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31:1~18 어느 나무 아래서? 2012. 8. 8

 

1 열한째 해 셋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너는 애굽의 바로 왕과 그 무리에게 이르기를 네 큰 위엄을 누구에게 비하랴 3 볼지어다 앗수르 사람은 가지가 아름답고 그늘은 숲의 그늘 같으며 키가 크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 레바논 백향목이었느니라 4 물들이 그것을 기르며 깊은 물이 그것을 자라게 하며 강들이 그 심어진 곳을 둘러 흐르며 둑의 물이 들의 모든 나무에까지 미치매 5 그 나무가 물이 많으므로 키가 들의 모든 나무보다 크며 굵은 가지가 번성하며 가는 가지가 길게 뻗어 나갔고 6 공중의 모든 새가 그 큰 가지에 깃들이며 들의 모든 짐승이 그 가는 가지 밑에 새끼를 낳으며 모든 큰 나라가 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였느니라 7 그 뿌리가 큰 물 가에 있으므로 그 나무가 크고 가지가 길어 모양이 아름다우매 8 하나님의 동산의 백향목이 능히 그를 가리지 못하며 잣나무가 그 굵은 가지만 못하며 단풍나무가 그 가는 가지만 못하며 하나님의 동산의 어떤 나무도 그 아름다운 모양과 같지 못하였도다 9 내가 그 가지를 많게 하여 모양이 아름답게 하였더니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는 모든 나무가 다 시기하였느니라 10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의 키가 크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아서 높이 솟아났으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은즉 11 내가 여러 나라의 능한 자의 손에 넘겨줄지라 그가 임의로 대우할 것은 내가 그의 악으로 말미암아 쫓아내었음이라 ,,,,,,,,,,,,,, 18 너의 영광과 위대함이 에덴의 나무들 중에서 어떤 것과 같은고 그러나 네가 에덴의 나무들과 함께 지하에 내려갈 것이요 거기에서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죽임을 당한 자 가운데에 누우리라 이들은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라

 

본문 1~2절을 봅니다. 29장에서부터 계속되는 애굽에 대한 심판의 말씀입니다. 열한째 해 셋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에스겔에게 임합니다. 그 임한 말씀은 애굽의 바로 왕과 그 무리에게 심판의 말씀을 전하십니다. 그런데 애굽의 그 큰 위엄을 누구에게 비교하겠느냐고 하시면서 앗수르와 비교합니다. 앗수르는 애굽보다 더 넓은 영토를 지배하였던 제국입니다. 그런 앗수르를 다시 거대한 나무에 비유합니다. 이런 나무에 대하여는 성경에서도 몇 번 나오지만 다른 나라들의 이야기에도 등장하는 거대한 나무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세계나무라고 합니다. 물론 이런 나무를 제국과 그 왕의 권세와 위엄을 나타내는 비유로 사용합니다.

 

우선 이런 나무의 비유에 대하여 다니엘서 4:10~16절을 봅니다. “봉독” 바벨론 제국의 왕인 느부갓네살이 두 번째 꿈을 꾼 것을 다니엘이 해석하였습니다. 그 꿈과 해석을 느부갓네살 왕의 말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이 꿈에 본 거대한 나무가 땅의 중앙에서 높이 섰는데 그 높이가 하늘에 닿았기에 땅 끝에서도 보이고 그 잎사귀는 아름답고 그 열매는 많아서 만민이 먹을 것이 될 만하고 들짐승이 그 그늘에 있고 새들이 그 가지들에 깃들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나무를 하늘의 거룩한 순찰자가 내려와 그 나무를 베고 그 가지를 자르고 그 열매들을 헤치니 짐승들과 새들이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완전히 멸망하지는 않고 뿌리가 남아있습니다. 이 나무 비유에서는 바벨론 왕의 교만을 책망하시고 그가 임금의 자리에서 쫓겨나서 짐승처럼 사는 일곱 때가 되어서 정신이 제대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러한 심판이 임한 것은 바벨론 왕의 교만이었습니다. 다니엘 4:28~33절입니다. “봉독” 거대한 나무로 비유된 바벨론 왕이 왕위에서 쫓겨나 짐승처럼 살게 된 것은 바로 교만입니다. 30절입니다. “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과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고 하였더니” 이 말을 하는 순간 다니엘의 해석대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결론은 34~37절입니다. “봉독” 이러한 바벨론 제국을 거대한 나무로 비유하며 그 교만과 악을 심판하시는 것처럼 바로 왕의 교만과 악을 앗수르에 비교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인 순서로는 앗수르가 먼저 멸망하기에 앗수르의 멸망처럼 애굽도 그 교만과 악으로 멸망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자들은 더 이상 세상의 힘인 애굽을 의지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에스겔 29장에서도 보았습니다만 애굽의 멸망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의 의지가 되지 못하게 하기위하여 심판을 하신 것입니다. 이제 앗수르의 강함을 크고 아름다운 나무로 비유하는데 이것이 앗수르만이 아니라 애굽도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유는 앗수르가 그렇게 크고 화려한 나라였지만 그 나라가 멸망한 것처럼 애굽도 멸망한다는 말씀입니다.

