보았더니 자기의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자기의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악인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해를 누린다는 것은 단지 이 땅에서 장수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성에서 봐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사야 57:1~2절입니다. “1 의인이 죽을찌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자비한 자들이 취하여 감을 입을찌라도 그 의인은 화액 전에 취하여 감을 입은 것인 줄로 깨닫는 자가 없도다 2 그는 평안에 들어갔나니 무릇 정로로 행하는 자는 자기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느니라의인이 일찍 죽었습니다. 그런데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의인은 화액 전에 취하여 감을 입었으며 바른 길로 행한 자는 죽은 것이 오히려 자기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는 것입니다. 안식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를 얻고 의인의 길을 걸은 자가 세상에서 볼 때에 장수와 부귀를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저주 받아 죽은 것 같지만 그 사람이 생명의 해가 길다는 것은 영원한 생명과의 관계로 봐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사람으로 불리는 첫째 둘째 셋째가 아벨과 에녹과 노아입니다. 이런 자들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습니까? 형에 의하여 돌에 맞아 죽고, 다른 사람들의 삼분의 일도 살지 못하고 지상에서 사라졌습니다. 노아는 방주를 예비하였습니다. 이런 모습이 믿음의 사람들이며 이런 자들의 생명의 해가 길다는 것은 영원한 생명의 관계로 봐야합니다.

 

베드로전서 1:23~25절입니다. “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모든 육체는 풀과 같습니다. 인생이 풀과 같다고 합니다. 풀과 같은 인생의 영광스럽다고 하는 것도 풀이 마르면 꽃이 떨어지듯이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져 갑니다. 이 말씀도 이사야 선자지가 전한 내용입니다. 베드로사도는 이사야서의 이 말씀으로 복음을 증거 합니다. 풀과 같은 인생이 거듭나서 영원한 생명이 담기지 않으면 그것은 육체로 끝나지만 복음을 듣고 믿으면 주의 말씀이 영원하기에 그 영원한 생명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이 곧 영원한 생명입니다(6:63). 그러므로 지혜의 말씀을 듣고 지혜를 얻는 것은 지상에서 장수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본문 11~13절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지혜로운 길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정직한 길로 인도하였다고 합니다. 오늘 설교제목이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를 전하고 가르치는 자는 의인이 가야할 길과 악인이 가는 길을 다 말하는 것입니다. 11~13절은 의인이 가야하는 길입니다. 지혜롭고 정직한 길로 가야 합니다. 그렇게 가는 길은 곤고하지 않고 달려갈 때에 실족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훈계를 굳게 잡아 놓치지 말고 지키라고 합니다. 이것이 너의 생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혜롭고, 정직한 길로 가는 자들이 곤란함과 괴로움이 없을까요? 달려갈 때에 실족하지 않을까요? 물론 실족함을 허락하지 않기에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째 일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만 과연 곤고함이 없는 길일까요? 이 질문을 남겨두고 악인의 길을 봅니다.

 

본문 14~17절입니다. 사악한 자의 길에 들어가지 말며 악인의 길로 다니지 말라고 합니다. 그의 길을 피하고 지나가지 말고 돌이켜 떠나가라고 합니다. 사악한 자의 길이 어떠하기에 그런 길로 가지 말라고 합니까? 악인들은 악을 행하지 못하면 자지 못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사람을 넘어뜨리지 못하면 잠이 오지 않는 자라고 합니다. 불의의 떡을 먹고 불의의 술을 마신다고 합니다. 악인의 특징은 악을 행하지 않으면 잠이 안 오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악을 행하여야 편히 잠을 자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맞은 자는 편히 자지만 때린 자는 편히 자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자랐습니다. 도둑질을 하거나 남을 해치면 잠을 잘 수가 없어서 괴로운 것입니다. 그런데 악인은 악을 행하여야 기분이 좋게 잠을 잔다고 합니다.

