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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13:14 생명의 샘 2017. 6. 28

 

지혜 있는 자의 교훈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잠언서 앞부분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잠언서는 한절 한절이 한편의 설교입니다. 한편의 설교를 한 줄로 줄여놓은 것으로 봐도 됩니다. 그런데 한절씩 설교 하려고 하니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려서 많은 분량을 한 번에 봅니다만 오늘처럼 가끔 한 절로 말씀드릴 때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지혜 있는 자의 교훈은 생명의 샘이기에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이 말씀이 무엇인지 성경 전체를 통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선 생명이라는 단어부터 먼저 정리를 하고 들어가겠습니다. 성경을 모르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생명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숨 쉬고 밥 먹고 일하고 결혼하고 자녀 놓고 가정과 사회를 이루어가는 사람을 살아있다고 하지 죽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성경에 나오는 생명이라는 단어를 봅니다. 그러면 어떤 마음이 들까요?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명이라는 단어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샘이라고 하면 우리가 기존의 생명이라고 여기는 것을 풍성하게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을 이미 허물과 죽은 자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를 장사하고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하자 죽은 자는 죽은 자에게 맡겨두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착각합니다.

 

제가 읽었는지 들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기에 각색이 되겠습니다만 우리나라에 전해오는 이야기입니다. 산골에 나무꾼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늙은 나무꾼입니다. 어느 날 남편이 나무를 한 짐 지고 오는데 너무 젊은 모습으로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나무를 하다가 목이 말라서 어느 샘물을 마셨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날 다시 그곳에 가서 물을 마셨더니 더욱 젊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물을 자꾸만 마셨더니 갓난아기가 되어 오도 가도 못한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교훈을 주는 것이지만 저는 생명에 관한 갈증이 이런 이야기 속에도 담겨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인간이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것은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이런 인생을 보면서 영원히 젊게 살 수 있는 생명의 힘을 원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이러한 생명을 목숨이라고 해도 됩니다. 이런 목숨이니 생명이니 하는 것을 생물학자가 보는 시각이 있고 문학가가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생물학자들은 생명의 반응이 없는 것을 죽었다고 합니다. 문학가는 살아도 죽은 자가 있고 죽어도 산자가 있다는 표현을 합니다. 우리는 생물학적인 생명도 추구하고 문학적인 표현의 생명도 원하는 자들입니다. 이 뿐 아니라 종교적으로 영원한 생명도 탐하며 살아갑니다. 이러한 근원에는 참된 생명에 대한 갈증이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참된 생명을 가르쳐주지 않고 대체용품을 제공하여 늘 그것에 목마르게 만듦으로 참된 생명에 관심 없게 하는 것이 이 세상의 신이 하는 일입니다. 참된 생명을 찾지 못하도록 평생토록 헛된 꿈만 쫓아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잠언 13:25절을 봅니다. 의인은 포식하여도 악인의 배는 주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의롭게 사는 자보다 악하게 사는 자가 더 배부르게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의인은 무엇에 배가 부르는 것입니까? 의인은 참된 생명으로 포식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악인은 참된 생명이 없기에 아무리 먹어도 배가 고픈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언제부터 생명의 샘에서 멀어진 것입니까?

 

창세기 2:8~10절입니다.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2)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10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동방의 에덴, 에덴의 동쪽은 세상의 소설이나 영화에서도 은유적으로 많이 사용합니다. 인간의 근원적 갈등과 갈증의 원인을 에덴동산의 추방으로 보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강이 흘러나와 네 근원이 되었습니다. 이 강은 동산중앙의 생명나무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생명나무로 가는 길이 차단이 되었습니다. 천사들이 두루 도는 화염 겸으로 지키고 있어서 어느 누구도 인간 편에서 생명으로 나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타락이며 근원적인 죄라고 합니다. 이제 인간은 평생토록 고생하고 결국은 땅의 티끌로 돌아가야 합니다. 생명나무, 생명 샘, 참된 생명을 얻을 수 없기에 가짜 생명을 붙들고 살아갑니다. 이런 가짜들을 추구하는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은 추구하면 할수록 자족하지 못하고 더한 갈증만 나게 만듭니다. 이것이 이 세상의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런 현실을 충실하게 살아가다가 이런 현실이 가짜 현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것을 사건이라도 해도 되고 사태라고 해도 됩니다. 우리가 예기치 않았던 일이 일어납니다. 저에게 연락이 오는 여러 사람들이 어떻게 복음을 듣게 되었는지 구체적은 이야기는 다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대체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무신론자로서 세상은 자기 노력대로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하며 별다른 실패와 좌절감 없이 명문대를 나오고 그에 걸 맞는 남편을 만나서 세상에서 만족하며 살아갔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어려움이 있어서 교회를 다녔지만 복음을 들은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더 큰 어려움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면서 복음이 들리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인생의 고난이 비로소 해석이 된 것입니다. 참된 생수를 마신 것입니다.

