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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 설교][동영상 설교]

에스겔 40:1~42:20 이상 중에 본 성전 2012. 11. 28

 

1 우리가 사로잡힌 지 스물다섯째 해, 성이 함락된 후 열넷째 해 첫째 달 열째 날에 곧 그 날에 여호와의 권능이 내게 임하여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시되 2 하나님의 이상 중에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에 이르러 나를 매우 높은 산 위에 내려놓으시는데 거기에서 남으로 향하여 성읍 형상 같은 것이 있더라 3 나를 데리시고 거기에 이르시니 모양이 놋 같이 빛난 사람 하나가 손에 삼줄과 측량하는 장대를 가지고 문에 서 있더니 4 그 사람이 내게 이르되 인자야 내가 네게 보이는 그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네 마음으로 생각할지어다 내가 이것을 네게 보이려고 이리로 데리고 왔나니 너는 본 것을 다 이스라엘 족속에게 전할지어다 하더라

 

에스겔 40장에서 에스겔의 끝인 48장 까지는 선지자가 이상 중에 본 성전의 내용과 새로운 땅의 정리와 분배로 마무리가 됩니다. 이것은 모든 악의 세력에 대한 심판이 38장과 39장을 통하여 보여주신 후에 주신 이상입니다. 그러므로 지난주에 요한계시록과 연결하여 보았습니다만 바벨론의 멸망과 함께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악의 세력이 심판을 당하고 나서 새로운 성전과 새로운 땅의 분배는 참된 성전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성전이 회복되는 것으로 이상을 보여준 것입니까? 그 이유는 성전의 기능을 알아야 합니다. 성전이란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곳이라는 생각이 우선이지만 성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신다는 임재가 더 중요한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의 제사도 하나님의 임재를 위한 제사인 것이지 제사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시내산에서 언약을 체결하고 모세가 시내산에서 40일 동안 율법을 받아옵니다. 그 중에 가장 많은 양이 성막에 대한 설계도와 그 성막과 제사장의 복장과 섬기는 방법과 성막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막을 왜 만들라고 하신 것입니까?

 

출애굽기 29:45~46절입니다. “44 내가 그 회막과 제단을 거룩하게 하며 아론과 그의 아들들도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며 45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46 그들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려고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줄을 알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성전을 만드는 방법과 제사와 제사장의 제도를 알려주시고서는 그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스라엘 중에 거한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한 이유도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 거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여호와는 거룩하시기에 죄인들과 함께 거하시려면 속죄가 있어야 합니다. 속죄로 인한 화목과 여호와의 임재하심을 위하여 성막을 만들게 하신 것입니다. 성막이 완성이 되었을 때에 구름이 성막을 덮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으로 여호와의 임재를 보여주셨습니다(출40:34~35).

 

모세로 인하여 만들어진 성막이 광야를 지나고 가나안에 들어와서 이곳저곳으로 이동하다가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고정된 건물 성전이 됩니다. 다윗이 성전을 위하여 준비하고 솔로몬이 7년 동안 건축합니다. 그 성전이 완성되었을 때에도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임합니다(역대하7:1~3). 이 성전을 완공한 솔로몬이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열왕기상 8:27절입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하나님께서 사람의 손으로 지은 건물에 계실 수 없음을 압니다. 다만 하나님의 이름을 두심으로 이곳을 향하여 기도하면 들어달라고 간구합니다. 성막을 만든 모세나 성전을 건축한 솔로몬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임재하기 위한 성막과 성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이름을 성전에 두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면 어떻게 하십니까? 열왕기상 9:6~9절입니다. “6 만일 너희나 너희의 자손이 아주 돌아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경배하면 7 내가 이스라엘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속담거리와 이야기 거리가 될 것이며 8 이 성전이 높을지라도 지나가는 자마다 놀라며 비웃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 땅과 이 성전에 이같이 행하셨는고 하면 9 대답하기를 그들이 그들의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을 따라가서 그를 경배하여 섬기므로 여호와께서 이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심이라 하리라 하셨더라” 지금 이 말씀대로 여호와를 배반하였기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 있고 성전은 파괴가 되었습니다.

 

에스겔 8:1~18절을 봅니다. “봉독” 에스겔이 여호와의 권능에 이끌려 예루살렘 성전을 이상 중에 보게 됩니다. 이때는 아직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지 않은 때입니다. 그 성전 안에 온갖 우상숭배가 가득합니다. 이러한 우상숭배는 결국 여호와를 배반한 것이기에 여호와의 자기 이름이 더럽힘을 받더라도 이런 성전을 던져버린 것입니다. 그 결과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왔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자기 이름을 위하여 다시 회복하여 주십니다. 이 회복은 바벨론 포로에 잡혀오는 심판의 과정을 통과하고서 회복하십니다. 그 회복의 과정이 마른 뼈다귀들이 말씀과 성령에 의하여 하나님의 군대로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 40:1~4절을 봅니다. 에스겔이 사로잡혀 온지 25년이며 예루살렘 성이 함락된 후 14년 첫째 달 열째 날에 여호와의 권능이 에스겔에게 임합니다. 이 날은 유대의 옛날 달력으로 하면 희년의 나팔을 부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에스겔이 이상 중에 새로운 성전을 본 것이 하나님의 회복과 연결시켜 보기도합니다. 여호와의 권능에 이끌려 이스라엘 땅 매우 높은 산위에 내려놓아집니다. 이것은 예루살렘이 있는 시온산을 말합니다.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다른 지역보다는 높은 곳이지만 매우 높은 곳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런 표현은 신학적인 표현입니다. 여호와가 높으신 분이시기에 여호와께서 임재하시는 곳을 매우 높은 산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남쪽으로 보는데 성읍형상이 있습니다. 이것은 물론 예루살렘입니다.