 

에스겔 31:3~9절입니다. 앗수르 사람은 이라고 하지만 이것을 애굽으로 보아야 합니다. 애굽이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 나무였는지 물들이 그것을 기르며 둑의 물이 들판의 모든 나무에까지 미치며 그 나무가 물이 많으므로 들의 모든 나무보다 크며 굵은 가지가 번성하며 가는 가지가 길게 뻗어나갔고 공중의 모든 새가 그 큰 가지에 깃들이며 들의 모든 짐승이 그 가는 가지 밑에 새끼를 낳으며 모든 큰 나라가 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였다고 합니다. 이 나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하나님의 동산의 나무들이 다 시기할 정도로 아름다운 나무였습니다. 이 나무는 나무가 아니라 애굽입니다. 그러므로 앗수르, 애굽, 바벨론이 다 이런 거대한 세계나무이기에 이런 나무의 그늘에 쉬는 짐승과 가지에 깃들이는 새들은 주변의 작은 나라들입니다.

 

에스겔 31:10~14절입니다. “봉독” 애굽의 멸망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9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그렇게 아름답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키가 크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아서 높이 솟아났으므로 마음이 교만하여 진 것입니다. 그 교만(10절)과 악(9절)으로 인하여 심판을 당합니다. 이미 앞에서 보았습니다만 두로 왕이 교만하여 자신이 신이라고 하다가 망하였습니다. 애굽은 나일 강을 자기가 만들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망합니다. 바벨론 왕은 그 성읍을 자기의 능력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러한 교만들이 멸망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을 여러 나라의 능한 자의 손에 넘겨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 나라가 애굽의 거대하고 아름다운 나무를 찍어버립니다. 그러자 그 나무 아래 피하여 있던 세상 모든 백성들이 그를 버리고 그 그늘 아래에서 떠납니다. 애굽의 그늘 아래 피하고자 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주된 목표입니다. 이스라엘이 의지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애굽이라는 나무를 찍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종의 새가 그 넘어진 나무에 거주하며 들의 모든 짐승이 그 가지에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제국이 흥할 때에는 다른 주변의 작은 나라들이 그 나무 그늘 아래 피하려고 하지만 그 나라가 망해버리면 그 작은 나라들이 오히려 그 무너진 제국을 밟고 나섭니다.

 

이런 모습이 인류의 보편적인 역사들입니다. 우리나라의 예로 들면 명나라가 흥할 때에 명나라에 신하의 예를 갖추었습니다.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흥하면 청나라를 한때는 오랑캐라고 하였지만 청나라에 신하의 예를 갖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나라가 근대 열강의 각축장이 되었을 때에 어느 큰 나무아래 깃들여야 하는지 갈팡질팡하였습니다. 그러한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겨우 살아남았지만 세계의 유일한 분단국가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남한과 북한은 큰 나무를 의지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나무는 중국과 러시아라면 한국은 미국과 일본입니다. 얼마 전 일본과 군사정보 교류를 정부에서 추진하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서 멈춘 적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시 주변의 강대국들을 수시로 의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의지하려고 피하여 들어가는 그런 큰 나무들을 찍어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런 나라가 앗수르며 애굽이며 바벨론입니다. 그 심판을 14절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는 물가에 있는 모든 나무는 키가 크다고 교만하지 못하게 하며 그 꼭대기가 구름에 닿지 못하게 하며 또 물을 마시는 모든 나무가 스스로 높아 서지 못하게 함이니 그들을 다 죽음에 넘겨주어 사람들 가운데에서 구덩이로 내려가는 자와 함께 지하로 내려가게 하였음이라” 이스라엘의 멸망은 여호와의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의 제국들을 의지하면 그들과 함께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에스겔 31:15~17절입니다. “봉독” 거대한 나무로 비유된 애굽의 왕과 그 무리들이 스올에 들어가게 됩니다. 죽어서 무덤에 들어간 것입니다. 아무리 강력한 나라라도 영원하지가 않습니다. 아무리 강력한 왕이라도 죽음을 이기지 못하고 스올에 들어가게 됩니다. 애굽이라는 거대한 나무가 찍혀서 무덤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와 함께 무덤에 들어가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17절에서 옛적에 그의 팔이 된 자요 나라들 가운데에서 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던 자들이라고 합니다. 애굽을 의지하던 자들이 애굽의 멸망과 함께 멸망할 것입니다. 애굽은 세상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을 의지하고 살면 이 세상이 멸망할 때에 함께 멸망할 것입니다.

