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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10:1~16 의인과 악인 2017. 4. 19

 

1 솔로몬의 잠언이라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 2 불의의 재물은 무익하여도 공의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 3 여호와께서 의인의 영혼은 주리지 않게 하시나 악인의 소욕은 물리치시느니라

 

전에 대비(對比)와 대조(對照)에 대하여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대비는 서로 다른 성질을 맞대어 그 차이를 분명히 하는 것이라면 대조는 원문과 사본을 대조하여 본다는 의미입니다. 잠언에는 수많은 대비를 통하여 지혜를 전하려고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지혜가 수많은 대비를 사용하여 지혜와 명철을 얻게 하는 것이 잠언입니다. 1~3절만 보아도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 불의와 공의, 의인과 악인을 대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비의 가장 많은 내용이 의인과 악인이기에 오늘 설교 제목이기도 합니다.

 

본문 1절을 봅니다. 솔로몬의 잠언이라고 합니다. 1장에서 9장까지는 스토리가 있는 잠언이라면 10장에서 22장까지는 아주 짧은 한 문장으로 된 잠언들이 375개가 나옵니다. 일주일에 하나씩 살펴보려면 7년이 걸리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375라는 숫자가 솔로몬의 히브리어 이름의 숫자(300+30+40+5)와 같습니다. 이런 방식을 게마트리아라고 하는데 사람의 이름이나 단어를 히브리어 알파벳의 고유한 수로 풀어내어서 그 뜻을 찾으려고 하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하면 신비한 풀이 같지만 모든 내용을 그런 식으로 풀이하면 안 됩니다. 잠언 자체의 내용도 서로 상반대고 충돌되어 보이는 부분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단편적인 잠언들도 다른 잠언들과 연결하여 봐야 합니다. 그리하여 결국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 전체 맥락에서 보아야 합니다.

 

다시 1절을 봅니다.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누구라도 이해 될 내용입니다. 지혜로운 아들과 미련한 아들을 대비하면서 지혜의 아들은 아비의 기쁨이고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미련한 아들이 되지 말고 지혜로운 아들이 되어 부모의 기쁨이 되라고 하면 됩니다. 그런데 이런 말은 동양의 유교사상에서도 아주 많이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공자의 가르침과 사상들을 경전이라고 하는데 그 경전 중에 효경(孝經)이 있습니다. 모든 도덕의 근본이 효라고 합니다. 그래서 머리카락 하나 자르지 않는 것이 효가 되며, 도덕적인 삶을 살아 첫째로 부모에게 효도하고 다음으로 임금에 충성하고 그 다음에 입신양명하는 것이 효도라고 가르칩니다.

 

잠언에서도 부모를 기쁘게 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라는 말씀을 문자대로 보면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도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행악 하는 자를 돌로 쳐 죽이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그러한 부모공경의 말씀도 영원한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주는 부모의 역할이 이스라엘의 부모역할입니다. 그러므로 잠언서도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 되어야 마땅합니다(5:39). 그러므로 잠언에서 가장 중요하게 대비하고 있는 의인과 악인의 대비처럼, 지혜로운 자는 의인으로 미련한 자는 악인으로 보아도 됩니다. 그러면 성경전체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아들이 누구인지 하나님 아버지를 근심하게 하는 아들이 누구인지 볼 수 있습니다.

 

신명기 7:7~10절입니다. “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8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9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10 그를 미워하는 자에게는 당장에 보응하여 멸하시나니 여호와는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당장에 그에게 보응하시느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기뻐한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기뻐하시고 택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아서 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다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이삭과 야곱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민족으로 만드신 이유는 하나님의 언약과 사랑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하신 일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자들이 아니라 늘 근심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러한 근심거리가 되는 이스라엘을 통하여 참으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아들을 이미 영원 전에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이 역사 속에서 이루어내시는 것입니다.

 

신명기 10:12~16절입니다. “12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13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14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15 여호와께서 오직 네 조상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들의 후손인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과 같으니라 16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신명기 7장에서 본 말씀을 더 자세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잠언의 목적이 여호와 경외입니다. 이것은 지혜의 말과 같습니다. 지혜가 내 아들이라고 부르면서 지혜의 말을 들려주는 것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인데 그 구체적인 내용은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고 합니다. 이것이 너의 행복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명령과 규례는 하나님의 긍휼을 담고 있습니다. 애굽에서 너희도 나그네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신명기는 이미 광야 40년의 기간을 마치는 때에 언약의 갱신이 일어나는 장면입니다. 이미 광야 40년 동안 이들이 하나님을 거역한 후에 주어진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런 말씀을 듣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도 이들은 하나님의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의 근심이 되었습니다.

