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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 설교][동영상 설교]

에스겔 36:33~38 에덴동산 같이 2012. 10. 24

 

33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너희를 모든 죄악에서 정결하게 하는 날에 성읍들에 사람이 거주하게 하며 황폐한 것이 건축되게 할 것인즉 34 전에는 지나가는 자의 눈에 황폐하게 보이던 그 황폐한 땅이 장차 경작이 될지라 35 사람이 이르기를 이 땅이 황폐하더니 이제는 에덴동산 같이 되었고 황량하고 적막하고 무너진 성읍들에 성벽과 주민이 있다 하리니 36 너희 사방에 남은 이방 사람이 나 여호와가 무너진 곳을 건축하며 황폐한 자리에 심은 줄을 알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37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수효를 양 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 38 제사 드릴 양 떼 곧 예루살렘이 정한 절기의 양 무리 같이 황폐한 성읍을 사람의 떼로 채우리라 그리한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느니라

 

존 밀턴의 실낙원(失樂園,Paradise Lost)이라는 장편 서사시에 대하여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저도 원본은 보지 못하였고 줄거리만 보았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45년에 나왔습니다. 창세기의 천지창조와 아담과 하와가 낙원에서 쫓겨나는 과정을 그린 내용입니다. 이 서사시를 읽은 한 청년이 낙원의 회복에 대하여 실낙원의 속편을 써 달라는 요청에 의하여 밀턴이 복락원(復樂園, Paradise Regained)을 지었다고 합니다. 그 내용은 제2의 아담으로 불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사탄의 유혹을 이기고 인류에게 상실한 낙원을 회복시켜 준다는 내용입니다. 이 서사시는 성경을 배경으로 그 당시의 신학적인 해석들을 참고로 하여 만든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런 배경이 아주 성경적인 내용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물론 겉으로는 성경적인 묘사들이 나타나지만 문학작품이 세계적인 작품이 되려면 보편성이 필요합니다. 인류가 공통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이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나라에게 읽혀집니다. 이런 실낙원이라는 주제로 영화도 만들고 노래도 만들어지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밀턴의 실낙원과 전혀 다른 의미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것도 실낙원으로 표현하여 노래하고 영화를 만들고 합니다. 사람들은 성경을 믿지 않아도 원초적인 낙원을 잃어버렸기에 나름대로 낙원의 회복을 바라고 있습니다만 이런 것은 언제나 자기중심입니다.

 

오늘 본문말씀도 에덴동산 같이 회복하여 주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누구를 위하여 사람을 새롭게 하고 땅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까?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 이름을 위해서 죄로 인하여 더럽혀진 자기 백성들을 물로 씻으시고 새 영과 새 마음을 주셔서 새 사람을 만들어내십니다. 지난주 까지 새 마음과 새 영을 부어주심으로 새 사람을 만들어 내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로 인하여 바벨론과 다른 여러 지역으로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돌아오게 하시는데 새 영과 새 마음을 주셔서 돌이키게 하십니다. 이것은 바벨론에서 돌아오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벨론에서 돌아오는 것은 아직 그림자입니다.

 

새 영과 새 마음은 새 언약으로 돌아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진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새 영과 새 마음이 주어지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성령을 통하여 받게 됩니다. 이처럼 새로운 피조물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지난주까지의 말씀이었습니다. 이렇게 새롭게 된 자들이 돌아와서 살아야 할 땅도 회복이 되어야 합니다. 처음에 주어진 약속의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럽혔습니다. 그래서 70년 동안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동안 땅은 황폐하게 되었습니다. 그 황폐하게 된 70년 동안 땅은 안식을 합니다(대하36:21). 새롭게 된 백성들이 돌아와 살아야 할 땅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땅을 새롭게 회복하여 주신다는 말씀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에스겔 36:29~30절입니다. “봉독”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든 더러운 곳에서 구원하시고 이들을 살아갈 땅도 새롭게 하여 주십니다. 그래서 곡식을 풍성하게 하여 주시고 기근이 닥치지 않게 하신다고 합니다. 또 나무의 열매와 밭의 소산을 풍성하게 하여 주심으로 다시는 기근의 욕을 여러 나라에게 당하지 않게 하신다고 합니다. 기근의 욕이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땅에 왜 기근이 왔느냐는 욕을 먹지 않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과연 언제 이렇게 되는 것입니까?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왔지만 땅이 이렇게 회복된 적이 아직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국가로 된 날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땅은 여전히 황폐합니다. 그러자 사막에 물을 끌어다 농사를 짓는 키부츠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 곳이 과연 에덴동산일까요?

 

33~36절을 봅니다. “봉독” 모든 죄악에서 정결하게 하시는 날에 성읍들에 사람이 거주하게 하며 황폐한 곳이 건축되게 한다고 합니다. 황폐한 땅들이 경작이 되며 사람이 이르기를 이 땅이 황폐하더니 에덴동산 같이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지금도 황폐한 곳이 좋은 환경이 되면 에덴동산 같다고 말은 합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을 본 사람은 아담과 하와뿐입니다. 그 뒤의 사람들은 아담으로부터 말은 들었지만 에덴동산을 보지는 못하였습니다. 다만 살기 좋은 곳을 에덴동산 같다고 할 뿐입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이런 에덴동산과 같이 되기를 희망하면서 여러 가지 노력들을 기울입니다. 그래서 녹색성장이라는 말도 유행합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은 하나님께서 만드셨고 하나님께서 닫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에덴동산을 여시는 것도 하나님께서만 하십니다. 사람으로는 만들 수도 없고 들어갈 수도 없는 곳입니다. 물론 바벨론 포로에 돌아와서 예루살렘이 회복되는 것을 에덴동산 같다고 말을 할 수는 있습니다. 완전히 폐허가 된 곳에 다시 성전에 세워지고 성읍이 세위지고 사람들이 살면서 농사를 짓게 되면 그런 말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그림자의 모습이지만 회복되는 것을 보고서 사방의 남은 이방 사람이 여호와께서 무너진 곳을 건축하며 황폐한 자리에 심은 줄을 알리라고 합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셨기에 여호와께서 이루실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여호와께서 이루어내십니다.