 

아모스 2:6~8절입니다. “6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팔며 7 힘없는 자의 머리를 티끌 먼지 속에 발로 밟고 연약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아버지와 아들이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8 모든 제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그들의 신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니라이런 모습이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그러면서 나실인에게 포도주를 마시게 하고 선지자들에게 예언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이러한 악을 행하면서도 그것이 악인 줄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이사야 5:18~24절입니다. “18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끌며 수레 줄로 함 같이 죄악을 끄는 자는 화 있을진저 19 그들이 이르기를 그는 자기의 일을 속속히 이루어 우리에게 보게 할 것이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는 자기의 계획을 속히 이루어 우리가 알게 할 것이라 하는도다 20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21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22 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며 독주를 잘 빚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23 그들은 뇌물로 말미암아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에게서 그 공의를 빼앗는도다 24 이로 말미암아 불꽃이 그루터기를 삼킴 같이, 마른 풀이 불 속에 떨어짐 같이 그들의 뿌리가 썩겠고 꽃이 티끌처럼 날리리니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멸시하였음이라

 

아모스와 이사야서 두 곳에서 악인들의 행태를 보았습니다만 이러한 악을 행하는 것은 그들이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멸시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구약 성경 전체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으로 선지자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잠언 서를 통하여서도 지혜 자가 말하였습니다. 악인의 길을 가지 말고 의인을 길을 가라고 하였습니다. 악인의 길로 가면 망하는 것이며 의인의 길로 가야 산다고 하였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스라엘이 멸망하였다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의 힘과 능력으로는 의인의 길로 갈 수가 없다는 것이 증명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만이 아니라 잠언에서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을 말하면서 의인의 길로 가라고 해도 갈 능력이 없습니다.

 

본문 18~19절입니다. 의인의 길은 돋는 햇살 같아서 크게 빛이 나서 한낮의 광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반면에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걸려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다고 합니다.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을 빛과 어둠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도 빛과 어두움을 대비합니다. 빛은 좋은 것으로 어두움을 나쁜 것으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는 표현은 어둡고 힘이 드는 인생이지만 어느 날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담고 있는 말입니다. 터널에도 끝이 있다는 말도 같은 의미로 사용합니다. 캄캄한 터널과 같은 현실이지만 결국 그 터널이 끝이 나면 밝은 세상이 보인다는 말입니다. 이런 의미들을 차용하면서 수많은 설교는 고진감래와 대기만성을 말하면서 성경의 인물들을 말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부자가 되었다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부자라는 것은 바로 왕의 부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자기 목숨 살리려고 아내를 동생이라고 말한 것만 봐도 약속의 자녀가 부자인지 세상의 왕이 부자인지 단번에 드러납니다. 그리고 야곱의 생애를 보아도 얼마나 죽을 정도로 고생을 하는지 자세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이들이 받은 복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 안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선택한 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과 언약을 맺으심으로 세상에서 고난을 받았지만 영원한 생명의 관계에 들어가게 된 것을 복이라고 합니다.

 

요셉과 다니엘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받고 노예로 팔려가고 다니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지만 믿음으로 살았기에 총리가 되었다는 말을 합니다. 성경이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요셉과 다니엘이 등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 그러므로 이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을 보여주면서 자기 백성들이 어떻게 약속 안에 들어오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시편 1051~10절입니다. “5-6 그의 종 아브라함의 후손 곧 택하신 야곱의 자손 너희는 그가 행하신 기적과 그의 이적과 그의 입의 판단을 기억할지어다 7 그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라 그의 판단이 온 땅에 있도다 8 그는 그의 언약 곧 천 대에 걸쳐 명령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셨으니 9 이것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고 이삭에게 하신 맹세이며 10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원한 언약이라여호와는 언약의 하나님입니다. 그 언약을 어떻게 이루어내시는지 이어지는 말씀을 봅니다.

 

