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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 설교][동영상 설교]

에스겔 35:1~15 에돔에 대한 심판 2012. 9. 12

 

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네 얼굴을 세일 산으로 향하고 그에게 예언하여 3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세일 산아 내가 너를 대적하여 내 손을 네 위에 펴서 네가 황무지와 공포의 대상이 되게 할지라 4 내가 네 성읍들을 무너뜨리며 네가 황폐하게 되리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5 네가 옛날부터 한을 품고 이스라엘 족속의 환난 때 곧 죄악의 마지막 때에 칼의 위력에 그들을 넘겼도다 6 그러므로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너에게 피를 만나게 한즉 피가 너를 따르리라 네가 피를 미워하지 아니하였은즉 피가 너를 따르리라 7 내가 세일 산이 황무지와 폐허가 되게 하여 그 위에 왕래하는 자를 다 끊을지라.......... 내가 여호와인 줄을 무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에돔에 대한 심판의 말씀은 이스라엘 주변의 나라들에 대한 심판의 말씀에서 나왔습니다. 에스겔 25:12~14절에서 에돔이 유다 족속을 쳐서 원수를 갚음으로 심히 범죄 하였다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왜 다시 에돔에 대한 심판의 말씀이 나오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36장에서 나오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대비하기 위하여 다시 에돔에 대한 심판의 말씀이 나오는 것으로 봅니다. 이런 대비를 통하여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거역하여 심판을 받지만 심판을 통과한 후에 돌이켜 주십니다. 그러나 에돔은 영원히 황폐하게 하심으로 이렇게 하신 분이 여호와임을 알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이 어떤 것인지를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에돔이 왜 심판을 받는지 본문의 내용을 다시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25장에서 보았습니다만 본문을 중심으로 봅니다. 1~4절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세일 산을 향하여 예언하라고 합니다. 세일 산은 에돔 족속이 사는 곳이기에 세일 산이라고도 하고 에돔이라고도 합니다. 이러한 세일 산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대적하신다고 합니다. 여호와가 에돔의 대적이 됨으로 그곳은 황무지와 공포의 대상이 되게 하십니다. 그 성읍들을 무너뜨리며 황폐하게 됨으로 에돔 사람들이 이렇게 한 분이 여호와임을 알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에돔이 이런 심판을 받는 첫 번째 이유가 5절입니다. 에돔이 옛날부터 한을 품고 이스라엘 족속의 환난의 때 곧 죄악의 마지막 때에 칼의 위력에 그를 넘겼다고 합니다. 이 내용은 에스겔 25장에서 보았습니다만 다시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뱌다 1:10~14절입니다. “봉독” 에돔이 영원히 멸절되는 이유는 에돔의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학으로 인한 것입니다. 바벨론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에 에돔이 기뻐하였고 그 도망가는 자들을 막아 원수들에게 넘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그 심판의 결과는 에스겔 35:6~9절입니다. “봉독” 여호와의 삶을 두고 맹세합니다. 여호와께서 에돔에게 피를 만나게 하신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에돔이 피를 미워하지 아니하였기에 피가 너를 따르리라고 합니다. 세일 산을 황무하게 하여 그 위에 왕래하는 자를 다 끊으시며 그 죽임 당한 자들을 여러 산과 멧부리와 골짜기와 시내에 엎드리게 하신다고 합니다. 엄청난 심판으로 영원히 황폐하게 하여 다시는 그 성읍들에 사람이 거주하지 않게 하심으로 이렇게 하신 분이 여호와임을 알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에돔이 심판을 받는 두 번째 이유는 10절입니다. 에돔이 두 민족과 두 땅을 자기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두 민족이란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를 말합니다. 이 땅은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에돔이 그 땅을 자기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정면으로 대적하는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갔다고 그 빈 땅을 자기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호와께서 거기 계셨다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계시는 땅을 자기의 것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12절에서도 이스라엘의 산들이 황폐하여 졌으니 그 산들이 자기들에게 넘겨졌다고 하면서 이스라엘을 욕하는 모든 말을 여호와께서 들으셨다고 합니다. 이들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대적하며 입으로 자랑한 것들을 여호와께서 다 들으셨기에 에돔을 심판하십니다. 어떤 심판을 당하는가 하면 온 땅이 즐거워할 때에 에돔을 황폐하게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이렇게 하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인줄 알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좀더 자세히 살펴볼 내용은 5절에서 ‘네가 옛날부터 한을 품고’ 이스라엘을 대적한 내용입니다. 에돔의 조상이 에서입니다. 에서와 야곱이 쌍둥입니다. 창세기 25:22~23절입니다. “22 그 아들들이 그의 태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리브가의 배가 요동을 하고 아파서 여호와께 어찌할지를 물었습니다. 그때 대답이두 민족이 복중에서 나누어지며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쌍둥이가 태어났을 때에 먼저 나온 아이가 전신이 붉다고 하여 에서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뒤에 나온 아이는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나와서 야곱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 이름은 사기꾼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발꿈치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이미 모태에서 싸웠고 두 민족으로 나누어졌습니다. 태어나기도 전에 어떤 행위도 있기 전에 서로 싸우는 민족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이미 그들의 운명은 결정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삶의 과정을 보면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압니다.

