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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 설교][동영상 설교]

에스겔 36:16~23 자기 이름을 위하여 2012. 10. 10

 

16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7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그들의 고국 땅에 거주할 때에 그들의 행위로 그 땅을 더럽혔나니 나 보기에 그 행위가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의 부정함과 같았느니라 18 그들이 땅 위에 피를 쏟았으며 그 우상들로 말미암아 자신들을 더럽혔으므로 내가 분노를 그들 위에 쏟아 19 그들을 그 행위대로 심판하여 각국에 흩으며 여러 나라에 헤쳤더니 20 그들이 이른바 그 여러 나라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말미암아 더러워졌나니 곧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라 21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22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23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지난주에 여호와의 맹렬한 질투로 인하여 심판과 회복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맹렬한 질투로 일한 것이 오늘 본문에서는 여호와의 자기 이름을 위한 일이 됩니다. 여호와의 자기 이름을 아끼시고, 자기 이름을 거룩하게 하십니다. 에스겔서를 보기 전에 수요일 저녁에 기도를 주제로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의 내용을 보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 이 말씀을 전하면서 에스겔 36장의 오늘 본문을 보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아끼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것이 이스라엘 가운데 어떻게 일어나는지 오늘 우리에게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보려고 합니다.

 

16~18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국 땅에 있을 때에 그들의 행위로 그 땅을 더럽혔다고 합니다. 마치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의 부정과 같이 부정하였다고 합니다. 에스겔은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의 역할이 정함과 부정함을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왜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을 부정하다고 하는 것입니까? 월경만이 아니라 모든 몸의 유출을 부정한 것으로 봅니다. 더구나 월경 중에 있는 여인과 성관계를 하면 여인도 남자도 이스라엘 중에 끊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피 근원을 드러내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레20:18). 다른 번역에서 여인의 근원, 피의 근원, 피나는 샘으로 번역을 합니다. 레위기 17장에서는 피는 생명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생명의 근원을 함부로 할 수 없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가나안에는 성적인 것을 우상숭배의 제의(祭儀)로 삼았습니다.

 

이렇게 부정하게 된 것을 본문 18절에서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그 땅에 피를 쏟은 것과 우상을 숭배한 것입니다. 피를 쏟았다는 것은 레위기의 정결규례에 의하면 월경 중의 여인도 부정하게 되는데 하물며 우상숭배로 인하여 인신제사를 드리며 피를 흘린 것이 얼마나 더 부정하게 되었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약속의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럽힌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우상숭배로 인하여 피를 흘리게 하였으니 그 땅을 부정하게 만들었습니다. 가나안 원주민들이 그 땅에서 진멸을 당하고 쫓겨난 이유도 그 땅을 더럽혔기 때문인데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을 더럽혔기에 그 땅에서 백성들을 토하여 내어버린 것입니다.

 

레위기 18:19~30절입니다. “봉독” 레위기 18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그들의 풍속을 따르지 말 것을 말씀합니다. 가나안 원주민들이 우상숭배를 하는 것은 성적인 것을 종교적인 제의로 사용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자녀를 몰렉에게 주어 불로 통과하게 하는 것은 인신제사를 말합니다. 이러한 행위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원주민들이 이런 짓을 하다가 그 땅에서 토하여 냄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땅을 더럽히고 피를 흘리고 우상숭배를 한다면 원주민들처럼 이 땅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토하여 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서 어떻게 하였습니까? 시편 106편은 간단하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부터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에 들어오기 까지 여호와를 거역한 내용을 말하고 나서 34절부터는 약속의 땅에 들어온 후의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34 그들은 여호와께서 멸하라고 말씀하신 그 이방 민족들을 멸하지 아니하고 35 그 이방 나라들과 섞여서 그들의 행위를 배우며 36 그들의 우상들을 섬기므로 그것들이 그들에게 올무가 되었도다 37 그들이 그들의 자녀를 악귀들에게 희생제물로 바쳤도다 38 무죄한 피 곧 그들의 자녀의 피를 흘려 가나안의 우상들에게 제사하므로 그 땅이 피로 더러워졌도다 39 그들은 그들의 행위로 더러워지니 그들의 행동이 음탕하도다” 이러한 자들을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40~43절입니다. “40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맹렬히 노하시며 자기의 유업을 미워하사 41 그들을 이방 나라의 손에 넘기시매 그들을 미워하는 자들이 그들을 다스렸도다 42 그들이 원수들의 압박을 받고 그들의 수하에 복종하게 되었도다 43 여호와께서 여러 번 그들을 건지시나 그들은 교묘하게 거역하며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낮아짐을 당하였도다” 여호와께서 맹렬히 노하심으로 자기의 유업을 미워하셔서 이방 나라의 손에 넘기십니다. 그곳에서 원수들이 압박을 받고 복종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여러 번 건지셨지만 교묘하게 거역하고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낮아졌다고 합니다.

 

44~48절입니다. “44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실 때에 그들의 고통을 돌보시며 45 그들을 위하여 그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 크신 인자하심을 따라 뜻을 돌이키사 46 그들을 사로잡은 모든 자에게서 긍휼히 여김을 받게 하셨도다 47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사 여러 나라로부터 모으시고 우리가 주의 거룩하신 이름을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찬양하게 하소서 48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양할지어다 모든 백성들아 아멘 할지어다” 시편의 이 내용이 에스겔 36장의 요약이기도 합니다. 여호와의 자기 언약과 그 크신 인자하심과 주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양하는 것이 결론입니다.