 

에스겔 31:18절입니다. “봉독” 에덴의 나무들과 함께 지하에 내려갈 것이라고 합니다. 에덴의 나무들이란 이스라엘 백성들로 보아야 합니다. 이들이 타락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의지하여 애굽의 그늘 아래 피하여 간다면 애굽과 함께 망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만이 아니라 에덴의 나무들조차 그 죽음에 함께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심판 가운데서도 자기 백성을 구속하여 내십니다. 그런데 어떤 방식으로 구원하여 내시는 것입니까? 세상에 믿던 모든 것들을 끊어내시는 방식으로 구원하여 내십니다. 애굽을 의지하면 애굽이 갈대지팡이라서 의지하는 자의 어깨를 찢고 허리를 상하게 하시는 방식입니다. 바벨론을 의지하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하시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심판의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구원하여 내십니다.

 

이사야 14:1~11절입니다. “봉독” 바벨론의 멸망과 함께 야곱을 긍휼히 여기시는 일이 일어납니다. 바벨론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몽둥이로 사용하셨으나 그들의 교만과 그들의 악행으로 인하여 심판을 당하여 스올에 내려갑니다. 아래의 스올에서 소동이 일어납니다. 세상의 모든 영웅들을 움직이며 세상의 모든 왕들을 왕좌에서 일어서게 한 그 바벨론 왕이 무덤에 들어온 곳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다 바벨론 왕에게 말하기를 너도 우리 같이 연약하게 되었고 너도 우리 같이 되었느냐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무덤에는 세상의 그 화려하고 위엄 있었던 제국의 왕들이 줄줄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 안에서 너도 별수 없이 이곳으로 왔구나 하는 영접을 받는 것입니다. 그 영화가 스올에 떨어졌습니다. 자기를 영화롭게 한 비파 소리도 음부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구더기가 그 영화롭던 왕 아래에 깔리고 지렁이가 덮었습니다. 이것이 세상 영광의 결론입니다 .

 

이사야 30:1~26절을 봅니다. “봉독” 하나님의 약속을 잠잠히 기다리지 못하고 애굽의 그늘 아래 피하러 가려는 자들에 대한 심판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고 가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바로의 세력이 너희의 수치가 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함이 너희의 수욕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선지자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합니다.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부드러운 말을 하라고 합니다. 그런 세상의 심판의 이야기는 그만 하라고 합니다. 그 당시나 오늘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애굽의 그늘, 세상의 그늘에 피하려고 하는 자는 그 세상과 함께 멸망할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나무 아래 들어가야 합니까? 이사야 53:1~3절입니다. “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2)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2)줄기}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이 땅에 오신 메시아는 아름다운 나무가 아니었습니다.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누가 미련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십자가 아래 피하여 들어가겠습니까? 모두가 침 뱉고 고개를 도리질 하면서 돌아서버리는 나무가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일이 그 아들을 보고 믿게 하시는 일입니다.

 

이사야 53:4~6절입니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 일이 예수님의 십자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그늘에 들어가지 아니하면 세상의 보임직하고 먹음직하고 세상의 영광이라는 그늘에 들어가 세상과 함께 영원한 음부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부디 우리의 눈을 열어 십자가의 그늘을 보게 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