 

37~38절을 봅니다. “봉독”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그래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지기를 구하여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이루신다고 하셨지만 이스라엘 족속이 이렇게 되도록 간구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아니할 것처럼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약속이라도 사람이 기도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새 번역으로 보겠습니다.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이제 나는 다시 한 번 이스라엘 족속을 시켜서 내게 도움을 간청하게 하겠고, 그들의 인구를 양 떼처럼 불어나게 하겠다.” 새 번역으로 보는 이유는 좀 더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였기에 이루어졌다는 말을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기도하도록 시키심이 회복입니다.

 

에스겔 14:3절입니다. “인자야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걸림돌을 자기 앞에 두었으니 그들이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 에스겔 20:3절입니다. “인자야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주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느니라 너희가 내게 물으려고 왔느냐 내가 나의 목숨을 걸고 맹세하거니와 너희가 내게 묻기를 내가 용납하지 아니하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묻기를 용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즉 기도하기를 용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들이 우상을 마음에 두고 우상에게 묻는 자들이기에 여호와께 묻기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제 묻기를 용납하신 것이 회복입니다.

 

성경을 조금만 자세히 보아도 말씀이 이러합니다. 우리가 에덴동산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하나님께서 이루어내셔야 합니다. 그 일에 우리가 참여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무궁한 언약적인 사랑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에덴동산과 같이 되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온 것도 아닙니다. 지금 유대인들이 모여든 팔레스타인 땅이 회복될 에덴동산도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예루살렘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러나 구약의 회복이라는 말씀들은 신약에서 지리적인 팔레스타인의 회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약은 이미 유대인과 이방인의 경계를 무너뜨려진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 낮에 보는 에베소서에서 이 말씀들이 상세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미리 한번 보겠습니다. 에베소서 2:14~19절입니다. “봉독”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입니다. 둘로 하나는 만드셨다고 합니다. 이 둘이란 유대인과 이방인입니다. 전에는 서로 원수였습니다. 그런데 원수된 것을 예수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이 둘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으신 것입니다. 이제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하십니다. 이것이 새 언약으로 만들어진 새 백성들입니다.

 

그러면 이들이 거할 땅은 어디입니까? 팔레스타인 땅이 아닙니다. 이 역사 속에서 시간적이고 공간적인 장소가 아닙니다. 에베소서 2:20~22절입니다.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증거 한 터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회복될 땅이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지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성전의 완성이 하나님이 거하실 생명의 나라입니다. 이러한 성전의 완성도 에스겔서 40장 이후에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회복과 땅의 회복과 성전의 회복을 에스겔서에서 말씀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라는 지역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땅에 오셨지만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사람과 땅과 성전의 회복이란 모두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을 말씀합니다. 방금 에베소서에서 본 것처럼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한 새 사람이 되는 것과 그들이 거할 터와 성전이 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 있는 자들에게 사람을 새롭게 하시고 땅을 새롭게 하신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한 새사람을 만들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게 하시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런 예언의 말씀을 신약의 사도들이 분명히 밝혀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문자적으로 성경을 풀어서 지상의 낙원을 이야기하는 자들이 여호와의 증인들입니다. 여호와의 증인들만이 아니라 세대주의 해석도 지상의 예루살렘과 성전의 회복을 말합니다. 그런데 과연 사람들의 손으로 만들어내는 곳이 에덴동산같이 될까요? 사람들이 상상하는 가장 좋은 낙원을 만든다고 하여도 그것은 결코 에덴동산이 아닙니다. 그곳에는 생명나무가 없습니다.

 

회복된 땅의 모습이 구약에서 그림자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51:1~6절입니다. “봉독” 3절에 보시면 모든 황폐한 곳을 에덴 같게 하신다고 합니다.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과 같게 하신다고 합니다. 이것은 지상낙원을 만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6절을 봅니다. 하늘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땅이 옷 같이 해어지며 거기 사는 자들이 하루살이 같이 죽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여호와의 공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영원함을 말씀합니다. 이것이 어떻게 옛 하늘과 옛 땅에서 이루어지겠습니까?

 

이사야 65:17~25절입니다. “봉독” 새 하늘과 새 땅을 그림언어로 표현합니다. 이사야 11장의 내용과 함께 여호와의 증인들이 파수대라는 책에 그림으로 사용하는 내용들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에덴동산같이 된 것일까요? 구약은 그림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완전하게 만들어내실 것의 모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요18:36).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셔서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겼다고 말씀합니다(골1:13).

 

요한계시록 21:1~4절입니다. “봉독” 새 하늘과 새 땅이 보입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없어졌습니다. 그곳에서는 혼동의 바다도 없습니다. 이것이 에덴동산같이 회복된 곳입니다. 사람이 결코 만들어 낼 수 없는 생명이 왕 노릇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사망이 없고 애통과 곡하는 것과 아픈 것이 없습니다.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1~5절입니다. “봉독” 생명수 강과 생명나무가 있습니다. 더 이상 이곳에 선악과는 없습니다. 생명나무만 있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합니다. 바벨론이라는 유배지에서 새롭게 되어 돌아온 자들이 에덴처럼 회복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만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나라를 함께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바벨론이라는 세상의 유배지에서 생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소망하며 사는 사람들이 믿음의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