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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1:20~33 지혜가 부른다! 2016. 12. 14

 

20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21 시끄러운 길목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이르되 22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23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24 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폈으나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25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26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27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 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28 그 때에 1)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하지 아니하겠고 2)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29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30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니라 31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32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33 오직 내 말을 듣는 자는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하리라

 

오늘 설교제목이 지혜가 부른다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사고구조는 내가 주체이고 내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느냐에 따라 지혜이든 지식이든 얻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어이고 지혜는 대상이 된다는 것이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사람들을 보고서 지혜롭게 살라고 합니다. 무식한 자들에게는 지식을 쌓으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지식과 지혜를 나누어 말하기도 합니다. 지식은 정보를 말하는 것이며 지혜는 정보를 운영하는 능력이라고도 합니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도 사람이 주체가 되어 많은 지식과 정보를 소유하는 것이 힘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런 모든 말들이 다 사람이 주체가 된 표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고 합니다. 그러함에도 우리의 사고방식은 어떻게 성경을 봅니까? 내가 주체가 되어 성경을 분석하고 이해하게 되면 성경은 나에 의하여 파악되고 장악되는 대상물이 되는 식으로 성경을 봅니다. 이렇게 되면 성경 말씀이 우위가 아니라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이 우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내가 성경을 읽으면 교만해 지지만 성경 말씀이 살아서 나를 읽어버리면 우리는 자신의 죄를 알고 회개하며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성경은 책입니다. 종이에 글자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성경의 말씀이 어떻게 살아서 역사를 하느냐고 말하는 사람과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먼저 말씀의 활동력을 보고 본문을 보겠습니다.

 

히브리서 4:12~13절입니다.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 우리가 성경책을 펼쳐들고 목사가 해석을 해 주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면 우리의 실상이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벌거벗은 듯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 최종 결산 전에 말씀에 비침을 받는 것이 얼마나 복이 있는지 이어지는 말씀을 보겠습니다.

 

14~16절입니다.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말씀이 살아서 활동한 결과가 이렇게 나옵니다. 말씀이 주체가 되어 우리를 비추어버리면 우리가 벌거벗겨 집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대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에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오늘 본문 20~21절을 봅니다.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릅니다. 광장에서 소리를 높입니다. 시끄러운 길목에서도 성문 어귀에서도 성중에서도 그 소리를 발합니다. 이러한 장소들은 모든 일상적인 삶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지혜가 비밀하고 신성해 보이는 특별한 장소에서 선포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살아가는 모든 현장에서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지혜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인간이 타락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아담 아래 있는 모든 인간은 죄와 사망이 왕 노릇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나오는 지혜나 지식이라는 것은 결코 여호와 경외가 되지 않습니다. 오직 자기 자신의 신 됨을 위하여 끊임없이 어두움과 악을 향하여 달려가는 것이 세상의 지혜와 지식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도 청문회가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알아준다는 병원의 병원장들이 증인으로 불려나왔습니다. 전 국방부 장관도 불려나왔습니다. 이들의 지식과 힘들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겠습니까? 그런데 국회의원들이 질문에 변명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자신과 자신의 조직에 피해가 올까봐서 전전긍긍하면서 애매모호한 답변을 하거나 거짓말로 넘어가고 기억에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에게 유리한 부분은 아주 정확하게 기억이 난다고 합니다. 이러한 모습들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도 그 자리에 있다면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지식과 힘이라는 것을 가질수록 우리는 참된 지혜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22절입니다. 어리석고 거만하고 미련한 자들의 특징은 지식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어리석고 거만하고 미련한 자는 세상의 바보 취급받는 자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가장 부러워할 만한 진선미를 가진 자라고 할지라도 성경이 말하는 참된 지혜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어리석고 거만하고 미련한 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는 이러한 세상을 향하여 오늘도 소리를 지르면서 참된 지식을 미워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고 합니다.