 

신명기 8:1~3절입니다. “1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광야 40년을 지난 후에 말씀하셨습니다. 왜 양식이 없고 물이 없는 광야를 40년이나 지나가야 합니까? 출애굽 이후에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믿음이 없었기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40년을 지나게 하심으로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알게 하신 것이 주리게 하시고 낮추신 이유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이 땅의 양식으로만 살아갈 수 없는 자임을 알게 하시기 위하여 광야세월을 보내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말씀을 찾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11~16절을 보면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것임을 훈련 받았지만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먹고 배부르게 되면 그 마음이 교만하여져서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한다고 하십니다. 종 되었던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후에 위험한 광야로 물이 없고 양식이 없는 광야로 인도하신 것은 사람이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먹고 배부르게 되자 어김없이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광야에서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어주신 것을 잊어버리면 다시 고난을 통하여 낮추십니다. 이렇게 하심은 마시고 또 목마른 샘물이 아니라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생명수를 주시기 위하여 낮추시고 목마르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렇게 낮추심으로 생명수를 찾게 된다면 이것이 바로 복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에서 생명수를 버립니다.

 

예레미야 2:13절입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약속의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짓이 무엇입니까? 먹고 배부르게 되자 여호와를 배반합니다. 여호와의 왕 되심을 버리고 인간 왕을 달라고 합니다. 그렇게 이방 나라들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악을 저지른 것이 됩니까?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입니다. 그런데 이 웅덩이는 물을 저축하지 못할 터진 웅덩이를 판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만의 모습이 아니라 온 세상의 모습입니다. 이런 자들의 결국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생수의 근원을 버린 자는 결국 물이 없는 흙의 티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7:13절입니다.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주를 버리는 자는 수치를 등합니다. 여호와를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리는 것입니다. 반석에서 물을 주시던 그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웅덩이를 파면서 살아가는 인생은 흙에 기록이 될 것입니다. 흙에서 나온 인생들이 땅만 바라보고 사는 것입니다. 비를 주시는 여호와를 바라보지 않는 것입니다.

 

평소에 비가 잘 올 때는 감사치도 않다가 비가 안 오면 하늘을 원망하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도 봄을 지나 장마가 오기까지는 가뭄이 해마다 옵니다. 그런데 장마가 오면 홍수로 염려하면서 살아갑니다. 한국전쟁이 일어날 즈음에 가뭄과 홍수가 반복되어 참으로 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에 인사는 식사를 했느냐고 인사합니다. 남북이 분단이 되고 낮에는 경찰이 밤에는 빨치산이 내려오는 불안한 시절에는 밤새 안녕하신지를 묻는 것이 인사였습니다. 그럴 때에는 부지런히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배고픔을 면하고 안녕하기를 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먹고 배부른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자족하면서 살아가십니까?

 

그러나 다시 목마릅니다. 배고픔의 시대를 지나니 안목의 정욕에 목이 마른 것입니다. 그래서 온갖 성형열풍이 붑니다. 해외의 명품이라는 것이 한국에서 외국보다 훨씬 비싼 가격으로 잘 팔린다고 합니다. 해외여행으로 공항에 주차할 곳이 없다고 합니다. 이럴 때에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에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다시 주리고 낮추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시고 목마른 물이 아니라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생명수를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리고 낮추어진다고 모든 사람들이 사 생명수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악착같이 세상의 것으로 채우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리고 낮추어 짐으로 자신이 그동안 헛된 것에 마음이 빼앗긴 것을 알고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을 찾는 자가 택한 자입니다.

 

아모스 8:11~13절입니다. “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12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13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진짜 기근이 무엇입니까?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고 마실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입니다. 그런데 어디서도 생명수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이스라엘 나라가 망합니다.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로 망하고 남 유다는 바벨론에 망합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상태에서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습니다.

 

에스겔 47:1~12절입니다. “1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2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3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4 다시 천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 다시 천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6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 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7 내가 돌아가니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8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9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10 또 이 강 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11 그 진펄과 개펄은 되살아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12 강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바벨론 포로에 잡혀가 있는 현장에서 장차 생명수가 어떻게 나올지를 보았습니다. 성전의 동쪽에서 생명수가 나왔습니다. 에덴의 동쪽에서 생명나무가 있었고 그곳에서 강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에덴동산의 생명나무에서 강이 흘러나온 것이나 성전의 동쪽 문에서 생명수가 흘러나오는 것은 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생명수 샘물을 주시는 분으로 구약에서 예언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4:5~14절입니다. “5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7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8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9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1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유대인들을 사마리아 마을을 돌아서 예루살렘으로 가고 갈릴리로 갑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마리아 마을로 찾아가셨습니다. 물을 길러 온 여인은 참으로 목이 마른 여인입니다. 남편 다섯이나 있었지만 다 자기 남편이 아니었습니다. 현재 살고 있는 남편도 자기 남편이 아닙니다. 이것은 바람기 많은 여인으로 보기 보다는 고대에 여자 혼자 살기 힘들어 기둥서방을 두어서라도 살아가야 하는 기구한 여인으로 봐도 됩니다. 이런 여인이 부끄러워서인지 대낮에 물을 길러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미리 기다리고 계시면서 그 여인에게 참된 생명수를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이 팠다는 이 우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목이 마르겠지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동문서답을 합니다.