 

이곳에서 놋과 같이 빛난 형상의 사람이 삼줄과 측량하는 장대를 가지고 문에 서 있습니다. 이 사람이 에스겔에게 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생각하라고 합니다. 이것을 보이려고 왔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성전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 성전을 보고 말하는 것을 귀로 듣고 보고 들은 것을 전하라고만 한 것이 아니라 보고 들은 것을 마음으로 생각하라고 합니다. 이 성전이 모세나 다윗이 성막이나 성전의 설계도대로 건축될 건물로 된 성전이라면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생각하라는 말씀은 에스겔이 이상 중에 보는 성전이 단지 건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에스겔 47:1~12절입니다. “봉독” 성전 동편 문지방 밑으로 물이 흘러나옵니다. 건물에서 물이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물이 점점 불어나서 큰 강물이 되어 흐릅니다. 이 강물이 가는 곳 마다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강가로 나무가 자라가 바다로 가니 바닷물이 살아납니다. 모든 생물이 살아납니다. 강 좌우에 과실나무가 자라고 그 잎이 시들지 않으며 달마다 새 열매를 맺는 것은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은 약재료가 된다고 합니다. 이런 물이 나오는 곳이 에스겔이 이상 중에 본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이 본 성전은 장차 생명수를 공급하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한복음 7:37~39절입니다.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이 명절은 초막절이라고 합니다. 초막절에는 제사장들이 실로암 못에서 물을 길어다가 성전제사 때에 전제처럼 붓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참된 생수는 예수님에게서 흘러나온다는 말씀을 예수님께서 하셨습니다. 이 생수는 바로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이 이상 중에 본 성전을 마음으로 생각하면 이것은 건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건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구약은 아직 모형과 그림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는 건물이 지어집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합니다. 이 성전을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성전이 에스겔의 이상대로 지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 후에 예수님 당시에 헤롯성전이라고 불리는 성전도 에스겔의 이상 중에 본 성전은 아닙니다. 이상 중에 본 성전 안에 성소와 지성소를 둔 부분은 모세와 솔로몬이 건축한 성소와 지성소의 모양은 같지만 그 크기는 일치하지를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건물로 된 성전을 헐라고 하시면서 자신이 3일 만에 일으키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성전 된 자신의 육체를 말씀하신 것입니다(요2:19~21).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심으로 성령이 임한 성도도 성전이 됩니다(고전3:16, 6:19). 그런데 성령이 임하여 그리스도의 몸 된 성전이 된 것을 신약에서도 건물처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일 낮에 보는 에베소서 2장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거하실 성전이 지어진다고 말씀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다시 에스겔서의 성전을 40장에서 42장까지 보겠습니다.

 

에스겔 40:1~5절은 새로운 성전의 서론과 사방의 담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담의 두께와 높이는 약 3.2미터가 됩니다. 이것은 성전 안과 밖을 분리하는 담입니다. 에베소서에서 보았습니다만 이 담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하는 담입니다. 거룩함과 거룩하지 못함을 구별합니다. 이 담으로 이방인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담을 자기 육체로 헐어내시고 자기 피로 한 새 사람을 만들어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게 하신 것입니다. 이런 담이 에스겔 42:15~20절에도 나옵니다. “봉독” 이 담은 정 사각형으로 된 담인데 한 면이 약 250미터가 됩니다. 이 담이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앞에서 본대로 이 담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이냐 그리스도 밖이냐는 것을 달라진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한 것입니다(고후5:17). 이제는 특정 건물과 공간과 시간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입니다.

 

에스겔 40:6~49절은 성전 뜰의 안과 밖의 문과 방들입니다. 문은 동, 남, 북쪽에 있습니다. 41:1~26절은 성소와 지성소와 골방과 성전의 외부와 문들입니다. 42:1~14절은 제사장들의 방입니다. 이것을 전체적인 평면도로 보자면 정 사각형의 담으로 구별된 곳으로 그 안에는 뜰이 있고 뜰 안에 내전이 있습니다. 이 직사각형내전 안에 다시 성소와 지성소가 있습니다. 이 성소와 지성소는 모세의 성막과 솔로몬의 성전과 크기만 다르지 형태는 같은 모양입니다.

 

이런 성전을 이상 중에 보여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고 들고 마음으로 생각하여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바벨론 포로로 잡혀온 자들이 이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살렘마저 파괴된 14년 후에 에스겔이 전한 이 성전에 대한 이상을 듣고서 어떤 마음이 들었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범죄와 절망에도 불구하고 다시 포로에서 회복시키시고 성전을 회복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믿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말씀을 보는 우리들은 어떤 믿음을 가지게 됩니까? 이제는 건물로 된 성전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성전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런 성전은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 세울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란 주의 보내심을 따라 씨를 뿌리고 물을 주는 것이지만 자라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 된 성전은 그 머리로부터 모든 것을 공급받는 것입니다(골2:19). 이런 자들은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아니한 하늘의 성소를 사모할 것입니다.

 

히브리서 9:9~12절입니다. “9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10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11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이 하늘 성소를 요한계시록 22:1~5절에서 에스겔 47장의 성전에서 생수가 나오는 모습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더 이상 성전이 필요가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1:22절입니다.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이것이 에스겔이 이상 중에 본 성전의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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