 

23절입니다. 지혜가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지혜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지혜가 그 영을 부어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겠다고 합니다. 이 말은 지혜의 영이 임하게 되면 지혜의 말을 보고 깨닫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지혜는 단지 인격이 아니라 그 영을 부어주시는 분이되십니다. 그러면 이 지혜는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란 단지 인류의 오래된 지식들의 축적들이 모아진 것이 결코 아닙니다. 잠언서와 성경에서 말씀하는 이 지혜는 천지를 창조한 그 말씀입니다.

 

잠언 8:22~30절입니다. “22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23 만세 전부터, 태초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나니 24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25 산이 세워지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 26 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라 27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을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28 그가 위로 구름 하늘을 견고하게 하시며 바다의 샘들을 힘 있게 하시며 29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이 명령을 거스르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30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31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느니라이 말씀은 본문을 볼 때에 더 자세히 보겠습니다만 이 구절만 보아도 지혜는 천지 창조 이전에 존재한 지혜입니다. 이 지혜가 창조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요한복음 1:1~5절입니다. “1 태초에 1)말씀이 계시니라 이 1)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2)깨닫지 못하더라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는 이 말씀이라는 단어에 잠언의 지혜를 넣어도 됩니다. 잠언서 8장과 요한복음 1장이 이렇게 연결이 됩니다. 그러면 태초의 말씀과 지혜로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 누구신지 성경의 계시를 통하여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천지를 창조하신 그 말씀과 그 지혜가 되시는 분이 타락한 이 세상을 향하여서 수수방관하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온 세상 어디에서나 고함을 지르고 계십니다. 멸망의 길로 가지 말고 지혜가 가르쳐 주는 생명의 길로 오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본문에서도 보겠습니다만 타락한 인간이 스스로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지혜의 말을 듣고 돌이킬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사람으로는 되지 않고 오직 주께서 부르시고 그 영을 부어주셔야 합니다. 여기서 지혜가 영을 부어준다는 영이 히브리말로 루아흐입니다. 바람, 생명, 호흡, 하나님의 영, 지혜와 모략의 영, 성령으로 번역되는 말입니다. 구약에도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자는 천지만물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알고 찬송을 하게 됩니다. 다윗이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 찬송한 내용을 봅니다.

 

시편 191~4절입니다. “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2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3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4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하늘과 땅에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여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른다고 노래한 다윗은 그리스도의 영이 부어짐으로 인하여 그 말씀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어지는 7~10절을 봅니다. “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10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 꿀보다 더 달도다여호와의 율법, 증거, 교훈, 계명, , 법으로 표현되는 여호와의 말씀이 영혼을 소성시킨다고 찬양합니다. 그러므로 금 보다 더 사모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하여 복음을 깨달았다면 그것이 정말 금보다 귀하고 꿀보다 달 것입니다.

 

본문 24~26절을 봅니다. “23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24 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폈으나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25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26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27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 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28 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하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29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30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니라 31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32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33 오직 내 말을 듣는 자는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하리라

 