 

어느 날 에서가 사냥하러 나갔다가 허기가 져서 돌아옵니다. 야곱이 붉은 죽을 쑤고 있는데 그것을 달라고 합니다. 이때 에서가 죽 한 그릇에 장자의 권리를 팔아넘겼습니다. 야곱은 교활하였고 에서는 경솔하였습니다. 장자의 권리를 판다고 해서 자신이 장자임이 어디 가겠느냐는 생각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이삭의 축복을 어머니와 공모하여 가로챕니다. 이것을 안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자를 택함을 받지 못한 에서가 죽이려고 합니다. 이를 눈치 챈 리브가는 야곱을 외삼촌 집에 피난을 보냅니다. 나중에 둘 다 자기 기업을 이루지만 에서가 훨씬 더 강한자로 성장합니다. 에서는 고생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야곱은 죽도록 고생하였습니다. 노년에 바로 왕 앞에 선 야곱은 자신의 나그네 세월이 험악하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눈으로 볼 때 누가 더 복 받은 삶으로 보입니까? 에서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들의 삶을 어떻게 해석합니까?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지 못한 자는 세상에서 강하고 힘 있게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인도가 없이 자신이 자신을 지켜야 하기에 자기 힘을 키울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야곱도 역시 자신이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불철주야 애를 쓰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은 자기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환난을 주십니다. 그래서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는 곳에서 그의 환도 뼈가 위골이 됩니다. 더 이상 자기 힘을 의지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의 약속만 의지하여야 되는 고달픈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영원한 언약에 참여하는 복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지 못한 자가 세상에서 강한 자가되어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를 공격하게 됩니다. 가인과 아벨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아벨을 택함을 입지 못한 가인이 죽입니다. 이스마엘과 이삭을 보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의 육체의 실력으로 낳은 이스마엘이 하나님의 약속으로 태어난 이삭을 괴롭힙니다.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형 에서가 택함을 입은 동생을 미워하고 대적합니다. 이 모든 사건들을 통하여 일방적인 하나님의 택하심을 세상이 얼마나 미워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5:18~19절입니다.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세상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택하심의 은혜를 미워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속하였다면 세상은 우리를 미워하지 않고 사랑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속하지 않고 예수님이 우리를 세상에서 택하셨기 때문에 세상이 우리를 미워한다고 합니다. 이 현상이 가인과 아벨, 이스마엘과 이삭, 에서와 야곱을 통하여 미리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들로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1~3절입니다. “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구약의 선택사상이 바로 아들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들은 그 아들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로마서 9:7~18절을 봅니다. “봉독” 지난 주일에 구원파에 빠진 사람을 만났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제가 그 사람들에게 구원의 확신이 있느냐고 물으니 구원의 확신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 구원의 확신이 어떻게 생기느냐고 하니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되었다고 합니다. 무슨 말씀을 믿었느냐고 하니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믿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은혜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가 자신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하셨다는 것을 믿는다고 합니다.

 

여기에 제가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내가 믿어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 천지가 창조되기도 전에 구원 얻을 자와 구원 얻지 못할 자가 선택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것은 모순이라고 합니다. 그런 말씀이 어디에 있느냐고 하였습니다. 제가 에베소서 1:3절을 찾아 주었습니다.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자들만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믿어주는 그 행위로 구원받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창세전에 택하심을 입었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가 있습니까? 가인과 이스마엘과 에서의 행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에 대하여 대적하는 자들입니다. 어떤 일을 행하기도 전에 미리 하나님께서 사랑할 자와 미워할 자를 정하여 두셨다는 것에 대하여 분노하는 자들이 바로 택하심을 입지 못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서도 창세전에 택하심을 입은 자라면 나중이라도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믿지 않는 자들을 함부로 정죄하지 않습니다만 우리도 다 그 가운데 있었고 로마서를 기록한 바울도 그 가운데 있던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바로 로마서의 이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의 씨가 다 아브라함의 씨가 아니라고 합니다. 하나는 육신의 자녀요 하나는 약속의 자녀라고 합니다. 육신의 자녀는 인간의 가능성이 들어간 자녀입니다. 약속의 자녀는 인간의 가능성을 단절시키면서 나오는 자녀입니다. 그것이 에서와 야곱을 통하여 더욱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11절입니다.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시기 위하여 태중에 있을 때에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하였다고 하십니다.

 

여기에 항의가 일어납니까? 14절부터 봅니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요 달음박질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이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이를 완악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은 오직 일방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을 따른 긍휼입니다. 이것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새 언약의 시대입니다.

 

이 복음에 대하여 대적하는 자들이 바로 에돔의 모습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에돔 족속과 같이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에 항의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심을 입었기에 일한 것도 없이 값없이 거저 주시는 은혜를 믿게 되었습니다. 이런 자들은 어떻게 하면 휴거를 받아서 대 환난에서 고난을 당하지 않을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생각들은 예수님께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구원과 나의 환난 당하지 않음을 신경 쓰는 사적인 구원욕구입니다. 구원은 나를 위한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 이름을 위한 구원입니다. 그런 구원을 받은 자는 거저 주시는 은혜의 영광을 드러낼 뿐입니다. 마라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