11~19절입니다. “11 이르시기를 내가 가나안 땅을 네게 주어 너희에게 할당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도다 12 그 때에 그들의 사람 수가 적어 그 땅의 나그네가 되었고 13 이 족속에게서 저 족속에게로, 이 나라에서 다른 민족에게로 떠돌아다녔도다 14 그러나 그는 사람이 그들을 억압하는 것을 용납하지 아니하시고 그들로 말미암아 왕들을 꾸짖어 15 이르시기를 나의 기름 부은 자를 손대지 말며 나의 선지자들을 해하지 말라 하셨도다 16 그가 또 그 땅에 기근이 들게 하사 그들이 의지하고 있는 양식을 다 끊으셨도다 17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18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19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언약하시고 그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어내심을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언약을 받은 백성들이 어떻게 살았습니까? 언약을 받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숫자가 적었습니다. 그래서 그 땅의 나그네가 되었고 이 족속에서 저 족속에게로 떠돌아 다녔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세상의 왕의 손에서 보호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신다고 하신 약속의 땅에 기근이 들에 하시고 그들이 의지하는 양식을 끊으신 것입니다. 그 기근이 오기 전에 하나님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습니다. 요셉입니다. 요셉이 종으로 팔려가서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 까지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습니다. 이러한 자들이 세상에서 어둠으로 보이겠습니까? 광명으로 보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의인의 길이 돋는 햇살 같아서 크게 빛나서 한낮의 광명에 이른다는 말씀을 다시 봐야 합니다.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빛으로 산 사람들로 보이겠습니까? 세상을 소란스럽게 하는 염병으로 보이겠습니까? 세상을 소란하게 하는 염병과 같은 자들이라서 이들을 배척하고 죽여 버린 것입니다. 이들이 이렇게 된 것은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 그렇게 증언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그 영을 부어주신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으로 세상이 어둠에 속한 것이 다 드러난 것입니다.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어두움에 속한 사람들이 어두움을 사랑하여 빛을 배척합니다.

 

요한복음 1:1~5절입니다.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태초에 계신 말씀이 하나님이시며 창조주이십니다. 이 말씀이 없이 지어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말씀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이 생명의 사람들의 빛입니다. 그런데 이 빛이 어두움에 비추었지만 어두움이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빛이라는 것이 가짜임이 드러난 것입니다.

 

요한복음 1:9~14절입니다.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참 빛이 세상에 오셨지만 자기 백성들도 알지 못하였습니다. 이들은 이미 이 세상의 신에 의하여 세상의 영광을 바라보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사람의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으로는 될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고 죽으신 분이십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유대인들에게 저주 받아 죽은 죽음이며 이방인들에게는 로마를 반역하다가 처형당한 십자가입니다. 이런 예수님을 독생자의 영광과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분으로 믿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 곧 부활하신 그 영이 임하여야만 됩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자를 거듭난 자라고 하며 이런 자들은 세상을 다르게 보기 시작합니다.

 

고린도후서 4:1~6절입니다. “1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2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3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이 세상의 신이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는 그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저주스럽고 미련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것은 이 세상의 신이 그들의 눈과 마음을 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의 길이 광명하게 된다는 말씀의 결론을 신약까지 연결하여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이 아주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시편 1편에서도 의인이 받는 복과 악인이 받는 벌을 비교 하고 있습니다. 의인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고 합니다. 즉 생명에 접속이 되는 것이지만 악인은 생명에 접속이 되지 못하기에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의 길의 결론은 복음을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을 받은 자들이 세상에서 빛의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어떤 모습입니까?

 

이어지는 7~15절입니다.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13 기록된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14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영광의 복음의 광채를 아는 빛을 우리에게 비추어주심으로 그 영광의 복음을 알고 믿는 자들의 모습이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드러나고 있습니까? 사방으로 욱여쌈, 답답한 일, 박해, 거꾸러뜨림,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집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싸이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버린바 되지 않고 망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면 망하고 죽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지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죽음에 넘겨지는 자들 안에 예수의 생명이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러한 빛의 자녀들을 세상이 볼 때에는 어두움으로 보이겠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이런 자들이 광명한 길로 가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시고 그 앞에 서게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의 의의 길을 가는 자의 모습이며 소망입니다.

 

이어지는 15~18절입니다. “15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보이는 이 세상의 사람들이 평가하는 빛과 어두움이라는 개념들은 이 세상의 신에 의하여 속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의인이 가는 광명의 길과 악인이 가는 어두움의 길의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별이 되고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속사람이 창조된 사람입니다. 이런 자들은 잠시 받는 세상의 환난이라는 가벼운 것들이 오히려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이 이루어지는 과정임을 아는 자들입니다. 이런 내용을 겉 사람만 있는 세상의 사람들이 결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들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원한 생명의 나라를 사모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에게도 임하여지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