 

오늘 본문 16~19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 시편 106편의 내용과 같은 순서입니다. 이것은 이미 레위기에서 예언된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서 그 땅을 더럽히면 그 땅이 백성들을 토하여 낸다고 말씀하신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서 땅을 더럽혔기에 그 땅에서 토하여 냄을 당합니다. 이것이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멸망하고 남 유다는 바벨론에 멸망한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분노로 일어난 일입니다. 이러한 여호와의 분노로 자기 백성을 심판함으로 여호와가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내십니다.

 

여호와의 분노는 마땅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판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러면 여호와의 이름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여호와라는 이스라엘의 신의 능력이 부족하여 나라가 망하였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여호와의 이름에 욕이 돌아갑니다. 이런 문제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또 어떻게 여호와의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일하셨는지 먼저 남 유다의 히스기야 왕 때에 앗수르 왕이 유다를 공격한 사건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열왕기 하 18:33~35절입니다. “33 민족의 신들 중에 어느 한 신이 그의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자가 있느냐 34 하맛과 아르밧의 신들이 어디 있으며 스발와임과 헤나와 아와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이 사마리아를 내 손에서 건졌느냐 35 민족의 모든 신들 중에 누가 그의 땅을 내 손에서 건졌기에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 하셨느니라” 고대 전쟁은 자기나라의 신들의 전쟁으로 봅니다. 그래서 전쟁에서 승리하는 나라의 신이 더 강한 신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이런 조롱에 대하여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이때 하나님의 심판 임하는데 앗수르 군대 18만 5천 명이 하루 밤 사이에 시체가 되었습니다. 산헤립 왕은 혼자 도망가서 그들의 신에게 경배하다가 자기 아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서 신명기 9:24~29절입니다. “24 내가 너희를 알던 날부터 너희가 항상 여호와를 거역하여 왔느니라 25 그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를 멸하겠다 하셨으므로 내가 여전히 사십 주 사십 야를 여호와 앞에 엎드리고 26 여호와께 간구하여 이르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위엄으로 속량하시고 강한 손으로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곧 주의 기업을 멸하지 마옵소서 27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생각하사 이 백성의 완악함과 악과 죄를 보지 마옵소서 28 주께서 우리를 인도하여 내신 그 땅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허락하신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일만한 능력도 없고 그들을 미워하기도 하사 광야에서 죽이려고 인도하여 내셨다 할까 두려워하나이다 29 그들은 주의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곧 주의 기업이로소이다 하였노라”

 

여호와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피로 언약을 맺고서(출24장) 그 언약의 증서를 받아오는 40일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피로 맺은 언약을 배반하고 금송아지를 섬겼습니다. 이때 여호와께서 분노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알아오던 날부터 항상 여호와를 거역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출애굽을 시작할 때부터 항상 거역한 것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이들을 진멸하고 새로운 민족을 만들어 내시겠다는 말씀을 듣고서 모세가 어떻게 기도합니까? 여호와의 이름이 어떻게 되겠느냐고 기도합니다. 먼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하신 내용을 말합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용서 하여 달라고 합니다. 이로 인하여 용서를 받게 됩니다.

 

모세와 히스기야의 예를 들어 여호와의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가 여호와의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일하시는 내용입니다. 그 내용의 핵심적인 내용이 오늘과 다음 주에 볼 본문의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행으로 보면 이들을 진멸하여 마땅한 자들입니다. 단 한 번도 순종을 하지 않고 항상 반역하고 거역한 자들입니다. 그 마음의 생각과 계획아 항상 악합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맹렬한 질투로 또한 여호와의 자기 이름을 위하여 마지막 남은 예루살렘마저 멸망하게 만드십니다.

 

그러나 또한 자기 이름을 위하여 심판당한 그들을 돌아오게 하십니다. 오늘본문 20~21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 함으로 여호와의 언약에 의하여 심판을 당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쫓겨난 여러 나라에서 여호와의 이름이 더러워졌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이 더러워 졌다는 말씀은 이방 나라들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능력이 없어서 자기 백성들이 망하게 되었다고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세와 히스기야의 기도에서 보았습니다. 이들이 멸망 받아 마땅하지만 그러나 여호와의 이름을 여호와께서 아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를 22~23절을 봅니다. 이스라엘이 멸망 받아 마땅한 것을 구원하시는 것은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 아니라 너희가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큰 이름을 여호와께서 거룩하게 하시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 포로에서 돌이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나를 위한 구원이 아니라 여호와의 이름을 위한 구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자기중심으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결코 아닙니다. 너희를 위함이 아니라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하였다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우리가 한 일을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것뿐입니다.

 

이번 가을노회가 통영 인평교회당에서 있었습니다. 한국교회가 얼마나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혔는지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교회란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제가 아는 사람이 노회 장소 곁에 있어서 잠시 만났는데 추석에 이야기한 내용이 목사가 가스총 들고 용역 부른 이야기였답니다. 그것이 합동총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얼마나 더럽혔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으면서 두려움과 소망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두려움이란 한국교회를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셔야 하는데 심판을 하지 않는 것을 보니 이미 버리신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입니다. 또 하나의 실낱같은 소망은 아직 예수님께서 재림하시지 않으셨기에 하나님의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이 땅의 교회를 심판하여 주실 것이라는 소망입니다. 그런 심판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위하여 심판을 하여 주시면 이런 회개가 일어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신 모든 신실한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완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완성의 은혜를 무시하는 것이 얼마나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인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28~29절입니다.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이 말씀에 회개가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