 

창세기 6:5~8절입니다.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왜 갑자기 창세기로 이야기가 거슬러 올라간 것이냐고 하실 것입니다만 이미 타락한 인생들은 하나님의 근심거리였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근심거리가 된 줄을 알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타락한 인생들은 모두가 자신들이 신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지창조도 자신을 위하여 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 선거를 한다고 요란합니다만 대통령에 출마한 사람이 15명인가 된다고 하는데 모두가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도 형편이 되었다면 대통령에 출마하였을 사람들입니다. 모두가 왕입니다. 모두가 신입니다. 이런 세상을 하나님은 물로 심판을 하십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인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방주를 예비합니다. 노아도 타락 이후의 인생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은혜를 입었습니까? 은혜란 노아의 공로가 아닙니다. 당대의 의인이라고 하는 말씀도 은혜를 입은 후에 나온 말씀입니다. 타락 이후에 어떤 인간도 스스로의 행위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노아를 택하셨듯이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보내셔야 합니다.

 

이사야 42:1~9절입니다. “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2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4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5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내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6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7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8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9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알리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에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가 신약에서 누구로 드러나고 있습니까? 세례요한의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의 머리위에 성령이 임하시고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기를 이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변화산에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예수님의 영광스럽게 변모하셨습니다. 모세와 엘리야도 나타났습니다. 그럴 때에 하늘에서 또 음성이 들리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며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 아들이 방금 읽은 이사야 42장의 내용을 친히 이루어 내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이 되려면 누구의 말을 들으면 됩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 하나님의 기쁨이 됩니다.

 

본문 2~3절입니다. 불의의 재물은 무익합니다. 어디에서 무익한 것입니까? 죽음에서 무익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에 재물은 유익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마다 재물을 모으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재물이 죽음에서 생명을 속하는 일에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에서 건지는 것은 의로움입니다. 의로움은 인간에게서 나올 수가 없습니다. 성경은 이미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복이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죽음에서 건질 수 있는 유일한 의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뿌림으로 얻는 것입니다. 이렇게 의인이 된 그 영혼은 주리지 않게 하십니다. 영원한 생명의 양식에 주림이 없게 합니다.

 

그러나 악인들의 소욕은 물리치십니다. 악인은 불의한 재물을 의지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영원한 생명이 아니라 영원한 멸망에 들어갑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가 함께 죽어 눈을 떠 보니 부자는 불구덩이에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것입니다. 부자가 목이 말라서 아브라함에게 부탁하기를 나사로를 시켜서 자기의 혀에 물 한 방울이라도 떨어뜨려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이곳과 그곳은 건너갈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자 부자는 나사로를 땅에 보내서 자기 형제들에게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서 이곳에 오지 못하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땅에는 모세의 법을 전하는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자가 살아서 가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역사 속에서 지혜의 말씀, 그 지혜가 되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유일한 길입니다. 복음을 듣고 믿는 일보다 이 역사 속에서 더 시급하고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본문 4~6절입니다. “4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5 여름에 거두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나 추수 때에 자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이니라 6 의인의 머리에는 복이 임하나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앞에서 살펴본 내용입니다. 게으른 자가 가난하게 되고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된다는 이것도 이스라엘의 토지정책 하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이미 자본주의가 자리 잡아 빈익빈부익부가 심화되고 고착화 된 사회에서는 아무리 부지런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말씀도 육체를 따라 심는 일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심은 그 부지런함으로 봐야 합니다.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한 그 말씀처럼 주님을 아는 일에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내라는 말씀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조차 빼앗길 것이라는 말씀도 물질적인 해석이 아니라 영적인 해석입니다.

 

7~11절입니다. “7 의인을 기념할 때에는 칭찬하거니와 악인의 이름은 썩게 되느니라 8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계명을 받거니와 입이 미련한 자는 멸망하리라 9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 10 눈짓하는 자는 근심을 끼치고 입이 미련한 자는 멸망하느니라 11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도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의인과 악인,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 바른 길로 행하는 자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 의입의 입과 악인의 입을 대비합니다. 이러한 대비는 반어적인 단어로 대비를 심화시킵니다. 그런데 10절에서는 반어적인 평행구가 아니라 동의어의 병행이 나옵니다. 눈짓하는 자와 입이 미련한 자를 같은 평행선에 올려놓았습니다. 가끔 이런 내용들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기계적인 반어평행만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대비들을 통하여 결국은 의인은 기념이 되지만 악인의 이름은 썩는다고 합니다. 이것도 세상의 입신양명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11절에서 의인과 악인으로 대비 되듯이 생명과 독 곧 멸망으로 대비가 되는 것입니다.

