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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 설교][동영상 설교]

에스겔 39:1~29 곡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회복 2012. 11. 21

 

1 그러므로 인자야 너는 곡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곡아 내가 너를 대적하여 2 너를 돌이켜서 이끌고 북쪽 끝에서부터 나와서 이스라엘 산 위에 이르러 3 네 활을 쳐서 네 왼손에서 떨어뜨리고 네 화살을 네 오른손에서 떨어뜨리리니 4 너와 네 모든 무리와 너와 함께 있는 백성이 다 이스라엘 산 위에 엎드러지리라 내가 너를 각종 사나운 새와 들짐승에게 넘겨 먹게 하리니 5 네가 빈들에 엎드러지리라 이는 내가 말하였음이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8 전에는 내가 그들이 사로잡혀 여러 나라에 이르게 하였거니와 후에는 내가 그들을 모아 고국 땅으로 돌아오게 하고 그 한 사람도 이방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내가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인 줄을 알리라 29 내가 다시는 내 얼굴을 그들에게 가리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내 영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쏟았음이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를 공격하여 백여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하였다는 뉴스를 보셨을 것입니다. 먼저 로켓포를 이스라엘을 향하여 발사한 것은 하마스입니다. 하마스는 이슬람의 무장저항 단체이며 가자지구의 정당입니다. 이 정당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포격한 이유는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를 육지와 해상에서 봉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마스정당이 집권하는 한 이스라엘은 이들의 봉쇄를 풀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의 여론에 알리고자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공터에 미사일을 쏜 것입니다.

 

이런 사태를 보면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성경을 보는 해석도 다르게 나타납니다.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을 성경에서 말하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동일하게 보는 사람들은 주로 세대주의적인 종말론을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문제를 다 이야기하려면 수십 시간을 말해도 부족할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 간단하게 오늘 성경 본문과 연결시켜서 과연 지금 저 팔레스타인 땅의 이스라엘이 성경에서 말하는 이스라엘의 회복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문제입니다.

 

지금의 이스라엘 국가가 세워지는 주도적인 운동을 한 사람은 테오도르 헤르츨(1860~1904) 이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핍박받는 각 지역의 유대인들을 위하여 유대인의 국가를 세우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운동에 반대한 유대인들이 있습니다. 랍비들이었습니다. 전통적인 랍비들의 견해에서 보면 시오니즘 운동은 하나님의 의지를 거스른 인간적인 운동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절대다수는 그들이 당하는 고통을 해결할 시오니즘 사상에 동의하여 이스라엘이 건국되었습니다. 이 과정은 돈과 정치력과 무기들을 동원하여 이루어내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이 과연 성경에 말하는 이스라엘의 회복인가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6:51~54절입니다. “51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의 하나가 손을 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52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54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조차 유대인들의 공통적인 관심사이며 지금도 전통적인 유대인들의 관심사인 메시아 왕국을 소망하였습니다. 이 나라는 이미 선지자들이 예언하였기에 다윗과 같은 왕이 세워지면 각 나라에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보배를 들고 올 것을 문자대로 믿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단 한 번도 그런 나라를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이루실 하나님의 나라는 무력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말씀하십니다.

 

사도행전 1:6~8절입니다.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스라엘의 회복의 때와 시기는 아버지의 자기 권한에 두셨기에 너희가 알 바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종말론을 말하는 자들이 때와 시기를 계산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알바가 아니라고 하시는데도 알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성령이 임하시면 땅 끝까지 예수님의 증인이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대로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성령이 임한 사도들이 무엇을 증거 하였습니까? 육적인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시고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증거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이유는 그들이 원한 이스라엘의 회복이 아니었기에 배척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고서는 땅의 예루살렘은 시내산이며 종이라고 합니다. 성령이 임한 자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을 이야기합니다(갈4:25~26). 그러면 성령이 임한 사도들이 바라본 이스라엘의 회복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되어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이 유대인이거나 이방인이거나 간에 다 돌아오게 되는 것을 이스라엘의 회복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을 봅니다. 지난주에 이어지는 곡에 대한 예언과 멸망에 대한 말씀입니다. 지난주에 본 38장에서도 곡의 멸망이 어떤지를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곡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여호와와 그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사탄의 세력으로 본다고 하였습니다. 이들의 멸망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으로 영원한 멸망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와서 마치 마른 뼈다귀들처럼 소망 없는 자가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이들을 회복시켜 주시면 하나님의 군대로 다시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은 오히려 죽임을 당하여 시체로 골짜기에 채워질 것이라고 합니다.

 

39:1~8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로스와 두발 왕 곡을 대적하십니다. 이들을 이끌고 오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이들이 들고 있는 무기들을 쳐서 떨어뜨리게 하시고 이스라엘 산에서 엎드려지게 합니다. 이들의 시체들은 각종 사나운 새와 들짐승의 밥이 되게 하십니다. 이들이 빈들에 엎드러지는 것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인한 것이며 또한 마곡과 섬에 거하는 자들에게도 불을 내리심으로 여호와인줄 알게 하신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이스라엘에게 알게 하십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다시는 여호와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않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힌 것은 여호와의 말씀을 믿지 않고 세상의 우상을 믿었습니다. 이제는 그 모든 우상들이 심판을 받음으로 다시는 여호와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지 않게 하심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십니다. 이와 동시에 여호와를 대적하는 모든 대적을 심판하심으로 다른 민족들도 알게 하십니다.