 

15~18절입니다. “15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16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17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우물물과 영원한 생명수에 대하여 동문서답을 하는 이 여인에게 예수님은 네 남편을 데리고 오라고 합니다. 여자는 남편이 없다는 말을 하자 예수님은 옳다고 하시면서 그 여인이 행한 일을 다 알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이 여인은 예수님을 선지자로 여기고 예배에 대하여 질문을 합니다.

 

19~26절입니다. “19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25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참된 예배가 무엇인지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장소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지금이라고 하셨습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때가 곧 이 때라고 하신 것은 영과 진리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여인에게 생명을 주고 계시는 이 현장이 바로 예배의 현장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란 우리가 정성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일방적인 은혜로 생명을 주시는 것이며 그 은혜를 받는 현장이 예배의 현장입니다. 이 본문에서 중요한 말씀이 26절입니다. 참된 예배와 생명에 관한 모든 것을 메시야 곧 그리스도가 오시면 알려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은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 다고 하셨습니다. 그 유명한 에고 에이미입니다. 모세에게 대답하셨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신 바로 그 대답니다. 나는 길이다. 나는 생명이다. 나는 진리이다. 나는 부활이며 생명이라고 하신 그 분을 만난 이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가서 자신이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합니다. 이 여인이 생명의 샘을 마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6:53~58절입니다. “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58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오병이어 기적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 왔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썩지 아니할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하셨습니다. 썩지 아니할 일이란 하나님의 일로 아는 유대인들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일을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썩지 아니할 영원한 생명의 양식과 생명수가 예수님 자신의 살과 피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살과 피 곧 그 생명을 우리에게 주심을 믿는 자들은 더 이상 세상에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맛본 자들은 그 생명의 풍성함만을 더 원하게 됩니다(10:10)

 

요한복음 7:37~39절입니다.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예수님을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기에 목마르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성령이 임합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기에 그리스도로 만족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은혜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으로 자족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눈물골짜기를 지나가게 됩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예수님으로 만족하고 살자고 하면 가족도 회사도 꿈을 향하여 달려가는 교회에서조차 미움과 핍박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생명의 샘을 맛 본 자들은 다른 것으로 채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 영원한 생명수 강가에서 살기를 소망하기에 더욱 그 생명의 원천(原泉)을 사모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21:1~4절입니다.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1)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지금 눈물골짜기를 지나가고 있습니까? 태산과 같은 문제를 허덕이면서 지나가고 있습니까? 그 모든 것들이 다 지나갑니다. 그런데 이미 성경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완성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눈물과 애통과 곡하는 것과 아픈 것이 다시는 있지 않습니다. 그 곳에는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습니다, 지금의 고난도 묵시의 완성세계에서 보면 이미 끝나고 지나간 것입니다. 이미 십자가로 다 이루신 것입니다. 이것을 바울도 보았습니다.

 

고린도전서 7:29~31절입니다. “29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0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1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이 세상의 형적은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이제는 더욱 때가 단축하여 졌습니다. 이 역사적 시간으로 바울이 이 복음을 전한지 약 2천년이 지났습니다. 더욱 단축하여 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5~7절입니다. “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알파와 오메가 되신 주님께서 다 이루었다고 하십니다. 어디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다 이루심으로 무엇을 주시고 계십니까?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시는 일을 다 이루신 것입니다.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 받습니다. 이기는 자가 무엇입니까? 믿는 자가 아니면 어떻게 세상을 이기겠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다 이루심을 믿는 자가 이긴 자이며 이런 자들은 생명수를 받아 마시는 자들이기에 세상에서 더 이루어야 할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이 이미 끝났다는 사실을 알고 믿기에 사람들에게 이 세상에서 떠날 준비를 하며 살라고 하는 자들이 생명을 마신 자입니다. 그런데 이 생명수를 여기서 마시지 못하면 이 세상에서도 세상의 것으로 목마르다가 둘 째 사망에 들어갑니다. 그곳에서는 생명수가 영원히 없는 곳이기에 영원히 목마른 곳이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서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어야합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가 우리의 영원한 생명의 양식입니다.

 

요한계시록 22:1~5,17절입니다. “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오늘 본문 14절을 다시 봅니다. 지혜 있는 자의 교훈은 생명의 샘입니다. 예수님이 지혜이십니다. 그래서 생명의 샘의 원천을 알려주시고 자신이 생명의 원천이 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이 생명의 샘을 증거 하는 증인입니다. 이런 증인이 지혜로운 증입니다. 이런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생명임을 전합니다. 이러한 증언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생명의 샘을 마시는 자들입니다. 둘째 사망에 들어가는 자는 생명의 샘을 영원히 마시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기서 우리의 영원한 생명의 샘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값없이 받아 마시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