 

12~16절입니다. “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13 명철한 자의 입술에는 지혜가 있어도 지혜 없는 자의 등을 위하여는 채찍이 있느니라 14 지혜로운 자는 지식을 간직하거니와 미련한 자의 입은 멸망에 가까우니라 15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요 가난한 자의 궁핍은 그의 멸망이니라 16 의인의 수고는 생명에 이르고 악인의 소득은 죄에 이르느니라

 

여기서는 미움과 사랑, 명철한 자의 입술과 지혜 없는 자의 등,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 부자와 가난한 자, 의인과 악인으로 대비합니다. 먼저 12절에서 미움은 다툼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미움이라는 것은 시기와 질투로 인하여 나옵니다. 그런 곳에서는 언제나 요란함과 다툼이 나옵니다. 그러나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려줍니다. 여기서 가려준다는 말은 덮어준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가려주고 덮어주는 것도 동일한 단어이지만 6절에는 악인의 입은 독이 가려져있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그러므로 같은 덮어줌의 단어이지만 음험하게 감추는 의미가 있는가 하면, 선의로 그의 허물을 가려주는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무조건 덮어주는 것이 아니라 죄가 드러나고 발각되었을 때에 그 죄를 고백하는 자들에게 덮어줌의 의미가 있습니다.

 

야고보서 5:19~20절입니다. “19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20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미혹을 받아 진리를 떠난 자를 돌아서게 하였다면 그렇게 돌이킨 자에 대하여 허다한 죄를 덮어주라는 것입니다. 죄에서 돌이키지 않고 서로 죄를 짓기 위하여 서로 묵인하고 덮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전서 4:7~8절입니다.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는 이 말씀도 그냥 덮어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앞의 말씀을 보면 육체의 정욕을 따라 극한 방탕으로 살던 자들이 육체의 고난을 받음으로 그 죄가 끊겨져서 주께로 돌아온 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의 과거가 어떠하였든지 간에 그가 주께로 돌아왔다면 사랑으로 덮어주라는 말씀입니다.

 

본문 13~14절입니다. 명철한 자의 입술에는 지혜가 있지만 지혜가 없는 자의 등을 위해서는 채찍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명철한 입술이 있습니까? 미련한 자의 등이 있습니까?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미련한 자의 등짝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미련한 자가 어떻게 지혜로운 자가 될 수 있습니까? 우리의 등짝에 채찍이 가해지면 됩니다. 다윗 언약에 보면 사람 막대기와 인생채찍이 있습니다. 이러한 책망이 히브리서 에서는 징계라고 하고 바로 앞에서 살펴본 베드로전서에서는 고난입니다. 이러한 채찍을 통하여 자기의 죄를 알고 예수님을 믿게 된다면 이런 사람이 지혜를 받은 사람이 됩니다. 이런 자들의 입에는 지혜의 말이 나올 것입니다. 내가 원래 가던 길이 멸망의 길이었는데 그 멸망의 길에서 돌이키시려고 주님께서 사랑의 매를 드셨다고 말입니다. 이러한 자는 지식을 간직하지만 이러한 채찍을 멀리하는 자가 미련한 자며 멸망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15절입니다.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며 가난한 자의 궁핍은 그의 멸망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문자대로 보면 우리는 부자입니까? 가난한 자입니까? 다들 가난하다고 합니다. 나에게 견고한 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궁핍하여 본 사람은 그 궁핍함이 멸망임을 알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부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나의 집이, 나의 직장이, 나의 교회가 든든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생각으로 이 말씀을 문자대로 보면 부자가 되어 재물이 많은 것이 복음이 됩니다. 가난한 것이 멸망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이런 잠언도 다른 구절과 비교하여 보아야 하고 성경전체에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잠언 11:4절입니다. 재물은 진노하시는 날에 무익하나 공의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오늘 본문 2절에서 본 것처럼 불의의 재물은 무익합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 무익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본문 15절에서 부자의 재물이 그의 견고한 성이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누구나 아는 이야기입니다. 부자의 재물은 이 세상에서 견고한 성이 됩니다. 가난한 자의 궁핍은 이 세상에서 멸망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굶주림과 질병과 열악한 환경들은 재물이 있다면 거의 해결이 될 문제들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를 가지고 영원히 견고한 성이 무엇인지를 봐야 합니다. 그러므로 잠언 10:2절에서 불의한 재물의 무익함을 말하는 것은 11:4절에서는 재물이 진노하시는 날에 무익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 재물은 아무른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잠언 11:28절입니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 무익할 뿐 아니라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의인이란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지 않고 주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가 의롭다 함을 얻습니다. 이러한 의인은 하나님의 그 진노의 날에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본문 16절입니다. 의인의 수고는 생명에 이르고 악인의 소득은 죄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러면 악인의 소득이라는 것은 결국 재물을 쌓아서 그것을 자기의 힘으로 삼고 그것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에서도 악하게 돈을 벌면 벌을 받습니다. 대통령도 재벌도 교도소에 갑니다. 그런데 대부분 다시 재물의 힘으로 해결을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악인의 소득이라는 것은 영원한 심판에서는 아무른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의인의 수고는 생명에 이릅니다. 의인의 수고가 무엇이겠습니까? 이 세상이 불에 타서 사라지더라도 없어지지 아니할 영원한 생명의 길로 가는 자들을 말합니다. 이러한 자들이 참으로 지혜자의 말을 듣고 가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세상에서 볼 때에 멸망한 모습으로 보이는 어리석고 미려한 십자가를 따라 가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시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