 

9~16절입니다. 곡의 멸망은 여호와의 심판으로 이루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전쟁에서 할 일이 없습니다. 마치 히스기야 왕 때에 앗수르 군대 18만 5천명이 하루아침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시체가 된 것처럼 이들이 멸망한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 일은 그들의 무기를 불태우는 것과 그들의 시체를 매장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전쟁이 완벽하게 승리한 것을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그래서 무기를 일곱 해 동안 불태울 것이기에 산의 나무를 벌목하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또한 일곱 달 동안 그들의 시체를 매장하게 됩니다. 이러한 일곱의 수는 완전을 뜻하기에 완전한 심판을 말씀합니다. 이들이 매장된 곳이 하몬곡, 또는 하모나라고 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많다는 뜻입니다.

 

전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많은 마른 뼈처럼 아무른 소망이 없었지만 그 마른 뼈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큰 군대로 살아났습니다. 이와 대비되는 모습이 여호와를 대적한 자들이 수많은 시체로 골짜기에 채워지고 그들이 매장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일을 여호와께서 그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로 이하여 여호와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은 결국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영원한 심판을 받을 것이며 그를 의뢰하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을 말씀합니다.

 

17~20절입니다. 여호와의 대적들이 멸망하면 각종 새와 짐승들이 이들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심판당한 자들이 한 때는 세상의 용사이며 세상의 왕들입니다. 말과 기병과 용사들입니다. 이들의 주검을 새들과 짐승들이 잔치를 하듯이 배부르게 먹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모습은 요한계시록 19:11~21절에도 나옵니다. “봉독” 백마 타신 분이 적을 이기시는데 그 이름이 충신과 진실이며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분의 심판으로 인하여 온 세상에서 여호와와 그 기름부음 받은 자의 대적하는 자들이 심판을 당합니다. 이런 모습이 에스겔서 39장과 연결이 됩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대적들이 영원한 심판을 받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서에서도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인 새 땅과 새 성전을 말씀하는 바로 앞에 적들의 심판을 보여주는 것과 같이 요한 계시록에서도 새 하늘과 새 땅을 말씀하는 바로 앞에 대적들의 심판을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말씀들은 여호와를 대적하는 악의 세력들은 궁극적으로 완전한 심판과 멸망을 받을 것으로 보여주시면서 동시에 자기의 백성들에게는 영원한 생명과 새 하늘과 새 땅을 약속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판과 구원의 과정은 한 나라를 말하기도 하지만 한 가정을 말하기도 하고 한 개인을 말하기도 합니다. 야곱의 예를 봅니다. 야곱 한 사람의 환난의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게 하십니다. 이것은 야곱 안에서 한 가정이며 이것이 한 국가로 성립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만들어 내시는 것은 세상의 환난들을 통과하며 영원한 약속을 붙들게 하시는 것입니다.

 

21~26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영광과 권능을 여러 민족가운데서 나타내신다고 합니다. 어떻게 나타내시는가 하면 이스라엘 족속들이 범죄 함으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얼굴을 가리시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얼굴을 가리시는 것이 심판입니다. 그 결과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기 이름과 영광을 위하여 다시 그들에게 얼굴을 향하여 드십니다. 그것이 사랑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원을 받아 나온 자들은 부끄러움을 품고 여호와께 범한 죄를 뉘우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구원받고 나서 자기 죄를 알고 뉘우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얼굴을 가리셨다가 다시 구원하시는 것을 예수님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 자기 백성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에게 우리를 대신 하여 죄를 삼으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고후5:21). 범죄 한 우리가 영원히 여호와의 얼굴의 가림을 받아야 하는데 예수님이 대신 여호와의 얼굴로부터 가림을 받아야 했습니다. 여호와의 외면, 그 얼굴의 가림이 그 아들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라고 부르짖은 그 아들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버림 받은 예수 그리스도를 3일 만에 다시 살리십니다. 우리가 받을 모든 저주를 예수님의 대신 죽음으로 완전히 해결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열국 가운데서 자기 백성을 주께로 돌이키십니다. 이들이 돌아오는 것은 자기의 죄를 회개하면서 돌아오게 됩니다. 27절을 봅니다. 열국에서 돌아오는 것은 여호와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일차적인 돌아옴은 바벨론에서 돌아오는 것입니다만 궁극적인 돌아옴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어 열방에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것에 여호와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28절입니다. 사로잡혀 갔던 자들을 돌아오게 하시는데 한 사람도 이방에 남기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올 때는 많은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고 그곳에 눌러 살았습니다. 이들을 ‘디아스포라’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다 돌아오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돌아오는 것은 지리적인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한 새사람이 만들어져서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돌아오는 것임을 주일 낮에 보는 에베소서 2장에서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맡기신 자를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 살려내신다고 하셨습니다(요6:39). 이것이 이스라엘의 회복입니다.

 

29절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지 않으시는 것은 하나님의 영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부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곧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이 영을 부어주시는 것이 새 언약이며 예레미야와 에스겔과 요엘 선지자가 예언하였으며 그 예언의 성취가 성령이 임한 것이라고 하나님의 영이 부어진 사도들이 증거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그리스도의 영이 부어진 자들은 이 세상이 결국 심판 받을 것을 알기에 새 하늘과 새 땅을 사모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심을 간절히 사모하며 기다리게 됩니다.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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