지혜가 선지자처럼 책망하며 불렀지만 듣기 싫어하고 손을 폈지만 돌아보는 자가 없고 지혜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책망을 받지 않음으로 멸망을 받을 때에 지혜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이방 나라들은 앞에서 시편을 찾아본 대로 온 우주 만물을 통하여 하나님은 자신을 알리십니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지혜를 들어보지 못하였다고 핑계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지혜가 싫다고 물러간 것입니다. 그런 자들을 향하여 오늘도 지혜는 사람이 사는 어느 곳에서나 고함을 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듣지 않으면 결국 멸망인데 멸망할 때에 지혜가 비웃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지혜의 말을 듣지 않고 어리석고 미련하고 교만한 길로 가면 멸망이지만 오직 지혜의 말을 듣는 자는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렴이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말씀은 인과율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인과율에 관한 내용은 욥기를 통하여 잘 살펴보았습니다. 욥기 잠언 전도서가 다 지혜서이기도 합니다. 욥기에서 인과율로 공격하는 욥의 친구들이 욥에게 용서를 받아야 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잠언에는 인과율적인 표현들이 상당히 많이 나타납니다. 인과율적인 모습으로 설명되는 부분은 삶의 모든 영역이 타락함으로 인하여 지혜도 그 속에 들어와서 부르짖기 때문입니다. 지혜가 자신을 낮추어 말하기 때문입니다. 지혜가 부지런히 지혜의 사자들을 보냈지만 돌이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3:33~35절입니다.“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율법을 지키면서 자신들은 율법의 의로 의롭다 여기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뱀들이며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합니다. 지혜이시며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냈지만 그들을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고 회당에서 채찍질 하고 이 동네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사가랴의 피까지 땅위에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합니다. 주께로 돌아오라고 부르짖은 지혜의 소리를 배척한 모습입니다. 결국 예수님마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린 세상입니다. 참된 지혜이며 말씀이신 분을 배척한 땅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 멸망하는 이유는 환경의 문제나 자원의 문제가 아니라 의인의 피를 흘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 지혜는 이 세상 곳곳에서 소리치고 있습니다. 너희가 십자가 못 박은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시고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이 복음이 전해지는 것이 지혜가 부르짖고 있는 현장입니다. 이러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오늘 본문 23절의 지혜가 그 영을 부어주시면 지혜의 말을 보여주겠다고 한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성취되어 아직도 지혜가 소리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예수님은 십자가로 이루어내시고 그 영을 자기 백성들에게 부어주십니다. 그러자 자신들의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십자가에 하나님의 약속을 다 이루신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증거 하게 된 자들이 지혜의 영을 받은 자들입니다.

 

요한복음 6:60~63절입니다. “60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 대 61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이르시되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62 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예수님께서 오병이어 기적을 통하여 섞는 양식과 섞지 아니할 양식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자신의 살과 피만이 영원한 생명의 양식임을 말씀하실 때에 제자들이 어렵다고 합니다. 이 어려운 말씀을 누가 들을 수 있느냐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하신 말씀이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다고 합니다. 육이라는 것은 인간이 행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인간이 행할 수 있는 모든 진선미나 종교적인 행위나 율법의 의도 생명을 얻는 일에는 무익합니다. 타락한 인간이 스스로 돌이킬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지혜의 말씀 곧 생명의 복음을 듣고 돌이킬 수 있다면 이 사람은 그 영이 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살리는 것은 영이라고 하십니다. 이 영을 누가 언제 어떻게 부어주시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 23의 지혜가 책망하는 말을 듣고 돌이키면 지혜가 영을 부어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여준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처럼 복음을 듣고 믿게 되면 그 영을 부어주시고 그 말씀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으라는 복음의 내용이 오늘날도 여전히 배척받는 세상입니다.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다른 영은 환영을 하고 인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함께 죽어야 한다는 복음을 배척을 받습니다. 그러나 아직 세상의 종말이 오지 않은 것은 이 복음을 듣고 주께로 돌이킬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7:27~35절입니다. “27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준비하리라 한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라 2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하시니 29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은지라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 하되 30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들은 그의 세례를 받지 아니함으로 그들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 31 또 이르시되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까 무엇과 같은가 32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33 세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매 너희 말이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34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35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태초의 지혜이며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의 사자를 앞서 보낸 자가 세례요한입니다. 물론 모든 구약의 선지자들이 다 그리스도께서 보낸 사자들입니다. 그런데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인 세례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고 합니다. 그런데 믿는 자도 있고 믿지 않는 자도 있습니다. 세례요한의 세례를 받지 않는 자가 하나님의 뜻을 저 버리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나오는 것은 오직 주의 영을 부어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누구입니까?

 

35절입니다.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함을 얻는 것입니다. 지혜가 부르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가 자기 자녀를 생산해야 합니다. 지혜가 자기 자녀를 생산하고 그 자녀들에게 생명을 주는 자리가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하나님의 언약의 완성임을 믿는 자들은 지혜가 낳아주어야 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지혜를 옳다고 하는 자들입니다. 십자가의 그 미련하고 어리석은 모습이 자기 자녀들에게만 옳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그 지혜는 소리쳐 부르고 있습니다.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